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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위하신다면 꽃다발 대신 세탁기를 돌려주세요…셰릴 샌드버그 페이스북 COO
입력 : 2013.08.09 17:0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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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적으로 여성리더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운을 뗀 그녀는 국가별로 문화와 관행이 확연히 다르지만 “남성은 리더를 맡고 여성은 희생적으로 가족을 돌봐야 한다”는 성적 고정관념만은 통일되게 형성돼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녀는 “정부가 주도하는 정책이나 기업 내 문화가 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우선적인 것은 개인의 변화라고 봅니다”라며 여성들 스스로의 내면적 혁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녀는 많은 여성들이 성적 고정관념에 얽매여 일에 있어 중요한 순간에 움츠려드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일상에서의 고정관념으로 인해 여성은 남성보다 자신감이 더 낮을 수밖에 없습니다. 성공한 이들에게 비결을 물어보면 남성은 자기능력 때문에 성공했다고 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여성들은 ‘많은 분들이 도와주셔서요’ ‘운이 좋았어요’라고 답하곤 하죠. 자신의 능력으로 성공했다고 믿어야 다음에 기회가 찾아왔을 때도 자신감을 가질 수 있습니다.” 여성들이 사회에서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 환경에 대한 문제의식을 통해 <린인>을 집필하게 됐다고 밝힌 그녀는 본격적으로 정책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여성이 남성들과 함께 더 공정하고 공평한 대우를 받으며 일을 할 수 있도록 정책이 바뀌어야 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모든 국가에서 같은 성과를 내더라도 여성 임금은 남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습니다. 미국은 여성의 임금이 남성보다 23%가량 낮고 한국은 이 보다 더해 39% 낮습니다. 참고로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CED) 국가 중 최저 수준입니다.” 같은 직종에서 같은 성과를 내는 경우 남녀 대우에 차이가 없어야 한다고 밝힌 그녀는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해 근무시간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최근 기업들의 근무시간이 길어지고 있는 추세입니다. 특히 한국의 경우는 더 심하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아이를 낳은 후 아침 7시에 출근해 저녁 7시에 퇴근하곤 했는데 이런 방식으로는 아들을 볼 시간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결국 근무 시간을 아침 9시에서 오후 5시 반까지로 바꾸기로 했죠. 하지만 저는 직업을 잃지 않고 페이스북에 계속 다닐 수 있었고 많은 동료들은 ‘당신 덕에 우리도 일찍 퇴근할 수 있게 돼서 고맙다’고 말해줬습니다.”
적극적인 여성에게 ‘나댄다’보다 ‘잘한다’고 말해줘야 주목받는 여성운동가답게 다양한 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역설한 샌드버그의 입에서 별안간 한국어가 튀어나왔다. “한국어로 ‘나댄다’는 표현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제 발음 괜찮나요? 보통 직장에서는 적극적이고 남자 같은 여성들을 두고 나댄다고 표현합니다. 앞으로는 이러한 여성에게 ‘나댄다’고 하지 말고 ‘CEO급 리더십 스킬이 있다’고 말해주세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적극적이거나 성공한 여성들을 선호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녀의 주장이다. 샌드버그는 성공한 여성에 대해 “남자같다” “결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식의 평가를 내리는 한편 “성공한 남성은 호감을 얻지만 반대로 성공한 여성은 부정적인 인식을 받는다”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하며 미국 컬럼비아대의 실험을 예로 들었다. 이 실험은 같은 성과를 가진 가상의 인물에 이름을 다르게 밝혔을 때 사람들의 평가를 받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결과적으로 ‘하워드’라는 이름의 남성에 대해서는 “함께 일하고 싶다”며 호감을 보였다. 반면 ‘하이디’에 대해서는 “신뢰할 수 없을 것 같다” “정치적인 것 같다”는 등의 평가를 내렸다.
성공적으로 강연을 마친 그녀는 질의응답 시간을 통해 “이번 세대에서 직장 내 양성평등 실현이 가능할 것 같지 않다. 그렇지만 내 딸에게 그러한 환경을 물려주고 싶지 않다”고 한 남성 방청객에게 “이번 세대에는 어려울 수도 있어요. 하지만 지금 세대가 이 상황을 고치지 않으면 딸 세대에서도 나아지지 않을 겁니다. 자녀 세대에서 변화를 보고 싶다면 지금 주변의 여성 동료들을 그렇게 대하세요”라고 답해 박수갈채를 받기도 했다.
연세대학교에서 강연하고 있는 셰릴 샌드버그
다음으로 20대 한 번의 이혼을 경험한 그녀는 여성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훌륭한 ‘남편’은 필수라고 강조했다. “여성이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은 지지해주는 배우자입니다. 고위직 여성 중 지지하는 남편이 없는 여성은 없어요. 특히 가사분담은 중요합니다. 또한 여성들이 죄책감이 없는 상태에서 일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죠. 남편들은 아내에게 꽃다발을 안기는 것보다 세탁기를 한 번 더 돌려주길 바랍니다.”
한편 여성리더들이 더 많이 나타나야 할 당위성에 대한 한 기자의 질문에 대해 그녀는 개인적인 스토리를 들어 재치 있게 답하기도 했다.
“내 딸이 4살이었을 때 대통령의 날(President Day)이 있는데 대통령의 이름을 읊는 동요를 불러줬더니 왜 모든 대통령은 다 남자냐고 묻더라고요. 참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반대로 독일의 제 친구의 경우 4살짜리 아들이 있습니다. 메르켈 총리만 알고 있는 터라 그 남자아이는 ‘나는 총리가 될 수 없을 거야’라고 하더군요. 한국은 처음으로 여성대통령이 나왔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고무적입니다. 존재 자체만으로 상당한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라 봅니다.”
한국 최초의 여성대통령 박 대통령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낸 샌드버그는 많은 외신들이 점찍은 차기 미국 여성대통령 후보 중 하나다. 그러한 그녀에게 차기 대권에 도전할 의향이 있는가란 질문을 던졌다. 이에 대해 샌드버그는 “저는 아닙니다(No on me!)”라고 웃으며 답했다. 이어서 그녀는 “그러나 힐러리 클린턴은 Yes라고 답하고 싶습니다. 한동안 여성대통령 후보로 거론할 만한 인물 중에 힐러리 클린턴만한 사람은 없었죠. 그동안의 업적을 봐도 다른 분들과 비교해서도 훌륭한 분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덧붙였다.
셰릴 샌드버그
[박지훈 기자 사진 정기택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35호(2013년 08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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