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와 한은 장밋빛 경제전망 믿어도 될까

    입력 : 2013.09.03 09:15:57

  • 사진설명
    정부와 한국은행은 대한민국 경제가 바닥을 찍었다고 선언했다. 급격하지는 않겠지만 점점 더 좋아질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을 더했다. 실제로 경제를 설명하는 많은 숫자와 통계들이 서서히 회복의 징후 쪽으로 돌아서고 있다. 먼저 전 분기 대비 경제성장률이 지난 2분기 1.1%(속보치)를 기록하면서 9분기 만에 ‘0%대 성장의 늪’을 벗어났다. 6월 경상수지 흑자도 72억4000만 달러를 기록하면서 17개월 연속 흑자 행진을 이어갔다. 상반기 누적 흑자만 300억 달러에 달해 사상최대치를 경신했다. 6월 광공업 생산이 제조업 부문 약진으로 전월 대비 0.4% 증가하는 등 생산 지표도 개선의 기미를 보이고 있다.

    사진설명
    상승 모멘텀 확대된 것은 분명한데… 단기적인 경기 회복 국면을 점칠 수 있는 경기 선행지수 순환변동치는 지난 1~3월 연속 전월 대비 감소세를 이어가다 4월(99.6)과 5월(99.9), 6월(100.4) 3개월째 상승하고 있다.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고 기준금리를 인하하고, 4·1 부동산 활성화 대책을 내면서 정부는 우리의 올해 경제성장률을 2.7%로 높여 잡은 상태다. 여전히 미약한 성장률이지만 한은은 한술 더 떠 2.8% 성장할 것으로 올해 경제를 전망했다. 내년 성장률은 4.0%에 육박한다. 하지만 이 같은 청신호가 하반기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예측은 시기상조다. 2분기 성장률은 때 이른 무더위에 따른 냉방용품 판매 증가와 현대자동차의 주말특근 재개 같은 일시적인 요인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 노조의 파업 우려는 여전히 우리 경제의 뇌관으로 자리 잡고 있다. 지난 3월초 현대자동차 울산 2·4·5 공장의 주말특근 거부만으로 같은 달 국내 자동차 생산의 전월 대비 감소폭은 9.8%에 달했다. 이형일 기획재정부 경제분석과장은 “사측이 수용하기 어려운 노조 요구안을 둘러싸고 주중을 포함한 대대적인 파업이 본격화될 경우 하반기 경제에 극심한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우려했다.

    선행지수 순환변동치의 3개월 연속 상승세도 경기회복세의 척도로는 무리가 있다고 정부는 보고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GDP 상승폭과 전 산업 상승폭이 모두 확대됐다는 점에서 상승 모멘텀이 확대된 것은 분명하지만 경기가 바닥을 찍었다고 보기는 힘들다”고 전했다. 선행종합지수에서 추세 요인을 제거한 선행지수 순환변동치가 하락세에서 상승세로 돌아선 후 상승세가 6개월가량 지속돼야 통상 경기가 회복됐다고 진단한다.

    정부의 장밋빛 전망에 대해 쓴소리를 하는 사람들은 삼성전자를 비롯한 극소수 수출 대기업이 이끌어가는 우리 경제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일부 대기업들만 성장하는 상황에서 일반 국민 모두가 느낄 수 있는 성장의 낙수효과가 나오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 후보 선수가 없는 상황에서 국가대표 기업이 발을 헛디딜 경우 우리 경제는 깊은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

    530억 달러 경상수지 흑자 뚜껑 열어봐야 올해 삼성전자의 갤럭시 스마트폰이 없었다면 우리 경제 경상수지가 적자로 돌아설 수 있다는 아찔한 분석도 나온다.

    배민근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상반기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수출이 경기를 이끌어갔는데 이 부분을 빼고 나면 순수출이 마이너스로 돌아설 만큼 의존도가 커지고 있다”며 “전자제품은 소니, 자동차는 도요타로 독식되는 일본 경제의 장기 침체 직전 상황과 유사하게 흘러가고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 지난 6월부터 최대 수출 효자 종목인 휴대폰 산업이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휴대폰 수출은 5월 34억 달러에서 6월 26억 달러로 감소하면서 6월 경상수지 흑자가 5월에 비해 12억 달러 줄어드는 데 큰 영향을 줬다. 최근 출시한 신형 휴대폰 모델이 기대 이하의 반응을 받고 있는 데다 중국 등 신흥 경쟁사들의 추격이 거세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이 올해 530억 달러 경상수지 흑자를 전망했지만 뚜껑을 열어봐야 한다는 신중론이 힘을 얻는 이유다.

