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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엽 팬택 창업자 | 저 없어도 팬택은 잘 돌아갈 수 있어요
입력 : 2013.12.20 11:5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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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차례 편안한 자리에서 그는 많은 얘기를 털어놨다. 목숨처럼 아끼던 팬택을 왜 떠날 수밖에 없었는지, 앞으로는 어떻게 살고 싶은지. 그는 가슴 속에 묻어둔 얘기가 많은 것처럼 보였다. 질문 형태를 빌어 그가 느낀 소회를 정리했다.
구조조정 폭이 상당히 크다 얼마 전 마이크로소프트(MS)가 노키아를 인수하는걸 보고 깜짝 놀랐다. 루저와 루저 간 만남이라고 폄하하는 시각도 있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미국이 애플에서 잘 나가고 있지만 애플 독주구도에 반감을 가진 사람이 적지 않다. 유럽에서 노키아 저력은 상상 이상이다. 둘의 시너지가 제대로 나오면 파급력이 엄청날 것이다. 그만큼 세계 시장판도에 태풍이 불고 있다는 거다. 이런 상황에서 손가락 끝 곪았다고 그 주위만 도려내면 분명히 재발할 거라는 게 내 생각이다. 적어도 팔 하나는 잘라내야 뒤탈이 없을 것으로 봤다. 기업의 인체는 사람과는 좀 다르다. 도마뱀처럼 잘린 팔이 다시 돋아나기도 한다. 팬택도 반드시 회생할 것이다.
잘나갔던 팬택이 왜 갑자기 어려워졌나 내가 경영을 못한 측면도 분명히 있을 거다. 하지만 외부 변수를 이겨내지 못했다는 점이 결정적이었다. 스마트폰 시장은 보통 만만치 않다. 거대했던 노키아가 하루아침에 쓰러지는 것을 봐라. 2~3년 전만 하더라도 누가 감히 생각이나 했겠나.
그만큼 오늘 다르고 내일 다른 게 이 바닥이다. 대기업 소속이 아닌 벤처기업 출신으로 팬택이 이만큼 성장한 것은 그래서 대단한 것이다(팬택은 한때 휴대폰 세계시장 7위까지 올랐다). 팬택은 한국 사회에서 가치 있고 꼭 살려야 하는 기업이다. 세계 시장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수익을 못낸 데다 국내 경쟁 구도가 바뀐 점이 회사가 어려워진 가장 큰 이유다. 특히 휴대폰 보조금 규제가 깐깐해진 여파를 가장 크게 받았다. 시장이 위축되자 계열사 어느 곳에도 의지할 수 없는 팬택이 가장 크게 흔들린 것이다.
그런데도 올해 연말 흑자를 예상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4개 업체 정도가 생존할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애플·MS(마이크로소프트)·구글 정도다. 하지만 팬택도 산다. 두고 봐라. 구조조정으로 인건비 절약하고 마케팅비 늘려서 회사를 다시 정상궤도에 올려놓을 수 있다. 단점으로 지적됐던 애프터서비스도 강화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회사가 좋아지면 하고 싶었던 꿈이 있었다. 회사 구내식당을 일주일에 한 번씩 닫아 주변 식당과 상생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제 물러나지만 내가 없는 팬택이 반드시 그렇게 해 줄 것이다.
잠시 물러났다가 복귀할거란 소문도 있는데 날 전혀 모르고 하는 소리다. 그럴 거였으면 애초에 사퇴한다고 이 법석을 떨지도 않았다. 사퇴 당일 짐을 싸서 회사를 나오면서 절대 이 건물에 돌아오지 않겠다고 결심을 했다. 내가 지은 건물, 내 손길이 곳곳에 닿은 건물인데 다시 못 온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나더라. 세상에는 할 게 많다. 아직 난 50대 초반이다. 뭐든 할 수 있는 나이다.
좀 쉬다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바로 무언가에 매진할 것이다. 사업가는 10억만 있으면 불꽃처럼 일을 추진해 금방 1000억원을 만들어내는 사람이다. 박병엽이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게 새 일을 찾아볼 것이다.
중국 스마트폰 업체가 급부상하고 있는데 그래도 아직 세계시장에서 경쟁하기 부족하다. 하드웨어는 기술력이 많이 올라왔다. 화웨이나 ZTE같은 업체가 대표적이다. 근데 막상 써보면 2% 부족한 느낌이다. 디테일한 감성이 확실히 떨어진다.
미국이나 유럽 프리미엄 시장에서 경쟁할 단계는 아직 아니다. 시간이 많이 걸려야 프리미엄 시장에 진입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중국 업체를 신경 써야 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중국 시장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중국 로컬 시장 그 자체로 글로벌 시장이다. 근데 이들 업체의 제품 가격은 워낙 싸다. 앞으로 저가 시장도 확대될 텐데 그런 측면에서 중국 업체를 봐야 한다.
이제야 쉴 시간이 생겼다. 여행도 많이 다니고 싶다. 쉬다보면 또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를 것이고 그때 또 다시 열심히 뛰면 된다.
[홍장원 매일경제 모바일부 기자 사진 정기택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38호(2013년 1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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