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리천장 뚫은 대기업 여성 임원들
입력 : 2015.02.06 16:44:30
-
‘을미년’ 새해에는 특별한 일이 있다. 올해 첫 여성 인구가 남성을 추월할 것이란 전망이 있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5년 여성인구는 2531만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남성 인구는 2530명으로 예상됐다. 이 같은 전망대로라면 우리나라에서 사상 처음으로 여성 인구가 남성을 웃돌게 된다. 이처럼 ‘여풍(女風)’이 거세다. 이를 반영하듯 재계에서도 여풍이 적지 않게 불고 있다.
지난해 말 기업별로 단행된 인사에서도 이 같은 여풍을 확인할 수 있다. 국내 대표적인 ‘상남자’그룹으로 평가받고 있는 현대차그룹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기존 강인함으로 대변되는 남성적 조직 문화에 여성의 섬세함을 입히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이정원 현대캐피탈 이사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대체로 건설업계에서 플랜트 부서는 강도 높은 업무와 잦은 해외 출장 탓에 여성 직원이 살아남기 힘들다고 알려져 있다”면서 “특히 입사 당시에만 해도 대졸 여성 사원에 대한 직급체계조차 없었을 뿐만 아니라 남성 위주의 조직 문화 속에서 보이지 않는 차별 등 다양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지만 김원옥 상무보A는 건설업계의 당당한 여성 엔지니어로 인정받게 됐다”고 말했다.
이소영 이사대우는 그룹 내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금융 리스크 관리 전문가’로 평가받고 있다.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한 뒤 보스턴대학교에서 경영학 석사를 받았다. 현대캐피탈에서는 개인금융크레디트팀장(차장), 캐피탈리스크관리실장(부장)으로 큰 활약을 보였다. 이 이사대우는 금융 전문성과 통찰력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캐피탈 관계자는 “엘리트 금융 전문가 코스를 밟지 않았는데도 탁월한 전문성과 통찰력을 바탕으로 현대캐피탈의 리스크 관리 분야에서 뛰어난 성과를 내왔다”면서 “무엇보다도 최근 현대캐피탈이 유럽, 중국에서 중남미 시장까지 외형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내실을 갖추며 최적의 수익성을 확보하는 데 이소영 이사대우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정원 이사대우는 정태영 현대캐피탈 사장이 줄곧 강조해온 디자인 경영의 액션플랜을 짜는 브랜드 전문가다. 이 이사대우는 이화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연세대 경영학 석사를 졸업하고 현대캐피탈에 입사했다. 그동안 브랜드기획팀장, 디자인랩실장 등을 거쳤다. 현대캐피탈 관계자는 “이 이사대우는 정태영 사장이 강조하고 있는 디자인경영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디자인랩실을 책임지고 운영하면서 현대캐피탈만의 독창적인 기업문화를 구축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면서 “또 해외시장에서 아직까지 상대적으로 낮은 현대캐피탈의 브랜드 인지도를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있어 앞으로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지난 12월 초 정기인사가 단행됐던 삼성그룹에서도 여풍의 위력은 셌다. 삼성그룹은 ‘2015년 승진임원 인사’에서 총 14명의 여성 임원을 승진시켰다. 이번 인사에서 전체 임원 승진자가 123명이나 감소한 것을 감안하면 15명이었던 2014년 여성임원 승진자 수를 오히려 늘렸다는 평가다. 본격적인 여성공채 임원 시대도 열렸다. 삼성그룹 고위관계자는 “올해 신경영 출범 초기(1992~1994년) 대졸 공채 출신으로 신경영 이념을 몸소 실천하며 회사 발전과 함께 성장해 온 여성 인력들이 대거 임원으로 승진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번에 상무로 승진한 삼성전자의 박정선 부장, 박진영 부장과 삼성SDS의 정연정 부장은 1994년 공채 동기다. 이들 여성 인원 승진 중에서도 박형윤 삼성중공업 부장의 상무 승진은 단연 돋보인다. 그동안 여성 임원이 없어 금녀의 벽으로 평가받던 조선·중공업 부문에서 박 부장의 승진은 화제일수밖에 없다.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빅3 조선사에서도 여성 임원은 박 신임 상무가 유일하다. 박 신임 상무는 2001년부터 해외 선박영업 현장을 누볐다. 2006~2011년 조선업계 최초의 여성 해외 주재원으로 런던주재원에 근무했고 세계 최초 초대형 에탄운반선 수주 등에 기여했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삼성중공업이 지난 7월 인도 릴라이언스(Reliance)사로부터 초대형 에탄운반선(VLEC) 6척을 7억2000만달러에 수주하는 데 성공했다”며 “이 과정에서 박형윤 신임 상무가 크게 기여한 점을 고려돼 이번 승진자 명단에 포함됐다”고 말했다. 미국이 셰일가스를 본격적으로 생산하면서 주성분 중 하나인 에탄을 해외로 수출하기 위한 ‘에탄 운반선’이라는 새로운 선박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박 상무는 지난해 10월 런던지점장을 맡아 현재 런던에 체류하고 있다.
