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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세대 스포테이너 신수지 | 체조요정에서 볼링여신으로
입력 : 2015.04.03 15: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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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조계의 샛별로 불렸던 그녀가 최근 프로볼러로 변신하며 주목받고 있다. 체조경기장을 벗어나 야구장과 골프장에서 아름다운 자태로 대중의 마음을 훔치더니, 최근에는 TV예능까지 섭렵하며 인기스타로의 자질을 내비치고 있다.
이런 그녀를 스포츠계와 방송가에서는 ‘스포테이너(스포츠스타+엔터테이너의 합성어)’라고 부르고 있다. 빼어난 외모에 체조로 다져진 건강미, 그리고 쾌활한 성격까지 갖춘 볼링여신 신수지 선수를 만나봤다.
원조 체조요정, 그리고 부상 “운동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였어요. 세계선수권 대회에도 나가봤지만, 역시 전 세계 스포츠계의 이목이 집중된 올림픽이 제 인생의 목표였기 때문이죠.”
신수지 선수는 국내 스포츠 역사에서 아주 중요하다. 전 세계 스포츠인들의 축제로 불리는 올림픽에 체조 선수로는 한국 최초로 본선에 진출했기 때문이다. 당시 신수지 선수는 예선에서 66.150점으로 12위에 랭크되며 결선 진출에서는 실패했다. 하지만 자력으로 본선에 진출한 신수지 선수 덕분에 이후 한국 체조선수들은 본선 진출 시드권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저는 어릴 적부터 남달리 에너지가 많았나 봐요. 부모님 말씀으로는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고 해요. 그러다 TV에서 리듬체조 경기를 보게 됐고,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졸라 체조를 시작했죠.”
신수지 선수가 체조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의외로 단순했다. TV를 보고 동작이 예뻐 체조를 시켜달라고 부모님을 졸랐다는 것. 그렇게 인연을 맺은 리듬체조는 이후 그녀에게 가장 중요한 삶의 일부분이 됐다.
부모님에게 떼를 써 시작했지만, 리듬체조는 그녀에게 태극마크를 안겨줬다. 넘치는 에너지와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2006년 전국체전 리듬체조 고등부 금메달을 거머쥐며, 국가대표에 선발된 것이다.
이후 그녀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과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 출전하며 국가대표 체조요정으로 거듭났다. 하지만 고질적인 발목부상과 재활치료, 그리고 끊임없는 대회 출전으로 인해 체조선수로서의 삶은 길지 않았다.
“올림픽 진출 이후 발목의 인대가 늘어나는 부상을 입었어요. 하지만 제대로 된 재활치료를 할 수 없었어요. 비용도 비용이지만, 체조와 관련된 재활치료를 전문적으로 하는 곳도 당시에는 찾아보기 어려웠기 때문이었죠. 그런 상황에서도 대회에는 출전을 계속했어요. 결국 인대가 끊어져 큰 수술을 받고 선수로서의 삶은 접어야 했죠.”
실제로 그녀는 체조선수로 활동할 당시 모든 경비를 직접 부담했다고 한다. 16년 만에 최초로 체조부문 본선에 올랐던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경기에서조차 그녀는 국가대표 선수들이 묵는 호텔이 아닌 베이징 내 2류 호텔에서 짐을 풀어야 했다. 또 그녀의 스태프들 역시 인스턴트식품으로 요기를 하며 경기를 준비했다.
“그 당시에는 여자 체조 부문에 대한 경비가 없었다고 들었어요. 대한체육회나 올림픽 선수단의 경우 정부예산을 받아 사용하기 때문에 일정부분 미리 계획을 짜놓는데, 제가 올림픽 본선에 진출할 것이라고는 예상을 못하신 것 같아요. 그래서 올림픽에 나갈 당시에 모든 경비를 사비로 충당했죠.”
선수시절부터 국가대표로 활동했음에도 별다른 지원을 받지 못했지만 체육단체들과 협회의 요청에 시달리기도 했다. 올림픽 진출 이후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체조에 대한 관심 역시 증폭되자, 각종 행사와 취재요청이 그녀에게 집중됐기 때문이다.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했지만, 그녀는 이런 요청에도 곧잘 응했다. 자신이 더 알려져야 체조에 대한 관심이 늘어날 것이고, 국민적 관심이 있어야 정부 및 단체들의 지원 역시 늘어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은퇴를 결정한 후 그녀는 기억 속에서 점차 잊혀졌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넘치는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고 변신을 시도했다. 체조요정에서 화려한 스포테이너로 전향에 나선 것이다. TV예능 프로그램에 꾸준히 출연하며 얼굴을 알리는 한편, 다양한 스포츠행사에도 참여했다. 특히 그녀는 지난해 체조동작 중 하나인 ‘백 일루전’ 기술을 활용한 야구경기 시구로 유명세를 치르기도 했다. 한쪽 발을 땅에 디딘 채 360도 회전을 한 후 시구를 하는 동영상이 유튜브를 통해 해외에 퍼지면서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그녀에게 높은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저도 제가 볼링을 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지난해 1월 친구들과 우연히 볼링장에서 재미로 게임을 했는데, 옆 레인에서 환상적인 플레이를 하시는 분이 계셨죠. 박경신 프로님이셨죠. 나중에 연락처를 물어 지도를 부탁드렸는데, 흔쾌히 허락해 주셨어요. 대신 지난해 11월 있었던 프로테스트 합격을 조건으로 내거셨죠. 이후 스파르타식으로 훈련에 돌입했고, 프로테스트 통과 후 이번 대회에 출전했죠.”
프로볼러로서의 변신을 선택한 후 그녀는 약 11개월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연습에 몰두했다. 그 결과 프로테스트에 무난히 합격한 뒤, 지난 3월 대회에서도 괄목할 만한 성적을 기록했다. 그녀는 첫날 부진하긴 했지만, 둘째 날 260점을 기록하며 프로볼러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최근에는 골프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은퇴 이후 세종대 대학원 수업을 통해 골프를 접한 그녀는 지난해 7월부터 전문훈련을 받고 있다. 프로볼러로의 전향을 준비하기 전까지 골프에 집중해왔던 것이다.
또 체조와의 끈도 놓지 않고 있다. 대학원에서 지도자 수업을 받고 있어서다. 그녀는 “올해에는 논문을 준비해야 한다”며 “다양한 부문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체조는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종목인 만큼 각별하다”고 말했다.
체조요정에서 스포테이너, 그리고 볼링여신으로 변신하며 팔색조의 매력을 뽐내는 신수지 선수. 강한 승부욕과 넘치는 에너지, 그리고 쾌활한 성격으로 주변에 해피바이러스를 전파하는 그녀의 앞날이 더욱 기대된다.
[서종열 기자 사진 정기택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55호(2015년 04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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