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페인 와인의 새 장 연 알바로 팔라시오스 | 오지로 들어가 와인의 역사를 새로 쓰다

    입력 : 2014.03.10 14:3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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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페인의 방랑자 - 알바로 팔라시오스는 스페인에서 가장 많이 거명되는 와인메이커다.” (디캔터)

    “위험을 무릅쓰고 프리오랏과 비에르조로 들어간 스페인의 탐험가가 잊혔던 지역과 다양한 포도품종을 새로운 고급와인으로 끌어냈다.”

    (와인스펙테이터)

    세계적 와인 저널들이 극찬하는 와인업계의 신성이 한국에 왔다. 맨손으로 스페인 오지에 뛰어들어 4년 만에 무명의 지역에서 무명의 포도품종으로 세계인을 깜짝 놀라게 한 와인을 만들어낸 인물이다.

    지금 나이 오십으로 이미 이름 자체를 와인의 역사로 만든 알바로 팔라시오스는 에너지가 넘쳤다. 스페인에서 날아와 공항에서 바로 호텔로 달려온 그는 기다리던 기자에게 (시차가 바뀌어 한창 졸릴 시간이라) “나는 졸린 알바로(I’m sleepy Alvaro)”라는 조크를 날릴 만큼 기분 좋은 표정을 지었다. 최근 빈티지까지 세계적 전문가들로부터 높은 등급을 받은 걸 자랑하려니 절로 흥인 난 것이다. 스페인 최고가 와인 레르미타(L’Ermita)의 경우 2006 빈티지를 제외하고는 매해 로버트 파커로부터 90점대 후반의 높은 점수를 받아 왔다.

    눈이 반쯤 감길 정도로 졸린 표정이었지만 그는 최고 와인의 메이커답게 앉자마자 호텔 측에 미리 따라 놓은 와인 잔을 바꿔달라고 했다. 가르나차(프랑스에선 그르나슈로 불림) 품종 포도로 만든 ‘핀카 도피’는 깊은 보통 와인글라스보다 얕으며 둥근 잔이 제격이라고 했다. 실제 잔을 바꾸니 놀랄 만큼 와인의 아로마가 피어올랐다.

    진흙에서 진주를 찾다 알바로 팔라시오스는 스페인의 유명 와인산지 리오하의 350년 된 와인가문의 9남매 중 일곱째다. 이미 많은 와인을 생산하던 가문이었기에 와이너리에 안주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도전을 선택했다. 20대 초였다.

    “최고의 레드와인을 만들고자 하는 동기부여가 필요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프랑스 보르도의 와인스쿨을 나온 그는 여러 와이너리를 돌며 견습을 했고 최고급 와인들을 접했다. 특히 세계 최고가 와인으로 유명한 포므롤의 샤또 페트뤼스에서 2년여간 견습할 기회를 얻어 당대 최고의 와인 메이커인 장 피에르 무에로부터 직접 와인 양조를 배웠다. 그는 보르도에서 큰 충격을 받았다. 스페인에 포도밭이 있었으나 프랑스에 와서 보니 버려진 것이나 마찬가지 상태였다는 것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와인들을 맛보고 제조까지 참여했던 그는 20대 중반이던 1989년 부푼 꿈을 갖고 귀국했다. 그런데 가문의 포도밭이 있는 리오하 대신 바르셀로나 남쪽 척박한 프리오랏으로 갔다. 고향 리오하는 포도밭이 끝없이 펼쳐진 대평원이지만 스페인 북동부 카탈로니아 지방의 프리오랏은 지중해와 가까우면서도 1000m가 넘는 고산지대로 당시엔 무명의 와인산지였다. 오래 전부터 포도밭이 있었으나 정치적 이유로 수세기 동안 고립된 데다 건조한 기후 탓에 생산량이 적어 사실상 버려지다시피 했다.

    그는 이 척박한 포도밭에 심어진 오래 묵은 포도나무의 가능성에 주목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생산량이 형편없어 거들떠보는 이가 없던 곳이다. 1993년 그가 첫 빈티지 와인을 냈을 때 세계의 와인평론가들은 깜짝 놀랐다. 무명의 지역에서 새파란 젊은이가 세계 최고 수준의 와인을 냈기 때문이다.

    프리오랏에서 대성공을 거둔 그는 10년 뒤인 1999년 프랑스에서 와인 양조를 배운 조카를 리카르도를 데리고 스페인 북서부 비에르조로 갔다. 프리오랏이 아주 건조한 지역인데 반해 비에르조는 사철 비가 내리는 곳이다. 게다가 해발 500~900m의 산악지대라서 스키장 슬로프처럼 가파른 경사에서 포도를 키워야 했다. 비가 자주 오니 자칫 수확시기를 놓치면 와인이 엉망이 될 수도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곳의 토착품종 멘시아는 그저 로제와인에만 쓰였다.

