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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금융계의 손정의’ 존 에하라 유니슨캐피털 회장| 개척 정신 덕분에 수많은 장벽 넘어 여기까지 왔죠
입력 : 2014.06.09 16: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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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신문과 주한유럽상공회의소(ECCK)가 공동으로 글로벌 대체투자포럼(GAII 2014)을 개최하기 하루 전인 지난 5월 12일, 행사에 패널로 참석하기 위해 내한한 에하라 회장을 호텔신라 서울에서 만났다.
한국이 일본으로부터 해방한 직후 그곳에서 태어나고 자라 성장과정이 순탄치 않았을 것 같다. 그러한 어려움을 어떻게 이겨냈나. 태어났을 당시인 1950년대는 말할 것도 없고 1980년대 들어 일본에서 일하기 시작했을 때도 주변 여건이 어려웠던 것은 사실이다. 특히 금융권은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성향을 띠기 때문에 더욱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일본에서 태어난 한국 사람이라는 차이점이 성공 요인으로 작용했다.
17살이던 1969년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당시 일본인들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일본인들은 사회·친지가 원하는 바에 맞춰 틀에 박힌 대로 자기 진로를 나아갔다. 반면 그는 사회적 배경이 달랐기 때문에 그들의 진로와 달리 해외유학을 감행할 수 있었다.
틀에 박힌 사고에서는 자유로웠지만 다른 한편으로 일본사회 일원이 되기 위한 노력도 병행했다. 일본에서 태어났고 이곳이 생활터전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일본이 외부인에 대해 폐쇄적인 성향을 갖고 있다고는 하지만 사회에 도움이 되고 기여할 부분이 있는 사람은 인정해주는 사회라는 점도 도움이 됐다.
‘일본 금융계의 손정의’로 불릴 만하다. 골드만삭스 파트너에 오른 것부터 아시아 최초 PEF를 설립해 성공적으로 운영해 나가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나. 가장 중요한 것은 ‘파이오니어(개척자) 정신’이다. 그동안 아무도 하지 않았던 분야를 개척해 나간 것이 주효했다. 손정의 회장도 마찬가지다. 둘 다 일찌감치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는 공통점도 있다.(손 회장도 에하라 회장과 마찬가지로 17세에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손 회장의 경우 일본에 없었던 소프트웨어 유통회사를 창업한 이후 끊임없이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 나가며 여기까지 왔다.
마찬가지로 1984년 골드만삭스에 입사했을 때 주위 일본인들은 당시 일본 최대은행인 미쓰비시은행 같은 곳을 놔두고 왜 그런 데를 가냐고 다들 만류했다. 지금은 골드만삭스 파트너라는 자리가 선망의 대상이 되지만 당시 일본에는 골드만삭스가 아예 없었고 인지도도 매우 낮았다. 골드만삭스 입사 후 일본지점 개설이라는 임무를 띠고 일본 내 기업 최고경영책임자(CEO), 금융기관장, 공무원들을 만나러 다녔다. 일본은 인간관계가 매우 중요한 데다 관계 형성에 걸리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사회다.
당시 한국 국적을 갖고 있다는 불리함에도 파이오니어 정신으로 무장해 발로 뛰며 골드만삭스 일본지점을 성공적으로 정착시켰다. 지점 개설 14년 뒤인 1998년 그곳을 나올 무렵, 일본지점은 1800명의 직원을 둔 거대조직이 되었다. 이게 끝이 아니다.
골드만삭스를 떠난 직후 유니슨캐피털을 세워 PEF 비즈니스를 시작한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는 모두 미쳤다고 했다. PEF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누군가 우리에게 회사를 팔아야 한다. 그러나 당시 일본 사회 풍토에서 회사를 판다는 것은 치욕적인 일로 간주되었다. PEF에 기업을 판다는 일은 더욱 있을 수 없었다. 비즈니스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유니슨캐피털 설립 후 16년간 20개 회사를 사들이는 데 성공했다.
그러고 보니 국적을 뒤늦게 바꿨다. 어떤 계기가 있었던 것인가. 1987년 골드만삭스 일본지점을 한창 키우고 있을 무렵에 국적을 한국에서 일본으로 바꿨다. 결심하게 된 원인은 간단했다. 일본에서 태어나서 살고 가족과 생활하고 있는 데다 사업도 꾸려나가야 하는 상황에서 어떤 국적이 나은지를 자문해본 끝에 내린 결론이다. 그러나 국적도 중요하지만 정신적 유산(heritage)도 중요하다. 한국계라는 점이 내 인생 항로에 많은 영향을 미쳤고 정신적으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가령 재미교포가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 국적을 갖는다고 해서 그가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잖은가. 일본이라고 다를 것은 없다.
대한민국 경제·기업이 활력 없는 일본을 닮아간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나온다. 최근 한국투자를 본격화하면서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는 와중에 더 이상 한국이 예전 일본에서 알던 한국이 아니라는 점에 놀라곤 한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가 트리거포인트로 작용한 것 같다. 일본기업은 1980~1990년대 사이 미국·유럽의 시장선도기업을 따라잡는 전략을 채택해 성공했다.
