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톱으로 나선 가전신화…LG전자의 새로운 사령탑 조성진 부회장

    입력 : 2017.01.10 14:16:31

  • LG전자 최고경영자(CEO)로 임명된 조성진 부회장의 행보가 빨라지고 있다. 2017년 1월 1일 공식취임 전 각 사업본부별 업무보고와 현안 파악에 나섰던 조 부회장은 1월 5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가전박람회 ‘CES 2017’에 참석해 CEO로서 공식일정을 시작한다. 이 자리에서 그는 취임 일정과 LG전자의 청사진을 제시할 예정이다. 재계 안팎에선 “가전 신화를 일군 조 부회장이 LG전자의 원톱으로 나섰지만 풀어야 할 과제도 만만치 않다”는 반응이다. 실제로 실적이 뚜렷한 가전 분야를 비롯해 스마트폰과 TV, 자동차 부품, 태양광까지 직접 챙겨야 할 이슈가 적지 않다. 일단 LG전자 내부에선 환영의 분위기다. LG전자의 한 관계자는 “요즘 같은 시기에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조 부회장 같은) 분이 적임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조 부회장은 사장단 인사 발표 후 앞으로의 구상과 계획을 묻는 매일경제의 질문에 “품질이 최우선이라는 원칙은 변함이 없고, (LG전자 최고경영자로서) 시장을 선도하는 제품을 꾸준히 보여드리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는 조 부회장이 평소 강조했던 ‘제조회사의 본질은 제품’이란 철학과 일맥상통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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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6년 금성사 입사, 36년간 세탁기 한 우물

    조 부회장은 재계의 보기 드문 스타 CEO다. 그의 이름 앞에 붙은 수식어만 봐도 그 화려한 이력을 짐작할 수 있다. 2012년 말 사장으로 승진하기 전까지 36년간 세탁기 개발과 연구에 몰두해 ‘세탁기 박사’로, 세탁기 사업의 1등 DNA를 다른 생활가전에 확대했다는 평가를 받아 ‘가전 장인’, ‘가전신화’라 불리고 있다. 업계에선 ‘박사’라 불렸지만 실제 학위가 있는 건 아니다. 조 부회장의 최종 학력은 고졸이다. 서울 용산공고를 졸업하고 1976년 금성사(현 LG전자)에 입사해 40년간 세탁기 세계 1위 신화를 써 내려갔다. 덕분에 ‘고졸 신화’란 수식어가 전혀 부끄럽지 않다. 오히려 실력과 성과만으로 이룬, 글로벌 기업에선 전례가 없는 일이라 평가받고 있다.

    충청남도 대천이 고향인 조 부회장은 도공(陶工) 집안의 5남매 중 막내였다. 그의 아버지는 막내아들이 중학교만 졸업하고 가업을 이어주길 바랐다. 하지만 기계기술자가 꿈이었던 그는 아버지에게 요업과에 진학한다고 거짓말을 하곤 용산공고 기계과에 입학한다. 우여곡절 끝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우수장학생으로 금성사에 입사한 조 부회장은 세탁기 설계실에 배치되며 인생의 변곡점을 맞게 된다. 조 부회장은 “용산공고를 졸업하고 전자제품을 너무나 만들고 싶어서 금성사에 입사했는데, 다른 사람들이 (선풍기 같은) 좋은 품목은 다 가져가고 결국 세탁기만 남아서 그걸 맡게 됐다”고 회상했다. 당시 국내 시장의 세탁기 보급률은 0.1%도 안될 만큼 걸음마도 떼지 못했던 시기였다. 특히 일본에 대한 기술 의존도가 절대적이었다. 조 부회장은 우선 기술 선진국이었던 일본을 따라잡겠다는 목표를 세웠다고 한다. 이후 10여 년 동안 150번 이상 현해탄을 건너며 밑바닥 기술을 익혔고, 일본 기술 자료와 서적도 닥치는 대로 구입해 읽었다. 회사에선 아예 숙식하며 밤샘 작업을 마다하지 않았다. 이러한 노력은 성과로 이어졌다. 1996년 첫 번째 결과물인 ‘통돌이’ 세탁기가 세상에 공개됐고, 2년 뒤에는 세계 최초로 ‘DD(Direct Drive) 모터’를 적용한 세탁기 개발에 성공한다. DD모터는 모터의 힘을 세탁통에 직접 전달시켜 고장은 줄이고 소음이나 진동은 확 줄여주는 획기적인 기술이다. 쉽게 말해 세탁기와 모터가 한 몸처럼 움직이는 신개념 세탁기였다. 이후 조 부회장은 2005년 듀얼분사 스팀 드럼세탁기, 2009년 6가지 손빨래 동작을 구현한 ‘6모션’ 세탁기, 2015년 상단 드럼세탁기와 하단 미니워시를 결합한 ‘트윈워시’ 등 세계 최초 기술을 공개하며 세상을 놀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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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G전자 근속 40년의 가전 장인

