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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문 고려대 명예교수 | 얕은 물에선 나올 게 없지 않나
입력 : 2014.05.16 09:4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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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임 후) 특별한 것은 없고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김우창 선생님께서 귀족이 된다고 하신 것은 영국의 신사나 귀족처럼 생업을 위해 일하지 않으니 한가로움과 안락함 속에서 인격을 도야하고 인식의 지평을 확대해 안목을 높이는 데 정진하라고 빗대신 것 같다. 신선이 된다는 말씀은 눈부시게 환상적인데 세상의 구속을 훌쩍 벗어나 무한대의 정신적 자유를 누리는 신선 같은 경지랄까, 아무튼 그런 경지에 이르라고 하신 것 같다. 그것을 직접 목표로 삼을 수는 없으나 그 수준을 동경하고 평정한 마음으로 독서와 사색을 통해 거기에 근접하려고 한다.”
영문학 교수만 35년을 했고, 학생 시절까지 합하면 훨씬 더 오랜 기간 문학작품과 살아온 그에게 가장 마음에 담은 작품은 무엇일까. 보통 사람들에게 이 작품만큼은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은 책 세 권만 꼽아달라고 부탁했다.
“마음에 남는 작품은 무수히 많다. 어느 작품이건 나의 정신적 자양분이 됐고 내 재산이 됐다. 문학을 전공하는 사람에게 제일 좋아하는 책을 뽑아달라는 것은 자식 많이 둔 어머니에게 제일 좋아하는 아이가 누구냐고 묻는 것과 마찬가지일 게다. 그래도 그런 책을 읽을 수 있는 축복과 영광에 무한히 감사했던, 그러니까 그런 책이 있기 때문에 나의 삶은 절대로 빈곤하지 않다고 느꼈던, 책을 세 권 꼽는다면 <논어>와 <까라마조프의 형제들>, 그리고 <모비딕>을 들 수 있다.” <모비딕>은 대학 2학년 때 읽었다고 했다. “대학 2학년 겨울방학, 3학년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에 밥 먹고 자는 것 외에는 하루에 열다섯 시간씩 책을 읽은 것 같다. 정말로 신들린 사람처럼 읽었다. 그 중에 허먼 멜빌의 <모비딕>은 대양처럼 거대한, 그리고 인간의 존재조차 의식하지 않는, 때로는 인간에게 적대적인 것 같은, 우주의 힘과 맨몸으로 맞서는 인간을 느끼게 해 주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까라마조프의 형제들>은 러시아 대륙처럼 무한히 넓고 한없이 깊고 어두운 인간의 마음속을 탐험하게 해줬다.” 생생한 소설 속 장면들을 떠올릴 그에게 평생 문학을 벗하며 살아온 입장에서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정의해 달라고 짓궂은 주문을 했다.
“문학은 우리의 삶을 가장 광범위하고 가장 깊게 또 가장 철저하고 세밀하게 살피면서 삶 속에 깃든 모순과 함축된 뜻과 가능성, 인간이 무엇인가 하는 본질을 가장 깊이 탐구하는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문학을 통해서 우리는 인간을 알게 되고 사회를 알게 되고 나를 알게 된다. 그러나 나는 문학을 정의하기보다는 문학이 나에게 가지는 의미를 말하고 싶다. 문학은 나에게는 내가 딛고 선 땅, 숨 쉬는 공기, 마시는 물처럼 생존의 필수조건이다.”
