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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가전시장의 ‘미다스 손’ 전문경영인에 아름다운 승계 | 허샹젠(何享健) 전 메이디(美的)그룹 회장
입력 : 2013.12.20 11:5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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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전 200여 종 생산… 중국 대표 10대 민영기업 이런 메이디를 더욱 돋보이게 만든 존재가 있으니 바로 창업자인 허샹젠(何享健) 전 메이디그룹 회장이다. 지난 1968년 창업해 40년 넘게 메이디그룹을 경영해온 허 전 회장은 지난해 8월 그룹 회장직을 팡훙보(方洪波) 메이디전기 회장에게 넘겨주었다. 주식회사형 기업의 역사가 짧은 중국에서 자신이 일군 기업을 전문경영인에게 넘긴 사례는 극히 드물다. 메이디처럼 대기업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그는 경영권을 넘긴 이후 지분 55%를 보유한 최대주주로서 존재할 뿐 회사에 출근하거나 경영에 간섭하는 일이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장남 허젠펑(何劍峰)이 대주주를 대표하는 자격으로 그룹 이사회에 참석해 간간이 의견을 내고 있을 뿐이다.
기업 승계 사례가 적은 중국에서 메이디그룹의 전문경영인 체제 도입은 다른 중국 기업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많은 기업들이 세대교체를 앞두고 경영권 승계 방식을 고민하기 때문이다. 그가 전문경영인 체제를 도입한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단이었다. 허 전 회장은 지난 2009년 메이디전기 회장직을 먼저 내려놓은 뒤 본격적인 그룹 전문경영인 체제의 성공 가능성을 시험했다.
자신과 동고동락해온 직원들에게 회사 경영을 맡겨도 문제가 없겠다는 판단을 내리는 데까지 4년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
그가 팡 회장에게 성공적인 회사를 맡길 수 있었던 것은 오직 가전 한 제품으로 한 우물만을 팠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중국 남부 광둥성 순더에서 1942년에 태어난 그가 사업가의 길로 들어선 것은 26세이던 1968년의 일이었다. 허 전 회장은 당시 주민 23명과 함께 5000위안(약 87만원)을 모아 플라스틱 뚜껑을 생산하는 마을 공동체 기업을 세웠다. 사업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자 그는 한창 시장이 형성되고 있던 전자전기 부품 생산으로 방향을 돌렸다.
이어 덩샤오핑이 개혁개방 정책을 본격화하기 시작하면서 주민 소득이 높아지기 시작하던 1980년부터 선풍기를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이미 전기전자 부품을 생산하던 기업이었던 만큼 선풍기를 만드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때를 잘 만난 회사는 선풍기 판매를 빠르게 늘려 나갔다. 그렇게 모은 투자금으로 1985년 에어컨 사업에 뛰어들었다.
중국이 고도 성장기로 접어들기 시작하면서 사무실과 호텔, 상가, 가정 등에서 에어컨 수요는 그야말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그렇다고 에어컨 판매의 길이 처음부터 순탄한 것은 아니었다. 1990년대 초에는 메이디 이외에 춘란과 화바오 같은 중국 토종기업들도 에어컨 시장에 뛰어들어 서로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메이디가 에어컨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던 것은 기존의 에어컨 판매 전략에 대해 일대 변신을 시도한 뒤였다. 그 핵심에 허 전 회장의 후계자로 지목된 팡 회장이 있었다. 팡 회장은 1997년 허 전 회장에 의해 에어컨사업부 대표로 발탁됐다. 팡 전 회장이 1992년 일반 사원으로 입사한 지 불과 5년 만의 일이었다.
마케팅 고급인력 대거 영입 전국 곳곳에 파견 팡 전 회장은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안으로 고객의 눈높이에 맞춘 마케팅에 주력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그는 전국 인력시장을 찾아다니면서 마케팅에 경험 있는 고급 인재를 끌어 모아 마케팅팀을 구성했다. 이 팀원들은 전국 각지로 파견됐다. 당시만 해도 가전 마케팅에 대한 인식이 낮던 시기여서 메이디의 전략은 소비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 결과 메이디는 2000년대에 접어들어 에어컨 시장에서 승승장구할 수 있었다.
2000년대 중반에 다른 기업들의 추격이 강력해지자 이번에는 가격파괴 전략을 구사했다. 대당 4000위안에 팔리던 에어컨을 2008년 3000위안 밑으로 판매하면서 다시 시장점유율을 늘릴 수 있었다. 불과 2년 만에 에어컨 시장 점유율을 30%가까이 높이면서 업계 1위로 다시 올라섰다.
산둥성에 기반을 두고 있는 하이얼이 냉장고 분야의 최고 강자라면 상대적으로 더운 남부 광둥성에 본사를 두고 있는 아이디는 에어컨 분야의 거성이다. 에어컨에서의 성공을 기반으로 생산 품목을 조금씩 늘려간 것이 오늘의 메이디를 만들었다. 메이디는 덕분에 1993년 선전거래소에 상장해 농촌의 마을 공동체 기업으로는 최초의 상장사라는 이름값도 얻었다. 메이디의 성장은 그야말로 계단식이었다. 에어컨의 성공을 발판으로 뛰어든 전기밥솥 시장에서도 1995년 1위를 차지하자 이번엔 전자레인지 시장에 새로 뛰어들었다.
