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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양하 한샘 회장 | 한샘은 생각을 팔고 감동을 팝니다
입력 : 2014.03.05 1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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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양하 회장은 “오늘 권영걸 서울대 디자인학부 학장을 디자인 담당 사장으로 영입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한샘을 만들 것이다. 진짜 디자인이 월등한 회사가 목표다. 원서동 한샘DBEW디자인센터가 기지 역할을 할 것이다”고 설명했다.
이번 인사가 이케아의 한국 진출에 대비한 것인지 궁금했다. 최 회장은 그런 이유도 있으나 단지 그게 전부는 아니라고 했다.
“이케아 스터디 한 지가 20년이 넘었다. 제품개발부터 오퍼레이션이며 마케팅 디자인 등 모두 배웠다. 우리도 나름 경쟁력이 있다. 물론 디자인은 부족하다. CDO를 영입한 것도 그래서다. 중소기업으로선 획기적으로 사장으로 CDO를 영입했다. 새로운 콘셉트의 선행디자인을 기대하라.”
사실 한샘은 오래 전부터 디자인에 깊은 관심을 두었다.
DBEW(Design Beyond East & West)란 센터 이름에서부터 그런 뜻이 잘 나타난다. 최 회장은 연구소에 네 가지 주문을 했다는 얘기로 이번 인사가 이케아 대응 차원 이상이란 점을 부연해 설명했다.
“하나는 한샘스타일을 만들라는 것이다. 한샘의 디자인 아이덴티티는 무엇인가. 브라운이나 애플 제품을 보면 ‘아, 저 회사 거구나’하는 느낌이 온다. 우리도 그런 아이덴티티를 갖춰야 한다. 두 번째로 한샘 브랜드를 글로벌화 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디지털 마케팅이다. 지금은 인터넷 쇼핑몰도 디자인이 필요하다. 웹 디자인을 잘 해야 잘 팔린다. 네 번째는 DBEW다. 동서양을 뛰어넘는 디자인을 개발하라는 것이다. 중국 사람이 좋아할 디자인은 무엇인가. 중국이나 우리나 서양으로만 수출하다보니 서양 디자인만 했지 동양 고유의 디자인을 개발하지 못했다. 동양을 주류로 해 동서양이 모두 좋아할 디자인을 찾아야 한다. 그게 DBEW다.”
최 회장은 특히 소비자 만족을 위해 디자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고속성장의 후유증이 있다. 소비자가 한샘을 계속 사랑하게 하려면 제품이 뛰어나야 하고 서비스에서 감동을 주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강점을 바탕으로 디자인 최고의 회사를 만들려고 한다. 그러면 고객들이 사랑할 것이다.”
디자인이 앞으로 한샘 경영의 핵심이 될 것이란 얘기다.
성장 얘기가 나온 김에 글로벌 경기가 둔화되는 가운데 지난해 한샘이 고속성장을 한 요인을 물었다. 최 회장은 원가를 낮췄고 매출을 확대한 덕에 이익이 늘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한샘이 가장 신경을 쓴 것은 원가 경쟁력 강화다. 사실 그전까지 한샘의 원가는 이케아 대비 25%정도 높았다. 이 때문에 매주 이케아 가격 갖다놓고 우리는 얼마냐며 비교했다. 지난해 그 차이를 8~9%정도 줄였다. 올해도 이 정도 줄이고 내년엔 이케아 가격과 맞출 것이다.”
유통도 대폭 강화해 매출을 늘렸다고 한다. 한샘의 유통부문은 크게 건설사 영업(특판)을 하는 B2B와 소비자 영업인 B2C로 나뉘는데 B2C를 대폭 강화했다는 것.
“토털 인테리어 전문인 대형직매장은 잠실점과 센텀점(부산)에 이어 3월엔 목동점을 열 예정이다. 인테리어 사업자를 통해 파는 IK(인테리어 키친) 유통이 특히 성장을 이끌었다. 전통의 유통채널인 대리점은 인테리어대리점과 키친대리점으로 나뉘는데 인테리어 대리점을 대형화해 또 매출을 늘렸다. 온라인 유통을 강화했고 유통망을 다양화, 전문화했다. 이를 통해 매출이 늘어나고 건설사 B2B를 하지 않아 수익성이 향상됐다. 여기에 원가절감 효과까지 더해져 이익이 크게 늘었다.”
