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재형 기자의 트렌드가 된 브랜드] 출범 7년 만에 80만 대 돌파한 제네시스, 글로벌 시장 개척의 첨병은 EV

    입력 : 2022.12.15 15:06:24

  • “요즘 이름난 부촌의 고객들은 희귀성이 높은 슈퍼카를 타거나 아님 제네시스를 탑니다. 외제차를 탄다는 게 이젠 특별한 일도 아니고 차별화가 되지 않을 바에야 무난한 선택을 하는 것이죠. 게다가 몇 년 새 제네시스의 품질이 높아졌어요. 풀 옵션을 선택하면 1억원을 훌쩍 넘기기도 합니다. 아이러니하지만 외제차 못지않은 가격도 한몫하고 있어요.”

    서울 강남지역의 한 수입차 딜러가 전한 말이다. 그의 말마따나 실제로 전국의 부촌에서 선택한 베스트셀링카 순위에는 ‘제네시스(GENESIS)’가 어김없이 등장한다. 지난 10월 <매경LUXMEN>이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에 의뢰해 서울 강남3구(강남·서초·송파), 성남 분당구, 부산 해운대구, 대구 수성구, 인천 연수구(송도) 등 대한민국 부촌(富村) 5개 지역의 베스트셀링카를 집계한 결과 ‘G80’ ‘GV70’ ‘G90’ ‘GV80’ ‘G70’ 등의 차량이 고른 지지를 얻었다. 특히 서초, 강남, 송파로 이어지는 서울 강남3구에선 ‘G80’ ‘GV70’ ‘G90’이 1, 2, 3위에 올랐다. 브랜드 판매량에서도 제네시스(4060대)는 벤츠(2934대)와 BMW(2138대), 아우디(536대) 등 독일 삼총사를 멀찌감치 따돌렸다.

    수입차 브랜드의 한 임원은 “2년여 전 3세대 G80이 나왔을 때 과연 독일산 세단이 주름잡고 있는 럭셔리 세단 세그먼트에서 기를 펼 수 있을까 싶었다”며 “제네시스가 럭셔리 이미지를 갖게 되면서 현대차의 위상도 높아지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분석했다.

    제네시스의 콘셉트 전기차 ‘엑스 컨버터블’
    제네시스의 콘셉트 전기차 ‘엑스 컨버터블’

    2020년 3월에 공개된 3세대 G80은 공개 당일에만 2만2000대가 사전 계약되며 시장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당시 한 증권사의 보고서에는 “G80은 제네시스 브랜드의 기함(Flag Ship)이자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새롭게 정립할 중요한 모델로 공개 이후 디자인, 성능, 첨단 기술 측면에서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며 “현대차그룹이 도요타 등 과거 일본 브랜드의 궤적을 따라가고 있는 것으로, 최근 자동차 산업에 닥친 위기가 현대차 퀀텀점프의 계기가 될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G80이 과거 일본 차의 성장을 떠올리게 한다는 설명인데, 이 보고서에는 “일본 브랜드는 1980년대 고급차 브랜드 출시 이후 1990년대 글로벌 시장에서 눈부신 성장을 거뒀다”고 부연하고 있다. 일단 올 상반기 글로벌 판매량만 놓고 보면 이 보고서의 분석은 틀리지 않았다. 현대차그룹은 올 상반기 글로벌 시장에서 완성차 329만9000대를 팔았다. 도요타(513만8000대)와 폴크스바겐(400만6000대)에 이어 세계 3위의 판매량이다. 2010년 글로벌 5위에 오른 지 12년 만의 도약이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정의선 회장이 직접 주도한 브랜드 출범

    현대차그룹의 럭셔리 브랜드 제네시스의 역사는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현대차는 고급차 브랜드를 출시하기 위해 TF팀을 구성했고, 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 그룹 전체가 움직였다. 설계와 파워트레인, 디자인 등의 전문가들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길 4년 여. 2008년 1세대 제네시스(BH), 2013년 2세대 제네시스(DH)를 출시하며 고급차 시장에서의 성공 가능성을 확인했다.

    제네시스는 2015년 11월, 현대차그룹의 독자적인 럭셔리 브랜드로 독립하며 벤츠, BMW, 아우디, 렉서스 등 글로벌 브랜드가 격전을 벌이고 있는 고급차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당시 부회장이던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초기 기획부터 외부 인사 영입, 조직 개편까지 브랜드 출범 전 과정을 주도했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론칭 행사에서 직접 무대에 오른 정 회장은 “우리가 새로운 도전을 하는 이유는 오직 고객에게 있다”며 “고급차 시장은 우리가 기회로 삼을 수 있는 영역이며, 이 기회를 충분히 살려보자는 게 제네시스가 갖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출범 첫해인 2015년 530대를 판매했던 제네시스는 2020년과 지난해에 글로벌 연간 판매량 각각 10만 대와 20만 대를 연이어 넘어섰다. 6년 반 만인 올 5월에는 글로벌 누적 70만 대를 넘어섰고, 5개월 후인 지난 10월 누적 판매량 80만6739대를 달성했다. 지금까지 제일 많이 팔린 차종은 2016년 7월에 국내에 출시된 G80(33만4110대)이다. 2020년에 출시된 제네시스 첫 SUV 모델 GV80은 두 번째인 누적 12만7707대를 팔았다. 지난해 9월 출시된 제네시스 첫 순수전기차 GV60(1만451대)을 제외하면 나머지 5개 모델 모두 누적 10만 대 판매를 넘어섰다.

