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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nomist & CEO]세계 석학 7인에게 길을 묻다…한국, 물가 좀 올라도 성장에 힘쓰세요
입력 : 2013.02.04 14:4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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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8년 9월 15일 리먼 브라더스 파산으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가 5년째로 접어들었다. 미국 금융위기가 유로존 재정위기로 연결되는 등 잇단 선진국발 악재로 전 세계 경제성장 잠재력이 크게 훼손된 상태다. 과연 올해 글로벌 경제는 지난 5년간 저성장 사슬을 끊고 정상적인 성장세로 복귀할 수 있을까.
부의 효과를 발판으로 미국 경제가 얼마만큼 회복될 수 있을까, 양적완화에 따른 인플레이션 압력과 통화전쟁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그리고 올해 재테크 전망과 새 정부 출범을 앞둔 한국 경제에 대한 제언 등에 대한 혜안을 얻기 위해 지난해 12월부터 올 1월까지 글로벌 석학과 기업인들을 직접 만나 그들의 통찰력을 들어봤다.
기자가 만난 석학과 기업인은 2010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 그레고리 맨큐 하버드대 교수, 글렌 허버드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장,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 제임스 불라드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제도 총재, 모리스 옵스펠드 UC버클리대 교수,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 트럼프그룹 부회장 등이다.
미국 국내총생산(GDP) 성장의 70%를 좌지우지하는 미국 소비지출이 살아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는 게 미국 경제 긍정론의 골자다. 소비지출을 지지할 핵심 기반은 바로 주택값과 주식값 상승에 따른 부의 효과(Wealth Effect)다. 일단 미국 가계자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주택값이 단순히 바닥을 친데 그치지 않고 뚜렷한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 트럼프그룹 부회장은 “현재 주택 등 미국 부동산 시장이 상당히 강한(Quite Strong) 모습을 보이고 있고 이 같은 상황이 계속될 것으로 본다”며“미국 연준의 적극적인 양적완화 조치로 모기지(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부동산 시장 수요기반이 확대되고 집값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미국 연준이 올 1월부터 국채와 주택담보증권(MBS) 매입을 통해 매달 850억달러 규모의 달러를 시장에 푸는 무제한 3차 양적완화 조치 시행에 들어간 점도 위험자산 가격 흐름에 긍정적이다. 돈의 힘으로 증시를 밀어 올리는 유동성장이 더욱 강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주가가 오르면 가계 가처분소득이 늘어나는 부의 효과가 강해진다. 실업률이 개선되고 있는 것도 가계지출 확대에 힘을 실어줄 것으로 보인다.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는 “미국 가계 자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주택값이 확실히 오름세로 방향을 잡았고 미국 가계 디레버리징(차입축소)도 마무리 국면에 접어들었다”며 “성장에 가속도가 붙어 올해 미국 경제가 2.5~3% 성장하는 등 올해 상당히 좋은 한 해(Pretty Good Year)를 맞을 것”으로 내다봤다. 비관론자인 크루그먼 교수 입에서 모처럼 미국 경제 긍정론이 나온 셈이다.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도 “미국 경제가 큰 폭 성장하지는 못하겠지만 지난해보다는 높은 2~2.5% 성장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진단했다. 모리스 옵스펠드 UC버클리대 교수는 “미국 정치권이 대타협을 이뤄내 중장기적인 재정정책 불확실성이 사라질 경우 미국 경기가 상당한 힘을 받을 수 있다”며 “앞으로 수년간 3% 성장만 해도 국가부채 문제 해결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진단했다. 이 같은 성장률 전망치는 BOA메릴린치,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등 월가 주요 금융기관들이 올해 미국 경제성장률을 1%대 중후반으로 잡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다만 이 같은 성장률을 실제로 달성하려면 한 가지 풀어야 할 숙제가 있다. 옵스펠드 교수가 지적한 대로 미국 정치권이 미국 국가부채 상한선 상향조정 협상 등을 잘 마무리해 정치적 불확실성을 제거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로고프 교수는 “오바마 대통령이 더 강하게 나가야 한다”며 “공화당이 채무한도를 높이는데 비타협적으로 나온다면 오바마 대통령이 실제로 미국 경제를 기술적 디폴트(Technical Default)에 빠지도록 놔두는 충격요법을 써 정치권의 근본적인 변화를 유도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만큼 정치적 불확실성을 조기에 제거하는 노력을 보여야 한다는 얘기다.
