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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부터 바뀌는 실손보험 갈아타기 전략은… 비급여 항목 이용 많다면 4세대 실손 불리
입력 : 2021.05.28 15:3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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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 전 직장에서 은퇴한 뒤 아내와 함께 경기도 용인의 전원주택에서 노후생활을 즐기고 있는 김덕현 씨(63)는 최근 고민에 빠졌다. 매달 내던 실손의료보험의 보험료가 무려 3배나 올랐기 때문이다. 김 씨는 지난 2009년 초에 실손보험에 가입했다. 그가 가입한 상품은 병·의원 이용 시 본인부담금이 전혀 없다. 부부가 함께 가입했는데 실손보험 덕분에 지난해 아내의 허리디스크 치료를 수월하게 할 수 있었다. 특히 수술 후 이어진 재활과정에서도 목돈이 거의 안 들어서 “실손보험이 자식보다 낫다”고 주변에 자랑까지 했었다.
문제는 본인 5만원, 아내 6만원씩 내던 월 보험료가 다음달부터는 거의 3배 가까이 뛴다는 것이다. 두세 달 전 우편으로 온 보험료 인상 안내문에 본인 15만원, 아내 17만원으로 보험료가 오른다는 내용을 읽고 나서 김 씨는 한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김 씨는 실손보험 외에도 본인과 아내 몫으로 몇 가지 보험에 가입한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매달 11만원이던 실손보험 보험료가 32만원으로 크게 오르면 김 씨의 부담은 커진다.
보험사에 문의해 보니 김 씨의 상품이 5년에 한 번씩 보험료가 바뀌는 것이라 이번에 인상폭이 컸다고 한다. 그렇다면 5년 뒤에도 이렇게 보험료가 오르냐고 묻자 보험사는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다만 현재 김 씨가 가입한 보험상품의 경우 당분간 인상이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안타까운 얘기를 전했다.
실손보험은 판매시기에 따라 2009년 10월 이전까지 판매된 표준화 전 실손(구 실손보험·1세대 실손), 2017년 3월까지의 표준화실손(2세대 실손), 그리고 현재 판매 중인 신실손보험(3세대 실손)으로 나뉜다. 1세대 실손은 자기부담금(보험금 수령시 가입자가 내야 하는 부분)이 없지만 2세대부터는 자기부담금이 20%가 된다. 여기에 3세대 실손은 도수치료·MRI 등을 별도의 특약으로 분리해서 판매한다. 보험금을 받은 만큼 보험료를 더 내게 되는 4세대 실손보험은 7월부터 판매된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1세대 실손보험은 자기부담이 전혀 없는 것이 특징이다.
상해와 질병 등으로 입원을 하거나 통원치료를 받은 뒤 보험금을 청구하면 자신이 낸 비용을 전액 돌려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자기부담금이 전혀 없다 보니 가입자들의 의료행위가 늘어나고, 이로 인해 보험금 지급액이 커지는 부작용이 나타나면서 정부는 2009년 10월 2세대 실손보험을 내놓게 됐다.
2세대 실손보험의 가장 큰 특징은 보험사마다 달랐던 약관을 통일시킨 것이다. 2세대 실손 이전만 해도 입원의료비를 1억원까지 보장해주던 상품이 많았는데 2세대부터는 입원 보장한도 5000만원, 통원보장은 회당 30만원에 180회를 지원해주는 형태로 바뀌었다. 또 2세대 실손보험부터 자기부담금이 신설됐다. 2009년 10월부터 판매된 상품은 10%, 2013년 4월부터 판매된 상품은 10%와 20%에서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20%를 선택할 경우 보험료가 상대적으로 저렴해진다. 또 이때부터 3년 단위로 이뤄지던 보험료 변경주기가 1년 단위로 바뀌게 됐다.
세 번째 실손보험의 변화는 2017년 4월 이뤄졌다. 신실손의료보험이 정식명칭인데, 보험업계에서는 자신들의 손실과 과다 의료이용을 줄여준다고 해서 ‘착한 실손’으로 부르기도 한다. 현재는 3세대 실손보험으로 명칭이 통일되는 분위기다. 이 상품은 실손보험에서 가장 청구 건수가 많아 손해율을 높인 도수치료와 비급여 주사, 비급여 MRI를 별도의 특약으로 분리한 것이 특징이다.
또 자기부담금도 20%로 높아졌다. 3세대 실손보험부터는 직전 2년간 비급여 의료비 미청구자의 경우 차기 1년간 보험료를 10% 이상 할인해주는 항목도 들어갔다. 특약 분리와 자기부담금 상향으로 3세대 실손보험의 보험료는 종전보다 최고 35% 이상 저렴해졌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전체 실손보험 가입자 3496만 건 가운데 2세대 실손이 1877만 건(53.7%)으로 가장 많다. 1세대 실손이 24.4%이고 3세대 실손은 20.3%를 차지한다. 실손보험 손해율을 높이는 주범인 1세대와 2세대 실손보험 가입자가 아직도 전체의 80% 가까이 되는 셈이다.