이케아와의 경쟁력을 갖추려고 원가를 내리는 동시에 판매가도 낮췄는데도 이익이 늘어난 비결은 무엇일까.
“소비자들은 한샘 제품이 싸졌다고들 한다. 값을 내리면서 수익성을 유지한 것은 협력업체를 전문화 했고 판매량을 늘려 단가를 낮췄기 때문이다. VE(가치공학)를 통해 수익성을 맞췄다.”
최 회장은 이케아는 워낙 취급 물량이 많아 단가가 낮은데 그 수준에 맞추는 게 과제이자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는 길이라고 했다. 그 전에 이케아가 치고 들어오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또 한샘의 강점은 무엇인가. 그는 한샘은 강점보다 약점이 많은 회사라고 했다.
“불리한 점이 많다. 우선 영업사원이 많고, 출고사원도 많으며 물류사원과 시공사원도 많다. 이케아는 이런 직원들이 없다. 조립해 셀프 시공을 하는 DIY제품만을 팔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한샘은 사람의 가치를 중시한다. 코스트는 높지만 잘 해서 고객에 감동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케아는 고객감동을 주지는 못한다.”
최 회장은 이 대목에서 “엊그제도 한 고객이 꽃을 보내왔다. 집으로 한라봉을 보내기도 한다. 애프터서비스를 잘했다고, 시공을 너무 잘해줘 고맙다고 한다”고 자랑했다. 그래서 일선 사원들이 한샘의 진짜 자산이라고 강조했다.
“세계 최고 제품을 개발한 것도 아니고, 마케팅에서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강점도 없다. 한 가지를 꼭 꼽으라면 일선에서 일하는 사원들이다. 이들이 한샘의 첫 번째 자산이다. 나는 우리 사업을 노동집약적 서비스 산업이라고 한다. 그만큼 사람이 중요하다.”
변화에 잘 적응한 회사 한샘은 가구업계 후발주자다. 한샘이 출범할 당시만 해도 보르네오나 에넥스 등 기존에 이름을 날리던 선발주자들이 있었다. 게다가 리바트 같은 대기업 계열 강자도 있었다. 이들을 넘어 한샘이 1등이 된 비결은 무엇일까.
“시장과 고객 니즈의 변화를 잘 맞췄다. 이것이 한샘의 강점이다. 보르네오는 처음부터 끝까지 생산을 했다. 도입기엔 그게 무기가 될 수 있으나 성숙기엔 어렵다. 리바트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한샘은 시장 변화에 빨리 적응했다. 제품 시스템은 물론이고 물류 시스템, 영업 시스템 모두 변화에 빨리 적응했다. 이를 통해 제조에서 유통으로 발전했다. 생산은 전문성이 필요하다. 부엌가구는 자신이 있었으나 인테리어 가구는 그렇지 않았다. 소비자들은 다양한 제품과 전문가의 서비스를 원한다. 점포 대형화나 온라인 판매 홈쇼핑 판매를 도입한 것도 모두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한 것이다. 우리도 제조만 했다면 보르네오처럼 됐을 것이다. 유통 전문성을 가지고 있으니 제품 전문성 있는 곳에서 받아쓰면 된다. 대표적인 곳이 이케아다. 이케아는 거의 아웃소싱을 하는 유통회사다.”
한샘은 묘하게 외환위기 때 인테리어 사업에 진출했고 이를 통해 위기를 극복하고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 그게 우연이었는지 혜안이 있던 것인지 궁금했다.
“사실은 그전부터 생각했다. 3년 전부터 준비해 외환위기 전에 진출했다. 당시 고비용 저효율이란 단어가 유행했다. 우리도 바꿔야 했다. 그래서 부엌가구 쪽 인력 100명을 빼 인테리어 사업을 시작했다. 1997년 4월이다. 그리고 그해 말 외환위기가 터졌다. 그때 사람들이 한샘은 망한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는 오히려 성장했다. 우리가 잘한 게 아니라 경쟁사가 망해 그 일이 우리에게 넘어왔다. 가구 살 데가 없으니 온 것이다.”
그래도 회사를 안정시키느라 인테리어 방배점을 오픈한 뒤 7년간 2호점을 내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다가 2005년 2호점을 열었고 2009년 잠실점 2011년 센텀점을 낸 데 이어 올 3월에 6호점인 목동점을 연다고 했다. 인테리어 백화점 같은 2000평대의 대형 점포들이다.
