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 클로드 베루에 샤또 사미용 오너 | 44년간 페트뤼스 만든 메를로의 달인
입력 : 2014.12.05 15:11:14
-
그는 사람의 손길이나 기술이 가미되면 와인의 천연적 특성을 해친다며 그 고집을 음악으로 표현했다.
“음악과 비교하자면 모차르트나 바그너를 연주할 때 지휘자의 자세로 해석할 수 있다. 지휘자가 자기 확신을 하면 모차르트나 바그너의 뜻과 달리 자기 마음대로 해석할 수 있다. 나는 겸손하게 모차르트나 바그너의 뜻을 표현하려고 한다. 원래 자연을 표현하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와인메이커의 역할은 무어란 말인가.
“나는 페트뤼스에서 44년간 근무했다. 내가 있기 전에도, 내가 떠난 뒤에도 페트뤼스는 존재한다. 나만의 바그너와 모차르트를 얘기하면 모차르트나 바그너가 추구하는 것에서 멀어질 수 있다. 나도 그런 페트뤼스의 정신을 존중한다. 그 정신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다.”
그러면서 “에세조나 라타시 로마네콩티 같은 부르고뉴 최고의 도메인 역시 3km 이내에 있지만 그 안에서 아펠라시옹이 갈라진다. 그들의 테루아를 존중하기 때문에 그 테루아의 철학이 담긴 와인이 나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와인메이커의 영향력이 강하게 작용했다면 오히려 와인의 개성이 사라졌을 것이란 얘기다. 베루에 씨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색이 조금은 들어갔다”며 웃었다. 그는 지금 보르도 라랑드 포므롤의 ‘샤또 사미용’과 생테밀리옹의 ‘뷰샤토생땅드레’, 바스크 지역 이루르귀의 ‘에리 미나’ 등의 와이너리를 소유하고 있다. 먼저 화이트 와인 에리 미나를 따랐으나 온도가 차서 향이 올라오지 않자 그는 조금 있다가 맛을 보자고 제안했다.
1964년부터 페트뤼스 양조 그는 1964년에 페트뤼스를 소유한 무엑스 가문에 합류해 장 피에르 무엑스와 함께 와인을 만들었다. 무엑스로 가기 전엔 화이트 와인도 만들어봤으나 무엑스에선 레드와인만 만들었기에 자신의 화이트와인인 에리 미나를 만들면서 첫사랑을 만나는 느낌을 가졌다고 했다.
“나는 이상주의자이자 감성주의자다. 내 가문의 근본은 바스크다. 스페인의 바스크 지역과 연이어 있는 곳이다. 바스크의 유일한 아펠레시옹인 이루르귀는 피레네 산맥에 연해 있다. 이곳은 땅이 적어 장남만 고향에서 남고 나머지는 고향을 떠나는 전통이 있다. 내 가족도 장남이 아니라서 고향을 떠났다. 할아버지 때 보르도에 정착했기에 내 아버지는 고향에 대한 향수가 심했다. 시인인 아버지는 보르도에서 태어난 내게 어릴 적 고향 이야기를 많이 들려줬다. 그래서 나도 이루르귀로 돌아가는 꿈을 꿨고 1994년에 가까스로 땅을 마련해 포도나무를 심었다. 에리 미나는 바스크 말로 향수를 뜻한다. 내가 이름을 지었고 레이블 디자인도 직접 했다. 레이블엔 ‘나는 가을이 오지 않는 여름을 꿈꾼다’라고 적었다. 영원한 삶, 늙지 않는 것, 영원한 행복을 담고자 했다.”
잠시 시간이 지났다고 생각되자 에리 미나를 따랐다. 잔에선 파인애플, 귤 등 과일의 향과 꽃향기가 맑게 피어올랐다. 베루에 씨는 2011년산이 지금 딱 마시기에 좋다고 했다.
“우리 와인을 마실 때는 좀 기다리면 와인의 향이 살아나 잠재력을 느낄 수 있다. 풍부한 산미와 미네랄이 입안의 침샘을 자극해 식욕을 돋운다.”
다양성이 와인의 멋 그는 “어느 장소에 가든 거기에 맞는 포도 품종이 있다”면서 에리 미나는 바스크 전통 품종인 그로멍쌍을 주축으로 해서 쁘띠 쿠보, 쁘띠 멍쌍 등을 블랜딩해 만들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와인 만드는 즐거움 한 토막을 털어놨다.
“장소에 맞는 품종으로 만들다보니 내 다양성을 표현할 수 있고 다양한 경험을 하는 즐거움이 있다. 지금 이스라엘을 비롯해 아르헨티나, 캘리포니아 등에선 메를로를 컨설팅 하는데 같은 품종이라도 토양이 달라 나오는 와인이 모두 다르다.”
