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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30주년 ‘국민가수’ 신승훈 “30년 전통의 발라드 맛집? 실망시키지 않을 것”
입력 : 2020.05.06 15: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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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분들이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하잖아요. 마라톤의 반환점이 언제일까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어요. 그런데 마라톤에는 반환점이 있지만, 인생에는 반환점이 없는 것 같아요. 30주년이지만, 지난 시간의 나를 추억하고 과거의 영광을 이야기하는 반환점이 되고 싶진 않아요.”
데뷔 30주년을 맞은 신승훈(54)은, 지난 시간의 소회를 마라톤에 비유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1990년 ‘미소 속에 비친 그대’로 데뷔한 신승훈은 대한민국 음반 시장 르네상스가 태동할 시기 혜성처럼 나타난 가수였다. 데뷔 앨범으로 140만 장이라는 앨범 판매고를 올린 것을 시작으로 1집부터 7집까지 연속 밀리언셀러를 기록하며 주목받은 그는, ’보이지 않는 사랑’으로 음악방송 14주 연속 1위, 한국 골든디스크 역사상 최다 수상, 한국 가요 음반 역사상 최대 누적 판매량 1700만 장을 기록하는 등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운 현역 ‘발라드 황제’이자 ‘가요계 레전드’다.
2020년, 데뷔 30주년을 맞은 그는 스페셜 앨범 <마이 페르소나스(My Personas)> 발매를 시작으로 특별한 숫자를 자축하는 의미 있는 행보를 시작한다. 앨범 발매를 기념해 만난 그는 30주년을 맞은 소감을 묻자 “가요계에 한 획까지는 아니어도 신승훈이라는 선이 하나 생긴 것 같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신인 시절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가요계에 한 획을 그으려고 너무 동분서주하거나 소란스럽게 하고 싶지 않다, 대신 점을 찍겠다. 나중에 그 점이 멀리서 봤을 때 하나의 선처럼 될 수 있는 음악을 하고 싶다’고 했는데, 30주년이 되고 보니, 신승훈이라는 선이 하나 생긴 것 같은 생각은 있어요. 획은 아니더라도, 선이 생겼다고 자부하고 싶고. 이런 얘기를 이제 와서 하는 이유는, 마라톤에는 반환점이 있지만 인생에는 반환점이 없잖아요. 계속 가야 하는 것이죠. 이 시간을 지나온 시간의 영광을 이야기하는 반환점으로 삼고 싶지 않아요. 앞으로의 30년을 생각하기에도 바쁜걸요.”
하지만 결코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두 개의 타이틀은 ‘발라드의 황제’ 그리고 ‘국민가수’라는 영예로운 호칭이다. 물론 신승훈이 지난 30년간 발라드 한 장르만 고집했던 건 아니지만 ‘보이지 않는 사랑’ ‘널 사랑하니까’ ‘아이 빌리브(I Believe)’ 등 세기를 초월해 사랑받은 다수의 발라드 넘버를 지닌 그는 명실상부 대한민국 발라드 시장의 ‘시초’다.
“‘발라드 황제’를 거론할 때 신승훈이 빠지면 되게 서운할 거예요. 그래도 솔직히 말씀드리면, 발라드와는 애증의 관계죠. 사랑했던 만큼 증오도 있었던 별칭이에요. ‘발라드=신승훈’이 떠오른다면, 제가 그 분야에 대해 열심히 해왔다는 게 되겠죠. 그 부분에선 ‘애’인데, 발라드 외에 다른 걸 하면 안 될 것 같고 안 어울릴 것 같다는 프레임에 갇히게 했다는 걸 생각하면 좀 아쉽기도 해요. 그래서 ‘증’이죠.”
그는 “일본에서 내 공연을 본 분들은 ‘당신에게 왜 발라드의 황제라는 별명이 있느냐’고 묻는다. 다양한 장르를 하는데 왜 ‘발라드 황제’라 하냐는 것”이라며 “그 질문에 대답을 못 했다. 여러 장르를 했지만 신승훈 하면 떠오르는 게 발라드 정서라 그런 것 같다”며 말을 이었다. “물론 당연히, 기분 나쁘지 않아요. 자부심이 있죠. 다만 앞으로 행보에서는 ‘발라드 황제’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계속 붙여주시면 감사하지만, 다른 이름도 생각해봐야겠어요.”