“6·25 전쟁의 후유증을 앓던 50년대 말과 60년대 초 우리는 어려운 상황을 이기며 살았다. 그래서 민족의 한을 보여주는 작품이 많았다. 그런 작품들이 그 때를 살았던 우리에겐 너무나 공감이 가지만 현대 비평의 기준에서 보면 너무 치우치고 감정적인 면이 두드러졌다고 할 수 있다. 근대화가 진행되던 70년대와 80년대 초엔 사회고발 소설들이 주류를 이뤘다. 작가들도 한의 정서를 노래하는 것보다 사회악을 고발하는 게 사명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대표적이다. 지금 읽어보면 상당히 거칠고 문학적 감칠맛 같은 게 부족하지만 사회적 메시지가 뚜렷했다. 80년대 말에 민주화에 성공하고 나서는 개인의 내면에 주력해 개인의 심리, 의식을 파고드는 작품들이 나왔다. 사회고발 문학, 저항문학에서 경시되었던 문학성과 예술적 기교도 상당히 향상되었다. 그러나 많은 작품이 한두 가지 장점에도 불구하고 여러 면에서 소홀하다는 느낌이 큰 것이 사실이다. 이제는 의식의 폭과 깊이, 그리고 예술성을 골고루 갖춘 작품들이 더 많이 나오면 좋겠다.” 최근 번역 인력이 많이 늘어났으나 한편으론 한국적 정서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번역도 나온다고 했다.
“번역은 ‘기술’이 아니고 예술이다. 영어는 얼마만큼 수준에 도달했더라도 원작에 대한 깊고 섬세한 이해가 있어야 영어 구사력이 더 잘 발휘된다. 요즘엔 원작에 대한 너무나 피상적인 이해(또는 몰이해)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번역서들이 많이 나오고 있어서 염려스럽다.”
그런 면에서 앞으로 젊은 번역가나 외국에서 자란 번역가는 이해하기 어려운 문학작품들을 번역해 외국에 제대로 소개할 것이라고 했다.
“우리의 파란만장한 역사적 상황이나 한국인 특유의 의식과 전통, 관습, 그리고 근대사의 극심한 분열과 갈등 등 어학적 지식만으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없고 공감하기 어려운 작품들을 제대로 번역해서 세계가 한국과 한국인을 올바로 알 수 있게 하는 데 여력을 경주하고 싶은 마음이다.”
읽어야 할 훌륭한 세계적 작품들만도 너무나 많아 소설 쓰기를 포기했다는 그는 영문학을 배우는 학생들에게도 그런 자세가 필요하다고 했다.
“나는 항상 (영문학은) 우직하게 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아마 모든 문학도가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유클리드가 ‘기하학엔 왕도가 없다(There is no royal road to geometry)’고 했듯이, 모든 문학이 그렇지만 특히 영문학은 중세부터 뿌리가 있을 뿐 아니라 미국문학도 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읽어야 할 책의 분량이 너무나 많아 요령이라는 게 있을 수 없다. 읽어야 할 책이 읽을 능력과 시간의 수백 배, 수천 배이므로 우직하게 읽어야 하고 또 그래서, 150년을 공부해도, 300년을 공부해도, 탐구의 대상이 고갈되지 않을 것이기에 해볼 만한 학문이다. 유학 시절, 다른 유학생들을 보면 과목당 한 권의 책을 마스터하면 되는 분야도 있는데 문학은 과목마다 읽어야 할 책이 10권은 됐다. 세 과목이면 30권이다. 또 논문 쓰려면 굉장히 많은 참고서적 같은 것을 읽어야 한다. 정말 숨 돌릴 틈 없이 했다.”
인문학, 진정한 학문의 길 서지문 교수는 영문학 외에도 논어에 대한 책을 쓸 만큼 동서양의 인문분야를 두루 섭렵했다. 한 주제에 천착하는 최근의 학문 경향과는 대조적이다.
“한때 다빈치나 밀튼이 ‘르네상스적 인간’이었다는 말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인문학을 폭넓게 섭렵하고 싶었고 어느 정도는 그렇게 할 수도 있었다. 교수 생활을 시작했던 1970년대 후반에는 한국에 학문 연구의 여건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깊이 있는 연구를 하는 게 쉽지 않았다. 전공분야의 서적도 구하기 어려웠고 학술지도 구할 수 없었다. 그래서 사명감 갖고 한국문학을 (영어로) 번역했고 다방면으로 독서를 했다.