    이른바 세탁기 박사로 성공신화를 쓴 조 부회장은 2013년 LG전자의 생활가전(H&A)사업본부장에 취임하며 새로운 가전신화에 도전한다. 우선 세탁기 사업을 통해 이룬 1등 DNA를 다른 생활가전으로 확대하며 사업본부의 체질을 바꿔놓는다. 지속적인 R&D 투자와 5대 사업부(냉장고, 세탁기, 에어솔루션, 키친패키지, 컴프&모터) 중심의 포트폴리오, 안정적 수익 구조가 기반이 된 LG전자의 생활가전은 2013년 얼음정수기냉장고, 2015년 휘센 듀얼 에어컨, 디오스 오케스트라, 트윈워시, 2016년 코드제로 핸디스틱 터보 물걸레, 듀얼 스타일러, 퓨리케어 360° 공기청정기 등 융복합 가전들을 연이어 선보이며 화제를 낳았다. 2016년 국내를 시작으로 해외 론칭을 확대하고 있는 ‘LG 시그니처(LG SIGNATURE)’와 한국과 미국의 프리미엄 빌트인 시장을 겨냥한 ‘시그니처 키친 스위트(SIGNATURE KITCHEN SUITE)’ 등 프리미엄 브랜드는 새로운 도약의 든든한 발판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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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탁기에서 출발한 1등 DNA의 전파는 당장 실적으로 이어졌다. 2016년 LG전자 생활가전 사업본부의 영업이익은 사상 최초로 1조원 돌파가 예상된다. 이미 1~3분기 누적 영업이익만 1조1843억원에 이른다. 덕분에 2016년 매출기준으로 세계 2위 가전업체는 LG전자란 말도 나오는 상황이다. 증권가에선 LG전자가 미국 월풀에 이어 이미 세계 2위라고 인정하는 분위기다. 매출, 영업이익, 영업이익률 등 역대 최고 성과를 낸 2016년은 조 부회장에겐 근속한 지 만 40년 된 해이자 환갑을 맞은 해이기도 하다. 여기에 더해 LG전자 안팎에선 “세탁기 박사를 넘어 가전 장인으로 올라섰다”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LG전자 전 사업에 1등 DNA, 혁신 DNA 이식

    조 부회장은 이제 가전뿐 아니라 LG전자의 전 사업부를 총괄해야 하는 입장이다. 생활가전에서 쌓아온 성공 신화를 모바일과 에너지, 자동차 부품 분야에서도 재현해야 한다. 이를 위해 스마트 가전부터 딥 러닝(Deep Learning), 지능화 등이 가능한 생활로봇에 스마트홈 로드맵을 바탕으로 스마트홈 관련 조직을 대폭 키우고, 인공지능 개발 전담 조직을 구축하고 있다. 조 부회장은 2016년 9월 IFA 2016(독일 베를린 가전 박람회) 현장에서 “프리미엄 브랜드에 대한 투자는 물론 스마트홈, 생활로봇, 핵심부품 등에 적극 투자해 생활가전의 사업역량을 키워 미래를 준비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그동안 LG전자는 스마트씽큐 센서(SmartThinQ™ Sensor)로 일반 가전제품에 스마트 기능을 더하고, 스마트씽큐 허브(SmartThinQ™ Hub)와 같은 스마트홈 허브, IoT 액세서리 등을 출시하며 스마트홈 기반을 다져왔다. 조 부회장은 2017년에 출시하는 LG전자의 모든 가전제품에 무선랜(Wi-Fi)을 탑재해 무선인터넷을 통한 다양한 스마트 기능과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스마트 가전과 연계될 가능성이 높은 로봇 사업도 준비하고 있다. 최근 인천공항공사와 로봇 서비스를 위한 MOU를 맺는 등 생활로봇, 빌딩용 서비스를 위한 로봇 등으로 사업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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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ES 2017에서 공개되는 사업구상

