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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숙양〈Flow of light; 빛의 흐름〉조명이 꺼져도 흐르는 금빛, 존재를 비추는 시간
입력 : 2025.08.20 10:5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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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숙양 작가 ▶ She is
생명과 존재의 깊이를 화면 위에 축적하는 회화 작가다. 순금과 안료를 여러 겹 쌓고 긁는 과정을 통해 고요한 감정의 지층을 형상화하며, ‘빛’이라는 상징을 통해 치유와 회복의 메시지를 전한다. 그녀의 작업은 말 없는 기도처럼, 관람자의 마음에 조용히 스며든다.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 1층 어바웃 프로젝트라운지. 커피향과 낮은 음악이 공존하는 공간을 지나 한쪽 전시장으로 들어서자, 낯선 고요가 감지된다. 조명이 비추지 않는 그림임에도, 캔버스는 미세하게 숨을 쉬는 것 같다. 관람객이 한 걸음 다가서면, 금빛이 따라오고, 점점이 쌓인 물감의 결이 생명체처럼 진동한다. 금박은 반짝이지 않고, 차분하게 안쪽에서부터 빛난다.
서숙양 작가의 회화는 단지 시각적 이미지로 기능하지 않는다. 그것은 하나의 언어이자, 시간이며, 삶의 깊이를 반영하는 리듬이다. 그는 자신의 작업을 설명할 때면 자주 이렇게 말한다. “(제 작품을) 감상할 때 조명은 없어도 괜찮아요. 지금 보이는 저 빛이, 곧 당신의 빛입니다.” 그의 말은 상징적 수사가 아니다. 금박으로 덮고, 긁고, 다시 덧대어 완성된 그 화면은 오랜 시간 내면을 응시하며 지켜온 작가의 고요한 기도이며, 많은 관람자들이 그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는 사실이 그 진정성을 증명한다.
빛은 그에게 종교적 신념 이전에, 인간 존재의 시작이자 끝을 잇는 근원적 에너지다.
“‘빛이 있으라’는 성경 창세기의 한 문장이 제 작업의 출발점이 됐어요. 그런데 제가 말하는 빛은 전등이나 햇빛이 아니에요. 생명이 생겨날 수 있는 바로 그 순간, 그 울림 같은거죠.”
호박에서 시작된 생명의 비유지금의 화려한 금빛 이전, 서숙양의 시작은 소박한 호박 그림이었다. 대학 시절, 추수감사절에 교회에 바칠 그림을 고민하다 그렸던 호박 한 송이가 그의 첫 ‘생명’이었다. 당시 그는 회화를 도자 도판 위에 상감 기법으로 실험하고 있었다. 캔버스가 아니면 인정받지 못하던 시절, 그는 주저하지 않고 그 실험을 작품으로 제출했다.
“졸업을 못 해도 괜찮아요. 저는 이걸로 걸겠습니다.”
그 고집은 결국 학교를 설득했고, 도판 회화라는 새로운 표현 방식을 완성했다. 이후 그의 관심은 자연스레 호박이 가진 상징, 즉 ‘생명력’에서 그것을 가능케 하는 보다 본질적인 힘인 ‘빛’으로 옮겨갔다. 빛은 사물의 외곽선보다 안쪽에서부터 밀고 나오는 힘으로 존재했다.
“씨앗이 흙을 밀고 올라오는 그 에너지가 곧 빛이에요. 단순히 밝은 게 아니라, 살아 있는 힘이죠.”
그리고 그 빛을 표현하기 위한 물질로, 가장 오래 변하지 않는 것, 24K 순금이 선택되었다.
금으로 쌓고, 긁고, 다시 쌓는 ‘축적의 언어’서숙양의 작업에서 금은 단지 재료가 아니다. 그것은 시간을 머금고, 생명을 환기하며, 감정의 결을 입은 물질이다. 그는 몇 년 동안 전 세계의 금박을 샅샅이 시험해 봤다. 아랍, 유럽, 중국, 미국, 한국의 금박을 다 써보고 나서야, 화면과 가장 잘 호흡하는 순금을 찾아냈다고 한다.
“두 해 넘게 헤맸어요. 그런데 진짜 괜찮은 금은, 붙였을 때 화면이 같이 숨을 쉬어요. 그게 중요했어요.”
그는 작품활동에 있어 금을 아끼지 않는다. 붙이고, 때로는 긁고, 다시 붙인다. 그 과정을 통해 여러 겹으로 쌓은 색과 점적(點滴)의 깊이가 화면 속 지층처럼 드러난다.
“그 안에 감정이 있어요. 그려지는 게 아니라 ‘쌓이는’ 거예요.”
하나의 작업은 두세 달에 걸쳐 천천히 완성된다. 하루 한 겹씩 쌓으며 말리고, 또다시 얹고 긁는 일의 반복. 그 시간은 단지 물리적 작업시간이 아니라, 작가가 화면을 통해 삶을 마주하고 정리하는 고요한 사색의 시간이다.