불행한 세대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것을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계기로 활용했다. 80년대 후반부터 인터넷이 보급되고 연구 여건이 갖춰지고 보니 여러 방면으로 나가고 한국문학을 번역한 것도 죄스러운 일이 됐다. 해야 할 일 제쳐놓고 했다는 자책감을 늘 갖고 있다.”
요즘 세대는 그렇게 하려야 할 수도 없다고 했다. “요즘은 그렇게 해서는 가르치는 것도 제대로 하기 어렵다. 더욱이 자기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기도 힘들다. 책이나 논문이나 같은 분야, 같은 주제로만 써야 학문적 성과가 쌓이고 전문가로 인정을 받기가 쉽다. 그게 매우 훌륭한 학문하는 방법이긴 하나 그것만이 유일한 방법이 된 것은 아쉽다. 폭 넓게 학문을 하고 싶어 하는 후배들에게 안쓰러운 마음도 갖고 있다. 여러 유형의 학문적 방식이 인정되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서 교수는 2000년대 초부터 인문학 위기를 강조하는 칼럼을 여러 번 썼다. 재벌들까지 나설 만큼 요즘 인문학 열풍이 부는 것을 그는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했다.
“갑자기 여기저기서 인문학 강연이 열리고 하니까 인문학이 유행상품이나 기호품이 된 것 같은 느낌도 든다. 그렇지만 지극히 바람직한 현상이다. 나도 몇 번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인문학 강연을 한 적이 있는데 청중이 진지하게 열성적으로 청강해 주어서 고맙고 기뻤다. 인문학을 접해보면 (100% 이해를 못하더라도) 그 소양이 알게 모르게 스며들어 부지불식간에 심성도 변하고 의식도 변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인문학 강의 열풍이 부는 것은 굉장히 바람직하다.”
한때 한국연구재단의 인문강좌 운영위원장을 맡기도 했던 그는 인문학 강좌가 노령화 시대의 한 대책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무료함을 달래는 차원에서라도 인문학을 맛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가. 강의를 주최하는 사람들은 청중의 다수가 노인이면 강좌의 효율이 낮다고 불만스러워하는데, 고령화 시대에 노인인구를 인문학 강좌로 흡수할 수 있다면 지극히 바람직하다. 물론 우리 사회를 재단하는 청장년층의 인문학적 소양이 높아지고 식견이 넓어지는 게 바람직한 것은 말할 필요가 없지만 노년층의 영향력도 증가하고 있다. 게다가 현재의 60~70대는 사실 젊어서 인문학에 관심이 있어도 충족할 수 없었고 뼈빠지게 일해서 나라를 일으켜 세웠으니 그런 분들에게 인문학을 접할 기회를 드리는 것, 그래서 만년에 정신적 여유와 만족을 누릴 수 있게 하는 것은 국가가 그분들에게 드리는 보답이며 훌륭한 노령화 시대 대책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유연한 문장 날카로운 비판 여러 분야를 섭렵한 그는 그동안 다수의 책을 냈고 여러 매체에 많은 칼럼을 게재했다. 그 글들은 하나 같이 아주 매끄러울 뿐 아니라 논리정연하고 단어 하나하나가 상당히 적확하다. 그렇지만 논리적 글쓰기 훈련을 받은 적은 없다고 했다.
“세상을 살다보니 우리 사회의 많은 부조리가 논리적 사고를 게을리 하는 데서 나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자기모순과 불합리를 바로잡지 않고 너무나 논리에 맞지 않게 얘기하고 행동하는 것이 안타깝고 애석해서 자연히 논리적 허점을 많이 지적하게 됐다.”
그렇다보니 그의 글은 때론 맵다. 사회의 모순을 질타할 땐 독하다는 평까지 나온다. 여린 소녀 같은 그의 글에 힘이 담긴 건 누구 때문일까.
“많은 사상가나 문인들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 내 글이 독하다면 다른 분들은 글을 상당히 부드럽게 마무리하는데 그걸 못하고 생각을 그대로 쓰기 때문일 게다. 나는 부드럽게 마무리를 할 줄 몰라 고지식하게 쓴다.”