    LG전자의 생활로봇사업 진출에 대한 구체적인 구상은 CES 2017에서 공개될 예정이다. LG전자는 CES 전시장에 자율 주행하는 안내 로봇을 처음으로 선보인다. 조 부회장은 이 자리에서 하드웨어·인공지능(AI)·콘텐츠 등을 통합해 기업 로봇 서비스 시장에 본격 진출한다는 계획을 발표하기로 했다. 미국에서 선보인 안내 로봇과 환경 미화 로봇은 인천국제공항에 공급될 예정이다. 조 부회장은 모든 제품에 사물인터넷(IoT)을 적용한다는 방침도 재확인할 계획이다. LG전자의 한 관계자는 “조 부회장이 자율주행 기술과 생활 로봇을 접목시켜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찾고 있다”며 “생활 로봇이 자리를 잡으면 빌딩용 서비스를 위한 로봇으로도 사업 영역을 확대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LG전자는 CES를 통해 초프리미엄 브랜드 ‘시그니처’의 제품군 확대도 발표할 계획이다. 우선 OLED TV 최고급 라인인 ‘G6’의 다음 버전 ’G7’의 공개가 예정돼 있다. 업계에선 “LG전자가 그동안 본 적 없는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OLED TV를 선보이겠다고 공언해 온 만큼 롤러블(Rollable) TV나 폴더블(Foldable) TV를 전시할 것”이라며 기대를 모으고 있다. 롤러블이나 폴더블이 나올 경우 기존 스피커 등 주변기기에 대한 디자인이 쉽지 않기 때문에 이번 공개될 제품에 대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그런가 하면 이번 CES 2017에선 생활가전(H&A) 부문과는 따로 간담회가 예정돼 있다. 업계에선 “스마트폰 사업의 돌파구가 조 부회장의 성공 신화에 정점이 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LG전자의 스마트폰 사업은 2016년 3분기에만 4364억원의 영업손실을 내며 5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2016년에만 1조원이 넘는 적자가 예상된다. 모바일커뮤니케이션(MC) 부문의 스마트폰에 대한 대응책이 주목되는 이유다.

    자택과 집무실은 신제품 테스트 장소 조성진 부회장은 늘 “사업의 중심은 제품”이라고 강조한다, 2013년 생활가전(H&A)사업본부장에 부임했을 땐 냉장고를 시작으로 주요 제품을 일일이 분해해 부품 하나하나까지 쓰임새를 확인하기도 했다. 덕분에 그의 집과 집무실은 신제품을 테스트하는 장소로 활용되곤 한다. LG전자의 한 관계자는 “시제품이 나올 때마다 조 부회장이 직접 사용하고 의견을 전달한다”며 “지금도 여전히 제품 개발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고 전했다. 2016년 4월 제품 테스트를 위해 집무실 바닥을 바꾼 사건은 이미 유명한 일화다. 당시 청소기 테스트를 위해 여의도 LG트윈타워 집무실의 카펫을 걷어내고 마룻바닥으로 바꿨다. 테스트 후 고안한 물걸레 키트에 보조 걸레를 달아 바닥의 찌든 때를 닦아내는 아이디어는 실제 제품에도 반영됐다. 조 부회장이 직접 샘플을 만들어 개발진에게 전달했다는 후문이다.

    [안재형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76호 (2017년 0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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