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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대장’ 윤문진 허니비즈 대표 | 강남의 만능집사 ‘띵동’ 전국무대 데뷔합니다
입력 : 2017.09.01 14:5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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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고객 한 분이 띵동 없으면 못 살겠다고 하셨어요. 경기도 어딘가로 이사를 가셨다가 불편해서 다시 (띵동)서비스가 되는 강남으로 이사 오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짜릿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바퀴벌레를 잡아주세요’ ‘평양냉면 2인분 사다 주세요’ 갖가지 고객들의 요청이 생기면 꿀벌 모양의 옷을 입은 ‘집사(메신저)’가 출동한다. 이들을 이끄는 ‘꿀벌대장’ 윤문진(38) 허니비즈 대표는 ‘무엇이든 부탁하세요’라는 콘셉트로 고객들의 각종 요구사항을 해결해주는 심부름 서비스 ‘띵동’의 창립자다.
“아인슈타인이 꿀벌이 사라져 꽃의 수분을 돕지 못하면 식물이 혼란에 빠지고 이를 먹고 사는 동물의 생존도 위협할 것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인류에 도움을 주는 꿀벌처럼 고객들에게 꼭 필요한 서비스를 하자는 생각을 가지고 띵동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애완동물 산책·설거지·맛집 줄서기 등 고객들의 ‘만능집사’처럼 다양한 심부름을 수행하는 ‘띵동’이지만 ‘번역’, ‘레포트 대행’처럼 전문성이 필요하거나 도덕적·법적으로 문제되는 일, 제3자에게 피해를 입히는 일은 제외한다. 심부름 1건당 평균 심부름 삯은 약 8000원이 되지 않는다. 2012년 서비스를 시작한 띵동은 강남지역을 중심으로 입소문을 타며 인기를 끌어 현재 월평균 요청 서비스 12만 건, 띵동 애플리케이션(앱) 누적 다운로드 90만 건의 ‘국민 심부름 서비스’로 성장했다. 2013년 3억원이었던 매출액은 지난해 80억원을 돌파했고 올해 예상 매출액은 130억원에 이른다. 매년 평균 2.5배 규모로 성장하고 있는 띵동은 지난해 벤처캐피털에서 120억원의 투자를 받아내기도 했다.
다양한 경험 통해 서비스마인드 갖춰
34살에 띵동을 만든 윤 대표는 최근 ‘빵빵한’ 스펙들을 갖춘 스타트업 대표들 사이 보기 드문 고졸 출신 CEO다. 고교시절 넉넉하지 않은 가정 형편 때문에 대학 진학 대신 곧바로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20살에 초고속인터넷 회사에 입사해 6년간 직장생활을 했습니다. 남보다 먼저 사회에 나가 경제적인 성공을 이루고 싶었지만 26살 때 잘 다니던 회사가 파산을 했어요. 아이가 태어난 지도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사실 막막했죠.(웃음)”
정보기술(IT) 분야에 취업해 자리를 잡아가던 중 갑작스레 회사가 도산하며 좌절을 겪은 윤 대표는 부족한 스펙으로 재취업이 어려웠다고 했다. 2004년 아기가 태어나면서 돈을 더 벌어야 한다는 절박감에 2006년 사업가로 변신했다.
“동대문에서 나고 자라다 보니 주변에 자연스레 상인 분들이 많았어요. 주변을 잘 활용한 셈이죠. 1~2평 가게에서 도매를 하시는 분이 몇 천 평 창고에 옷을 쌓아두는 것이 비효율적이라 생각해서 시작했어요.”
윤 대표는 도매상의 재고를 싼값에 얻어 여성의류를 오픈마켓 등을 통해 팔기 시작했다. 기존 쇼핑몰과 차별화를 시도한 윤 대표는 생각지도 못한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고 한다.
“국내 최초로 피팅모델을 두고 촬영해 쇼핑몰을 꾸몄어요. 월 영업이익만 1억원에 달할 만큼 옷이 하루에 1500~2000장씩 날개 돋친 듯이 팔렸거든요. 자신감에 취해 자체쇼핑몰을 구축하고 인원도 거의 50명 가까이 뽑아 규모를 확장했는데 경쟁이 심해져 결국 빚만 남았죠.”
점차 유사한 서비스를 들고 나온 경쟁 인터넷 쇼핑몰들이 등장하고 사세는 줄었다. 홍보마케팅비를 늘려봤으나 2007년 결국 도산했다. 그의 수중에 남은 빚은 5억원. 수중에 남은 유일한 자산이었던 중고차를 팔아 아내에게 반 년 치 생활비를 맡기고 그는 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주위 사람들이 모두 손가락질하는 느낌이 들어서 도피 격으로 시작했어요. 사업하느라 술도 많이 마신 탓에 체력이 약해져 처음에는 남산도 오르기 힘들었거든요. 전국에 있는 산을 돌면서 조금씩 자신감과 체력을 회복하는 기간으로 삼았습니다.”
