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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창둥 징둥상청(JD.com) 회장 | 온라인쇼핑몰 징둥, 알리바바 곧 추격
입력 : 2014.06.09 16: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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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는 ‘징둥’이라는 말로 더 유명한 징둥상청은 이전에 ‘360바이닷컴(360buy.com)’이라는 사이트로 유명했다. 요즘은 ‘JD닷컴(jd.com)’이라는 사이트로 통합 운영된다. 이 사이트가 타오바오닷컴과 차별화되는 것은 판매자가 자신의 물건을 올려놓고 판매하는 오픈마켓이 아니라 본사가 직접 제품을 구매해 판매하는 종합 쇼핑몰이기 때문이다. 의류나 신발 등 소소한 제품을 찾는 중국인들은 타오바오를 더 선호하지만 가전제품이나 귀금속 등 보다 값나가는 물건을 사려는 사람들은 징둥을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
타오바오는 한국의 옥션처럼 수많은 업체들이 인터넷에 자기 상품을 올려놓고 판매하기 때문에 본사 차원의 품질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다보니 이른바 ‘짝퉁’ 상품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이에 비해 징둥은 본사에서 직접 상품을 관리하는 비중이 높다보니 품질 관리가 상대적으로 잘된다는 평판을 듣고 있다. 물론 시장 점유율 면에서는 여전히 차이가 있어 타오바오 등 알리바바의 시장 점유율이 아직 징둥보다는 2배 이상 높은 것이 현실이다.
그렇지만 징둥의 성장세는 무섭다. 징둥의 지난해 주문 건수는 3억2330만 건에 달했다. 고객 계좌 기준으로 징둥을 이용한 고객 수는 약 4740만명을 기록했다. 지난해 매출액은 전년도에 비해 67.6% 증가한 693억4000만위안(약 11조4000억원)에 달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지난 2009년부터 영업손실을 기록하기 시작해 아직 흑자 전환을 하지 못했지만 지난해 영업적자는 5000만위안(약 82억원)으로 2012년 17억2900만위안(약 2840억원)에 비해 크게 줄었다.
중국 내에서는 징둥이 빠른 속도로 알리바바를 추격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알리바바가 선발 주자로서 양적인 성장을 주도했다면 징둥은 질적인 성장에 주력하면서 기초를 탄탄히 다졌다고 보기 때문이다.
알리바바에는 마윈이라는 걸출한 인물이 있다면 징둥에는 류창둥(劉强東)이라는 빼어난 사업가가 있다. 류창둥은 1974년 2월 장쑤성 쑤첸시의 시골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영재 소리를 들으며 성장한 그는 베이징의 명문인 인민대 사회학과에 진학했다. 사회학을 전공으로 택했지만 그보다는 컴퓨터에 더 흥미를 느꼈다. 학창 생활의 시간 90% 이상을 컴퓨터에 빠져 보냈다. 당시 그의 컴퓨터 실력은 프로그래밍 아르바이트를 통해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을 정도였다.
다른 학생들과 달리 스스로 돈을 벌었던 그는 일찌감치 사업의 매력에 빠졌다. 사회학을 공부해 교수가 되거나 직장 생활을 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자기 사업을 통해 돈을 벌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궁리를 많이 했다. 그래서 가장 먼저 손을 댄 것이 식당 사업이었다.
그는 프로그래밍으로 소소한 돈을 벌기보다는 한번에 큰돈을 벌 수 있는 사업을 고안하던 중 음식점을 생각하게 됐다. 1994년 인민대 3학년 때 그는 아버지로부터 20만위안(약 3300만원)을 빌려 베이징에 식당을 차렸다. 그러나 패기만 앞섰던 그는 문을 연 지 불과 몇 달 만에 두 손을 들고 말았다.
