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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 M&A를 주무르는 사람들
입력 : 2011.06.23 14:5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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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건설을 인수한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승자의 저주’의 대표적 사례다.
M&A는 흥미진진한 스토리뿐 아니라 용어마저 시선을 사로잡는다. 중세에 사라진 기사들이 등장하고 스파이 영화에나 나올 법한 용어가 튀어나온다. 등장하는 인물 또한 냉정하고 때로는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으로 그려진다.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는 시장에 매력을 느끼고 동경한다. 적지 않은 이들이 M&A 전문가를 꿈꾸는 이유다.
기업 내부에서 직접 컨트롤이 가능한 소규모 거래를 제외하고 대규모 M&A의 뒤에는 전문가 집단이 버티고 있다. 석유공사의 다나 인수에는 글로벌 IB인 메릴린치증권이 치밀하게 전략을 조언했다. 메밀린치증권 내부에는 자원개발과 관련한 엔지니어링팀이 별도로 있다. 자원분야 거래에 독보적인 경쟁력을 갖췄다. 메릴린치의 전문 인력들은 석유공사에게 인수 대상 선정부터 최종 인수까지 조언했다.
그러나 현실 세계에선 거래가 마무리된 이후에도 전문가들은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다. 베일에 가려져 있다. M&A를 결정하고 추진하는 과정은 첩보 영화처럼 은밀하다. 공식적인 발표가 나오기 전에 드러나는 거래는 깨질 위험이 크다. 거래가 추진되는 동안 이들의 공식입장은 언제나 ‘노코멘트’다. 대부분 거래의 경우 최종 사인을 하기 전에 외부에 노출되면 “없었던 일로 한다”는 협약이 맺어진 상태에서 진행된다.
적대적 M&A는 흥미진진한 구석이 많아 영화나 드라마의 소재가 되곤 하지만 그리 흔한 형태는 아니다. 대부분 M&A는 사는 쪽과 파는 쪽의 팽팽한 협상을 통해 진행된다. 특히 우리나라의 대형 거래는 공개입찰(Public Auction) 형태가 많다. 부실기업을 정부가 인수한 이후 새로운 주인을 찾는 과정에 있기 때문이다. 대한통운, 하이닉스반도체, 대우조선해양 등 상당수 큰 거래의 주인은 정부다. 이런 기업을 인수하려는 쪽은 우선협상대상자로 지정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이 벌어진다. IB(Investment Bank)와 컨설팅업체, 로펌 등이 한 팀을 이뤄 경쟁자를 누를 최적의 솔루션을 찾는다.
그러나 경쟁이 치열해지면 인수에 성공한 후 동반 부실을 겪는 ‘승자의 저주’를 겪곤 한다. 대우건설을 인수한 후 그룹 전체가 흔들린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대표적인 사례다. 미래 가치나 시너지 효과를 잘못 예측했거나 산업의 성장 사이클 등 여러 변수를 잘못 짚어 무리한 인수금액을 쏟아 부은 결과다. 제 아무리 유능한 인재들을 모아 인수팀을 구성했어도 ‘적정 현금 흐름을 넘어선 무리한 인수’는 뒤탈이 나기 십상이다. 2001년 닷컴 버블 당시 타임워너와 AOL의 합병은 M&A사의 한 획을 그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결국 갈라섰다.
사실 M&A 세계에선 공개입찰 방식보다 보통 은밀하게 매수자와 매도자가 만나 협상을 벌이는 경우가 많다. 2010년 말 하나금융의 외환은행 인수 협상은 전광석화처럼 빠르게 그리고 은밀하게 진행된 대표적인 사례다. 대규모 거래의 경우 글로벌 IB가 중심에 있고 유수의 컨설팅업체와 로펌 회계법인의 전문가들이 공조해 거래 성사를 위해 물밑에서 뛴다(드라마 <마이더스>의 도현은 변호사이면서 금융에 깊이 있는 통찰력(?)을 가져 높은 연봉을 받고 스카우트되는 걸로 나온다). 고객이 무언가 M&A를 원하면 최적의 거래 상대를 찾아주는 역할도 한다. 자금이 모자라면 펀딩 상대를 찾고 때론 IB가 직접 돈을 투자하기도 한다. 대규모 거래, 특히 국경을 넘나드는 거래는 대부분 외국계 IB가 주도한다. 우리나라 IB의 경쟁력은 아직 떨어진다. 세계적인 거래를 다루는 글로벌 IB를 키우는 것이 금융 업계의 목표인 걸 보면 ‘거래’에 참여하고 주도하는 것이 금융 산업의 핵심 업무라는 걸 방증한다. 거래를 다루는 이들은 그 어느 곳보다 엘리트 집단이다. 그만큼 많은 연봉이 보장되는 직업군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대중 매체를 통해 그려진 이들의 모습은 한 치의 오차도 없으며 철두철미하고 냉정하다. <마이더스>를 비롯한 M&A를 다루는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기업 인수와 함께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는 말을 거침없이 내뱉는다. 기업 임직원들이 “가족 같은 직원들을 자를 순 없다”고 반발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그러나 현실에서 거래를 다루는 이들은 늘 고뇌에 빠져 있다.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은 직업이다.
