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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섭 콩카페 대표 | “韓진출한 베트남 토종 콩카페 커피 넘어 문화까지 맛보세요”
입력 : 2018.11.28 11:3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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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16일 용산구청 옆 이태원 퀴논길(Quy Nhon-gil) 초입. 국내에서는 보통 건물에 잘 쓰지 않는 녹색으로 덮인 2층 건물이 눈에 띄었다. 무성한 가로수 나뭇잎 때문에 잘 보이지 않을 법했던 건물이 독특한 녹색으로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다. 최근 국내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베트남 토종 콩카페(Cong CaPhe) 2호점 이다. 올 7월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 문을 연 1호점은 몰려드는 손님들을 감당하지 못해 ‘줄서 먹는 커피’집으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2호점도 평일 낮임에도 불구하고 1층은 사람들로 꽉 차있었다. 사람들은 카페에 들어서자마자 이색적인 분위기에 연신 핸드폰 카메라를 들이대기 바빴다. 문재인 정부의 아세안 중시전략인 신남방정책이 국가 화두가 된 시점에 베트남 현지 커피 전문점이 국내에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국내 콩카페는 베트남 현지의 맛을 그대로 내기 위해 인테리어 설계부터 자재까지 전부 ‘메이드인 베트남’을 고집하고 있다. 커피 추출 원두도 당연히 베트남 산이며, 추출방식도 전통 방식을 고집한다. 직원들도 건물 외관처럼 녹색 옷을 입고 있고, 사소한 소품까지 곳곳이 베트남이다. 이렇게 정성을 쏟다 보니 이 공간에만 있으면 이곳이 대한민국인지, 베트남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콩카페의 시그니처 메뉴는 코코넛 스무디 커피. 베트남에서 반드시 먹어 보게 된다는 이 커피는 단맛의 커피를 싫어하는 이들이라도 끌리게 만들 정도로 매력적이다.
이 커피 한잔을 들고 콩카페에서 머문다면 영락없는 베트남의 어느 한 공간이다. 기자가 취재를 위해 찾았을 때 평일인데도 불구하고 1층은 손님들로 가득 차 있었고, 한국어, 베트남, 영어가 혼재돼 카페 공간을 휘감았다.
이 한국 콩카페의 인기는 베트남 현지에서도 화제다. 올 8월 베트남의 한 방송에서 직접 취재를 해 열풍을 보도했다. 정인섭 대표는 “1호점인 연남점의 매출이 상상했던 것 이상”이라면서 “올 무더웠던 여름 한낮에도 많은 사람들이 기다려서 커피를 먹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이태원 콩카페 전경
때문에 정 대표는 최근 자신이 진출시킨 이 베트남 카페의 흥행이 아직 얼떨떨하다. 이 정도로 관심을 끌 줄 몰랐기 때문이다.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봤지만 딱히 답을 찾지 못했다. 사실 그가 운영하는 회사의 본업도 ‘커피’가 아니다. 베트남 투자 전문 회사다. 때문에 그의 고민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사업가로서 원인을 파악해 더 많은 수익으로 연결시키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정 대표가 고민하는 이유는 정작 따로 있다.
그가 콩카페를 국내에 들여오기로 결정한 것은 한국과 베트남과의 지속적 상생을 위해 고민해온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정 대표는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이익을 취하는 구조로는 장기적 관계를 원만하게 이끌어나가기 힘들다”면서 “지금의 베트남 열기를 이어가기 위해서라도 베트남에 도움이 되는 사업적 방안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고민을 해왔다”고 말했다. 실제 양국의 무역 불균형은 심각하다. 지난해 한국은 베트남을 상대로 315억8000만달러의 무역흑자를 냈다.
정 대표는 “하지만 산업구조상 베트남이 우리에게 경제적 이익을 취하기란 사실상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면서 “이에 최근 많은 이들이 베트남을 방문하는 것에 착안해 베트남 문화를 한국에 소개하면 어떨까 싶었고 기회가 돼 콩카페를 들여오게 됐다”고 덧붙였다. 이 대목에서 으레 비즈니스를 위해 자신을 포장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력을 보면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 진다.
정 대표와 베트남의 인연은 꽤 깊다. 그의 첫 직장은 지금은 사라진 (주)대우였다. 입사 후 김우중 당시 회장의 비서로 일을 했는데, 첫 해외 출장지가 김 전 회장을 따라 간 베트남이었다. “여권을 만들고 처음 방문한 해외 국가였다”고 그는 말했다. 이때가 1995년 9월이었다. 이후 벽산, 한화생명보험 등을 거치면서도 베트남과의 인연은 계속됐다. 담당 보직마다 베트남과의 비즈니스가 있었기 때문이다. 또 여러 경력을 거치는 와중에 김 전 회장과 베트남 현지에서 같이 사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콩카페 메뉴판, 카페에 전시된 베트남산 각 종 소품들
“사회 초년병 시절 김 전 회장님은 외국을 대상으로 사업을 할 때 수익의 일부분을 그 국가에 환원하는 고민을 해야 하고 실행에 옮겨야 한다고 말을 했습니다. 돈을 벌어오는 대상으로만 상대를 여기면 절대 길게 갈 수 없다고 하셨고 지금도 가슴에 새기고 있는 부분입니다.”
