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파 전격매각 막전막후…기업의 M&A 롤모델이 되다

    입력 : 2013.06.07 14:31:35

  • 파타고니아 쎄로 또래 구간에 선 김형섭 네파 대표
    파타고니아 쎄로 또래 구간에 선 김형섭 네파 대표
    승계보다 성장이 우선 지난해 12월 5일, 김형섭 네파 대표가 파타고니아행 비행기에 올랐다. 직원들과 7년간 전 세계 대표 봉우리를 한 곳씩 오르자고 약속한 터였다. 약속이 완성되는 해에 모기업인 평안L&C(네파는 지난해 평안L&C로부터 인적분할해 독립했다)의 70주년 행사를 갖기로 했다. 2011년 킬리만자로에 오른 후 두 번째 여정. 하지만 이번엔 마음이 무거웠다. 2005년 이탈리아 본사로부터 네파를 인수한 후 빠른 성장과 높은 매출이 늘 업계의 화두였지만 토종 사모펀드인 MBK파트너스의 매각 제안에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사실 당시 패션업계에선 네파의 매각에 대해 전혀 알려진 바가 없었다. 그만큼 회사가 탄탄했다. 2010년 1300억원이던 매출이 2011년 2500억원, 지난해엔 4500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말 그대로 드라마 같은 성장에 매각이란 단어는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었다.

    남들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사안에 김형섭 대표는 고민을 거듭했다. 탁 트인 파타고니아 대지에서 대서양을 바라보며 네파의 미래를 생각했다. 12박13일의 여정 내내 김 대표는 가업승계와 해외진출, 이 두 가지를 주목했다. 늘 구상하던 문제였다. 김 대표는 할아버지 故 김항복 창업주와 부친인 김세훈 회장에 이어 가업을 이은 3세 경영인이다. 10여 년 전 아버지의 뒤를 이을 때 회사(평안L&C)는 법정관리 중이었다. 월급까지 차압될 만큼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그는 ‘네파’와 ‘엘르 골프’ 등 신규 브랜드 사업을 진행하며 회사를 안정시켰다.

    하지만 어린 시절 캐나다로 유학을 떠나 지금은 코넬대 의대에 재학 중인 아들은 경영보다 공부에 뜻이 있었다. 김 대표도 가업을 이을 의지가 없는 아들에게 굳이 물려줄 의사가 없었다. 그 자신도 “60세까지만 일하고 회사 경영은 유능한 임직원들에게 맡기겠다”고 말한 만큼 가업승계보다 회사의 성장에 뜻이 있었다.

    글로벌 시장 진출은 홀로서기가 쉽지 않았다. 지난해 6월 김 대표는 노르웨이 아웃도어 브랜드 ‘헬리한센’을 인수하려고 현지에서 프레젠테이션까지 했지만 실패했다. 자금과 정보, 전략에서 캐나다 펀드에 밀렸다. 결과적으로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하려면 무엇이 부족한지 확실히 알게 됐다. 파타고니아에서 돌아온 김형섭 대표는 곧바로 결정을 내렸다. 그리곤 MBK파트너스에 일을 진행하자고 연락을 취했다.

    사진설명
    CEO에 대한 믿음이 키포인트 그 시각 팰파트너스의 김경철 대표(현 K.C.Genuine 대표)는 MBK파트너스와 인수·합병에 대해 논의를 시작했다. 패션업계에는 MBK파트너스가 매각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매각 성사에는 김경철 대표의 역할이 컸다. 팰파트너스는 김형섭 대표가 계열사로 설립한 PEF운용사. 미국 밴더빌트 대학에서 MBA학위를 받은 김 대표는 당시 네파의 미래가 M&A에 있다고 판단했고, 2011년 8월 팰파트너스를 곁에 뒀다. 모기업이 지주사 체제로 바뀌면서 팰파트너스는 청산됐지만 김경철 대표는 신설법인 K.C.Genuine을 설립하고 네파 매각을 완료한다. 펀드도 MBK파트너스와 K.C.Genuine으로 등록돼 있다.

