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장르만 로맨스`서 호연 류승룡 “유머와 웃음은 가장 큰 면역체계죠”
입력 : 2021.11.30 16:15:00
-
영화 <7번방의 선물> <명량> <극한직업>의 ‘천만 배우’ 류승룡(51)이 돌아온다. 전작과 확 달라진, 휴먼 코미디 영화 <장르만 로맨스>(감독 조은지)를 통해서다. <장르만 로맨스>는 평범하지 않은 로맨스로 얽힌 이들과 만나 일도 인생도 꼬여가는 베스트셀러 작가의 버라이어티한 사생활을 그린 영화로 배우 조은지가 감독으로 나서 만든 첫 장편영화다. “그동안 일반적이지 않은 역할만 주로 많이 해왔어요. 어느 순간 생활밀착형 인물을 연기하는 데 두려움과 갈증이 공존하더군요. 그런 종류의 연기를 잘하는 배우들을 보면 ‘어쩜 저렇게 잘할까’ 생각하며 부러워하기도 했어요.”
다수의 작품을 통해 선 굵은 캐릭터, 장르를 여러 차례 소화하며 이미 작품을 보는 ‘선구안’과 캐릭터를 표현해내는 ‘연기력’에서 모두 인정받은 류승룡이지만 새로움에 대한 갈망은 늘 존재했다. 그랬던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작품이 바로 <장르만 로맨스>다. 류승룡은 “감독님과 (이번 영화를 위한) 첫 미팅에서 그런 부분에 대한 콤플렉스와 두려움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웃음 뒤에 찾아오는 묵직한 공감이 너무 좋아 꼭 하고는 싶은데 스스로 걱정되는 부분이 있었던 것”이라며 “감독님이 이런 나의 얘기를 진심을 다해 들어줬다. 그리고 촬영 내내 큰 도움을 줬다. 그동안 해왔던 습관들을 이 작품에 맞는 형태로 섬세하게 다듬어줬다”고 고마워했다.
류승룡이 맡은 현은 7년째 개점휴업 중인 베스트셀러 작가로, 겉보기엔 흔하디 흔한 옆집 아저씨 같은 평범한 인물이다. 영화는 그저 평범한 현 씨의 일상을 조망하지만,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그에게 벌어지는 사건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특히 현은 슬럼프 이후 학교 제자인 천재 작가지망생 유진(무진성 분)을 만나 작가로서 행보를 이어가는데, 그에게서 특별한 고백을 받으며 아찔한 에피소드를 이어가게 된다.
“그 장면들은 무진성 배우가 굉장히 잘 만들어 줬다고밖에 할 말이 없을 정도예요. 그 친구가 준비를 너무 완벽하게 해왔어요. 얼마나 배역에 몰입했는지 그냥 유진이었어요(웃음). 전 특별한 연기를 할 필요가 없었죠. 그냥 리액션 정도만 하면 됐으니. 사실 그 친구가 영화가 처음이라 굉장히 긴장을 하고 있었는데 그것조차 멋지고 예뻐 보였어요. 매일 밤 잘 자라며 빨간 하트를 보냈는데, 그 모습도 열정으로 보였죠. 긴장을 풀려고 저와 대화를 하는 과정에서 저도 많은 자극을 받았고, 오히려 제가 많이 배웠습니다.”
현을 통해 관객과 나누고 싶었던 감정은 ‘공감’이었다고. 현이 지닌 특별하지 않은 힘이, 오히려 많은 평범한 이들에게 아주 특별한 힘이 될 것을 예감했다고 말했다.
“현을 표현하며 공감을 끌어낼 수 있을 것 같았어요. 현은 인간 존중을 바탕으로 한 사람이기 때문에 따뜻함도 줄 수 있을 것 같았고요. 작가로서 인생이 따갑고 뜻대로 풀리지 않기도 하는데, 이를 통해 인생의 피로도도 보여주려 했습니다.”
현에게 제일 먼저 공감한 사람은 다름 아닌 류승룡 자신이라고도 했다. 작가로서 방점을 찍었다가 슬럼프를 겪는 현의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했다고.
