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스타그래머블 스포츠, 테니스에 홀리다

    입력 : 2022.03.03 14:56:20

  • 서울 삼성동에 사는 직장인 김선옥 씨(24)는 지난해 여름부터 8개월째 테니스 라켓을 쥐고 있다. 일주일에 두 번, 월요일과 목요일이면 퇴근 후 저녁 7시에 집 근처 실내 테니스장을 찾는다. 20분간 워밍업을 하고 20분간 개인 레슨을 받은 후 볼 머신 운동까지 마치면 온몸이 땀에 흠뻑 젖는다.

    김 씨는 “직장 동료가 추천해서 테니스장을 찾았다”며 “처음 등록할 땐 일주일에 한 번만 레슨을 받았는데 욕심이 생겨 두 번으로 늘렸다”고 했다. 테니스가 왜 좋으냐고 물으니 “짧은 시간에 운동량을 최대로 끌어올리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저절로 풀린다”며 “코트에 나설 때마다 운동복을 갖춰 입는 것도 나름의 매력”이라고 답했다.

    팬데믹 이후 골프 돌풍에 이어 테니스를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 골린이 대신 테린이(테니스+어린이·테니스 초보자)를 선택한 이들 중엔 MZ세대가 도드라진다. 특히 2030 여성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사실 테니스는 11세기 유럽 왕실에서 즐기기 시작한 이른바 귀족 스포츠였다.

    세계 4대 메이저 대회인 호주오픈, 프랑스오픈, 윔블던, US오픈 등의 경기장엔 영국 왕실 인사나 빌 게이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등 유명 인사들이 관람하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롤렉스, 리차드 밀 등 명품 브랜드들이 후원에 나서는 이유이기도 하다.

    키즈레슨을 받고있는 어린이들. 사진 판타지테니스.
    키즈레슨을 받고있는 어린이들. 사진 판타지테니스.
    ▶문턱 낮아진 테니스, 비접촉에 운동량 많아 최근 테니스 돌풍에 대해 오성호 대한테니스협회 차장은 4가지 이유로 상황을 설명했다. 첫째, 장기화된 팬데믹에 거리두기를 지키면서도 활동적인 운동이 필요했고 둘째, SNS에 올릴 만큼 멋진 의상과 사진이 매력적이라는 점. 셋째, 전통적인 고급 스포츠란 이미지와 넷째, 접근성이 좋고 자외선을 피할 수 있는 실내 테니스장이 곳곳에 생기고 있다는 점 등이다.

    오성호 차장은 “코로나19로 인해 외부활동이 부담스러운 상황에 개인 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며 “과거엔 귀족 스포츠란 이미지가 입문에 걸림돌이었다면 최근엔 오히려 고급 스포츠의 이미지가 어필하고 있고, 신체접촉이 거의 없고 운동량이 많아 팬데믹 상황에 딱 맞는 스포츠”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대한테니스협회의 자료를 살펴보면 전국의 실내 테니스장은 2020년 600여 곳에서 지난해 700여 곳으로 늘었다. 대한테니스협회 측은 “지난해와 올 들어 프랜차이즈화된 실내 테니스장도 늘고 있다”며 “서울은 실내 코트가 늘고 있고 경기지역은 실외 코트가 늘었다”고 전했다.

    사진설명
    오성호 차장은 “비용적인 면도 무시할 수 없는데 테니스의 경우 실내 골프장 이용 수준과 비슷하거나 낮은 수준”이라며 “라켓 등 장비들을 포함하면 골프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비용이 가볍다”고 말했다. 이러한 이유로 테니스를 배우려는 이들이 많아지며 레슨을 받기 위해 수개월간 대기해야 하는 상황도 벌어지고 있다.

    서울 방배동에 살고 있는 직장인 윤성민 씨(31)는 “퇴근 후 오후 7시나 오후 8시 평일 2회 레슨을 받으려고 집 근처 실내 테니스장에 문의했더니 대기명단에 이름을 올릴 순 있지만 3개월 이상 기다릴 수 있다고 안내받았다”며 “직장 근처에도 알아봤지만 비슷한 상황이라 새벽반을 알아보고 있다”고 전했다.

    김보헌 판타지테니스 대표는 “저녁 10시까지 1:1 혹은 2:1 레슨을 진행 중인데 현재 레슨 예약이 모두 찬 상황”이라며 “더 이상 예약을 받을 수 없어 대기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데 대기접수자가 100명을 넘긴 곳도 있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실내 테니스장의 볼머신.
    실내 테니스장의 볼머신.
    ▶테니스 인기에 관련 결제 금액도 껑충 테니스에 대한 이러한 관심은 지난해부터 상승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한 테니스 장비 업체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 초기에는 코트를 찾는 이들이 눈에 띄게 줄어 힘든 상황이었다”며 “골프 돌풍이 분 이후 골린이(골프 초보자)들이 테니스에도 관심을 보이며 지난해부터 매출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고 밝혔다.

