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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니카 브뤼거 장신구 디자이너 | 현대 장신구는 명품 중 명품 샤넬과 동급
입력 : 2014.06.27 11: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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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아닌 용기 있어야 착용하는 작품 모니카 브뤼거는 “용감해야 창작품을 지닐 수 있다”고 했다. 돈 많은 부자들은 정형적인 샤넬 목걸이를 할 수는 있어도 이런 작품은 용기가 있어야 넘겨다볼 수 있다는 얘기다. ‘당신들은 돈을 보고 제품을 만들지만 우리는 용기를 보고 작품을 창작한다’는 듯한 뉘앙스다.
자신의 작품은 화랑을 통해 팔고 있다는 그는 “이런 것을 착용하려면 왜 이 장신구 작가가 위대한지 교육을 받아야 한다”며 “하이힐도 처음 나올 때는 혁신적인 것이었다. 내 위치가 어디인지를 나타내는 게 진정한 현대의 멋쟁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장신구는 스스로를 드러내 차별화하는 도구라고 말을 이어나갔다.
“전통이나 현대나 자신을 나타내기는 마찬가지다. 세계에서 처음 장신구로 등장한 것은 구슬인데 그것은 ‘세 번째 눈’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나는 동물이 아니라 인간이란 것을 나타낸 것이다. 이것이 장신구의 시작이다.”
또 그는 “장신구는 경박하고 어리석어 보이며 심지어 쓸모없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의 본질은 아름다움이다. 장식 예술에 있어서 아름다움을 창조하려는 것은 다행히 모든 문화에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접근방식”이라며 그렇게 만든 장신구가 우리를 서로 다르도록 구분하는 도구로 이용된다고 설명했다.
“아름다운 고급차는 진정한 장신구의 하나이다. 장신구는 가장 은밀한 예술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는 그는 “몸을 장식하는 것은 아주 근본적인 형태를 가진 예술의 하나이며 이것은 인간 본성의 건설적 요소 가운데 하나로 교화 과정에서 중요하지만 때로는 무시된 욕망”이라고 했다.
다름을 나타내는 상징 그렇다면 장신구 전문가인 그가 생각하는 장신구는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모니카는 대답에 앞서 자신의 반지를 먼저 보여줬다. 그의 손가락엔 금속으로 만든 작은 골무처럼 생긴 게 두 개 달려 있었다. 하나는 그의 손가락, 다른 하나는 남편의 손가락이 들어가는 크기라고 했다. (이 대목에서 그는 법적 결혼을 하지 않아 금반지를 끼지 않았지만 사랑하기에 반지를 만들어 끼고 있다고 했다.)
“나는 장신구를 만들 때 장신구를 생각하지 않는다. 장신구를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은 장신구의 테크닉이나 재료를 무시한다는 얘기다. 그보다는 장신구가 그 사람에게 어떤 의미가 있으며 그 사람과 어떤 관계를 만들어낼지를 생각한다.”
장신구를 장식적 요소로 보는 게 아니라 사람과 연결하는 어떤 대상으로 만든다는 얘기다. 특별히 어떤 것을 만든다는 생각을 갖지 않은 채 작업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작품을 시작할 때 (다루는) 물체가 무엇인지는 분명했다. 그렇지만 골무로 시작해서 결혼반지로 끝날 줄은 몰랐다. 이처럼 자유로운 생각을 담게 된 게 (내 스스로도) 놀랍다. 그래서 장신구를 넘어 예술적 창작품이 된다.”
이 대목이 전통 장신구와 현대 장신구의 차이라는 것이다.
과거엔 지위를, 현대는 생각을 담아 “전통적 장신구는 콘텍스트가 없다. 이에 반해 현대 장신구는 개인의 사고가 들어간다. 과거 장신구와 현대 장신구의 차이는 과거엔 장신구가 착용한 사람과 사회의 모습을 보여준 반면에 현대 장신구는 작가의 생각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시대가 흐르며 달라진 또 하나는 과거에는 일반인이 장신구에 접근하는 게 어려웠으나 지금은 누구나 관심만 있으면 작가에게 갈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고대 로마의 오피아(Oppia)법은 모든 로마 여성에게 일정 량의 보석만(반 온스)을 허용했고, 중세에도 그 법이 이어져 왕과 귀족 교회의 일부 고위 성직자만이 정해진 한도의 보석만을 착용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지위를 나타내는 데 사용됐던 한국의 과거 왕실 유물은 장신구로 보지 않는다고 했다.
“리움 미술관에서 한국의 옛 장신구들을 봤다. 왕의 지위를 나타내는 신라시대 장신구들은 내가 생각하는 장신구와는 다르다. 그것은 지위를 나타내거나 의식을 위한 것이다. 내가 장신구라고 하는 것은 개인의 치장을 위한 것들이다.”
한마디로 “과거의 장신구가 주민등록증 같았다면 지금의 장신구는 개인의 일기 같다”는 게 그의 표현이다.
“(그래서) 과거 장신구는 나라를 떠나 비슷한 면이 있었으나 현대 장신구는 각자의 개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작가의 정체성과 동시에 문화와 역사를 담고 있다”고 했다.
보석은 재미가 없어서 이런 것(장신구 연구와 디자인)을 하게 됐다고 하는 이유다. 재료나 보석의 가치보다 그 안에 담긴 이야기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프랑스에는 지금도 보석 장신구가 많이 있고 그것을 다루는 이들은 현대 장신구를 인정하지 않지만 그 역시 그들에게 인정받기를 원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오히려 전통과의 갈등을 만들어 새로운 예술작품을 추구한다는 얘기다.
