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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에 퇴짜 맞은 ‘모피아 커넥션’
입력 : 2013.08.09 17: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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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무회의에서 부처 간 협력을 강조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
# 7월 9일 국무회의에서 박 대통령은 취득세 인하를 놓고 국토교통부와 안전행정부가 대립하고 있는 것과 관련해 현오석 부총리에게 컨트롤 타워 역할을 확실히 하라고 요구했다. 박 대통령은 “이 같은 문제에 대해 경제부총리께서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서 주무 부처들과 협의해 개선 대책을 수립하고 보고해주기 바란다”고 지시했다.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에 대해 박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시했다. 좀처럼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대통령의 성품을 감안할 때 이 정도면 ‘당신들 똑바로 하라’고 공개적으로 경고한 것이나 다름없다. 오죽했으면 경질설까지 흘러나오고 있을까.
사실 박 대통령이 이들에 대해 ‘불만’ 이상의 감정을 갖는 게 지나친 것은 아니다. 자신이 공들여 마련한 공약을 헌신짝처럼 구겨버렸고, 쉽게 풀 것으로 보았던 경제마저 갈수록 꼬이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대통령의 최대 공약으로 꼽히는 국민행복기금은 출범 전에 이미 금융당국이 비틀어버려 18조원 규모로 구상했던 기금 규모가 6670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당초 채무불이행 상태에 빠진 320만명의 신용을 회복시킨다던 목표는 이 때문에 10분의 1에 불과한 32만명으로 축소됐다. 그것마저 정책시행 과정에서 다시 경직적으로 운용하다보니 최근엔 신청자가 급감하고 있다. 대폭 줄여 잡은 목표의 절반을 채우는 것조차 힘들지 않겠냐는 우려가 나올 정도다.
하우스푸어 문제를 해결하고 내수를 살리는 데 필요한 ‘4.1 부동산 대책’ 역시 시행 석 달 만에 완전히 힘을 상실했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올 상반기 전국 아파트 매매가는 지난해 말 대비 0.31%나 하락했다. 상반기 아파트값이 하락한 것은 2009년 이후 4년 만이다. 거래 쪽에선 숨통을 열었으나 묶은 돈줄을 풀지 않아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한 것이다. 관가에선 국토부의 정책이 빛을 보는 것을 마뜩지 않게 여긴 모피아들이 수수방관했다는 설이 나오고 있다.
미봉책 남발에 자금난 심화 가계부실의 핵이 정리되지 못하고 부동산 경기마저 꺾이면서 지금 지방에선 돈이 돌지 않는다는 아우성이 넘치고 있다. 작은 건설사를 운영하고 있는 양 모씨는 “경기가 나빠도 이렇게 나쁠 수가 없다. 새 정부가 자리를 잡으면 자금 사정이 나아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악화되고 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제법 탄탄한 내수 기반을 갖춘 중견 상장사의 임원 역시 “지방으로 가면 자금난이 심각할 정도인데 관리들은 ‘괜찮다’는 말만 되뇌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때문에 금융권에선 3분기 이후 신용위험이 다시 고조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은행이 최근 발표한 대출행태 서베이 결과에 따르면 금융기관들은 3분기에 중소기업이나 가계의 신용위험이 모두 높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돈줄을 계속 움켜질 것이란 얘기다.
시중자금 경색이 심해지고 있지만 정부는 왜곡된 자금흐름을 풀 생각은 하지 않고 생색내기용 미봉책만 남발하고 있다.
기재부와 한은은 지난 4월 총액한도대출 한도를 9조원에서 12조원으로 늘린 것을 실적이라며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그 돈은 ‘기술형 창업’에 국한된 것으로 현 정부가 내세운 창조금융과 관계가 있을지는 몰라도 전반적 시중자금 흐름과는 무관하다는 게 금융권의 분석이다.
금융위가 심혈을 기울였다는 중소기업 전용 코넥스시장 역시 기존에 있던 프리보드에 옥상옥 형태로 만들어 사실상 무용지물이다. 최근 이 시장의 하루 평균 거래량은 10만주에도 미치지 못한다.
모피아들이 얼마나 자기 중심으로 생각하는지는 금소처를 금감원 내에 두겠다는 발상에서 잘 드러난다. 이 안은 TF가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제 TF에선 논의조차 되지 않은 금감위 의견이란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모피아 비판론 고조 이 때문에 많은 금융학자나 전문가들이 모피아가 대통령의 핵심공약마저 뭉개 버리고 자금흐름을 경색시켜 경제를 위기로 몰고 있다며 ‘타도’를 외치고 있다. 국내 금융 학자와 전문가 143명은 지난 7월 4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금융위원회를 해체하고 관치금융을 중단하라”는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모피아의 자정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사태가 이 지경으로 간 데는 무식할 정도로 은행 위주의 정책을 고집하는 금융당국과 이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경제 수뇌부에 책임이 있다. 금융당국은 지난 수년간 은행 외 금융권을 옥죄고 보험 증권 시장마저 은행에 넘기는 식으로 무능력한 은행만을 키워왔다. 서민들의 자금마련에 힘이 됐던 서민금융기관을 방치하다가 문제가 터지면 서둘러 은행권으로 넘겨 버렸다.
그러다 보니 국내 자금의 대부분이 돈도 제대로 돌리지 못하는 은행에 쌓이는 기형적 상황이 벌어졌다. 덩치가 커진 은행들은 경기가 좋을 땐 이 돈을 쏟아내다가 경기가 조금이라도 위축될 조짐을 보이면 틀어쥐기만 해 경기의 냉탕온탕을 심화시켰다.
그런데도 경제 수뇌부는 이를 통제하기는커녕 관리들의 은행 진출을 독려하는 태세여서 국민의 분노를 사고 있다. 조원동 경제수석은 지난 6월 13일 모피아 출신인 임영록 · 임종룡 씨가 KB금융지주 회장과 농협금융지주 회장으로 선임되는 와중에 “좋은 관치”를 주장해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시장에선 경제기획원(EPB) 출신인 현오석 경제부총리나 조원동 경제수석이 모피아에게 휘둘리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현 부총리가 금융과 시장을 잘 모르기에 지휘에 한계가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실제 현 부총리는 한은에 금리인하를 요구하다 한은이 시중자금은 충분하니 정밀타격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자 총액대출한도를 늘리는 선에서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제윤 금융위원장 역시 금융정책과장을 거쳤지만 주로 국제금융 쪽을 다뤄 국내금융의 난맥을 풀기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각에선 국내경기 위축이 글로벌 불확실성 때문이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는 내부 자금경색이 더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이 때문에 대통령이 성공하느냐의 여부는 모피아를 얼마나 잘 통제하느냐에 달렸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정진건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35호(2013년 08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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