한샘은 변화의 선도자였다. 대형점 뿐 아니라 인테리어 시장에도 큰 변화를 일으켰다. 부엌 가구만 바꿀 때는 대리점만으로도 가능했으나 그 일이 줄고 부엌 전체를 고쳐달라는 주문이 늘자 아예 리모델링 개념을 도입했다. 거기에 맞춰 인테리어 업체 공급을 늘리려니 대리점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2007년부터 IK사업을 통해 직접 공급에 나섰다. 이 사업에선 지난해 1500억원 상당의 매출을 올렸다.
“기존 인테리어 대리점은 대부분 100~150평 내외라 전시공간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이 때문에 매장을 300~500평 정도로 대형화했다. 대형화를 하니 가구 뿐 아니라 생활소품 판매가 가능해졌다. 그렇게 한샘숍이 나왔다. 부엌 대리점도 키웠다. 40평 내외이던 것을 100~150평 정도로 키웠고 제품 구색도 바꿨다. 중가 제품 전시하던 공간을 키친바흐 위주로 고가화해 부엌대리점 매출도 늘었다.”
최 회장은 2008년 출범한 온라인 유통사업도 초기엔 성장이 둔했으나 최근 빠른 속도로 신장해 올해 2000억원을 목표로 한다고 소개했다. 회사 측은 특히 ‘국민책상 샘’ 등 히트상품을 쏟아내 매출이 급신장했다고 설명했다.
“건설사들이 잘 나갈 때였으니 그 유혹을 떨쳐버리기가 쉽지 않았지만 과감하게 했다. 사실 몇 년 동안 노력했다. 그러나 최저입찰제는 당할 수가 없었다. 품질 다르고 디자인도 차이가 나는데, 최저입찰제라고 싸게 하라니 이건 아니라고 판단했다. ‘길이 아니면 가지 말라’는 게 내 원칙이다. 우리 범주 내에서 사업을 해야 한다. 최저입찰제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범주가 아니었다. 최저입찰로 수익성이 떨어졌고 부도위험 있고 결제도 늦어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건설시장 불황의 영향을 많이 받는 사업이었다. 그런데도 경쟁사들은 출혈경쟁을 하다가 도산했다. 특판 하던 보르네오나 파로마 파세 등은 지난해 법정관리 들어가거나 부도를 냈다. 한샘은 반사이익을 얻어 오히려 매출이 늘었다.”
최 회장은 당시 B2B를 먼저 포기하지 않고 리테일을 먼저 늘리며 B2B를 줄였다고 들려줬다. 그래서 소폭이나마 성장은 계속 했다는 것. 이 과정에서 몇 년 동안 성장률이 낮았지만 도약을 위한 안정화 과정이었던 셈이다.
그게 재무구조에도 도움이 됐다. 한샘의 재무제표엔 외부차입이 거의 없다. 제조업체가 대리점 영업까지 하는 회사가 어떻게 가능했을까. 최 회장은 “B2C는 현금장사라 차입이 거의 없다. 오히려 현금이 많아 자사주를 꽤 많이 샀다”고 설명했다. 차입금 쓰지 않는 게 특별한 경영적 판단이기보다는 일찌감치 B2C로 전환해 그렇게 됐다는 것이다.
중국서 이케아와 한판 승부 1조원대 매출을 올리는 회사로 성장했지만 사실 한샘의 글로벌 매출은 크지 않다. 특히 중국 진출을 꽤 오래 전에 했는데도 아직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다. 회사 측 구상은 무엇일까.
“당장 작년 실적의 2배 정도는 가능하다고 본다. 지금 중국에선 B2B만 한다. 철저히 신용이 아주 좋은 곳만 골라서 하고 있다. 그러나 어차피 부엌가구나 인테리어도 해야 한다. 직매장으로 할 것이냐 대리점이냐, 또 직접 영업을 하느냐 온라인이나 홈쇼핑으로 하느냐를 결정해야 한다. 지금 인테리어 사업을 담당하던 강승수 사장이 중국을 개혁하러 나가 있다. 올해부터 중국 매출을 본격 확대할 것이다. 그 동안 중국 사업 키우지 못한 것은 ‘선방어 후공격’ 차원에서다. 이케아가 들어오기에 방어를 해야 했다. 수성은 됐으니 이제 중국에서 이케아와 본격적으로 공방을 벌일 것이다.”