메시지를 순화시켜 전달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했지만 그보다는 그가 너무 깨끗하기에 사회의 모순이 두드러져 비춰진 것 같다.
“예전 대학생들은 대학생이 된다는 것은 우주의 원리로부터 시작해서 사회부조리, 인간의 모순 같은 것에 대해 고민하는, 즉 ‘지성인’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내가 처음 교수생활을 시작했을 때는 학생들이 제출하는 논문이 주제와 상관이 먼 우주질서가 어떻고 인간의 모순이 어떻고 하는 서론으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다. 반면에 요즘 대학생들은 자신과 직접적이고 현실적 관련이 없는 것에 대해서는 피상적인 사고조차 하지 않는 것 같다. 사색의 범위가 너무 좁아졌다. 그리고 사고가 너무 단선적이 되었다.”
스마트폰이 이런 풍조를 심화시켰다고 한다.
“스마트폰 시대에 사람들은 계속 문자를 주고받는다. 따라서 모두들 소통의 달인들일 것 같은데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삭히지 않은 날것의 고민을 SNS에 털어놓으면 즉시 숙고하지 않은 조언이나 대안이 제시된다. 너무 얕은 생각을 즉각적으로 주고받으니 도움이 될 때도 있겠지만 오히려 해로운 조언, 대안도 얻지 않겠나, 적잖게 염려된다.”
서 교수는 이런 면에서 한 발 물러나서 생각해보라고 권했다.
“자기 혼자만의 시간이 있어야 소통도 제대로 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하는 소통이 유익할 것이다. 자기 혼자의 시간을 갖는다는 게 뭔가 소화하고 얻을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하는 것인데 그런 게 없으면 아주 얕은 물과 같다. 얕은 물에선 나올 게 없지 않나.”
그 바탕을 책에서 얻을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자기 자신을 경영하고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자신과 소통을 위한 바탕을 마련하기 위해 책이 필요한데 너무 소수만이 책을 읽는 것 같다. 사람이 깊이가 있어야 나 자신도 경영할 수 있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 원활하게 할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게 조언을 한다거나 이해할 수도 있게 될 것이다. 책을 읽지 않는 우리 사회의 끝이 어딘가 걱정이다. 책은 지혜를 즐거움과 함께, 즐거움을 통해, 선사하는 것인데 그 즐거움을 멀리하고 어리석음에 빠지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젊은 세대에게 책을 읽는다는 게 이렇게 재미있는 거구나, 이렇게 좋은 거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계기를 어떻게 만들어줄까 고민을 하곤 한다.”
요즘 대학생들의 인기를 끄는 북 콘서트가 대안이 될 수도 있지만 한계는 있다고 했다.
“북 콘서트가 많이 열리는데 일종의 집단 오락장이 된 것 같다. 북 콘서트에서도 사람들에게 고민하라고 얘기는 하지만 결론을 정해주면서 고민해서 거기에 이르라고 하는 것 같다. 그 강사들은 대부분 이미 우상(cult figure)이 되어서 성공의 모든 열락을 만끽하고 있는 사람들인데 젊은이들에 대한 그들의 충고가 자신들의 삶과 무척 부조화스럽다는 느낌이 든다.”
그렇다면 기성세대는 젊은 세대에 어떻게 조언할 것인가. 과거 철학자들처럼 물음을 던지는 게 바람직한 방법일까.