당시 중국 전자레인지 시장은 저가형을 주력으로 하던 거란스라는 기업이 시장을 휩쓸고 있었다. 그럼에도 메이디는 중국 가정의 전자레인지 보급률이 선진국 70%에 비해 턱없이 낮은 5%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기반해 향후 무궁무진한 발전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전자레인지에서는 다소 손해를 보더라도 에어컨과 전기밥솥 등 다른 품목에서 수익을 보충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진 메이디는 대대적인 전자레인지 가격 파괴를 실시했다. 생산 품목이 다양하지 못했던 거란스의 전자레인지 시장 점유율은 메이디에 의해 조금씩 침식당할 수밖에 없었다.
2000년대 중반에는 메이디와 하이얼간 냉장고, 세탁기 시장을 둘러싼 경쟁이 치열했다. 초기에 냉장고과 세탁기를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만들던 메이디는 시장 기회를 탐색하다가 2004년에야 본격적으로 냉장고, 세탁기 시장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후발주자가 하이얼이라는 벽에 도전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메이디는 보다 빠른 시장 진입을 위해 과감하게 인수합병(M&A) 전략을 선택했다. 그 때 인수한 회사가 바로 화링이었다.
화링은 홍콩 증시 상장에 상장돼 있던 백색가전 분야 시장점유율 7위의 기업으로 세탁기가 주력 품목이었다. 메이디는 냉장고에 강점이 있던 룽스다도 인수했다. 2008년에는 세계 3대 세탁기 회사인 샤오텐어까지 사들였다. 이들 브랜드는 지금도 메이디 산하에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이들을 포함한 메이디그룹은 현재 가전 1위 업체인 하이얼과 치열한 맞수 경쟁을 벌이고 있다. 시장 상황에 대해 번개처럼 빠른 판단을 내리는 것도 메이디의 강점이다.
메이디는 과거에 두유 제조기 시장에 진출했다가 시장 규모가 작아 포기한 적이 있다. 그러나 2008년 중국에서 멜라닌 분유 파동이 나면서 두유 제조기에 대한 수요가 갑작스레 증가하자 곧바로 시장에 다시 뛰어들었다.
당시 두유 제조기 시장을 잡고 있던 기업에 비해 과감한 투자 확대로 생산을 늘리면서 대대적인 마케팅을 실시한 덕분에 시장을 상당부분 잠식할 수 있었다.
곧이어 발표된 상반기 영업이익률은 22.6%로 제조업체로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실적을 기록했다. 이듬해인 2010년에는 메이디그룹 전체 매출액이 1150억위안으로 1000억위안을 처음으로 돌파하기도 했다. 메이디는 오는 2015년 2000억위안 돌파를 목표로 하고 있다.
최근에는 정수기 시장에서도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해 말 현재 중국 정수기 시장의 10대 브랜드 중 메이디는 소비자 선호도 45%로 1위를 차지했다. 현재 정수기 시장에서 중국인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메이디의 입식 정수기는 냉온수 기능을 갖추고도 300위안대의 저렴한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
요즘은 소비자의 요구에 맞춰 정수기의 최대 단점 중 하나인 높은 전력소비 문제를 해결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현재 에어컨과 선풍기, 전자레인지 등 메이디의 9개 주력상품 판매량은 각 품목별로 전국 3위 안에 들어간다. 이런 성과에 힘입어 허 전 회장은 ‘2013년 신차이푸(新財富) 중국 부호 순위’에서 135억위안으로 44위를 차지했다.
지금은 일선에서 은퇴했지만 허 전 회장의 기업가 정신은 지금도 중국에서 모범으로 꼽힌다. 그는 끊임없이 회사를 변신시켜 나갔다.
1990년대 이후 상시적인 구조조정을 실시하면서 오히려 불황기에 연구개발(R&D)를 더욱 강화했다. 회사 자체 힘으로 부족하다 싶을 때는 과감한 M&A 전략도 구사했다. 그는 목표를 높게 잡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그렇다고 목소리만 크게 내는 구호식 경영을 남발하지는 않았다. 단계별로 목표에 도달하는 과정을 정확하게 예측한 뒤 이를 달성할 수 있도록 실무적인 업무에 열중하는 스타일이다.
그의 회사 성장 전략이 워낙 명확했기 때문에 기업의 덩치가 커지면서 나타날 수 있는 사업 다각화 오류가 메이디에서는 전혀 없었다. 오히려 가전 완제품뿐만 아니라 부품에서도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했다. 덕분에 메이디는 중국에서 유일하게 가열관과 모터 등 정수기를 통제할 수 있는 컨버터 기술을 자체적으로 지니고 있을 만큼 뛰어난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콤프레서와 마그네트론, 변압기 등 가치사슬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도 자체적으로 생산하고 있다.
이런 결과는 인재에 대한 아낌없는 투자를 바탕으로 업계 최고 실력의 연구개발 조직을 갖추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러면서도 메이디의 경영 방식은 아주 실용적이다. 해외 브랜드 제품을 도입해 처음에는 모방을 하다가 이후 혁신을 거쳐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제품을 만들어내는 방식을 추구해왔다.
그렇게 확보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품질 수준을 높이면서 강조했던 경쟁력 제고가 메이디의 최고 강점 중 하나다.
허 전 회장은 직원들의 성과에 따라 인센티브를 과감하게 제공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정혁훈 매일경제 베이징 특파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38호(2013년 1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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