정 대표가 최근 쇄도 하는 가맹점 문의에 야멸차게 대하는 것도 이 같은 맥락이다. 콩카페의 인기몰이에 현재 수백 명이 가맹점을 열기 위해 대기를 하고 있지만 정작 자신은 그럴 생각이 없다. 그는 “가맹점으로 돈벌이를 하고자 한다면 콩카페를 통해 추구하고자 하는 가치가 무너질 것 같다”면서 “이익이 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국과 베트남의 상생의 장이라는 목표에 먼저 집중하고 싶다”고 말했다. 일례로 콩카페는 직원 중 일정 비율을 베트남인들로 쓰려 하는데, 어설프게 가맹점을 열어 이 같은 원칙을 고집하다가는 문화적 차이 등으로 인해 잡음이 날 수 있고 이로 인해 콩카페의 가치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것이 정 대표의 설명이다.
그는 “일자리 찾기가 힘든 베트남 다문화 가정에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려고 하지만 현실적 제약이 많아 녹록치 않은 것이 현실이고, 유관기관과 협조를 해도 쉽게 이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무작정 가맹점만 늘리면 어떻게 되겠냐”고 반문했다. 그는 콩카페를 단순히 국내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한 베트남 카페로서가 아닌 한국의 ‘베트남 문화 플랫폼’으로 만들고자 하는 장기 포부를 품고 있다. 어차피 이곳을 찾는 이들은 베트남에 대한 호기심이 있으니, 제대로 된 베트남에 관한 정보가 유통되는 등 한-베 민간 교류의 장으로 만들어 보겠다는 것이다. 사실 이 대목에서도 베트남 현지 콩카페의 ‘가치’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콩카페 창업자인 린증 현 대표는 가수 출신이다. 린 대표는 애초 이 카페를 만들 때 음악인들에게 모일 공간을 제공해 여기서 자유롭게 음악도 하고 대화도 하는 일종의 살롱 형태를 지향했다. 그만큼 카페는 초기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콩카페 2호점을 이태원에 연 것도 이 같은 인식과 무관하지 않다. 이태원에 들어선 콩카페는 용산구청이 조성한 베트남 퀴논거리 입구에 들어서 있는데, 퀴논이란 지명은 우리와 깊은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곳은 베트남전 당시 파월 한국군 맹호부대의 주둔지이자 최대 격전지였다. 여기서 그는 콩카페를 들여오게 된 또 다른 계기를 설명하며 ‘인연’이 가져다 주는 의미를 더욱 되새겼다.
그에 따르면 현지에서 인기몰이를 한 콩카페는 쌀국수처럼 글로벌화를 시도했지만 적합한 파트너를 찾지 못해 진척이 없던 상황이었다. 그러던 중 자신과 인연이 됐는데, ‘왜 굳이 나를 택했을까’라는 궁금증을 지울 수가 없었다고 한다. 숱하게 베트남을 드나들었어도 콩카페 측과는 별 인연을 만들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유는 정말 엉뚱한데서 나왔다. 후일 알고 보니 회사의 공동창업주가 ‘정인섭 대표라면 무조건 손을 잡아도 된다’고 하면서 적극 추천을 했는데, 그의 부인이 정 대표와 연이 있었던 것이었다. 그는 벽산에서 근무할 당시 서울대에서 유학하는 베트남 학생들을 모아 정기적으로 모임을 가졌고, 이 멤버 중 한명이 이 공동창업주의 아내였던 것이다.
그는 “모임이라기보다 타지에서 고생하는 베트남 유학생에게 밥 한 끼 사주는 정도여서 크게 의미 부여할 정도는 아니었는데 그때 인연이 콩카페에서 이어지게 될 줄 정말 몰랐다”고 웃었다. 정 대표와 일면식도 없었던 공동창업주는 그의 아내에게 들었던 ‘한국의 밥 잘 사주는 남자’를 기억해 내 사업파트너로 낙점한 것이다. 콩카페의 해외 진출과 관련해 공동 창업자 간 이견이 그동안 꽤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이견이 정 대표로 모아져 해결된 것이다. 정 대표는 “카페 이름의 콩은 ‘함께’ 라는 한자 공(共)에서 나온 것”이라며 “현지 카페를 가면 ‘콩누아 콩마이’라는 문구를 볼 수 있는데 풀이하자면 ‘공화, 영원히’다. 정말로 어디서든 더불어 살면 인연은 만들어 지고 이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호치민 시대를 모티브로 한 카페여서 콩은 공산당의 ‘공’을 의미하기도 한다. 인터뷰 말미에 그가 진단하는 콩카페의 인기 비결에 대해 다시 물었다. 다시 고민하더니 이런 대답을 내놨다.
“이국적인 것에 대한 잠깐의 호기심으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우리 사회의 다(양한)문화에 대한 포용성이 커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이참에 우리 사회 뿌리깊게 박힌 아세안에 대한 저급한 인식도 함께 바뀌었으면 합니다.”
정 대표는 “여력이 된다면 다른 동남아의 문화도 국내에 적극 소개하는 방안을 고민해 보고 싶다”고 밝혔다.
2007년 하노이에서 시작한 이 카페는 현재 베트남 전역에 55개 지점을 가지고 있다. 베트남의 트렌디한 젊은이들이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으로 자리 잡았고, 외국인 관광객에게는 베트남 방문 시 꼭 들려야 하는 명소로 인기를 얻고 있다. 대표 메뉴인 코코넛 스무디 커피를 필두로, 베트남식 연유커피 카페 쓰어다, 과일주스, 베트남 빙수인 쩨(Che), 베트남식 바게트 등의 식사류를 제공하고 있다. 베트남에서 커피가 소비되기 시작한 것은 프랑스 식민지 시대부터다. 이때 심은 커피나무들이 현재의 베트남 커피의 뿌리가 된 셈이다.
[문수인 기자 사진 류준희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99호 (2018년 1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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