그렇다면 한샘은 중국 시장을 어느 정도로 볼까.
“한국에선 10조원까지 가능할 것이다. 신규 비즈니스로 건자재를 확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외까지 해서 100조원까지 해야 한다는 게 조창걸 명예회장의 목표다. 아주 작은 스웨덴의 이케아가 40조원을 파는데 우리는 나라도 크고 주변에 대국들도 있으니 100조원도 가능하다. 이 가운데 50조원 정도는 중국서 올려야 한다. 진짜 승부처는 중국이다. 한샘은 지사를 미국 중국 일본 세 곳만 두고 있다. 미국은 제일 고급제품을 원하는 곳이다.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이다. 일본은 제일 까다로운 곳이다. 이 셋만 만족시키면 세계에 통할 수 있다.”
이케아와 한 판 승부를 예상하는 그에게 이케아의 강점인 DIY도 공략할 것인지 물었다.
“싼 제품에선 계획하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시공까지 하는 게 주력이다. 고객에게 감동을 주는 게 목표다. 완벽한 서비스를 한다면 가격 약간 차이 나도 고객들이 원할 것이다. 자기가 직접 사서 트럭 빌려 나르는 게 얼마나 귀찮은가. 게다가 자기 집에 잘 맞을지도 모른다. 이케아는 이걸 전문가가 아닌 고객에게 맡긴다. 이케아에 가면 전문가 조언 없어 셀프 쇼핑만 가능하다. 소비자가 그런 귀찮은 일 겪지 않게 서비스까지 하는 게 우리의 목표다.”
물론 그게 불리하다는 것은 그도 알고 있다.
“이케아는 영업사원 없고 물류사원도 없으며 시공사원도 없다. 우리는 1000억원 늘리려면 몇 백 명 늘려야 한다. 그러나 이케아는 우리가 줄 수 있는 고객감동을 주지는 못한다. 우리가 고객을 감동시키면 이케아로 가지는 않을 것이다.”
20대에 1억 연봉 사원도 최 회장은 특히 한샘이 이런 구조라서 고용을 창출해 사회에 기여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직원만 본사 1600명, 영업과 물류 시공 등 현장직원 3400명 등 5000명이나 된다. 게다가 올해 정규직만 50명 채용했다. 중소기업에서 이처럼 많은 인원 채용한 곳이 어디 있나. 일선 직원은 더 많이 뽑았다.”
그 직원들에게 대우도 후하다.
“가능하면 많이 주려고 한다. 지금 대졸 초임이 3500만원정도다. 업계 최고이며 대기업 수준을 맞춰주려고 한다. 지난해엔 연말 성과급으로 200%를 지급했다. 그 뿐 아니다. 나는 사원들에게 제발 보너스 좀 많이 받아가라고 한다. 전 사원 모두가 추가 보너스 받아갈 기회를 갖고 있다. 영업사원 중엔 성과급 많이 받아 입사한 지 2년 밖에 안된 20대에 1억 연봉을 받기도 한다.”
생각을 파는 회사 멀게는 100조원 매출을 보지만 한샘은 중기 목표로 10조원을 제시했다. 어떻게 그걸 달성할 것인가.
“10조원은 현재 부엌가구나 인테리어만으로는 안된다. 건자재가 있기에 가능하다. 경쟁상대가 바뀌었다. LG하우시스나 KCC 한화 벽산 같은 회사들이다. 이들 모두 매출이 10조가 안된다. 우리는 인테리어와 가구가 있어 시너지를 낼 수 있기에 가능하다.”
한샘은 이처럼 영업방식 변화를 주도했을 뿐 아니라 생각의 변화까지 이끌어 내고 있다. 처음 부엌가구만 팔던 회사에서 인테리어를 파는 회사가 됐고 이제는 아예 부엌과 욕실을 파는 회사가 됐다.
