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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철 서울대 명예교수 |자유를 헌납하면 자기가치가 높아집니다
입력 : 2014.03.05 11: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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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교수는 “지난 2013년 5월 박근혜 대통령의 미국 방문을 수행하던 중에 개인적 자유를 향유하려다 실각한 한 공무원의 사례를 사색하다가 이 강의를 기획했다”며 질문으로 강의를 시작했다.
“껌정(그을음)과 흑연 다이아몬드는 모두 순수 탄소로 이뤄졌다. 그런데 이들의 가치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껌정은 자동차의 매연이나 가정의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와 담배 연기 등의 주성분이다. 불완전연소에서 나오는 탄소는 옷을 검게 한다. 흑연 역시 순수 탄소로 이뤄졌다. 우리는 흑연으로 연필을 만들어 쓴다. 그런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이아몬드도 껌정과 본질이 같다. 왜 같은 탄소가 천대받는 껌정이거나 연필심이 됐다가 보석이 되는가. 보석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없어도 되지만 다이아몬드는 철강을 가공하는 데 필수적인 소재다. 다이아몬드가 없었더라면 지금의 이 문명이 성립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순수 탄소가 왜 이렇게 달라지며 가치 차이가 나는가.”
쇠사슬로도 묶을 수 없는 자유 노교수는 “그 답은 오늘 강연의 제목인 ‘자유의 헌납’에 있다. 그렇다면 자유의 헌납이란 무엇을 뜻하나”라고 반문하며 강의를 이어 나갔다.
“자유는 그 동안 헌납의 대상이 아니라 획득과 쟁취의 대상이었다. 자유를 극도로 예찬한 인물로 영국 시인 바이런 경을 들 수 있다. 그가 얼마나 자유를 원했는지는 오스만투르크가 그리스를 지배할 당시 영국인으로서 아무런 관계도 없는 나라가 자유를 위해 싸우는 것을 보고 그리스를 지지하겠다며 그 나라로 건너가 자유 투쟁에 합류했다. 지금 그리스엔 바이런이 여신과 함께 있는 추모비가 있다.”
이 대목에서 바이런 추모비를 보여준 윤 교수는 바이런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바이런은 또 스위스 레만호에 있는 실론성에 가서 과거 독립운동을 하다가 갇혔던 보니바드를 추모하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그의 ‘실론의 소네트’는 이렇게 나아간다.”
‘쇠사슬로도 묶을 수 없는 불멸의 정신!
자유라 불리는 너, 감옥에서도 빛나도다 -
네가 사는 곳은 (감옥이 아닌) 너의 마음 속-
너의 사랑만이 네 마음을 묶을 수 있으리’
“바이런은 보니바드가 갇혔던 지하 감방의 돌기둥에 자기가 다녀갔다고 이름을 새겨놓기까지 했다. 오늘 바이런을 찬양하러 나온 게 아니라 그가 시에서 표현한 ‘쇠사슬로도 묶을 수 없는 불멸의 정신(the Chainless Mind)’이란 대목을 함께 생각하자는 것이다. 얼마 전 이 ‘the Chainless Mind’를 떠오르게 하는 것을 발견했다.”
윤 교수는 이 대목에서 철조망에 붙어 자란 한 그루 나무의 사진을 보여줬다.
“과천대공원에서 청계산으로 오르는 길에 오리나무 한 그루가 있다. 김소월이 ‘산’이란 시에서 ‘산새도 오리나무 위에서 운다’고 했던 그 나무다. 길가에 철조망을 쳐놨는데 오리나무가 뿌리는 철조망 안쪽에 있고 둥치가 철조망을 뚫고 나가 나무 윗부분은 철조망 너머에 있다.”