에리 미나 와이너리는 3헥터에 불과하다고 했다. 이 지역엔 포도원을 갖기가 힘들어 외지인은 토지를 살 수 없다는 것. 자신은 선친의 고향인 데다 이 지역 와인 발전에 기여한 공이 있어 그나마 마련했다고 했다.
기다림을 느끼게 하는 와인 이번엔 그의 레드와인 ‘샤또 사미용’으로 화두를 돌렸다. 샤또 사미용은 그가 반백이 되도록 일한 페트뤼스와 가까운 라랑드 포므롤 지역에 있다. 자연히 페트뤼스 와인을 만드는 메를로 품종에 같은 방법으로 만들고 있다. 이 대목에서 그의 와인 만드는 비결을 조금 엿보게 됐다.
“나는 와인 산화를 방지하며 와인을 만든다. 옥시데이션을 최소화해 소비자들이 와인 병을 열었을 때부터 산화되는 과정을 느끼게 하는 와인이다.”
이 점에선 그의 친구이자 역시 세계적 와인메이커로 꼽히는 미셸롤랑과 대조를 이루고 있다. 미셸롤랑은 미세산소법으로 와인의 색과 맛을 부드럽고 해 빨리 마시기에 좋은 와인을 만들고 있다. 반면 베루에 씨는 와인이 열리기를 기다리면서 느끼는 감흥을 생각하게 하는 와인을 낸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그는 “와인의 세계는 다양성의 세계”라고 했다.
“서로 다른 품종, 서로 다른 지역에서 만들 뿐 아니라 만드는 사람도 다양하고 마시는 사람도 다양하다.”
그에게 와인 만들 때 가장 중시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하나로 말할 수 없다. 모든 시작은 포도밭서 이뤄진다. 포도밭에 있는 포도와의 첫 대면에서 시작된다. 익은 상태 껍질의 두께 등, 먼저 포도가 어떤지 아는 게 가장 중요하다. 다음으로 양조장 주인이 어떤 와인을 추구하는지도 중요하다. 거기다 오크를 어떻게 쓰는가도 중요하다.”
그의 최고 역작을 묻자 “페트뤼스 1975년”이라고 했다.
“좋은 빈티지라고 하는데, 일반적으로 침용 과정서 색이나 탄닌이 우러나오게 한다. 그때 나는 침용 기간을 짧게 잡았다. 탄닌이 풍부하면 오래 저장할 수 있다고 하지만 처음 침용서 좋은 탄닌이 나오기 때문이다. 침용을 오래해 나오는 거친 탄닌은 와인 맛을 해친다. 그래서 어떤 와인보다도 침용 과정을 짧게 했다. 그렇게 해서 과일향이 뛰어나고 계피향과 허브향이 좋은 와인을 얻었다.”
포므롤은 메를로의 최적지 그에게 또 다른 메를로(merlot) 와인 주산지인 메독의 메를로와 포므롤의 메를로와의 차이를 물었다.
“메를로는 진흙땅에서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발산하는 섹시한 품종이다. 메독은 (속에) 자갈밭이 많아 메를로의 섬세함과 섹시함을 잃고 다른 성격으로 나타난다. 메를로는 원래 스트럭처가 강한 풀보디 와인을 혼자서도 만들 수 있는 품종이다. 그러나 아래에 자갈 모래가 들어가면 스트럭처를 잃고 부드럽고 강한 데서 라이트한 포도맛을 만들기도 한다. 카비네 쇼비뇽이나 카비네 프랑과 만나서 이들의 강한 맛을 부드럽게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메독에서 왜 블렌딩이 발달했는지를 설명해주는 대목이다.
“대조적으로 포므롤이나 라랑드 포므롤은 메를로 품종에 잘 맞는 진흙땅이다. 메를로는 햇빛이 너무 많아도 안 좋고 진흙땅이어야 좋다. 그게 섬세하고 우아한 와인을 만드는 역할을 한다.”
대가는 이 대목에서 메를로의 최적지 3곳을 꼽았다. 스위스의 테씽(tecino; tessin)과 이탈리아의 피에몬테, 프랑스의 포므롤과 생테밀리옹이란 것이다. 그는 특히 페트뤼스의 경우 겉의 60~70cm는 검은 진흙이고 그 밑에는 파란 진흙이 형성돼 있어 뛰어난 포도를 만들어준다고 설명했다. 그에게 포도나무 수령과 와인 맛의 관계를 물었다.
“나는 1979년에 샤또 사미용을 인수했다. 그때 포도를 그대로 간수해 일부만 다시 식재했다. 메를로는 아주 오래 사는 품종이다. 페트뤼스엔 90년 된 포도나무도 있다. 포도나무는 보통 20년이 되면 제구실을 하게 된다. 열매만으로는 어린 포도와 오래된 포도를 구분하지 못하지만 와인을 만들면 오래된 포도는 묵직하고 어린 나무의 것은 가벼운 느낌이 든다.”