    SSG닷컴에 따르면 실제로 지난해 상반기 테니스와 스쿼시 용품 매출이 팬데믹 이전인 2019년 동기 대비 75%나 늘었다. G마켓에서도 2020년 상반기보다 지난해 상반기에 테니스용품(153%)과 테니스네트(57%), 테니스화(17%) 등의 매출이 증가했다. 최근 신한카드빅데이터연구소가 밝힌 올해 소비 트렌드를 살펴보면 테니스의 성장세는 더 뚜렷해진다. 우선 연구소 측은 “올해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억눌렸던 일상 회복에 대한 욕구가 표출되면서 단절됐던 일상생활이 해제되고, 고정관념과 경계를 여는 새로운 한 해가 될 것”이라며 올해 소비 트렌드로 ‘UNLOCK’을 제시했다.

    ‘언록(U.N.L.O.C.K)’은 ‘Unbinding In-door(다시 문밖 라이프)’ ‘Neo-Family(네오팸의 시대)’ ‘Local Economy(로코노미의 부상)’ ‘Ordinary Premium(일상으로 스며든 프리미엄)’ ‘Cracking Border(사라진 경계 보더리스)’ ‘Kick off Sustainability(지속 가능한 삶을 위하여)’의 앞 글자에서 따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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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한카드빅데이터연구소는 “코로나19로 누적된 활동 제약의 피로감이 역동적인 스포츠와 야외활동 등 ‘다시 문밖 라이프(Unbinding In-door)’를 활성화시킬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해 1월부터 9월까지 신한카드 이용 건수와 2020년 동기의 이용 건수 증감률을 비교해보면 팬데믹 이후 인기를 끌던 홈트 이용은 7% 감소했다.

    반면 골프는 14%, 서핑은 40%, 캠핑은 33% 늘었다. 주목할 만한 점은 테니스와 클라이밍이다. 각각 157%, 183%나 껑충 뛰었다. 테니스장 이용 건수도 2020년 대비 2021년에 183%나 늘었다. 연구소 측은 “코로나로 인해 스포츠센터의 개업이 감소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테니스장은 오히려 코로나 상황에서 가맹점 개설이 증가하는 모습”이라며 “여러 사람들과 함께 이용하는 스포츠 센터보다 혼자 또는 소규모로 이용하는 실내 테니스장이나 야외에서 즐길 수 있는 실외 테니스장의 이용이 증가하며 신규 가맹점도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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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스타그래머블한 매력… 지난해 10월 재계의 이슈 중 하나는 테니스 치는 회장님이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테니스 치는 사진을 올리며 주목받은 것. 해당 사진에 최 회장은 직접 “간밤 라면 야식 처리 중”이라 밝히며 화제가 됐다. 국내 유명인들의 SNS에도 테니스는 단골 메뉴 중 하나다. 배우 김사랑은 새해 첫날 테니스 인증샷을 게재했는가 하면 백종원, 소유진 부부도 여러 차례 테니스를 즐기며 인증샷을 올리기도 했다. 전 세계에서 가장 핫한 그룹인 방탄소년단(BTS)도 자체 예능 콘텐츠 ‘달려라 방탄’에서 첫 장기 프로젝트로 테니스에 도전하는 모습을 공개했다. 배우 이민호와 그룹 엑소의 멤버 시우민, 가수 성시경도 테니스 애호가로 알려졌다. 비단 유명인뿐만 아니라 이른바 테린이들이 꼽는 테니스의 매력 중 하나는 ‘SNS에 올릴 만한’이란 뜻의 신조어 ‘인스타그래머블(Instagrammable)’에 어울리는 의상과 움직임이다.

    서울 상암동에 거주하는 대학생 김미영 씨(21)는 “테니스를 시작한 지 6개월이 지나면서 게임을 즐길 수 있었는데 그 시기부터 테니스복장을 갖춰 입기 시작했다”며 “일상에선 주름치마를 입는 게 쉽지 않지만 코트에선 이게 일상이라 묘한 매력이 있다”고 전했다.

    서울 구로구의 한 실내 테니스장. 사진 연합뉴스.
    서울 구로구의 한 실내 테니스장. 사진 연합뉴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깔끔한 코트에서 테니스 스커트나 핏이 적당한 반바지를 입고 라켓을 들면 자연스럽게 휴대폰 카메라를 켜게 된다”며 “SNS에 익숙한 MZ세대에게 테니스를 치는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인스타그램에 ‘테니스’를 검색하면 동호회 모임부터 연습 인증샷 등 관련 글이 77만여 개나 뜬다. ‘테린이’를 검색하면 19만2000여 개의 관련 글이, ‘테니스룩’은 3만여 개나 될 정도다. 여성의 테니스 복장이 주름치마 등 짧고 편한 스커트와 딱 맞는 셔츠라면 남성은 반바지와 폴로셔츠로 요약된다. 요즘엔 이 복장에 남녀 모두 편한 레깅스가 더해지기도 한다. 여기에 테니스룩 스타일의 일상복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띄고 있다. 전문 스포츠의류 브랜드는 아니지만 MZ세대를 겨냥한 패션 브랜드 ‘테니스보이클럽’ ‘르쏘넷’ ‘클로브’의 티셔츠나 미니스커트, 원피스 등이 테니스룩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안재형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38호 (2022년 3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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