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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을 더 가을답게 할 뮤직 레시피 `Jazz`
입력 : 2013.12.20 14: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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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는 남성의 음악으로 시작됐고 가을은 남성의 계절이니 재즈는 가을의 음악이다’라는 추잡한 삼단논법으로 가을과 재즈의 조합을 설명할 의도는 눈곱만큼도 없다. 그럼에도 이 장황하고 어설픈 시도로 둘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으려는 이유는 특별히 다른 방법이 없어서다. 이 음악과 계절 사이엔 어떤 접점이 있는 것일까. 왜 사람들은 가을을 재즈로 버티려는 것일까.
가을, 우리는 왜 재즈를 찾는가 “가을에 재즈 페스티벌이 많이 열려서가 아닐까요?”
재즈와 가을의 교집합을 묻는 질문에 너무도 간단하게 이런 대답을 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아 처음엔 놀랐고, 대답 또한 의외여서 다시 한 번 놀랐다. 전 세계 재즈 페스티벌의 대부분은 여름에 개최된다. 약 100여 개의 행사가 세계 각국에서 열린다. 물론 대부분은 북미에 집중돼있다. 열흘 이상 개최되는 상상 초월의 대규모 축제인 캐나다 몬트리올 재즈 페스티벌과 스위스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 또한 여름에 열린다. 이 답은 그래서 틀렸다.
“재즈의 분위기와 가을의 느낌이 통하는 게 많잖아요.”
물론 가을과 어울리는 재즈곡은 셀 수 없이 많다. 대중들이 기억하고 있는 재즈곡들 대부분이 아마 그럴 것이다. 하지만 오네트 콜맨의 앨범 ‘Free Jazz’에 실린 37분짜리 곡이나, 박자 맞추면서 박수치기도 힘든 데이브 홀랜드의 ‘Critical Mass’ 같은 앨범을 들어보시라. 도대체 어디가 가을과 어울린단 말인가! 어떤 재즈곡들은 음악이 아니라 수학 같은 느낌을 줄 때도 있다. 이 답 또한 그래서 틀렸다.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은 재즈와 가을의 묘한 어울림을 이렇게 논리를 갖고 설명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점이다. 가을과 재즈라는 감성적인 단어들을 이성적으로 파헤치고 연관 짓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으랴. 음악은 대중에 의해 소비되는 것이고, 음악에 있어선 그들은 합리적으로 행동하지 않는 경우가 지극히 많은데 말이다. 위 질문에 대한 가장 근접한 정답은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느끼기 때문’이 아닐까. 어찌 됐든 가을의 낮과 밤에 재즈만큼 어울리는 음악은 없을 것이다.
재즈와 가을이 만나 빚어내는 감상에 빠져있다 보면 어느덧 현실과 점점 멀어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재즈를 실제 세계의 도구로 사용해보자. 재즈는 사람 사이의 가교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음악이다. 식사 자리에서 특히 유용하다. 음악이 청각적인 양념이 되어 음식 위에 뿌려지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Micahel K. Hui(1995), Stepha nie Wilson(2003), Bernd Rohrman n(2003), Mark I. Alperta(2005), Patrik N. Juslin(2008), 조수현(2007) 등의 논문엔 어떤 음악이 식사 전이나 식사 도중 고객에게 긍정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지, 고객의 재방문 결정이나 지출 비용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다.
논문들의 결론부터 끄집어내면 재즈나 클래식이 가장 큰 만족감을 준다는 것으로 밝혀졌고, 미디엄 템포의 빠르기가 효과적이었다. 그 가운데 어떤 종류의 식당과 음식이든 상관없이 미디엄 템포의 재즈는 고객들에게 큰 만족감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프랜차이즈 커피숍에서 왜 트랙을 반복시켜가며 재즈를 내보내는지, 일본 도쿄의 라멘집에서 1950~60년대의 하드밥이 흘러나오는지가 설명된다.
고급스런 이미지를 소비하고 있다는 분위기, 가사가 없어 음악에 관심을 뺏기지 않고 식사와 대화에 집중할 수 있는 점, 큰 차이가 없는 템포의 곡이 계속되면서 차분한 상태로 전반적인 분위기를 이끌어갈 수 있는 점 등이 그 이유가 아닐까 한다.