    낮게 유지되고 있는 원유값이 언제 튈지도 우리 경제를 노리는 복병이다. 올해 사상 최대 경상수지 흑자는 수출이 크게 늘어서라기보다, 원유가격 하락으로 인한 수입 감소효과가 강하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은 원유가격이 10% 떨어지면 연간 물가상승률이 0.2%포인트 낮아지고 연간 성장률은 0.2%포인트 높아진다는 분석 결과를 내놓았다.

    한은은 석유 도입단가 기준으로 올해 상반기 배럴당 108달러 수준인 원유가격이 하반기에는 99달러로 떨어진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선 한은의 원유가격 전망이 지나치게 낮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그만큼 우리 경제 성장에 대해 낙관적으로 보고 있다는 얘기다.

    글로벌 유수 에너지 전망기관들은 올해 하반기 원유가격을 모두 배럴당 100달러 이상으로 예상하고 있다. 차이는 있지만 석유산업연구소는 브렌트유 기준으로 하반기 평균 가격이 배럴당 106달러를 훌쩍 넘어설 것으로 본다.

    사진설명
    전셋값 상승 민간소비 옥죄는 덫 될까 익명을 요구한 민간 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여러 조건을 판단했을 때 한은 유가 전망이 과도하게 하락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하반기 원유 도입 가격이 100달러 아래로 유지되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이집트와 리비아 일대 정정 불안이라는 지정학적 리스크에 여름 휴가시즌 수요 증대가 겹쳐 7월 국제유가는 지속적인 상승세를 보였다.

    하반기 전셋값 상승도 민간소비를 옥죄는 덫으로 작용할 수 있다.

    서울의 아파트 전셋값 상승률(전기 대비)은 4·1 부동산 대책에 따라 올해 1분기 1.7%에서 2분기 0.7%로 둔화됐다.

    하지만 4·1 대책의 취득세 감면 혜택이 지난 6월 종료되면서 5월과 6월 각각 0.2%, 0.1% 수준이었던 서울의 전셋값 상승률은 7월 0.7%로 다시 뛰어올랐다. 전국적으로 봐도 7월 아파트 전셋값 상승률은 전월 대비 0.4%로 6월(0.3%)보다 상승폭을 키웠다.

    전셋값 상승은 소득이 낮은 세입자의 자산이 고소득 임대인에게 이전되는 ‘부의 이동’을 의미한다. 이렇게 뭉칫돈이 고소득층으로 흘러가면 가뜩이나 위축된 우리 경제의 민간소비가 더 쪼그라들게 된다.

    한국은행은 실질 전셋값(소비자물가를 반영한 전셋값)이 1% 높아질 때마다 단기적으로 0.37%, 장기적으로 0.18%만큼 소비가 줄어든다고 분석했다. 향후 1년간 전셋값이 10% 오른다면(물가상승률을 1.7%로 가정하면) 국내 민간소비는 3.1%나 급감하게 된다. 국내총생산(GDP)이 1.6%나 줄어드는 효과다. 정부가 올해 경제성장률(GDP 성장률)을 2.7%로 전망하는 점을 감안하면 전셋값 상승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이는 고소득자의 한계소비성향이 저소득자보다 낮기 때문이다. 월급 100만원을 받는 A와 200만원을 받는 B에게 똑같이 50만원의 보너스를 줬다고 하자. 그 보너스를 가지고 일반적으로 A가 B보다 더 많은 소비를 하게 된다. 한계소비성향 차이에 따른 민간소비의 위축 과정을 설명하는 틀이다.

    새 정부의 투자활성화 대책이 기업의 투자와 고용으로 이어질지도 미지수다. 당장 화학물질 등록·평가법과 통상임금 이슈라는 뇌관이 관건이다. 이런 상황에서 신규 순환출자 금지처럼 예고된 경제민주화 조치에 대해서도 기업들이 투자와 고용을 빌미로 난색을 표시할 가능성이 높다. 최근 세법개정안 사태의 후폭풍으로 법인세 인상 여론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도 기업들의 적극적인 행보를 제약하는 요인이다.