그는 이후 지인의 도움을 받아 건축시행 회사에 들어가 일을 배웠다. 다시 가족을 위해 부지런히 일하는 와중에 명도소송이 얽혀 있는 건물 매각 프로젝트를 맡게 됐다.
“카바레, 유흥업소 등이 들어선 오래된 빌딩을 4~5년 동안 본의 아니게 운용하게 됐어요. 그러다 보니 사회 밑바닥 경험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때 경험치가 많이 늘어난 것 같습니다.”
윤 대표의 프로젝트는 성공적이었다. 그는 인근에는 ‘20대 젊은 친구가 콜라텍을 운영한다’는 소문이 나며 문전성시를 이뤘다고 회상했다. 상가가 살아나자 매각가치가 높아졌다. 2011년 시세보다 2배 이상 비싸게 팔았다.
마이크로 물류시장 진출·2020 상장 목표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친 윤 대표는 4억원의 자본을 쥐고 다시 창업전선에 뛰어들었다. 단기적인 수익보다 장기적인 비전이 있는 서비스 분야의 아이템을 찾다가 평소 스스로 자주 이용하던 심부름 서비스 ‘해주세요’를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창업자 3명, 전화교환원 1명, 메신저 1명 처음에는 이 다섯으로 시작했어요. 서비스에 대한 비전은 보였는데 대책은 없었죠.(웃음) 선행 업체들의 단점들을 조금씩 보완해 가자는 생각으로 서비스를 발전시켜 나갔습니다.”
띵동이 탄생한 2012년 당시 업계 1위 ‘해주세요’를 비롯해 유사서비스를 제공하는 수십 군데의 경쟁사가 있었다. 주로 음식 배달을, 심부름 서비스를 부수적으로 운영했던 터라 서비스 품질이 일정하지 못한 업체들이 부지기수였다. 주 원인은 메신저들의 잦은 이탈과 교체였다.
“메신저에 대한 투자는 앞선 회사들의 실패사례를 보고 하게 됐어요. 메신저 이탈은 저희뿐만 아니라 모든 회사들의 고충이었는데 사실 서비스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게 고객 접점이거든요. 일정한 서비스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들에 대한 교육보다 보상체계부터 개선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직업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윤 대표는 2014년 결단을 내렸다. 전 직원에게 수익을 공개하고 공평하게 나누기로 했다.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해 근로의욕을 높였다. 위탁전속계약 형식의 메신저들은 심부름 건수에 비례해 연봉이 올라가는 방식으로 성과체계를 바꿨다. 효과는 금세 드러났다. 당장 소속 메신저들의 근속기간이 업계 최고 수준으로 늘어났다. 수입이 증가하자 숙련된 메신저가 몰려 서비스 품질도 균일하게 유지되기 시작했다. 지원자가 몰려들어 구인난도 사라졌다.
“초창기 3개월도 되지 않던 메신저들의 평균 근속연수는 현재 2.4년까지 늘었습니다. 평균 월급은 세후 440만원, 주 6일 근무하면 세후 500만~600만원 정도 됩니다. 서비스 품질이 좋아지자 주문건수가 더 늘어나고 자연스레 메신저들의 수입도 증가하게 된 것이죠. 한 달에 세후 700만원 받는 분도 나왔는데 이런 경우 일반회사로 치면 연봉이 9000만원이 넘는 수준이죠. 아마.(웃음)”
2014년부터 급격한 성장세를 보인 띵동은 2015년 동종업계 1위였던 ‘해주세요’를 인수했다. 지난해 대규모 투자를 마친 이후 윤 대표는 2020년까지 상장 목표도 세웠다. 윤 대표는 현재 강남에서 다진 서비스 기틀을 전국으로 확장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어느덧 서울 전역으로 서비스범위를 넓힌 띵동은 수도권으로 확장 중이며 내년에는 광역시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1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앞으로 심부름 요청 건수는 더욱 증가할 것으로 보이고 현재 가장 신속한 이륜차를 통한 마이크로 물류에 대한 니즈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입니다. 향후 당일 택배 서비스와 B2B시장도 확대해 심부름 시장에서 지배적 사업자가 되기 위해 온 힘을 다하겠습니다.”
[박지훈 기자 사진 류준희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84호 (2017년 09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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