음악에 식견이 있는 외국인과의 자리라면 재즈는 더더욱 소중한 대화 재료다. 농담처럼 지인들에게 하는 얘기가 있다.
영어에 아무리 자신이 없더라도 “Do you know”만 알면 외국인과 2시간을 대화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다. “Do you know Miles Davis?”처럼 재즈 뮤지션 이름만 뒤에 삽입하면 끝이다. 대화는 술술 풀리게 마련이다. 그들의 문화에 묻어있는 재즈의 흔적은 상상 이상으로 많다.
받을 때마다 답하기 참 곤란한 질문이다. 록, 힙합, 가요 같은 대중음악을 들으면서 또 ‘이해’하면서 듣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재즈 또한 음악이고, 그래서 듣고 즐거우면 그뿐이다. 듣고 즐겁지 않은 음악을 억지로 자신의 귀에 강요할 필요는 없다. 음식을 선택할 때와 마찬가지다.
자신의 취향에 맞는 음식을 먼저 맛보고, 젓가락이 가지 않았던 접시에 서서히 접근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많이 알면 알수록 더 많이 들리는 음악 역시 재즈다. 세부적이고 전문적인 지식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기초적인 상식만으로도 충분하다.
듣고 또 들으면 금세 마니아 수준 이상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 지식은 그 후에 자연스레 쌓인다. ‘선 감상, 후 지식’을 권유하고 싶다.
재즈를 더 즐기고 싶다면 본질에 접근해볼 필요가 있다. 이게 기초 상식이다. 재즈는 ‘스윙’이라는 리듬 위에 ‘즉흥연주’를 하는 음악에서 시작됐다. 지금은 스윙뿐 아니라 라틴음악, 록, 힙합, 댄스음악 등 다양한 리듬이 쓰이고 있어 즉흥연주의 요소가 더욱 중요하게 부각된다. 곡의 좋고 나쁨은 이 즉흥연주로 판가름된다.
재즈 마니아들에게 재즈를 좋아하는 이유를 물어보면 많은 이들이 “자유로운 음악이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이들이 말하는 ‘자유’는 바로 즉흥연주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완전한 자유가 아니라 제약 아래서의 자유다. 재즈의 즉흥연주는 주어진 곡의 화성, 마디 수, 템포, 리듬을 지켜가며 즉흥적으로 연주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가을에 맞게 ‘Autumn Leaves’라는 곡을 연주한다고 치자. 이 곡은 32마디의 곡이다. 뮤지션들은 서로 약속한 템포와 리듬을 지키면서 곡의 멜로디를 연주한다. 그 다음 악기별로 즉흥연주를 진행한다. 어떤 악기가 먼저 솔로를 진행하는지에 대한 규칙은 없다. 자유다.
뮤지션들은 정해진 코드에 맞는 스케일을 사용해 솔로를 연주한다. 각 악기별로 즉흥연주가 끝나면 다시 멜로디를 연주하고 곡을 끝낸다.
재즈곡의 분위기도, 뮤지션들의 성향도, 재즈 팬들의 호불호도 이 즉흥연주에 의해 갈린다. 팻 메스니는 수려하게, 오스카 피터슨은 신나게, 존 콜트레인은 각도 있게, 쳇 베이커는 차분하게 연주한다.
가을에 어울리는 재즈곡 역시 본인의 취향에 따라 기준으로 선택하면 좋다. 재즈곡은 멜로디보다 즉흥연주가 차지하는 비중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트럼펫, 색소폰, 기타, 피아노 등 각 악기의 질감을 기준으로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고즈넉한 분위기를 느끼고 싶을 땐 묵직한 트롬본의 솔로가 인상적인 커티스 풀러의 ‘Love Your Spell Is Everywhere’, 가을밤의 로맨스를 느끼고 싶다면 키스 재럿의 ‘My Song’을 듣는 식이다. 가을을 재즈로 물들이는 일, 재즈로 가을을 이겨내는 일, 이제는 모두 본인의 몫이다.
[권오경 재즈아티스트·백제예술대학교 실용음악과 교수]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38호(2013년 1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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