그는 나중에 당시 사업을 실패했을 때 느꼈던 감정을 술회한 적이 있다. “인간의 본성에 대해 진짜 실망했다. 식당 종업원들에게 그렇게 잘해줬는데 배신을 당했다. 인간이 선한 존재인지, 아니면 악한 존재인지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빌린 돈을 갚는 것이 급선무였다. 1996년 대학을 졸업한 뒤 당시로서는 급여가 많았던 일본계 보험사인 일본생명에 들어간 것은 그 때문이었다. 적성에 맞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빚을 갚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2년간 회사를 다니면서 급여를 꼬박꼬박 모아 빚을 전부 갚았다.
직장 생활의 성과는 빚을 갚은 것보다 자신이 사업에 실패했던 이유를 스스로 깨달은 것에 더 의미가 있었다. 인테리어만 화려하게 장식하면 식당으로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순진하게 생각한 것이 패인이었다.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 자신이 경영했던 음식점은 종업원 관리와 회계 등 모든 게 엉망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마디로 경영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회사를 운영한 꼴이었다.
그는 빚을 청산함과 동시에 회사를 박차고 나와 창업을 결심했다. 그가 대학 때부터 관심이 많았던 정보기술(IT) 분야를 선택한 것은 필연이었다.
류창둥은 빚을 갚고 남은 돈 약 2만위안(약 330만원)을 가지고 1998년 중국의 실리콘밸리라고 불리는 베이징 중관촌으로 들어갔다. 이곳은 중국 IT산업의 메카로 이름을 대면 알 만한 중국 IT기업들이 대부분 자리를 잡고 있는 곳이다. 그는 ‘베이징의 류창둥’이라는 뜻으로 징둥공사라는 이름의 전자제품 판매회사를 차렸다.
이미 음식점으로 실패한 경험이 있었던 그는 판매부터 재고관리, 회계, 종업원 관리 등 모든 것을 직접 챙기면서 만전을 기했다. 초기에는 주로 CD와 DVD에 관련된 디지털 기기를 팔았지만 2001년부터 가전제품 유통에 손을 댔다. 쑤닝과 궈메이 등 가전 유통 대기업들의 성공을 지켜보면서 중국인들의 소득이 늘어날 것을 감안하면 가전제품에 대한 수요가 급증할 것이기 때문에 규모는 작아도 자신만의 판매점을 운영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사업은 성장에 성장을 거듭하면서 판매점은 전국 4개 도시에 12개까지 늘어났다.
인터넷 판매가 초기부터 잘되면서 성공을 예감한 그는 이듬해부터는 아예 매장을 과감히 정리하고 전자상거래에만 집중했다. 그가 문을 연 360바이닷컴은 2005년 온라인 매출이 1200만달러에 달할 정도로 자리를 잡았다. 온라인 시장의 잠재력에 스스로도 놀랄 정도였다. 이후 360바이닷컴의 성장은 눈부셨다. 거의 매년 약 200% 성장률을 놓치지 않았던 것이다.
징둥의 이런 성장은 글로벌 투자기관들의 적극적인 관심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징둥은 2007년 이후 10여 차례에 걸쳐 글로벌 사모펀드 등으로부터 투자를 받았다. 20억달러에 가까운 금액을 투자받았다. 중국 IT기업으로는 알리바바에 이어 두 번째에 해당하는 규모다.
징둥에 투자한 기관에는 세계 2위 헤지펀드로 유명한 타이거펀드를 비롯해 애플과 구글, 유튜브에 투자해 성공을 거둔 세콰이어캐피털, 세계 최대 유통업체인 월마트 등이 포함돼 있다. 2011년에는 인터넷 전문 투자 벤처캐피털로 유명한 러시아의 디지털 스카이 테크놀로지스(DST)로부터 5억달러를 유치했다. DST는 미국의 페이스북과 게임업체인 징가, 소셜 커머스업체 그루폰 등에 투자해 성공했을 정도로 IT기업에 대한 선별력이 뛰어난 투자사로 정평이 난 곳이다. 2013년 2월에는 세계적인 부자인 알 왈리드 빈 탈랄 사우디아라비아 왕자가 투자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해외투자자들의 징둥에 대한 관심은 알리바바에 못지않은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평판 때문이었다. 그 중에서도 물류시스템은 중국 내 최고라는 것에 누구도 토를 달지 않을 정도다.