“아파트는 모델하우스 보고 계약한다. 거기엔 가구가 없다. 그런데 보여주는 집 가면 가구까지 배치해놓고 있다. 우리의 목표는 ‘보여주는 집’이다. 가구와 인테리어까지 가능하다. 이제 리모델링을 판매한다. 사람들은 리모델링을 어려워한다. 화장실 하나 고치려고 해도 타일은 어떤 것 사야 하나, 수도꼭지며 세면기 거울 등 챙길 게 무수히 많다. 그런 걸 일일이 고르기가 어렵다. 그래서 리모델링도 팔기로 했다. 인테리어 공사를 상품화해 모든 것을 하나로 한 욕실 자체를 판다. 부엌 공간도 마찬가지로 이렇게 판다. 과거엔 부엌에 있는 가구가 우리의 상품이었으나 이젠 부엌과 화장실이 우리 상품이다. 집수리 한다고 할 때 3000만원에 모두 해준다면 소비자는 아주 편하게 선택할 수 있다.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최양하 회장 | 현장 꼼꼼히 챙기는 20년 CEO 서울대 금속공학과를 나온 최양하 회장은 대우중공업에서 일하다 과장 때인 1994년 한샘으로 옮겼다. 잘 나가던 회사에 있던 그가 전직을 한 이유가 궁금했다.
“대우는 급여도 많이 줬고 사원 때는 자율성도 많았다. 그런데 커지면서 관료화 되는 게 싫었다. 마음껏 일할 곳 찾다가 알지도 못하는 회사를 선배 권유로 왔다.”
그를 한샘으로 이끈 이는 이수문 하츠 사장이다. 이직 직후엔 후회도 했지만 지금은 진짜 일할 기회를 얻은 데 감사해 한다. “대우에 있었으면 감옥에나 가지 않았을까…”라면서.
“매출이 15억원에서 30억원 할 때다. 와서 보니 회사가 아니라 목공소였다. 내가 왜 이런 곳엘 왔나 후회도 됐다. 그래서 3년 동안 먼저 직장엔 가지 않았다. 이 악물고 일하다 3년 지난 뒤에야 갔다. 회사 잘 키우려 했는데 이 정도 회사 만드는 데 계획보다 10년이나 늦었다.”
1994년 사장이 됐으니 그는 꼬박 20년 동안 최고경영자였다. 그의 경영철학은 무엇일까.
“철학이랄 것은 없고, 우리 사업은 사내에서보다 영업이나 시공 등 오퍼레이션 직원들에 의해 부가가치가 나오므로 현장을 최우선으로 하는 것이다. 이게 우리의 장점이다. 그래서 현장 중심, 일선 사원 중심으로 한다. 창고며 영업장이며 시공현장을 자주 간다. 얼마 전에도 부산지역을 2~3일 동안 다녀왔다. 가서 시공현장 보고 대리점도 보고 영업점포도 돌았다. 거의 일주일에 한 번 이상 현장으로 나간다. 안에 있는 사원들도 나가라고 한다. VOC(고객요구관리시스템)라고 해서 본사 사원들에게 현장 얘기 들으라고 한다. 월마트 최고경영자였던 샘 월튼은 1주일 내내 현장 돌고 와서 주말 하루 영업회의를 했다고 한다.”
최 회장은 그러면서 “탁월함에 대한 도전”이 그가 내세우는 모토라고 했다.
“한샘은 끝없는 변화를 추구한다. 부엌을 홈쇼핑에서 파는 곳은 세계에서 유일하다. 온라인 판매도 처음이다. 대형매장도 첫 번째로 열었다. 대형대리점도 처음으로 시도했고, 모두가 탁월함에 대한 도전이다.”
장수 CEO인 그의 용병술이 궁금했다.
“도전적인 사람을 원한다. 책임감 있고 노력하는 사람을 원한다. 성실함은 기본이다. 능력은 노력으로 커버할 수 있다. 담당자는 많은데 책임자는 없다? 이런 것은 한샘에선 용납이 안 된다. 아무리 탁월한 실적을 보였더라도 안주하는 것은 용납이 안 된다. 높은 성과를 냈더라도 그 이상을 해야 한다. 우리가 세계 넘버원인가. 우리가 이케아보다 앞서나. 그렇지 않다면 혁신을 해야 한다. 그래야 넘어설 수 있다.”
최 회장은 한샘에서 열심히 일할 기회를 얻은 것에 감사해 한다. 특히 조창걸 명예회장이 완전히 재량권을 주고 회사를 맡기는 데 감사해한다. 성공한 샐러리맨인 그는 사원들에게 가능하면 20년 이상 한 길을 걸으라고 한다. 전문가 되려면 그 정도는 해야 한다는 것.
“그 분야 최고가 되는 게 성공하는 것”이란 게 그의 지론이다.
[정진건 기자 사진 정기택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42호(2014년 03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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