일부 석학은 미국 내 정치적 불확실성이 사라져도 올해 미국 경제 전망이 그다지 밝아 보이지 않는다는 입장을 내놨다. 그레고리 맨큐 하버드대 교수는 “올해 미국 재정정책의 화두는 긴축(Contractionary)이 될 것”이라며 “미국 경제가 다시 리세션에 빠지지는 않겠지만 지지부진한 미약한 회복(Meager Recovery)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으로 내다봤다.
로고프 교수는 “1800년 이후 22개국에서 발생했던 26차례의 과다채무(Debt Overhang·공공부채가 국내총생산의 90% 이상)가 해소되는데 최소 5년 이상 걸렸고 과다채무 평균 지속기간은 무려 23년”이라고 지적, 유로존 부채위기가 쉽사리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로고프 교수는 “지난해 홍역을 치렀던 유럽이 유럽중앙은행(ECB)의 재정위기국 국채 무제한 매입 약속으로 어느 정도 시간은 벌었지만 올해 유로존 경제는 전혀 성장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크루그먼 교수도 유럽경제에 비관론을 펼쳤다. 크루그먼 교수는 “재정긴축 때문에 올해 유로존 경제가 좋지 않은 한 해(Not a good year)를 보냈다고 평가한다면 내년에는 더욱 나빠질(Looks Worse)것으로 보면 된다”고 잘라 말했다.
허버드 원장은 “유로존 재정위기 장기화라는 강한 맞바람이 미국 경제의 강한 회복을 방해할 것”이라고 염려했다.
옵스펠드 교수는 “유로존 붕괴를 방지하기 위해 그리스 지원을 결정한 이후 시장이 어느 정도 안정은 됐지만 변동성이 높은 만큼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고 안심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맨큐 교수는 “유럽연합(EU)과 유로 단일통화는 경제적 이슈가 아닌 정치적 사안”이라며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등이 유로존에 남도록 하기 위해 독일 등 유로존 국가들이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로존 경제는 비관적이지만 유로존 붕괴와 같은 최악의 시나리오는 없다는 얘기다.
양적완화와 인플레이션 유발 정책 논란
로고프 교수는 “버냉키 연준 의장이 금리정책을 인플레이션·실업률에 연동시킨 것은 올바른 방향”이라면서도 “2.5% 인플레이션 타깃은 너무 낮은 만큼 3~4%선까지 끌어올려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부추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플레이션 유발 정책을 통해 집값이 오르면 주택시장 회복에 도움이 되고 가계 부채축소에도 도움이 된다는 설명이다. 특히 로고프 교수는 “정부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는 만큼 연준이 양적완화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며 “양적완화 조기중단설이 흘러나오는 것 자체가 시장에 잘못된 신호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다”고 덧붙였다.
크루그먼 교수도 “현시점에서 재정긴축으로 선회하면 일자리 감소와 성장동력 상실을 가져오게 된다”며 “현시점에서는 연 준이 인플레이션 목표치를 높여 완전 고용이라는 정책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하지만 일부 석학들은 인플레이션 압력을 낮추기 위해 연준이 양적완화 조치를 조기 중단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놨다. 연준 내 매파(성장보다 물가관리 우선)인 제임스 불라드 세인트루이스 연준 총재는 “올해 미국 실업률이 7.0~7.1% 수준으로 떨어져 고용시장이 상당히 개선될 것”이라며 “연준이 금리 인상을 통한 본격적인 출구전략을 쓰기 전에 양적완화 조치 중단을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버드 원장도 “양적완화 때문에 장기금리가 왜곡돼 과도하게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며 “당장은 아닐지 몰라도 앞으로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져 연준이 본격적인 출구전략을 시행하면 장기급리가 급등해 자본손실(Capital Loss)을 보는 채권투자자들이 속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통화전쟁과 달러가치 미국 연준의 양적완화가 미국 기업 수출경쟁력 강화를 위한 달러 약세 조작 음모라는 브라질 등 신흥국가들의 불만에 대해 석학들은 이해는 하지만 미국으로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맨큐 교수는 “버냉키 의장의 최우선 관심사는 미국 경제 회생”이라며 “양적완화에 대해 브라질 등 신흥국가의 비판은 이해할 수 있지만 버냉키 의장이 걱정할 일이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옵스펠드 교수는 “양적완화는 국내 경제 안정과 성장을 위해 취한 조치”라며 “신흥국들의 불만까지 살필 겨를이 없는 만큼 신흥국들이 스스로 대처방식을 찾는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로고프 교수는 “과도한 레버리지로 저성장에 직면해 있고 재정정책 손발이 묶여있다면 양적완화는 당연한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며 “(양적완화를 통해)미국 경제가 살아나야 아시아 국가들도 미국 시장에 수출을 크게 늘려 원하는 성장률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또 양적완화에도 불구하고 달러가치가 오히려 상승할 것이라는 전망도 많았다. 로고프 교수는 “미국 연준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중앙은행들도 양적완화에 동시다발적으로 나설 것”이라며 “때문에 중장기적으로 달러는 강세를 보일 것”으로 내다봤다.