‘국민가수’라는 타이틀에 대해서는 “10여 년 전에 반납한 것 같다”고 했다. “어느 기자분이 ‘내 와이프가 좋아하고 어머니가 좋아하고 처제가 좋아할 정도면 국민가수가 아닌가’라는 식으로 써서 국민가수 칭호가 나왔던 걸로 기억하는데, 지금 생각하면 요즘 사람들은 저에 대한 걸 잘 모르잖아요. 제가 활동을 꾸준히 하긴 했는데 TV에서 모습을 많이 보이진 않아서 국민가수란 칭호는 지금 상태에서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그 타이틀을 받기 위해 열심히 하겠다기보다는, 그냥 내 음악을 열심히 하는 사람으로 남고 싶습니다.”
“30주년 기념 앨범이니까 그 안에는 ‘미소속에 비친 그대’ ‘아이 빌리브’ ‘보이지 않는 사랑’ 등 30년의 흔적이 있겠지 생각하셨을 텐데, 전혀 상관없는 신곡들로 8곡이 채워졌어요. 그 중 6곡은 제가 다 작곡했고, 나머지 2곡은 누구한테 받은 게 아니라 ‘이 노래 너무 좋은데 왜 안 됐을까’ 하는, 후배 싱어송라이터 중에서 우리 세대 팬덤에도 알려졌으면 좋겠다 싶은 노래를 넣었죠. 원곡 가수들에게 직접 전화해서 ‘이 노래 하고 싶다’ 해서 부르게 됐어요. 그렇게 총 8곡이고 스페셜 앨범 이름은 <마이 페르소나스>예요. ‘나의 분신 같은 음악들’이라는 뜻이죠. 예전에 봉준호 감독님이 ‘나의 페르소나는 송강호 씨다’라고 얘기했던 것처럼 ‘나도 감독이라고 생각하면 내 페르소나가 뭘까’ 생각해보니 내 분신은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이었더라고요. 그래서 8곡의 분신 같은 음악으로 <마이 페르소나스>라고 정했죠.” 그러면서 신승훈은 “10년 동안 스타로 살았고, 10년 동안 뮤지션이 되기 위해 노력했던 것 같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10년은 프로듀서로서 그리고 나의 길을 완성하기 위한 길을 가고 있는 것 같은데, 그 변화가 좋은 변화로 남겨졌으면 좋겠다”면서 “이번 앨범은 앞으로 해나갈 음악의 브리지로 발표한 것인 만큼, 앞으로의 음악에 대해서도 궁금해 하고 기대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타이틀곡은 ‘여전히 헤어짐은 처음처럼 아파서’와 ‘그러자 우리’ 두 곡이 더블 타이틀로 낙점됐다. 두 곡 모두 이별의 아픔을 노래한 곡이지만 곡 전반에 흐르는 감정선은 미묘하게 다르다. 신승훈은 “타이틀곡 선정을 위해 모니터링을 했는데 절대적으로 5대 5로 갈려 더블 타이틀로 하게 됐다”면서 “‘여전히 헤어짐은 처음처럼 아파서(이하 ‘여헤처’)’가 이별을 마주한 남자의 이야기를 담았다면, ‘그러자 우리’는 여자의 이야기”라고 소개했다.
“‘여헤처’는 ‘너 울어? 그럼 더 울려줄게’ 식의, 전형적인 신승훈 발라드예요. 굴삭기처럼 감정을 파고드는 곡이죠. 반면 ‘그러자 우리’는 ‘너 울어? 내가 옆에 가만히 있어줄게’ 하는 노래죠. 먹먹함을 표현했어요. 먹먹하고 잔잔한 슬픔이 더 슬플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는데, 듣고 판단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수록곡 중 ‘늦어도 11월에는’은 모처럼 선보이는 신승훈표 재즈 넘버로, 영화 <라라랜드>에서 영감을 받아 30분 만에 작곡한 곡이다. 1년 열두 달을 인생에 비유해 신승훈의 생각을 가사로 표현했다. “가수 신승훈과 인간 신승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거기엔 결혼 이야기도 있죠. ‘도대체 언제 (장가)갈 거냐’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데, 만약 내 삶에 사랑이 온다면 늦어도 11월에는, 이라고 표현한 곡이죠. 저에게는 자화상 같은 곡이에요.”