그는 누군가 나무를 남겨둔 채 철조망을 잘도 쳤구나 하는 생각으로 자세히 들여다보았다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어떻게 저렇게 자랄 수 있나 궁금했다. 그래서 가까이 가보니 사람이 철조망을 뚫어서 나무가 그 구멍 안에서 자라게 한 게 아니었다. 철조망 이쪽에서 난 작은 나무가 차츰 자라면서 이전부터 있던 철조망을 몸 안에 흡수하고 큰 나무로 자라난 것이다. 이 얼마나 감동적인가.” 나무가 막 자라날 무렵, 가는 끝 부분이 철조망 틈 밖으로 나간 뒤 그 철조망을 둥치 안에 품고 자랐다는 것이다.
“울타리 주변에 자라는 많은 나무들이 이처럼 철조망을 이겨내고 크고 있다. 성장점의 연약한 부분들이 철조망의 옥죔을 몸 안으로 끌어들이고 커다란 나무로 자라났다. 쇠사슬을 흡수하고 자유롭게 성장한 것이다. 지금 작은 나무들도 이처럼 쇠사슬을 흡수하면서 거목으로 크고 있다.”
속박을 내재화해야 크게 된다 윤 교수는 나라나 기업, 개인이 처한 외부환경은 이런 철조망과 같다고 했다. 그 환경을 깨버리는 게 아니라 최대한 받아들이라는 교훈이다.
“철조망을 몸속으로 흡수했다는 것은 다시 말해 속박을 내재화한 것이다. 자유의 본질은 이것이다. 우리 일상에 자유란 없다. 환경조차 통제를 해야 한다. 자유 헌납은 이러한 주변 환경을 아무런 거부함 없이 받아들이는 것을 말한다. 속박을 내재화함으로써 더 큰 것을 얻는 것이다.”
그는 인간을 옥죄는 외부 환경은 무수히 많다고 했다.
“경제적 궁핍이며 우둔한 재능이며 결혼(자유의 헌납) 등 이 모든 것이 바이런이 말하는 인간의 삶 속의 속박(chain)이다. 교수를 오래 하다 보니 주례 설 기회가 많았다. 결혼에 대해 처음엔 자유의 포기라고 하려니 포기라는 단어로는 어감이 부족했다. ‘인간의 한계는 언어의 한계다’는 비트겐슈타인의 말을 오랫동안 사유했다. 곰곰이 생각한 끝에 궁극적으로 ‘자유의 헌납’이란 단어를 생각해냈다. 결혼은 상대를 위해 내 자유를 일정부분 헌납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진정한 자유는 자기를 얽매는 체인을 자기 몸속에 내재화할 때 가능하다고 했다. “물이 아주 자유로운 것은 자기를 방해하는 그 어떤 장애물도 내재화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극단적인 속박을 내재화해 진정한 자유를 얻은 대표적 인물로 헬렌 켈러를 꼽았다.
“헬렌 켈러는 태어날 때부터 장님이나 귀머거리는 아니었다. 어릴 때 고열을 앓고 난 뒤 눈이 멀고 귀도 먹었다. 그는 그런 속박을 내재화했고 대학까지 나왔다. 그렇게 했기에 그가 유명해졌고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게 됐다.”
윤 교수는 이런 의미의 자유의 헌납을 개인은 물론이고 기업으로 연결시킬 수도 있다고 했다.
“가치를 상승하기 위한 자유의 헌납을 생각해보자. 고체는 움직이지 못하고 진동만 한다. 액체는 자유롭게 흘러 다니며 기체는 그보다 더 자유롭게 돌아다닌다. 기체, 액체, 고체 속 입자의 자유도는 기체일 때 가장 높고 그 다음이 액체일 때이며 고체에선 아주 부자연스럽다. 자신의 가치를 높이려면 이처럼 자유를 헌납해야 된다. 순수 탄소가 껌정과 흑연 다이아몬드로 바뀌며 엄청난 가치 차이를 보이는데 그 차이를 만들어내는 게 바로 자유도이다. 자유가 많을수록 가장 천한 존재이다.”
물리학을 전공한 윤 교수는 이 대목에서 세 물질의 구조를 물리적으로 설명해 나갔다.