    그는 이 멘시아 품종의 가능성을 주목했다. 오래 묵은 나무에서 딴 잘 익은 열매로 부르고뉴 그랑크뤼 못지않은 놀라운 풍미의 와인을 만들어내 스페인 와인업계의 기린아가 됐다.

    “2000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어머니가 불렀다. 리오하까지 돌보라고 했다.”

    자신보다 먼저 가업에 뛰어든 형이나 누나들이 있었지만 어머니는 가문의 대업을 맡길만한 인물은 그 밖에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가 프리오랏에서 성공한 덕에 리오하의 명성까지 함께 올라갔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알바로 팔라시오스는 “현재 9남매 중 4남매가 와인 비즈니스에 종사하고 있다”면서 “나는 절대로 고향을 떠나지 않았다. 단지 다른 곳에서 일했을 뿐이다”라고 설명했다.

    불굴의 개척정신으로 자질을 보인 뒤 자신의 자리를 찾았을 뿐이란 것이다.

    리오하 와인의 명성이 높아진 것도 단지 그의 이름값만이 아니라 그에 상응한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알바로 팔라시오스는 리오하의 와인양조도 대대적으로 혁신했다. 과거엔 주변 포도밭에서 나온 포도까지 사들여 와인을 생산했지만 자기 밭에서 직접 유기농으로 재배하며 품질을 관리한 포도로만 와인을 양조하기 시작한 것. 이 때문에 생산량이 4분의 1로 줄었지만 품질은 월등히 높아졌다. 품질을 관리하려고 와인 종류도 대폭 줄였다. 현재는 한 와이너리당 5개 내외 와인만 생산하고 있다. 그는 직접 개척한 알바로 팔라시오스(프리오랏)와 데센디엔테스 데 호세 팔라시오스(비에르조) 두 와이너리와 물려받은 리오하의 팔라시오스 레몬도(리오하) 등을 이끌고 있으니 대략 15종 정도만을 낸다는 애기다. 세 와이너리는 지금 알바로 팔라시오소로 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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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콘 와인 내건 프랑스식 등급체계 그는 프리오랏이나 비에르조 와인에 프랑스식 등급 체계를 도입했다.

    “프리오랏이나 비에르조의 밭은 경사가 매우 급하다. 경사지에 작은 밭들이 널려 있다. 지역이 아주 평평해서 100만병도 쉽게 생산할 수 있는 리오하와는 대조적이다.”

    아주 작은 여러 밭에서 나온 포도로 만든 와인에 각기 이름을 붙이면 너무 많은 와인이 나올 것이기에 지역 내 밭에서 나온 포도를 모아 와인을 양조한 뒤 지역 이름을 내건 것. 브르고뉴나 보르도의 동네 이름을 붙이는 것과 같은 식이다. 와인스펙테이터가 100대 와인으로 세 번이나 꼽은 멘시아 품종 100%의 페탈로스가 대표적이다. 작은 밭이지만 지역으로 묶으니 30만병 정도까지 생산할 수 있다는 게 이 와인의 장점이다.

    “여러 구획서 나온 포도를 블렌딩하는 것은 좋은 와인을 만드는 일반적 방법이다. 리오하라면 100만병도 쉽게 만들 수 있다.”

    그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이 지역 밭 중에서 특히 좋은 밭을 뽑아 상급 와인인 싱글빈야드를 냈다.

    “싱글빈야드는 험한 경사지의 척박한 땅에서 나온 포도로만 만들기에 1000~3000병 정도가 고작이다. 단일 포도밭에서 나온 포도만 쓰기에 블랜딩을 하지 않지만 그 대신 포도를 더욱 철저히 재배하고 있다.”

    열정과 가치를 보는 눈 그에게 성공한 비결을 물었다.

    “위대한 와인(great wine)에 대한 대단한 열정(great passion)이 있었기 때문이다”고 했다. 엄청난 열정이 있었기에 밤잠 설쳐가며 해야 하는 힘든 일도 쉽게 넘길 수 있었다는 것. 그는 “와인은 그 와인을 만든 사람의 의도와 노력을 가장 잘 표현한다. 또 포도밭은 가꾸는 사람의 정성을 가장 잘 안다”고 덧붙였다.

    그렇지만 진짜 성공 비결은 전통의 가치를 볼 줄 아는 안목이었다고 할 수 있다. 버려진 땅과 오래 묵은 포도나무의 잠재력을 발굴해낸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와 관련해 구세계 와인은 품종이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구세계 와인은 포도 품종보다는 그 밭과 전통을 구현하는 게 중요하다. 포도밭은 투명한 거울과 같다. 일하는 사람의 정성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는 특히 열심히 일해도 해결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는데 바로 전통이라고 했다. 버려진 포도밭을 일구는 것은 열심히 하면 되지만 역사성만큼은 원래 있어야 된다는 것. 자신이 개척한 지역들도 그렇다고 했다.