징둥은 올해 미국 나스닥 상장을 통해 새로운 도약을 꿈꾸고 있다. 최근 IPO 투자설명회에서 주당 16~18달러에 주식예탁증권(DR) 9300만7000주를 발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BoA메릴린치와 UBS, 바클레이스 등을 주간사로 선정한 징둥이 예상하는 공모금액은 17억달러에 육박한다. 징둥은 이 자금으로 물류시스템을 더욱 개선하고, 관련 기업에 대한 인수합병(M&A)을 실시해 알리바바의 아성에 본격적으로 도전하겠다는 방침이다.
징둥은 이번 상장을 계기로 알리바바와 같은 오픈마켓으로의 변신을 적극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제품을 매입해 직접 판매하는 종합 쇼핑몰 전략으로는 수많은 판매업체가 입점하는 오픈마켓과 규모의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한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류창둥의 징둥에 대한 경영권 유지 능력이 약하다는 지적을 내놓는다. 그가 보유한 지분이 20% 선에 그치기 때문이다. 타이거펀드 지분도 20%대에 달하는 등 투자기관들이 나머지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실상은 경영권 보호장치를 마련해 놓고 있어 전혀 문제가 없다. 그는 차등의결권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징둥은 주식을 A류와 B류로 나눠 B류 주식에는 1주당 20표의 의결권을 부여하고 있다. 류창둥이 보유한 지분은 모두가 B류 주식이어서 의결권 기준으로는 그가 압도적인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다. 그의 지분율이 4.8% 밑으로 내려가지만 않으면 50% 이상 의결권을 보유하는 데 문제가 없다.
그는 중국 경영자 중에서 투명성을 가장 강조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법규를 철저하게 준수하는 것이 중국 관행에서 쉬운 일이 아니지만 회사의 회계가 조금이라도 투명하지 않으면 결국은 회사의 브랜드 가치가 손상된다고 보고 있다. 직원들이 회사에 대해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데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신입사원들의 연봉이 다른 기업보다 높은 데다 1년간 전문 직업교육을 시키고 있다. 중간 간부들에게는 유명 경영대학원의 최고경영자 과정을 다닐 수 있도록 지원한다.
류창둥은 최근에는 젊은 여대생과 열애설로 언론을 뜨겁게 달구기도 했다. 그의 열애 대상자는 이른바 ‘밀크티녀’로 유명세를 탄 장쩌톈이라는 여성이다. 중국의 명문 칭화대생으로 알려진 그녀는 2009년 교실에서 밀크티를 들고 있는 한 장의 사진이 인터넷으로 유포되면서 청순하고 단아한 이미지로 단숨에 네티즌들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열애설은 류창둥이 미국 뉴욕에서 장쩌톈과 데이트하는 장면이 사진으로 공개되면서 확산됐다. 두 사람은 장쩌톈이 지난해 미국 컬럼비아 대학에서 교환학생으로 있을 때 현지에서 만나 인연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류창둥도 부인하지 않았다. 그는 웨이보(중국판 트위터)에 “우리 모두는 자신의 생활을 선택하고 결정할 권리가 있다. 여러분의 관심이 감사하다. 앞으로 정상적으로 손을 잡고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여러분 행복하세요”라는 글을 올렸다. 이후 두 사람이 나란히 그녀의 고향집을 방문하는 장면이 목격되기도 했다. 중국인들은 그의 사업 못지않게 결혼 발표 여부에도 주목하고 있다.
[정혁훈 매일경제 베이징 특파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45호(2014년 06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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