    네파 매각의 시작은 지난해 이탈리아 조선업체 핀칸티에리에 매각된 STX OSV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팰파트너스 대표였던 김경철 대표는 MBK파트너스와 공동으로 STX OSV 인수를 준비했다. 결과적으로 성사되진 않았지만 일을 진행하며 양측이 서로 친밀한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이후 김경철 대표는 MBK파트너스와 함께 일을 진행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김형섭 대표를 찾아가 매각에 대한 의사를 전한다. ‘하는 게 어떠냐’는 제안이 현실화되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보름여. 이렇게나 빨리 반응이 돌아올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11월 말에 처음 프러포즈했고 12월 중순에 결정돼 나 또한 놀랐다. 당시 김형섭 대표가 한번 추진해보자 해서 굉장히 큰 힘을 얻었다. 입 밖으로 낸 말에 대해 꼭 지키려고 노력하는 분이다. 그만큼 말이 신중한데 진행해보자고 했으니 이건 되겠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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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철 대표의 말처럼 일은 빠르게 진행됐다. 김형섭 대표의 지분 53%와 2대 주주였던 미국계 사모펀드(PEF) 유니타스 캐피탈의 지분 30%를 인수하며 지난 4월 초 모든 매각이 마무리됐다. 1조1230억원이 오갔고 김형섭 대표가 6000억원, 유니타스 캐피탈이 3300억원을 가져갔다. 물론 우여곡절도 있었다. 매각 초기 2대 주주였던 유니타스 캐피탈이 김형섭 대표가 상의 없이 최대주주 지분을 넘기는 데 합의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후 유니타스는 남아있는 게 무의미하다며 태그얼롱(동반매도권)을 행사했고, 네파에 투자한 지 9개월여 만에 40%를 웃도는 수익률을 기록했다. 지분을 100% 매매는 했지만 김형섭 대표는 MBK파트너스의 특수목적법인(SPC)에 매각대금 중 20%를 재투자했다. 김경철 대표는 “김형섭 대표가 전문경영인으로 회사를 경영하고, 여전히 20%의 지분을 갖고 간다”며 “전반적으로 안정적인 캐시아웃에 상당한 지분과 스톡옵션을 가져가야 협업할 수 있다. 서로 윈윈하는 구조”라고 이야기했다.

    매각을 진행하며 양측 모두 별다른 이견이 없었다.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는 MBK파트너스 측이 먼저 김형섭 대표를 신뢰하고 존중했다는 후문이다. MBK파트너스 측은 법정관리 중이던 회사를 짧은 시간에 정상화하고 성장시킨 점, 네파의 안정된 조직문화, 미국에서 MBA학위를 받아 PEF의 시각을 이해하는 김형섭 대표의 능력을 높이 샀다. 한 컨설팅사 관계자는 “가업승계와 관계없이 능력 있는 CEO를 받아들이고 든든한 재무전략을 짤 수 있다는 점에서 중견기업과 PEF의 만남이 새로운 롤모델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INTERVIEW | 김경철 K.C.Genuine 대표 “업계 1위 도약은 시간문제다” 매각 작업에 걸린 시간은 지난해 12월 초에 MOU를 맺고 시작했으니 만 5개월 걸렸다.

    MBK파트너스 외에 다른 펀드도 있었을 텐데 1조원 이상의 투자를 조용히 진행할 수 있는 펀드는 2~3개에 불과하다. 다른 곳과 접촉했던 건 아니고 당시 팰파트너스와 MBK파트너스의 인연이 계기가 됐다.

    김형섭 대표의 결정이 빨랐다. 이미 계획하고 있던 일인가 그건 아니다. 당시 유니타스 캐피탈의 투자도 있었고, 혹시 매도하는 게 어떠냐고 말씀드렸을 뿐이다. 진행하는 게 나쁘지 않다고 판단한 것 같다. 사업구조상 중견기업에서 대기업으로 도약하는 시점인데, 훌륭한 주주와 함께 가는 게 좋다는 여러 필요성이 맞아떨어졌다.