    G80
    G80
    자동차 본고장 美에서 품질 인정

    제네시스 성장세의 큰 축은 품질이다. 미국 시장조사기관 J D 파워의 조사는 그런 의미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난 8월 25일 J D 파워의 ‘2022 미국 기술 경험 지수 조사(US Tech Experience Index, 이하 TXI)’에서 제네시스는 643점으로 전체 1위에 올랐다. 캐딜락(584점), 벤츠(539점), 볼보(526점), BMW(516점) 등 내로라하는 브랜드가 그 뒤에 자리했다. 고급차 브랜드 외에 일반 브랜드에선 현대차와 기아가 각각 1, 2위에 올랐다.

    TXI 조사는 2022년형 신차 모델을 구입하고 90일 이상 소유한 8만여 명의 소비자를 대상으로 올 2월부터 5월까지 진행됐다. 자동차에 탑재된 ‘편의성’ ‘최신 자동화 기술’ ‘에너지 및 지속가능성’ ‘인포테인먼트 및 커넥티비티’ 등 4가지 카테고리, 35개 기술에 대한 만족도를 묻는 고객 설문을 통해 1000점 척도로 평가한다. 제네시스는 이 조사에서 전체 업계 평균 점수인 486점보다 157점이나 높은 점수를 받으며 가장 두각을 나타낸 브랜드로 지목됐다.

    제네시스뿐만 아니라 올해 J D 파워가 실시한 주요 평가를 살펴보면 현대차와 기아의 존재감도 도드라진다. 지난 2월 ‘2022년 내구품질조사(VDS·Vehicle Dependability Study)’에선 고급 브랜드를 포함한 전체 32개 브랜드 중 기아가 1위, 현대차가 3위, 제네시스가 4위(고급 브랜드 1위)로 모두 최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6월 발표된 ‘2022년 신차품질조사(IQS·Initial Quality Study)’에서도 제네시스가 프리미엄 브랜드 1위를, 7월에 공개된 ‘2022 상품성 만족도 조사(APEAL·Automotive Performance Execution and Layout)’에선 ‘팰리세이드’ ‘EV6’ ‘G80’ 등 총 7개 차종이 차급별 1위에 이름을 올려 글로벌 자동차그룹 중 가장 많은 최우수 차종을 배출하기도 했다.

    사진설명

    만족도 높은 차에 상복이 따라오는 건 당연한 일. 지난 10월 미국의 유력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2022 오토 어워즈’의 33개 부문 중 8개 부문(현대차 3개, 기아 3개, 제네시스 2개)을 현대차그룹에 시상했다. 글로벌 자동차 그룹 중 최다 수상 기록이다. 그중 제네시스는 ‘가장 혁신적인 자동차 브랜드’로 꼽혔다.

    그런가 하면 미국의 자동차 전문지 모터트렌드는 최근 ‘2023 올해의 차’에 G90을 선정했다. 모터트렌드는 외장 디자인과 첨단 신기술, 화려하고 다양한 편의사양 등을 선정 이유로 들며 “버튼으로 도어를 부드럽게 닫을 수 있는 ‘이지 클로즈’ 기능과 리클라이닝·마사지 기능이 적용된 후석 공간이 강점”이라고 설명했다. 에드워드 로 모터트렌드 편집장은 “퀼팅 가죽과 나무 소재 등 탑승객이 보고 만지고 경험하는 모든 부분에서 세심한 배려를 찾을 수 있다”며 “제네시스는 높은 완성도와 함께 타사가 가질 수 없는 가격 경쟁력까지 갖춰 럭셔리 세단의 상식을 뒤집었다”고 전했다. ‘2023 북미 올해의 차’에도 제네시스의 ‘G80 EV’와 ‘GV60’이 후보로 올랐다. 북미 올해의 차는 내년 1월 11일 발표될 예정이다.

    GV70
    GV70
    내수 중심 한계, 아픈 손가락 중국

    물론 아쉬운 점도 눈에 띈다. 업계 전문가들은 “글로벌 시장에서의 판매량은 아직 성공적이라 말하기 이르다”고 평가한다. 한 수입차 브랜드 임원은 “아직 유럽 시장에선 독일 3사, 미국 시장에선 렉서스에 못 미친다”며 “품질 면에서 빠르게 격차를 줄이고 있지만 소비자 신뢰도 면에선 갈 길이 멀다”고 전했다. 최근 발표된 미국의 소비자단체 컨슈머리포트의 자동차 설문 결과를 보면 제네시스의 신뢰도 순위는 24개 브랜드 중 12위다. 경쟁 브랜드인 렉서스가 2위, BMW 3위, 아우디 6위, 링컨은 10위에 이름을 올렸다.

    판매량 면에서도 아직 내수 중심의 한계는 여전하다. 올 10월 누적 판매량 80만6739대 중 국내 판매량이 57만5712대, 해외 판매가 23만1027대다. 국내 판매량이 약 70%에 이른다. 중국 시장에서의 부진도 아쉬운 대목이다. 제네시스는 2021년 4월 중국 시장에 진출했지만 올 상반기 판매량이 고작 370대에 불과했다.

    4세대 G90 외장
    4세대 G90 외장

    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이 앞서고 있는 전기차 분야가 제네시스의 신뢰도를 견인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며 “전기차 시대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현대차그룹의 중장기 전략에서도 확인할 수 있지만 제네시스가 하이브리드를 건너뛰고 내연기관에서 바로 전기차로 넘어가 고급차 시장의 전기차 분야를 선점하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제네시스는 2025년부터 모든 신차를 전기차로만 출시할 계획이다. 최근 브랜드 최초의 컨버터블(지붕을 접을 수 있는 차량) 콘셉트 전기차인 ‘엑스 컨버터블’을 공개하기도 했다.

    [안재형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47호 (2022년 1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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