“요즘 젊은 세대들은 사고의 습관이나 훈련이 돼 있지 않아서, 큰 문제를 다룰 능력이 부족하다. 어떻게 그들에게 사유의 황야에서 폭풍과 대적할 용기와 꿋꿋함을 갖게 할 수 있을지, 멘토가 손을 붙잡고 이끌어 주기에는 역부족이고, 역시 책이 그 길잡이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서지문 교수는 ‘그 사람을 위해 밥을 짓는 시간에 책을 못 읽는 것이 안타깝지 않을 것 같은 남자를 만나지 못해 결혼에 뛰어들지 못했다’고 했을 만큼 평생을 책과 함께 살았다. 딸만 셋인 집안의 막내로 청주에서 태어났다. 법조인이었던 부친의 잦은 전근으로 대전 대구로 이사를 다니며 감수성을 키웠다. 경기여고와 이화여대 영문과를 나왔다.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선발돼 컬럼비아대에 갈 수도 있었으나 (장학금까지 약속한) 주립대로 가면 또 한 사람에게 유학 지원이 가능하다는 얘기를 듣고 세계 최대 도시를 포기하고 올바니로 가 뉴욕주립대에서 영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35년간 고대 교수로 재직하는 동안 방문교수로 런던대에서 한국학과 한국문학을 강의했고 하버드대와 스탠퍼드대 초빙연구교수를 지냈다. 한국연구재단 ‘석학과 함께 하는 인문강좌’ 운영위원장을 역임했고 서울대 법인화 추진위원을 거쳐 현재 서울대 법인 이사를 맡고 있다. 5년 전 암수술을 받았으나 지금 건강은 양호한 편. 덕분에 식습관은 야채 위주로 가고 있다고 했다. <인생의 기술 : 빅토리아조 문필 사상가들의 윤리적 미학관 연구>와 <소설 속 인생>,칼럼집 <어리석음을 탐하며> 영문 칼럼집 <Faces in the well> 등의 저서가 있다. 또 <Discover Korea> <Brother Enemy> <The Descendents of Cain> 등 다수의 번역서를 냈다. 여생 바쳐 리더 덕목 연구할 것
공자 흠모해 논어 연구
논어 이야기를 꺼내면서 밝은 그의 얼굴은 더욱 환해졌다. 그는 2001년 낸 <영어로 배우는 논어>를 수정해 2년 전 발간한 <서양인이 사랑한 공자 동양인이 흠모한 공자>란 책을 설명했다. “‘도올논쟁’ 당시 내게 논어 영역서가 두 권 있었다. 그 논쟁이 시작되고 외국인들은 논어를 어떻게 이해했는가가 궁금해서 자세히 읽어보았고, 인터넷에서 주문할 수 있는 모든 논어 영역서를 구입해서 14명의 동서양학자의 논어해석을 비교해 보았다. 그것을 정리해서 책으로 엮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 책으로 내게 됐다. 내가 논어에 대해 해석을 한다든가 논평을 한다는 게 외람되기 때문에 각 단원 마지막에 내 생각을 조금씩 넣었다. 많은 분들이 나의 논평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해서 감격스러웠다.”
그는 논어는 어렵지 않을 뿐 아니라 좋은 구절이 너무 많기에 대학에서 교양으로 가르쳐도 무난하다고 설명했다. “20대 30대가 그 말씀대로 살 수는 없지만 그래도 논어 말씀을 때때로 생각하고 기억하는 게 무언가는 그 사람을 순화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맹자는 한문 자체가 어렵지만 적어도 논어의 전반부는 쉬운 기초한자가 대부분이라서 대학에서 교양과목으로 충분히 가르칠 수 있다. 학생들은 그걸 토대로 동양을 이해하고 동양의 이상을 이해할 수 있다. 거기에 의거해 살 수는 없지만 때때로 기억 속에서 반추하면 그걸 모르는 사람과는 무언가는 다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서 교수는 논어를 쉽게 배울 수 있는 무료강좌는 의외로 많다고 했다. “고대에선 김언종 교수가 평생교육원에서 사서삼경을 여러 해에 걸쳐 무료로 강의한 적이 있다. 수강한 인근 시민들이 너무 좋아했다. 요즘도 논어나 사서삼경의 무료강좌는 적지 않게 열리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원하는 사람도 많고 그런 사람들 위해 베푸는 사람도 많다.”
[정진건 기자 사진 정기택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44호(2014년 05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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