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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 마이어 쇤베르거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 | 당신 아닌 빅데이터가 의사결정 대신한다
입력 : 2013.12.20 14: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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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빅데이터 시대가 오면서 ‘데이터가 스스로 말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고 주장했다. 카메라를 예로 들었다. 카메라의 경우 본인이 원하는 대상에 초점을 맞추면 주변이 흐려지고, 실제로 사용자가 얼마만큼 노출시킬지 스스로 결정해서 사진 찍는 것이 가능하다. 데이터에도 마찬가지다. 이전에 단순히 방대한 데이터로부터 샘플링을 하는 것을 넘어 이제 어디에 초점을 맞춰야 하고, 어디에 집중해야 할지 데이터 스스로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전에는 사람들이 어떤 문제를 제공해야 데이터 분석을 통해 그것에 대한 답을 찾았다면, 이제는 빅데이터 그 자체가 가설을 먼저 제시할 수 있다”며 “데이터 스스로가 발언권을 가지고 질문을 하게끔 하는 것이 빅데이터 시대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대기업과 스타트업 수혜… 중간 규모 기업 어려워져 그는 빅데이터로 인해 대기업과 스타트업은 수혜를 입지만 오히려 중간규모 기업이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고 꼬집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아주 작은 회사는 오히려 빅데이터와 클라우드 시스템으로 인해 각종 제작비나 운영비가 절감되면서 혜택을 입게 된다. 구글이나 페이스북의 경우에 처음 시작할 때 아주 크고 비싼 데이터 센터를 필요로 했는데 이제는 클라우드 서비스나 스토리지가 아주 싸게 제공되기 때문이다. 그는 “스타트업을 위해서는 빅데이터가 아주 풍부한 토양을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대기업의 경우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다른 스타트업들에게 라이선스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유리하다. 즉, 스타트업은 대기업이 하던 것을 저렴한 가격에 하면서 대기업이 하지 못하는 것들을 할 수 있고, 대기업은 데이터 라이선싱을 통해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하지만 그 중간에 있는 미들 사이즈(Middle-sized) 회사들은 오히려 규모의 경제 혜택을 덜 받기 때문에 더 이상 성장할 요인도, 이유도 찾지 못하게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모든 것이 기억되는 빅데이터 시대에 의도적으로 잊기 위해선 정보의 유통기한을 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어떤 정보를 저장했을 때 실제로 파일명 뿐만 아니라 유효 기간도 정하는 것이다. 정해놓은 유통기한이 지나면 그 정보가 자연스레 삭제되게끔 하고, 원한다면 기한을 연장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자고 했다. 그는 “잊기 위한 장치(Capacity to forget)를 집어넣으면 디지털 소통 정보를 편안히 사용하면서 동시에 어느 정도 정보가 영원하지 않고 때론 일시적인 요소를 다시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잊기장치(Deleting system)를 도입하는 주체는 누가 돼야 하느냐의 질문에 그는 “사회에서 통용되는 시점이 정해져야 한다”고 답했다. 만약 사회에서 범죄기록이나 신용불량 기록 등에 대해 일정 기간이 지나 지울 수 있다면 그것은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 그는 “여기서 민간기업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결국 소비자들은 잊을 권리를 보장해주는 플랫폼을 택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빅데이터 시대에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들에게 꼭 필요한 덕목은 “경험적 사실에 의거한 의사결정”이라고 강조했다. 예전처럼 그저 한 조직의 보스나 매니저가 아닌 ‘전문가’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구글의 예를 들었다. 구글의 디자이너에게 디자인 총 책임자가 구글 홈페이지 검색창의 파란색이 ‘가장 적합한 블루인가(The right kind of blue)’라고 물었다. 디자이너는 ‘그렇다’고 답했지만 41개의 다른 파란색을 갖고 실험해본 결과 소비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색깔은 다른 블루인 것으로 판명이 났고, 그 디자이너는 해임 당했다. 쇤베르거는 “오늘날 모든 결정은 증명돼야 하고, 그것이 데이터로 입증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데이터를 수집하고 철저히 이에 기반해 결정을 하는 사람들이 힘을 얻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빅데이터라는 개념이 모호하다는 지적에 대해선 “내가 사용하는 정의는 애플리케이션(응용)쪽의 관점이 아니다. 빅데이터는 근본적으로 우리 세계를 이해하는 하나의 방법”이라며 “우리 현실과 우리 주변을 해석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인터뷰에 앞서 이날 ‘디지털 시대의 원형감옥’이라는 세션을 통해 디지털 환경 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기록의 문제에 대한 강연을 펼쳤다. 그는 “빅데이터 시대에는 디지털 기억이 영원히 남아 현실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면서 강한 우려를 표명했다.
그는 교사임용을 기다리던 한 사람이 술에 취한 자신의 모습을 웹페이지에 올렸다는 이유로 교사자격이 박탈된 사례를 소개하며 포문을 열었다. 쇤베르거 교수는 “교사임용이 박탈된 이 사례는 사진이 삭제된 뒤에도 검색엔진에 남아 문제가 됐다”며 “과거의 일에 대해 잊고자 하는 걸 인터넷이 용인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빅데이터가 가져온 피해를 언급한 그는 각 개인이 온라인에 어느 정도의 정보를 공개할지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개인정보가 모두 수집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구글을 예로 들며 “10여 년 전 처음 (구글이) 만들어졌을 때에는 많은 정보가 없었지만 그 후에 쌓인 정보들이 엄청난 수준”이라며 “아마 구글은 축적된 검색정보를 통해 독감확산 방향도 예측할 수 있는 막강한 힘을 가졌다”고 언급했다.
문제는 사용자가 정보를 제공하기를 원하지 않거나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도 개인정보가 수집될 수 있다는 것. 그는 “구글, 아마존, 야후, 여행 항공 예약 시스템도 다 기억한다. 특히 항공예약시스템은 모든 걸 기억한다. 예약을 하지 않아도 내가 검색한 노선도 다 저장한다”며 “디지털 기술 이용해 인터넷상 많은 정보가 가용해졌다”고 강조했다.
쇤베르거 교수는 이에 대해 “디지털 기술의 발전과 인터넷의 성장이 이를 뒷받침 한다”고 분석하며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면서도 우려를 감추지 않았다. 디지털 시대의 사람들은 인터넷을 통해 언제 어디서든 감시당할 수 있고 과거의 정보가 현재의 발목을 잡을 소지가 다분하다는 것이다. 이 자리에서 그는 “모든 걸 기억하는 빅데이터는 사람들에게 과거에 사로잡히게 할 수 있다”며 “잊히지 않는 순간들은 인간에게 용서의 감정을 박탈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회에서는 이를 해소하기 위해 일정기간이 지나면 개인정보를 삭제하는 법을 추진하거나 아예 정보공개를 인정하고 개개인이 디지털 저작권을 만들자는 등의 대안이 제시되고 있다. 특히 일각에서는 아예 인터넷을 쓰지 말라는 강경한 입장도 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쇤베르거 교수는 “현재 제시된 모든 대안들이 완벽하지 않아 절충점을 찾아야 한다”며 “정보의 유통기한을 정해 잊기 위한 장치를 만드는 것도 고려해 볼 만 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이 경우 디지털 커뮤니케이션도 자유롭게 사용하면서 아날로그 시대의 감성도 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손유리 매일경제 모바일부 기자 사진 정기택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38호(2013년 1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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