“나는 장신구에 진정한 가치를 부여하려고 한다. 베르나르도 재단과 함께 일하게 된 것도 베르나르도가 도자기에 대한 전통적 개념이나 가치를 파괴하기 때문이다.”
“나는 1978년에 장신구를 시작했다. 그러나 한동안 아무 것도 하지 않다가 1992년에야 다시 시작했다. 독일에서 좋은 학교에 갔다.(그는 세계 유일의 장신구 전문학교인 독일 포르츠하임대학 출신이지만 졸업을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보다는 여행하면서, 또 사람을 만나면서 배웠다. 대학에 갔지만 완전히 졸업하지는 않았다. 20대가 학교에서 뭘 배우겠나. 내가 누구인지조차 잘 모르는데.” 그만큼 고민하고 부딪쳐 오늘의 자신을 찾은 것이다.
모니카는 나중에 프랑스 님대학에서 응용미술 학사를 했고 솔본느에서 응용미술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렇지만 장신구 전문가나 미대 교수에게 예술을 배우진 않았다고 했다.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을 돌며 조각이나 건축 분야 교수나 해당 분야의 고수들을 만나서 배웠다는 것이다. 그게 ‘예술을 배우는 최고의 기법’이라고 했다. 고정관념을 벗어나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내는 길이란 얘기다.
도자기가 장신구 소재로 부상 그는 “한국에선 거의 하지 않지만 유럽에선 1960년대부터 도자기 장신구를 착용하고 있다. 트렌드가 바뀌고 있다”고 밝혔다.
서울 프랑스문화원 강연에서 그는 사실 도자기 장신구의 역사는 아주 오래됐다고 소개했다. 고대부터 점토로 피부를 치장하던 인류는 불을 이용해 점토의 성분을 바꾼 세라믹이나 자기(porcelain)로 그릇이나 장신구를 만들어 썼고 프랑스에선 파양스(주석 유약을 바른 유리와 세라믹의 중간 정도 재질)도 많이 쓰인다고 했다. 특히 자기나 파양스는 다루기 쉽기 때문에 최근 장신구 재료로 많이 이용된다고 했다. 그에게 장신구를 배우는 사람들이 어떤 자세로 접근해야 하는지를 물었다.
“(현대)장신구에선 콘텍스트를 중시한다. 대량생산에 저항한다. 그만큼 회화나 조각보다 훨씬 자유롭다. 회화나 조각은 (예술이라지만) 이미 너무 상품화됐기 때문에 작가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좁다. 이에 반해 장신구 작가는 아주 자유롭게 개념적으로 할 수 있다.”
그는 자유롭다는 것은 “그만큼 더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말한다고 했다. 관객(또는 고객)과 친밀해야 하며 그들 개개인의 기호에 맞도록 해야 한다는 것. 남과 같지 않게 그만을 나타내는 게 진정한 장신구라는 얘기다.
명품강국 프랑스 루이 14세 때 시작 샤넬 얘기가 나온 김에 그에게 프랑스가 명품 시장에서 앞서 가는 이유를 물었다. 그는 태양왕으로 불리던 루이 14세 때 프랑스가 국가 차원에서 스타일 발전을 촉진시킨 데서 기원을 찾았다.
“파리는 중앙에서 기획해 세운 도시다. 정치적으로 파리는 중심이었고 거기에서 왕은 왕실과 고위층을 위한 제품을 만들도록 했다. 정치사회의 든든한 배경으로 시스템이 갖춰졌다. 그게 루이 14세 때의 문화가 됐다. 현대사회는 새로운 것을 개발하는 게 쉽지 않다. 과거를 바탕으로 현대화하면서 파리가 세계 최고 명품의 중심이 됐다.”
다만 패션의 명품과 장신구의 명품은 다르다고 했다.
“요즘 패션 디자인은 거의 외국인이 하고 있다. 반면에 장신구는 프랑스의 순수한 뿌리를 지키고 있다. 그런 점에선 장신구가 보다 전통적이다.”
모니카 브뤼거 예술가이자 교수 겸 큐레이터로 활약 중인 장신구 디자이너다. 주위에 한국 학생이 많고 한국 음식점도 있어 거의 매일 한국 음식을 먹을 정도로 좋아하지만 첫 방한이라고 했다. 그의 작품은 파리 장식디자인미술관을 비롯해 프랑스 국립현대미술기금, 독일 포르츠하임 장신구미술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리모주 국립미술대 교수이며 스트라스버그 국립고등미술대학교에서 장신구 이론을 가르치고 있다.
<도자기, 피부에 그리다 A LITTLE CLAY ON THE SKIN>전 프랑스 명품 도자기 회사 베르나르도가 세운 재단이 모니카 브뤼너를 기획자로 정해 여는 세계 순회 전시. 예술과 디자인의 경계를 오가는 긴장감 넘치는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리모주 도자기 미술관(2010)을 시작으로 뉴욕, 타이베이, 파리, 아펠도른(네덜란드), 토론토에 이어 7번째. 11월9일까지 세계장신구 박물관서 열린다.
관람은 수~일요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 (02)730-1610
[정진건 기자 사진 정기택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46호(2014년 07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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