    그런데 정부의 논리가 맞나? 1. 유가 오르면 말짱 도루묵 = 유가 10% 상승하면 우리 경제성장률 2% 하락

    2. 경상수지 흑자 530억달러 달성하나? = 삼성전자 스마트폰 수출 감소, 현대차 파업 불안

    3. 전셋값 상승 등으로 민간소비 더 냉각될 수도

    미·중·일에 쪼이는 너트크래커 한국 경제 “지금 돌아가는 상황이 1997년 외환위기와 닮아도 너무 닮았다.”

    다수 국내 경제학자들이 지금의 경제 상황을 보고 쏟아내는 우려다.

    미국의 긴축정책(금리인상)과 그에 따른 가파른 엔저, 한국의 수출경쟁력 약화와 외국자금 유출.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은 외환위기 초입의 모습과 지금이 닮아있다는 얘기다.

    그 시작은 미국의 출구전략이다. 선진국들이 서로 돈을 찍으면서 이끌어가던 경제 진작 대열에서 미국이 슬그머니 빠져나가려 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은 여전히 엔화 풀기에 고삐를 채울 생각이 없는 듯하다. 특히 지난 7월 21일 일본 집권 여당의 참의원 선거 승리로 구조개혁과 양적완화를 기조로 한 아베노믹스의 추진동력이 강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해졌다. 이런 와중에 8월 12일 일본의 2분기 국내총생산(GDP)이 시장 예상을 크게 밑도는 전 분기 대비 0.6%로 나타났다. 엔저를 필두로 한 일본의 총공세가 예상되는 대목이다.

    고성장 기조에서 질적 성장으로 전환한 중국의 ‘의도된 부진’도 또 다른 악재다. 중국의 전년 동기 대비 GDP 성장률은 지난해 4분기(7.9%)와 올해 1분기(7.7%)에 이어 2분기 7.5%를 기록해 꾸준한 둔화세를 보이고 있다.

    주력 수출품목의 절반가량을 중국에 의존해온 우리나라는 이제 중국의 새로운 공략 부문인 신수종 사업 부품 수출로 고개를 돌려야 하는 상황이다. 문제는 친환경과 에너지 같은 중국의 7대 신성장산업에서 국내 기업의 경쟁력이 아직 미비하다는 점이다. 가격 경쟁력 우위를 잃은 지는 오래고 중국 시장을 공략한 세계적인 기업들과의 품질 경쟁도 낙관하기 힘들다.

    반(反)부패와 공평을 내세운 중국의 임금 인상과 부동산가격 억제 정책이 각각 기업환경 악화나 지방정부의 재정건전성 악화 같은 단기 위험과 충돌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강력한 지도 체제를 갖고 있는 중국의 특성상 한국, 일본과 달리 경착륙을 회피할 수 있는 정책 대응 여력이 충분하다는 점에서 이런 우려가 기우라는 시각도 많다.

    미국 출구전략이 실제 시작되면 어디로 튈지 모르는 금융 불안정성도 심각한 위협으로 떠오르고 있다. 전 세계에 흩어져 있던 달러가 ‘약한 경제’로부터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급류가 몰아닥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은 비교적 외국인 자금 이탈에 대해 안전하다고 보고 있지만, 돈의 쏠림과 유출은 폭우가 물길을 내는 것처럼 강력한 힘이라 종잡을 수가 없다.

    공공부문 위축에도 소비와 주택 부문을 중심으로 미국 민간 부문의 회복 모멘텀 강화가 점쳐지는 가운데 올해 말이나 내년 초쯤으로 예상됐던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 시기가 점차 빨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잇따르고 있다. 한국은행 뉴욕사무소는 지난 8월 8일 ‘최근의 미국 경제 상황과 평가’란 보고서에서 “미국의 현재 실물경제 회복세가 지속될 경우 연방준비제도는 금년 후반 양적완화 축소를 발표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은 같은 달 11일(현지시간) 시장전문가 45명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 돌입 시기가 9월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전범주·정석우 매일경제 경제부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36호(2013년 09월)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매일경제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