    “두 지역 모두 어마어마한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다. 신화적 역사를 간직한 중세 수도사들이 거쳐하던 곳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엔 성 야고보 성당이 있다. 수도사들이 거처하던 곳이다. 비에르조는 순례 코스(약 800km)의 마지막 구간에 있다. 프랑스와 독일 수도사들이 이곳에 왔을 것이다. 세계 유수의 와인들은 거의 수도사들과 관계가 있다. 프리오랏도 최고 수도사들이 포도를 재배하던 곳이다. 농민 반란과 근대화가 이어지면서 오히려 버려졌던 곳이다. 종교성과 신비성을 갖고 있다는 것은 좋은 와인에 매우 중요한 요소다.”

    그런 가치가 있기에 간판조차 달지 않은 와이너리에 CNN이 찾아와 다큐멘터리를 찍어 가기도 했다고 한다.

    그에게 페트뤼스의 경험이 이런 보물을 발굴하는 계기가 됐는지를 물었다.

    “페트뤼스 근무는 무엇보다도 엄청난 기회였다. 당시 페트뤼스엔 장 피에르 무에 같은 최고 전문가들이 있었다. 페트뤼스에서 오크통을 교체하며 느꼈던 그 향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감동 그 자체다. 대단한 기회였고 대단한 인물들을 만났다.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많은 사람들이 알바로 팔라시오스는 페트뤼스를 목표로 한다고 말한다. 그는 그곳서 배운 가치에 무게를 두었다.

    “보르도에서 역사적 전통을 배웠다. 특히 그들이 일하는 방법이나 일할 때의 규율, 청결도 유지는 물론이고 역사를 지키는 것에 흠뻑 빠져들었다.”

    그는 배운 것은 스페인에서 재현해냈다. 그렇기에 스페인 와인의 매력은 매우 역사적인 와인을 마시는 동시에 또한 어떤 새로운 것을 마시는 것이라고도 했다.

    “스페인은 (포도를 재배하기에) 매우 형편없는 기후와 형편없는 토양을 갖고 있다. 그렇지만 풍부한 역사성을 갖고 있기에 어떤 메시지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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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의 목적 같은 와인 그는 모든 밭을 유기농으로 가꾸고 있으며 비에르조에선 바이오 다이내믹 농법까지 도입했다. 그렇지만 그런 것을 내세우길 꺼린다. 그런 것으로 본질을 호도하는 게 싫다는 것이다. 그저 역사적인 전통적인 농법(화학비료가 나오기 전의) 이라고만 한다.

    “나는 건강한 느낌(healthy feeling)과 좋은 에너지(good energy)를 제공하는 와인을 추구한다. 와인은 인생의 목적(Aim of Life)을 주어야 한다.”

    영혼의 감각을 열어주는 와인을 추구한다는 얘기다. 와이너리를 키우기보다는 고급와인을 마시는 사람들이 기억하는 와이너리로 남고 싶다는 것도 그래서다. 생산량을 한정해 품질에 주력하는 이유다.

    그가 건조한 프리오랏에선 생육기간이 긴 가르나차 품종을 택했다.

    “가르나차는 피노누아와 유사하면서 지중해의 따뜻한 분위기가 나는 품종이다. 매우 건조하고 척박하며 그래서 단위면적당 생산량도 극히 적다. 대신 풍미가 풍부하다. 너무 직설적이기에 자칫 더위가 느껴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정도다.”

    실제 이곳 와인은 건조한 지역에서 나와서인지 농축된 과일향이 짙게 풍기면서도 생동감이 넘칠 만큼 신선했다. 적절한 산도가 더운 지역 사람들에게 신선함을 주는 듯했다.

    상대적으로 비가 많이 오는 비에르조에선 이 지역에서만 가능한 매우 유니크한 품종인 멘시아를 지켰다. 비가 오기 전 수확을 끝내야 하는 조생종인데 오래 묵은 포도나무 특유의 농축된 과일향이 일품이다. 그래서인지 지금 멘시아는 미국에서 폭발적 인기를 끌고 있다. 알바로 팔라시오스는 얼마 전 뉴욕 멘시아 시음회엔 700여 명의 전문가가 몰렸다고 소개했다. 멘시아 품종 100%로 만든 페탈로스는 옅은 향신료 아로마와 농축된 과일향이 그윽한데 적절한 산도까지 곁들여 육류는 물론이고 생선과도 잘 어울릴 듯했다.

    [정진건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42호(2014년 03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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