결혼에 대한 생각을 묻자 신승훈은 “저는 때를 놓친 것뿐이다. 안 한다는 건 아니다”라며 웃었다. “(결혼) 생각이 없는 건 아니에요. ‘혼자 끝까지 산다’도 아니고, 솔직히 눈이 높아서도 아니죠. 그냥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된 거예요. 인간 신승훈한테 가수 신승훈이 잘못했는데, 그래도 행복했어요. 물론 외롭기도 해요. 좋은 사람 만나게 되면(결혼을 할 겁니다).”
그러면서도 “이제는 아시다시피 ‘너 없으면 죽어도 못 살아’ 하는 혈기 왕성하고 치기 어린 나이가 아니지 않나. 지금은 사랑보다는 친구 같은 사람 만나서 가족을 만들어야 되는 것 아닌가 싶다. 혹시나 제가 누구를 만나게 되면 더 잘될 때까지 (보도를) 조금 자제해 달라. ‘어디서 어떤 여자분이랑 봤다던데?’ 소문이 들리더라도 일단 응원을 해달라. 30년 노래만 했던 신승훈을 더 생각해 주시면 좋겠다”고 웃으며 당부했다.
이밖에 ‘내가 나에게’는 신승훈이 스스로에게 전하는 응원가로, 더블 타이틀곡 외 신승훈이 꼽은 마음 속 타이틀곡이다. 또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힘든 시간을 겪는 모든 이에게 전하는 신승훈의 위로송으로,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시국인 만큼 선공개곡으로 선보이며 팬들에게 위로와 마음의 응원을 건넸다.
무엇보다 신승훈 역시 코로나19로 인해 30주년 기념 프로젝트에 차질이 생긴 상황. 애초 4월 시작 예정이던 전국투어 ‘2020 THE신승훈SHOW : 미소속에 비친 그대’ 개막 시기가 두 달 뒤인 6월로 미뤄진 상태다. 그는 “30주년이니까 몸이 힘들더라도 뭔가 벼르고 해보려 했는데 시련이 왔다”면서도 “전화위복이라 생각한다. 하루 빨리 코로나19가 극복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덧붙였다.
“30년 가수의 가장 좋은 점은 대처능력이라 생각했어요. 나름 잘 대처해서 콘서트 내용이 바뀌었죠. 전화위복이라는 게, 두세 달 미뤄졌기 때문에 시간을 벌었죠. ‘이러려고 연기한 거야’ 하는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게 하려고 노래도 첫 곡이 ‘미소 속에 비친 그대’였는데, 그걸 맨 마지막으로 뺄 것 같아요. 콘서트 뒷부분에 쏟아 넣던 걸 오프닝 때 시도할 것 같아요. 제가 후련하면 관객 분들도 후련하실 것 같아요. (굉장히 긍정적이라는 질문에) 워낙 긍정적인 편이에요. ‘실패할 수밖에 없어’ 하는 것도 ‘실패일까?’라는 생각이 들죠. ‘그걸 겪고 나면 다시 일어서면 되지 않을까’, 그런 마인드로 극복하죠. 연기되고 취소되는 것만큼 열정이 더 생겨요. ‘코로나. 네가 내 팬들을 기다리게 만들었다고?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 했어요. 늦게 만난 대신에 설레는 시간이 더 있었을 거예요. 그걸 더 폭발시켜야 해요. 그걸 저도 기다리고 참고 있어요.(웃음)”
인생의 절반 이상을 ‘음악인’으로 살아온 그에게 음악이란 어떤 의미일까.