하혜승 삼성전자 전무
해외 현지인력 중 최초로 여성 본사임원이 된 것도 눈에 띈다. 이번에 상무로 승진한 장단단 중국본사 부총경리는 대외협력 및 기획업무를 담당하면서 중국 현지시장 개척 및 회사 이미지 제고에 기여한 공을 인정받았다.
이번 삼성그룹의 여성 임원 승진자 중에선 삼성전자 소속이 8명으로 절반(57%)을 넘었다. 삼성생명, 제일기획, 삼성SDS, 삼성중공업, 제일모직, 중국본사에서 1명씩 배출했다. 평균 연령은 48세였다. 가장 어린 임원 승진자는 올해 43세인 삼성전자의 전은환·박정선 상무로 기록됐다.
여성 임원 비중을 지속적으로 늘릴 계획인 롯데그룹에서도 지난해 말 정기인사에서 유리천장을 뚫은 여성 임원들이 화제다. 물론 국내를 대표하는 B2C그룹인 만큼 여성임원의 필요성은 다른 기업에 비해 클 수밖에 없다.
롯데면세점 전혜진 상무보(45), 대홍기획 이상진 상무보(44), 롯데푸드 정성숙 상무보(50), 롯데마트 정선미 상무보(50)가 그 주인공들이다. 이들은 모두 각 분야에서 여성특유의 섬세함과 전문성을 발휘해 이번 인사에서 임원에 올랐다. 박사출신인 정성숙 롯데푸드 상무보는 오랜 기간 파스퇴르 우유 품질관리를 위해 한 우물을 파온 현장 전문가다. 롯데 관계자는 “회사가 손바뀜을 하게 되면 제품 관리가 잘 안되게 마련인데 정 상무보는 파스퇴르가 롯데에 인수된 후에도 철저한 품질관리와 제품의 질을 유지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전혜진 롯데면세점 상무보는 제일기획 광고기획국장 출신으로 2013년 롯데면세점에 경력직으로 입사했다. 기획전문가로서 섬세함과 추진력으로 두각을 나타내 현재 인천공항입찰 TF팀에서 근무하고 있다.
정선미 롯데마트 상무보는 2012년부터 롯데마트 글로벌교육팀장으로 인도네시아, 베트남, 중국 등 급성장한 롯데마트 해외 매장의 서비스 수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킨 공을 인정받았다.
이상진 대홍기획 상무보는 광고전략 전문가로 신규 임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로써 롯데그룹의 여성임원은 12명이 됐다. 롯데는 여성임원 비율을 30%까지 올린다는 신동빈 회장의 여성인재 육성 정책에 따라 여성임원을 키우는 데에 더욱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지난해 12월 단행된 SK그룹 인사에서도 여성임원 승진자가 배출됐다. 다만 전체 임원 승진자 117명 중 단 한 명의 여성임원 승진자가 나왔을 뿐이다. SK네트웍스의 박수진 부장이 상무(라이선스 브랜드 사업부장)로 승진했다. 그룹 내 브랜드 최고전문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박 신임 상무는 글로벌사업부인 DKNY 전략마케팅팀, 신규 브랜드팀장, 프리시티지 브랜드여성팀장 등을 거쳐 패션사업부에서 첫 여성임원이란 타이틀을 달았다.
박애리 신임 상무는 1967년생으로 전통적인 광고회사의 사업영역을 뛰어넘어 새로운 광고 비즈니스를 추진한 광고 사업 분야의 전문가로 꼽힌다. 박 상무는 단순히 광고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고객사에게 제품 개발을 위한 아이디어를 먼저 제안하고 제품 출시까지 연계시키는 HS애드의 새 비즈니스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창출하며 높은 평가를 받아 임원으로 발탁됐다. 또 섬세한 업무 추진과 특유의 친화력을 바탕으로 광고주와의 파트너십 유지에도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평가 받는다. 연세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인디애나주립대학교에서 언어학 석사를 받았다.
[홍종성 매일경제 산업부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53호(2015년 02월)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