    인수금액이 너무 크다는 반응도 있는데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네파는 매출과 영업이익만으로 판단할 수 없는 기업이다. 우선 역사가 짧다. 국내 아웃도어 업계에서 가장 어리다. 그런데 성장률은 훨씬 높다. 네파는 단시간 내에 충분히 업계 1, 2위로 도약할 수 있는 회사다.

    네파의 가장 큰 매력을 꼽는다면 숫자로만 확인하면 매출액 성장률이 타사에 비해 월등하고 영업이익률도 높다. 또 그보다 중요한건 CEO를 포함한 직원들, 기업문화가 완전히 다르다. 어떤 시련이 오건, 심지어 마켓의 성장률이 꺾여 정체되더라도 충분히 경쟁사를 압도할 수 있는 내적 역량이 탄탄한 회사라고 판단했다.

    김형섭 대표에 대한 MBK 측의 믿음이 상당하다 사실 그 부분이 절대적이다. 3세 경영인이지만 회사에 참여했을 땐 법정관리 상태였는데, 그 과정을 빨리 극복하고 성장시켰다. 그건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창업한 것보다 더 힘들 수 있다. 굉장한 내공에 직원들과의 조직문화, 인격적인 면도 훌륭하다. 무엇보다 미국에서 MBA학위를 받을 만큼 시야가 넓고 PEF의 시각을 공유하고 있다.

    이번 매각을 통해 네파의 글로벌 진출이 수월해질 거란 예상이다. 어떤가 중견기업은 M&A 과정, PMI, 양사의 확실한 목표를 실행시키는 능력 등이 부족하다. MBK파트너스를 통한 시너지가 분명히 있다. 지난해 6월 노르웨이 브랜드 헬리한센을 인수하려 했을 때 네파가 굉장히 가치가 높은 회사라고 느꼈다. 생산과 운영 능력이 훨씬 뛰어났다. 다만 마케팅과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등의 능력이 조금 떨어졌다. 그런 부분이 채워진다면 글로벌 브랜드가 될 수 있다는 걸 느꼈다.

    해외 진출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유럽의 경우 재작년에 프랑스 샤모니 몽블랑에 직영숍을 오픈했다. 시장을 테스트하기 위한 파일럿숍이다. 유럽인들의 취향을 공부 중이다. 조만간 북미지역에 진출할 예정인데, 직진출이 될지, 현지 업체와 조인할지, 아니면 인수를 통해 들어갈지 MBK 측과 상의해 진행할 예정이다.

    MBK와 K.C.Genuine이 투자금을 회수하려면 결국 다시 매각 수순을 밟아야 한다. 그때는 경영권이 해외업체에 갈 수도 있는데 가능하다. 양측 그 점에 대해선 별다른 조건이 없었다. 개인적인 생각은, 물론 국내 펀드나 국내 SI가 사서 훌륭한 글로벌 브랜드로 키우는 것도 좋지만 아웃도어 부문이 부족한 글로벌 패션브랜드가 글로벌 브랜드화 시키는 것도 나쁘지 않다. 김형섭 대표도 같은 생각이다.

    국내 아웃도어 시장은 현재 전 세계 2위 수준이다. 이제 정점이란 시각도 있다 우리가 판단하기로 올해는 지난해 대비 20%나 성장했다. 지난해 말부터 정점이란 말들이 나왔고 올해 꺾이지 않겠냐는 분위기였는데 여전히 잘 나가고 있다. 소득이 높은 나라 중 지하철을 타고 등산에 나서는 나라는 거의 없다. 다른 여가는 비용이 너무 높다. 또 인구구조의 고령화도 시장 성장에 한몫 하고 있다. 중요한 건 1970~80년대 생들, 그들은 아직 등산을 즐기지 않는 잠재고객이다. 이 세대가 40대 중반을 넘어서기 시작하면 다시 한 번 시장의 성장이 예상된다. 또 하나, 최근에는 의류에 기능이 더해지고 있다. 그게 아웃도어 분야다. 기능성 웨어가 아웃도어로 첫발을 내딛었다. 왜 등산복을 도심에서 입고 다니냐고? 그건 등산복이 아니라 기능이 좋은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이다. 패션 트렌드가 캐주얼에서 기능성웨어로 이동하고 있다.

    [안재형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33호(2013년 06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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