그는 캔버스를 ‘인생’이라 부른다. “살다 보면 희로애락이 겹겹이 쌓이잖아요. 기쁜 날도 있고, 어두운 날도 있고, 무너진 날도 있어요. 그런데 그 위로 한 줄기 빛이 스며들어요. 그것이 바로 생명이에요.”
그의 작업에는 마감 바니시가 없다. 대신 안료와 레진, 금속이 각자의 물성을 유지하며 스스로 하나의 구조체가 되도록 구성된다. 그 덕에 작품은 직사광선에도 견디고, 빛에 따라 스스로 표정을 바꾼다.
감상자에게도 그는 분명하게 조언한다.
“작품에 빛을 비춰보세요.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면, 그 안에 숨어 있던 색이 별처럼 떠올라요. 화면이 말을 걸어요.” 그의 작업은 시각적으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깊은 층 위에서 경험되어야 한다.
치유의 현장, 감정이 흐르는 전시 공간서숙양의 작품 앞에서는 자주 눈물이 흐른다. 그는 그런 장면을 수없이 목격했고, 함께 울기도 했다.
“울다가 안기고, 이야기 나누고, 그냥 손만 잡고 계신 분도 있어요. 그런 시간이 저에게도 큰 위로예요.”
그의 작업은 단지 미술관에 걸린 작품이 아니라, 회복의 장이고, 고요한 위로다. 그래서일까. 그의 작품은 병원 로비, 기업의 회의실, 가정의 거실까지 다양한 공간에 존재한다.
회의실 뒤에 그림을 두고 ‘후광’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누군가는 잠 못 드는 밤, 그림이 먼저 자신을 안아줬다고 했다.
서숙양에게도 작업은 치유다. 공황장애로 힘들던 시절, 유일하게 약 없이 견딜 수 있었던 공간은 작업실이었다.
“작업실에만 들어가면 괜찮아졌어요. 작품이 먼저 저를 안아줘요. 그래서 그 다음에야 다른 사람도 안아줄 수 있어요.”
특별한 전시로 만나는 금빛 위로이번 전시는 어바웃 프로젝트라운지에서 열리고 있다. 카페, 음악, 채광이 자연스럽게 엮인 공간. 누군가는 화이트큐브가 아닌 공간을 의아해했지만, 서숙양에게는 오히려 더 적합했다.
“왜 작품이 갤러리 안에만 있어야 하죠? 저는 사람들이 무심코 지나가다가, 다시 돌아보고, 어느 순간 가까이 다가오는 그 흐름이 좋아요.”
빛은 공간을 가리지 않는다. 오히려 빛은 그곳에서 살아 있는 호흡을 시작한다. 전시를 위한 작품이 아니라, 작품을 위한 전시. 그것이 그의 신념이다. 그는 주문 제작을 받지 않는다. 금값이 오르고, 제작비가 높아져도 계산하지 않는다. “처음엔 금박을 쓸 때마다 손이 떨렸죠. 그런데 어느 순간 저 자신에게 묻게 되더라고요. 빛을 말한다면서 왜 물질로 계산하냐고. 그래서 그냥 내려놓았어요.(웃음)”
앞으로 그는 캔버스를 넘어설 계획이다. 최근에는 FRP와 금박, 안료를 결합해 미니어처 조형물을 실험 중이다. 그 작은 형태들은 벽이 아닌 바닥에 놓이고, 공중에 매달리고, 빛의 흐름 자체를 전시하는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다. 그는 묻는다. “왜 꼭 그림이 벽에 걸려야 하죠?” 그 질문은 어쩌면 그의 작업 전체를 통과하는 문장일지도 모른다.
그가 가장 애착을 갖는 작품은 <21세기 최후의 만찬> 시리즈다. 다빈치의 구도를 빌려 현대의 탐욕과 회심을 비추는 이 연작은, 그에게도 작업 중 유독 많은 눈물을 쏟게 했다. “현대판 가룟 유다의 얼굴이 제 안에서 보였어요. 그걸 그리는 시간이 너무 고통스러웠죠.”
지금 전시의 주제는 <Flow of light; 빛의 흐름>. 그리고 이 흐름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Power of the Light, Light Meets Light, 그리고 언젠가는 Light Becomes You—그의 작업은 그렇게, 관람자의 얼굴에서 다시 빛나게 된다.
〈Flow of light; 빛의 흐름〉
기간: 2025.08.11(월) – 09.07(일)
오프닝: 2025.08.13(수) 17:00–19:00
장소: 잠실 롯데월드타워 1층 어바웃 프로젝트라운지
주최: 청담 보자르갤러리 × 어바웃 프로젝트[박지훈 기자 · 사진 류준희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80호 (2025년 9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