“예전에는, 밥 같고 공기 같다는 얘기를 많이 했는데, 저에게 음악이란 애증의 관계예요. 음악 때문에 너무 힘들고, 너무 좋고, (좋은 음악이) 안 나올 땐 핑계도 대게 되고 그랬죠. 왜 좋은 음악을, 좋은 영감을 안 내어 주냐고 (음악에게) 투정도 많이 부리고요. (음악과) 서로 잘못하고, 서로 반성하고, 서로 화해하고, 서로 잘 되려 노력하고, 서로 우정을 쌓으면서, 음악과 나 사이의 매개체인 멜로디가 대중에 전달돼 사랑받고 한다면, 음악과 서로 ‘잘 했어’ 하면서 칭찬하고. ‘아직 살아있네’ 하면서 이야기하는 사이죠.”
특정 장르에 머무르지 않고 다채로운 도전을 이어온 지난 30년. 어느새 신승훈에 대해서는 ‘장인’이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게 됐다. 그는 “10년 동안 스타로 살았고, 10년 동안 뮤지션이 되기 위해 노력했던 것 같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10년은 프로듀서와 나의 길을 완성하기 위한 길을 가고 있는데, 그 변화가 좋은 변화로 남겨졌으면 좋겠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다양한 장르 중에서도 특히 발라드를 잘 하는 ‘30년 맛집’ 신승훈을 소개하는 셀프 홍보문구를 부탁하자 그는 쑥스러운 듯 기분 좋은 미소를 보이면서 ‘신뢰’라는 단어를 꺼내놨다.
“맛집이라. 왜 맛집이었을까요. 맛있었으니까 30년 맛집이겠죠? 음, 아마 신뢰일 거예요. 이 집에선 뭘 먹어도 맛없지 않다, 너무 맛있진 않아도 실망하지 않는? 그런 의미에서, 홍보문구에는 ‘지금까지 실망시키지 않았고, 앞으로도 실망이 없을 겁니다’라고 할 거예요. 맛집이라는 소문을 듣고 찾아왔을 때 엄청난 호평까지는 아니어도, 적어도 실망시키지 않는 음악을 할 거라고요. ‘내가 신승훈 노래를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신승훈 노래가 사랑받는다는 건 인정한다’는 이야기도 있었거든요. 예를 들어 ‘나는 게장 싫어’ 이러다가도 막상 먹어보니 ‘나쁘진 않네’라고 하는, 재방문 의사가 있느냐 물었을 때 ‘있다’는 답을 듣고 싶어요.”
▶30년 세월 동안 구설수 없어
3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구설수 하나 없는 비결도 궁금했다.
“가요계 수도승이라는 얘기가 있었어요. 종교는 무교인데.(웃음) 스캔들이 없어서 나온 별칭일 수 있지만 재미없을 수 있는데, 저도 이러고 싶진 않았어요. 이렇게까지 될지 몰랐죠. 자기관리 철저히 한다는데, 과연 30년 동안 ‘관리’를 할 수 있을까? 싶어요. 있는데 없는 척하는 게 아니라 그냥 이런 성격이라 이렇게 된 것 같아요. 칩거 생활을 오래 했는데, 저도 잘못됐다는 걸 알고 있지만 안에서 이런 성격인데 밖에서는 아닌 척? 그런 건 없는 사람 같아요. 30년 동안 저를 바라봤을 때는 진정성 있게 살려고 노력했어요.”
가수 신승훈의 지난 30년을 한마디로 압축해 표현해달라 하자 “너무 가혹하다”고 혀를 내두르면서도 담담하게 “그래 신승훈, 너다웠어”라고 답했다.
“잘 싸웠고, 타협도 안 하고, 억울해하면서도 잘 참았고. 그렇게 해왔던 것 같아요. 자만이 아닌, 자부심은 충분히 있었고, 자부심에 대한 걸 지키려 했죠. ‘그래, 너다웠어’. 30년 음악 인생을 그렇게 표현하고 싶네요.”
인터뷰 말미에는 “남들보다 더 잘 하려고 고민하진 않겠다. 다만 지금의 나보다 더 잘 하려고 애쓰는 가수가 되고 싶다”고 덧붙였다. 50대 중반의 나이를, 30년이라는 데뷔 연차를 초월해 ‘현재 진행형’일 수밖에 없는 담백한 다짐에 문득 미소를 머금게 된다. 기.승.전 ‘미소 속에 비친 그대’, 신승훈이다.
[박세연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기자 사진제공 도로시컴퍼니]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16호 (2020년 5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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