팔로워(follower) 전략이다. 한국기업들도 10년 뒤 IMF 외환위기 이전까지 일본기업과 동일한 전략을 시작해 성공했다. 중요한 것은 글로벌 리더가 된 그 이후다. 일본기업이나 한국기업 모두 글로벌 리더로 자리 잡은 이후 해당 지위를 유지하는 것이 문제다.
그런 측면에서 한국기업이 일본기업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IMF 외환위기 이후 한국기업에서는 일본기업과 다른 역동성이 느껴졌다. 양국 기업총수들을 만나보면 그런 느낌이 보다 강해진다. 한국 기업총수들은 일본 기업총수와 달리 해외로 나가야 산다는 글로벌 마인드가 훨씬 강하다. 변화를 수용하는 측면에서 일본 기업총수들을 능가하는 것이다.
젊은이들 영어구사능력도 한국기업의 미래를 밝게 해주는 요소다. 일본 젊은이 대비 한국 젊은이들의 영어실력이 탁월하다. 다만 양국 모두 ‘파이오니어 정신’의 결여라는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일본 경제를 죽이는 가장 큰 요인 중 하나가 “먹고 살 만하니 힘든 일 기피하고 편하게 살자”는 풍토다. 한국도 그런 풍토가 만연해 가는 것이 눈에 보인다. 야망, 비전, 에너지… 이런 요소들을 잃게 되면 경제 측면에서 활력이 매우 떨어질 수밖에 없다.
PEF를 통해 기업을 사들여 가치를 높이는 비결이 있나. 실제 사례가 있으면 알려 달라. 기업가치를 높이는 결정적인 요인은 단 하나다. 경영 노하우를 업그레이드하는 것이다. 의사결정 시스템 등 경영스타일과 기업문화를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에도 체인점이 있는 회전초밥 스시로가 대표적인 사례다.
2007년, 100억엔(약 1000억원)을 주고 인수할 당시 스시로는 업계 3위였다. 2위와의 시장점유율 격차가 상당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초밥 장인 출신 경영진들의 요리실력은 의심할 바 없이 최고였다. 그러나 요리실력을 판매실적으로 연결시키는 노하우나 경영에 대한 관심은 전혀 없었다.
이에 스시로라는 브랜드를 제외한 회사의 모든 전략을 다 바꿨다. 새롭게 업그레이드된 영업 마케팅 전략이 먹히니 시장점유율은 맛에 걸맞게 올라갔다. 여기에 해외 체인이란 것을 상상도 못하던 스시로 경영진을 독려해 한국으로 진출했고 성공을 거뒀다. 결국 인수 5년 뒤인 2012년 인수가 대비 8배인 800억엔(약 8000억원)에 회사를 매각해 커다란 차익을 남겼다.
매각 당시 시장점유율은 인수할 때와 반대로 2위와 상당한 격차가 나는 1위였다.
유니슨캐피털이 최근 한국 시장에 진출한 것을 두고 일본계 자본의 한국침공이라며 경계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유니슨캐피털이 굴리는 자금의 원천 중 일본계 비중은 20%도 안된다. 다만 투자자들이 요구한 투자대상이 그동안 일본기업이었을 뿐이다. 미국의 대형 연기금 및 MIT·프린스턴·시카고 등의 대학발전기금과 캐나다·스위스·싱가포르 투자자 등의 자금이 주를 이룬다. 최근에는 국민연금 등 한국 기관투자자 자금도 유치했다. 한국이 선진국 반열에 진입하면서 막대한 부가 쌓이고 있다. 이에 따라 이런 국부를 어떻게 운용할까가 화두인 상황이다. 그동안의 기업인수 노하우를 되살려 한국 연기금 등 투자자들에게 좋은 수익을 내주는 동시에 많은 조언을 해주고 싶다.
또 탁월한 운용을 통해 높은 수익을 올려 한국의 국부가 커지는 데 보탬이 되고 싶다. 아울러 일본에 강점이 있는 유니슨캐피털만의 독특한 투자가 가능하다는 점도 주목해 달라. 투자한 한국 중견기업이 일본기업에 납품하는 길을 열어준다든지 아예 동종 일본기업을 인수·합병하는 방식 등이 그것이다.
존 에하라 회장 1952년 일본에서 태어나 미국 MIT에서 건축과 도시공학을 전공하고 시카고대 MBA를 취득했다. ‘파이오니어 정신’으로 똘똘 뭉친 인물답게 그의 인생은 최초로 점철되어 있다. 1984년 골드만삭스 일본지점을 처음으로 개설했으며 1988년 아시아인 최초로 골드만삭스 파트너가 되었다. 1998년 아시아 최초 PEF 운용사 유니슨캐피털을 창립해 운용자산규모를 일본 최대인 2400억엔(약 2조4000억원)으로 키워냈다. 2012년에는 유니슨캐피털 한국법인을 설립해 전자기기 배터리 부품업체인 넥스콘테크놀로지를 1700억원에 사들였다. 유니슨(unison)은 ‘제창’이란 뜻으로 사람과 유니슨의 결합을 통해 기업의 ‘하모니’를 연출하는 것이 회사의 목표다.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45호(2014년 06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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