그러면서 샤또 사미용 2010 빈티지에 대해선 “와인 잠재력을 내가 20년이 간다고 해도 (나이 때문에) 나는 모르겠지만 충분히 갈 것”이라며 웃었다.
페트뤼스를 만들던 그에게 페트뤼스가 100점이라면 사미용엔 몇 점쯤 줄 수 있느냐며 짓궂은 질문을 날렸다.
“보통은 자식에게 기대가 커서 점수를 많이 안 주지만 즐거움엔 점수가 없다. 페트뤼스나 사미용은 서로 다른 기쁨을 준다. 페트뤼스는 어마어마하고 사미용은 겸손한 와인이다. 그래도 즐거움은 같다. 그러니 점수 주는 것도 힘들다. 모차르트에게 얼마 주고 바그너에게 얼마 주냐고 묻는 것과 같다.”
와인 음미하는 시간 필요 와인 메이킹의 대가인 그가 평론가들의 영향을 받았는지 궁금했다.
그는 “조심해야 할 것 같다”고 해 웃음을 자아내게 했다.
“만드는 사람과 평론가는 서로 영향을 준다. 50년 동안 성공했듯이 앞으로 성공 못할 것도 없다. 그들이 좋은 점수 주면 기쁘고 나쁜 점수 주면 슬프지만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 와인을 만들지는 않는다. 나는 마시기 좋고 부드러운 와인을 추구한다. 평론가를 의식해서 와인을 만들지는 않는다.”
기자가 “보통 한 병을 따면 사흘 동안 음미한다”고 하자 그는 “굉장하다. 보통 기자들은 5초 테스팅을 하는데…”라며 말을 이어갔다.
“사실 와인 평론가들이 20~30병 앞에 놓고 하면 피상적인 평가를 할 수 밖에 없다. 와인을 그렇게 평가하는 것은 어렵다. 와인 한 잔 놓고 음식 먹으면서 교감하는 데서 와인 마시는 즐거움이 나오기 때문이다.”
몇 해 전까지 강한 보디감의 와인이 유행하다 최근 부드러운 와인이 부각되는 것 같다고 하자 그는 “내가 만든 와인 스타일은 보르도 와인의 80%가 그렇다. 내 친구 부아스노(또 다른 보르도의 유명 양조가) 역시 그런 와인을 만들고 있다. 그동안 마케팅에서 그렇지 않은 와인이 부각됐을 뿐”이라고 했다.
그는 와인을 만드는 인생 자체가 즐겁다고 했다.
“인생은 스쳐간다. 그런데 와인을 통해 만난 것이 영광이다. 와인은 나도 즐겁지만 다른 사람에게 즐거움을 준다. 와인 만드는 게 행복했고 그걸 즐겼다. 그 와인이 남을 행복하게 하는 것 또한 즐겁다.”
철학을 가르친 페트뤼스 오너 그에게 페트뤼스와 인연을 맺게 된 옛날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했다.
“할아버지가 보르도에서 와인숍을 운영하셔서 8살 때부터 와인을 접했고 와인 냄새 맡기를 좋아했다. 그 인연이 있어 보르도 양조대학에 다녔다. 그런데 50년 전 어느 날 무엑스 씨가 나를 찾았다. 그때만 해도 나는 21살의 학생이었다. 그렇게 한 달에 한두 번꼴로 6개월간 나를 불렀고 철학 등을 얘기하며 지나갔다. 그런데 1964년 9월 15일 직접 손으로 쓴 계약서를 줬다. 그간의 대화가 인터뷰였던 것이다. 그렇게 포도 수확 1주 전 채용했다. 그것도 페트뤼스를 포함한 무엑스 가문의 12개 샤또의 모든 와인을 만드는 것을 맡겼다.”
가슴을 졸이며 일을 시작했는데 잘 정착했다고 했다 “그해 9월 21일 포도를 수확했는데 64년 빈티지를 만든 게 성공적이었다. 양조대학 졸업하고 연구소에서 일하면서 학생 겸 인턴십으로 일할 때였다. 22살 때라 인내심도 없을 때였다. 샤또의 모든 사람이 나보다 나이가 많았다. 게다가 당시는 와인 만드는 환경도 열악했다. 와인이 잘 나오자 무엑스 씨가 나를 불렀다. 특히 연세 드신 분들과 소통을 잘했다고 칭찬했다. 그 뒤 무엑스 씨를 아버지처럼 따랐다. 무엑스 씨는 돌아가실 때까지 문학과 예술 등의 애기를 많이 했다.”
기술보다 철학을 존중한 오너로부터 와인 만드는 철학을 제대로 배운 것이다.
[정진건 기자 사진 정기택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51호(2014년 12월)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