“탄소 원자 내 전자가 가장 자유롭게 움직이는 게 껌정이고 그 다음으로 자유로운 것은 흑연이다. 흑연은 1차원으로 된(평면 상태의) 탄소막이 겹겹이 쌓여 이뤄졌다. 다이아몬드는 모든 탄소 고리 끝이 입체적으로 완벽하게 물려 있어 (움직일 수 있는) 자유가 전혀 없다. 다이아몬드는 이처럼 꼼짝할 수 없이 꽉 짜인 자유가 전혀 없는 물질이다. 자유가 전혀 없기에 가장 강한 물질이 됐다. 철강을 끊고 다이아몬드를 끊는다.”
강의는 이 대목에서 바이런 이야기로 돌아갔다.
“프랑스와 보니바드는 스위스 독립운동을 하다가 잡혀 실론성 지하 감방에 7년이나 갇혔다. 바이런이 여기에 감동해 벽에다 내가 다녀갔노라 새겼고 실론의 소네트를 썼다. 이처럼 속박을 내재화할 수 있어야 진정한 자유를 얻는다.”
윤 교수는 이 개념을 공자와 소크라테스로 이어나갔다. 공자가 말한 ‘인생칠십종심소욕불유구’(人生七十從心所慾不踰矩 ; 70에 이르러선 마음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더라) 역시 모든 규제를 받아들여 그 범위에서 행동하니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했다.
“소크라테스가 아테네에 갇혀 사형을 선고받자 제자들이 탈옥을 권했다. 실제 제자들이 탈옥할 수 있는 길까지 만들었다. 그런데도 소크라테스는 ‘탈옥의 자유를 헌납’했다. 소크라테스가 지금까지 유명할 수 있던 것은 그가 자유를 헌납했기 때문이다.”
먼저 기업은 소비자가 제품을 사줘야 존속할 수 있는데 소비자는 아무 제품이나 사는 게 아니라 제품의 가치가 가격보다 크다고 느낄 때만 구입한다고 했다.
여기서 그의 첫 번째 부등식이 나온다.
제품의 가치(V) > 제품의 가격(P) 이다. 다음으로 기업은 판매하는 제품의 가격이 제품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비용(코스트)보다 커야 살아남을 수 있다. 여기서 두 번째 부등식이 나온다.
제품의 가격(P) > 제품의 비용(C) 그는 이 두 가지 부등식을 연결해 소비자와 공급자가 모두 생존할 수 있는 조건으로서의 ‘생존부등식’을 제창했다.
제품 가치(V) > 제품 가격(P) > 제품 비용(C) 윤 교수는 이 생존부등식 개념을 인생살이에 연결해 설명한다.
“직장생활을 하는 개인은 노동이라는 서비스(제품)를 직장에 제공하고 봉급(P)을 받아서 살아간다. 직장은 자기가 지급하는 봉급(P)보다 서비스의 가치(V)가 더 크다고 생각해야 그를 고용할 것이고, 개인은 그가 받는 봉급이 생계비(C)보다 커야 살아갈 수 있다. 생존부등식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기업은 제품이 팔리지 않아서, 생존부등식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개인은 직장을 얻지 못해서 고생하게 될 것이다.”
경영학자들 기법만 파지 마라 그에게 후배 경영학자들이 어떤 자세로 공부를 해야 좋은지 지침을 물었다. “요즘 경영학자들은 너무 기법에만 치중하고 있다. 소비자들이 무엇을 원하는 가를 생각하면 무엇을 연구할 것인지 나올 것이다.” 이론을 파지 말고 현장에서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찾아내라는 주문이다. 그가 물리학을 하다 경영학으로 진로를 바꾼 까닭도 궁금했다. “다양한 공부를 하다 보니 한 가지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느끼게 됐다. 여러 분야의 공부를 함께 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통섭이란 말이 나오기 아주 오래 전부터 그가 통섭에 나선 까닭이다.
[정진건 기자 사진 정기택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42호(2014년 03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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