“미국에서 거래를 다룰 때였다. 인수 후 구조조정이 불가피했다. 직원 4000~5000명이 일하는 공장 문을 닫아야 했다. 그 공장이 있는 도시를 방문했다. 조그마한 타운이었다. 직원 4000명의 부양가족이 4인이면 1만6000명이다. 그 공장이 문을 닫으면 그 타운의 피자집, 식당, 주유소까지 모두 문을 닫아야 한다. 경제적인 가치만 놓고 보면 공장 문을 닫는 게 맞다. 그러나 타운을 방문하니 인간적인 고뇌에 빠지게 되더라.”
당시 “밤에 잠이 오지 않을 정도였다”는 최준 부즈앤컴퍼니 한국 대표는 “M&A를 결정한 후 시너지를 위해선 무언가 구조조정을 해야 하지만 그때마다 인간적인 고뇌에 휩싸인다”고 말했다. M&A에 성공한 후 샴페인을 터뜨리기보다는 “모두 다 점심을 굶을 각오를 해야 하는 것이 정상”이라는 설명이다. 겉보기엔 화려한 이들이지만 실제로는 애환이 적지 않다. 한 외국계 IB 대표는 “우리는 ‘갑을’ 관계의 을보다 못한 ‘병’이나 ‘정’에 해당한다”고 푸념하기도 했다. 국내 한 IB 임원은 농담 삼아 “무대 위에선 웃지만 무대 뒤에선 외로움에 쌓여 있는 무희와도 같다”고 비유하기도 했다.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지 않으면 모두 허사지난해 8월 한국석유공사는 영국 원유탐사업체 다나 페트롤리엄에 대해 적대적 M&A를 실시했다.
“막노동에 가깝다”고 얘기하는 이들도 있다. 거래를 다루는 전문가들의 최고 덕목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뛰어난 지적 능력’보다 ‘며칠 밤을 새면서 일할 수 있는 체력’이라고 답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M&A 전문가들이 체력 외에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요건은 무엇일까. 첫 번째는 숫자를 보는 예리한 눈이다. 대규모 거래의 경우에는 회계사가 참여하지만 거래 전문가는 기본적으로 숫자에 대한 안목이 있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외국계와 거래가 진행될 때 숫자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문규학 소프트뱅크코리아 사장은 “숫자를 만들어내고 해석하는 정확한 눈이 있어야 한다”며 “모든 전망과 분석은 숫자로 설명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물론 아무리 숫자를 잘 분석한다고 해도 실제로 거래가 끝난 이후에 예기치 못한 부실이 드러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한 M&A 전문가는 “숫자로는 분석이 됐지만 인수 후 들어가 보면 사실상 쓸모없게 된 재고가 포함된 경우도 있다”며 “노련한 회계사라고 하더라도 도저히 알 수 없는 부분이 있게 마련”이라고 말했다. 특히 M&A 시장의 주도권이 사는 쪽이 아닌 파는 쪽에 있을 경우, 즉 매물을 놓고 여러 기업들이 경쟁을 할 경우엔 이런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더 많다.
두 번째로 중요하게 꼽는 건 커뮤니케이션 능력이다.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단순히 영어 등 외국어 능력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물론 국경을 넘나드는 크로스보더 거래가 많아지면서 외국어 능력은 기본 요건이 됐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이란 ‘커뮤니케이션을 통제하는 능력’이다. 사실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민감한 사안을 다룰 때는 언제든 제기되는 문제다. 똑같은 물 컵을 놓고 물이 반쯤 차 있다고 보는 이도 있고, 물이 반쯤 비어 있다고 보는 이도 있는 것처럼 같은 얘기를 하면서도 전혀 다르게 이해하는 일은 회의에서 아주 흔하게 발생한다.
일반 회의에서도 커뮤니케이션 불일치가 숱하게 드러나는데 수많은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M&A 과정에서는 문제 발생 소지가 상존한다. 매물로 나온 기업을 인수하려는 팀에는 IB 뱅커뿐 아니라 컨설팅 전문가, 회계사, 변호사 등 관련 분야 전문가들이 참여한다. 소규모 M&A 거래는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지만 대규모 거래의 경우에는 각 분야의 전문기업이 참여한다. 흔히 주관사라고 불리는 ‘IB뱅커’가 주도를 하지만 컨설팅업체는 시너지 효과와 전략을 구상한다. 같은 팀 내에서도 뱅커와 컨설턴트 사이에는 가끔 이해 상충이 발생한다. 한 M&A 전문가는 “뱅커는 거래가 성사되면 인수금액에 비례해 일정 비율의 수수료를 받는다. 오버슈팅(적정가격보다 높게 책정하는 것)할 여지가 있다. 컨설턴트와 뱅커는 자존심을 걸고 끊임없이 싸운다. 그래서 최종 합의점이 나온다”고 말했다.
협상가로서 타고난 면도 있어야김승유 하나금융 회장(오른쪽)과 론스타 존 그레이컨 회장. 하나은행의 외환은행 인수협상은 빠르고 은밀하게 진행된 대표적 사례다.
[황형규 / 매일경제 증권부 기자 hwang21@mk.co.kr]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8호(2011년 05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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