“저 역시 누군가의 남편이자 아빠, 아들, 사위입니다. 또 사회에서는 배우로서 여러 가지를 짊어지고 있는 구성원이기도 하죠. 영화라는 게 숫자로 평가되기 때문에, 거기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어요. 아무래도 의기소침해지고 눈치가 보이죠. 자기 최면을 걸고 잘하자고 하지만 움츠러드는 것은 어쩔 수 없더군요.”
슬럼프를 극복하는 것은 다른 누군가가 해줄 수 없는, 오롯이 자신이 해내야 하는 일이다. 그는 때로는 한없이 가라앉는 자기 자신을, ‘내면’의 소리에 집중하며 다독여준다고 했다.
“집이 아닌, 제주 올레나 지리산 둘레길, 인제 천리길 등을 틈날 때마다 걸으며 스스로에게 시간을 줘요. 그렇게 걷고 와서 아이들, 아내를 보는데 그게 저의 엔진이자, 기름이에요. 큰 힘을 얻죠.”
‘공감’이 이 영화가 주는 가장 큰 힘이라면,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는 것도 <장르만 로맨스>가 지닌 힘이다. “우리는 피하고 싶어도 관계 속에 살 수밖에 없어요. 결혼을 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누군가의 자녀들이고 사회 속에서 관계를 맺죠. 그런 관계에 부딪히며 일어나는 이야기들, 관계에서 받는 상처들, 이해관계가 다른 것을 인정하는 부분들 등 톱니바퀴처럼 얽힌 관계를 잘 풀었다고 생각합니다.”
“감독님(조은지)이 특이한 제스처에 특화되어 있으세요. 어떤 감독들은 몹쓸 재연을 해주시는데 조은지는 배우 출신이어서인지 시각화된 언어에 특장점이 있죠. 워낙 시나리오가 완벽하게 나와서 대사로는 애드리브할 게 거의 없었고 몸짓으로 애드리브를 했습니다.”
시종일관 ‘현실 웃음’ 터지는 영화의 강점에 대해 언급하자 류승룡은 “우리끼리는 영화의 ‘장르가 조은지’라고 한다”며 웃어 제꼈다. 그러면서 “이 자리를 빌어 감사드리고 싶은 건, 장진 감독과 열두 개의 작품을 하며 말맛에 대한 코미디를 체화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극한직업>도 이병헌 감독의 말맛이 장진 감독의 것과 닿아있었다. 몸짓은 <난타>를 몇 년 동안 하며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면서 보편적인 웃음의 포인트를 몸으로 체화했었다. 그때의 경험들이 많이 도움이 된 것 같다”고 지금까지의 경험을 통해 누적된 코믹 장르 연기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러면서도 류승룡은 “유머와 웃음이 가장 큰 면역체계이자 치유제라 생각한다”며 장르 자체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그는 “감사하게도 생활에서 나오는 공감될 수 있는 코미디, 휘발되지 않고 생각할 수 있는 코미디, 잔상이 남는 코미디여서 좋은 것 같다. 그래서 블랙코미디나 페이소스가 있는 웃음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장르만 로맨스>에 대한 각별한 애정도 재차 드러냈다. “우리 영화 속 인물들을 보면 저마다 자기만 상처를 받았다고 생각하지만 알고 보면 자신들도 똑같이 상처를 줘요. 대단한 실수가 아닌 의미 없이 툭 던진 말이나 행동들로요. 그것이 제게 주는 생각과 배움이 컸어요. 여러분들도 느끼셨으면 좋겠습니다.” 류승룡은 특히 “김현의 대사에도 나오는데, ‘사랑이라는 건 내가 누구를 얼마만큼 좋아하느냐가 아니라 주고받는 것’이라는 게 잘 전달되면 좋겠다. 우리 모두 관계 속에서 치유가 되고 성장도 하고 화목해지면 좋겠다”라는 바람을 덧붙였다.
코로나19를 뚫고 지난 17일 개봉한 <장르만 로맨스>를 시작으로, 류승룡은 이미 작업해 둔 여러 작품을 통해 쉼 없이 관객을 만날 예정이다. 국내 최초 뮤지컬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를 비롯해 <정가네 목장> <비광> 촬영을 마친 그는 현재 <무빙> 합류를 확정한 상태. 개점휴업 상태를 보내던 현과 달리, 류승룡에게 결코 멈춤은 없다. [박세연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기자 사진제공 NEW]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35호 (2021년 12월)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