옵스펠드 교수도 “미국 달러와 일본 엔화는 상대적으로 유로에 비해 강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했다. 반면 허버드 원장은 “미국 연준의 양적완화 조치는 통화전쟁을 촉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적절하지도 않고 잘못됐다고 본다”며 양적완화를 비판했다.
재테크… 채권보다는 주식 올해 최고의 투자대상을 묻는 질문에 석학들은 대부분 채권보다는 주식에 높은 점수를 줬다.
허버드 원장은 “양적완화에 따른 미래 인플레이션 압박이 채권 실질 가치를 떨어뜨리고 실물자산과 주식 기회수익률은 높여줄 것”이라며 “앞으로 채권투자가 위험해 질 수 있다는 점에서 투자 자금이 채권에서 주식으로 이동할 것”으로 내다봤다.
로고프 교수는 “주식이 채권보다는 더 낫고 상품과 부동산도 괜찮을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크루그먼 교수도 “정치적 불확실성이 제거된다면 주식이 괜찮을 것으로 본다”고 동의했다.
다만 채권거품 붕괴 가능성과 관련해 로고프 교수는 “채권가격에 거품이 있지만 채권 버블이 터지려면 신흥국들이 미국 국채와 같은 미국 자산 매입을 대거 중단하는 사태가 벌어져야 한다”며 “이런 상황이 일어날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크루그먼 교수도 “수년 뒤라면 모르겠지만 채권 거품론은 현시점에 별로 걱정할 필요가 없다”며 “미국 연준이 아주 오랫동안 제로금리를 유지할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금리가 상당기간 낮은 수준에 머무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트럼프 주니어 부회장은 “지금은 부동산을 사야 하는 시기”라며 “양적완화로 풀린 돈이 부동산 시장으로 유입될 것이라는 점에서 부동산이 안정적인 수익을 낼 수 있는 가장 좋은 투자수단이 될 것”으로 말했다.
맨큐 교수는 “나의 투자 신조는 다양화(Diversificatio
n)”라며 “최근 신흥시장 국채 편입을 늘리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 경제에 대한 조언
경기부양 과정에서 물가가 관리범위를 넘어서더라도 무게중심을 물가보다는 성장에 놓는 게 낫다는 얘기다. 로고프 교수도 인플레이션 유발정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개진했다.
미국 경제 낙관론을 펼친 크루그먼 교수는 한국 경제에 대해서는 대뜸 걱정스럽다고 진단했다.
크루그먼 교수는 “올해 한국 경제 상황에 대해 느낌이 좋지 않다”며 “2013년 한국 경제를 위협하는 가장 큰 문제는 깜짝 놀랄 만한(Alarming) 수준인 가계부채”라고 지목했다. 크루그먼 교수는 “과도한 가계부채 부담으로 가계 디레버리징이 본격화되면 총수요가 위축돼 경기가 침체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 빠지기 전에 미리 가계부채 연착륙 조치를 강구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허버드 원장은 복지보다 성장에 무게중심을 두는 정책을 주문했다.
허버드 원장은 “성장과 복지는 상호배타적이지 않다. 강하게 성장하면 더 강한 사회보장 안전망을 구축할 수 있다”며 “복지에 너무 초점을 맞추면 성장이 후순위로 밀릴 수 있다는 점에서 성장에 무게중심을 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작은 정부론자인 맨큐 교수는 “일반적으로 정부의 시장 간섭과 규제가 제대로 효과를 발휘한 것을 본적이 없다”며 “경제민주화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기업들이 더 많은 고용을 창출할 수 있도록 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봉권 매일경제 뉴욕 특파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29호(2013년 0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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