문제는 실손보험 보험료가 앞으로도 계속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이다. 계약자의 과도한 의료쇼핑과 의료기관의 모럴해저드 등이 겹치면서 실손보험 손해액은 2019년에 이어 2년 연속 2조5000억원을 넘어섰다. 지난해 손실을 상품별로 따져보면 1·2·3세대 모두에서 손실이 나고 있지만 1세대 실손보험의 손실규모가 1조3000억원으로 가장 컸다. 2세대는 1조1400억원, 3세대는 1767억원 수준이다. 가입자 수로 따지면 1세대가 2세대의 절반 수준인데도 손실 규모는 이보다 크다는 것은 생각해 볼 문제다.
지난해 합산비율도 100%를 초과했다. 합산비율은 발생손해액과 실제사업비를 합한 금액을 보험료 수익으로 나눈 것이다. 매년 보험료가 꾸준히 오르는데도 이 비율은 2019년 125.5%에 이어 지난해에도 123.7%를 기록했다. 이는 보험사가 1만원의 보험료를 받았다면 실손사업을 하는 데 필요한 비용과 보험금으로 지급한 돈은 1만2370원을 썼다는 얘기다.
손실 규모가 커지고, 합산비율도 100%를 초과하면서 보험사들은 올해도 실손보험 인상을 예고했다. 1세대 실손은 15~19%, 2세대 실손은 평균 10~12%의 보험료가 인상될 것으로 보인다. 3세대 실손보험과 현재 보험료는 동결이다.
금융위원회와 손해보험협회에 따르면 2020년 40세 남성이 1세대 실손보험에 가입해 월 보험료로 3만6679원을 냈다면 5년 뒤에는 보험료가 7만3775원으로 두 배 가까이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50세가 되는 2030년의 월 보험료는 11만1708원까지 치솟는다.
2세대 실손의 월 보험료가 2020년에 2만710원에서 2030년에는 8만3784원이 된다. 3세대 상품은 같은 기간 1만2184원에서 3만1602원으로 오른다. 이는 1세대와 2세대는 매년 15%, 3세대는 10% 인상을 가정했을 때의 결과다.
실손보험은 2000년대 들어 본격적인 관심을 받게 됐다. 1인당 국민소득이 2006년 2만달러 시대에 진입하면서 환경·문화·건강 등 삶의 질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사회적 성숙도가 높아진 것이다. 그동안 잠재되었던 건강 보장 수요가 늘어난 것이 보험 가입으로 이어진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실손보험은 60% 초·중반의 보장률에 머물고 있는 공적보험에 추가적인 보장을 제공하면서 급성장하기 시작했다.
실손보험은 국민건강보험이 보장하지 않는 환자의 본인부담 의료비를 보장해주는 보완형 상품이다.
특정 질병이나 상해에 대한 선별적 보장이 아닌 일부 항목을 제외하고는 모두 보장해주는 포괄적인 구조로 운영되고 있다. 구체적으로 의료기관에서 진료 후 내게 되는 진료비는 크게 급여항목과 비급여항목으로 나뉜다. 급여는 건강보험공단에서 부담하는 부분이다. 일부 본인부담금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비용을 건보공단에서 내준다. 비급여항목은 전적으로 본인이 내야 하는 부분이다. 실손보험은 상해나 질병 발생으로 의료기관 이용 시 비급여항목과 급여항목의 본인부담금에 대해 보장해준다.
이태열 보험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우리나라 공적보험의 보장률 합계가 주요국보다 낮기 때문에 실손보험은 반드시 필요한 제도”라고 말했다. 그는 “일본과 독일의 경우 건강보험 보장률이 80%를 넘는 데 비해 우리나라는 62.7%에 불과하다”며 “실손보험이 8.9%의 간극을 채워 보장률을 71.6%로 높여놓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건강보험이 많은 질병 치료를 보장해주지만 아직도 사각지대는 여전하다. 이러한 부분에 대한 보장을 위해서는 실손보험 해지는 절대 생각해 볼 선택지가 아니다. 지금 고민해야 할 부분은 실손보험 갈아타기다. 지나치게 오른 보험료가 부담이라면 현재 판매 중인 3세대 상품, 또는 7월에 선보이는 4세대 상품으로의 이동을 고려해보는 것이다. 물론 이 경우 현재 받고 있는 혜택이 크게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본인의 의료 이용 현황과 소득을 충분히 고려해서 결정을 내려야 할 부분이다.
현재 판매 중인 3세대 실손보험은 도수·증식·체외충격파, 비급여 주사, 비급여 MRI 등 3가지 비급여 항목만 특약으로 분리되어 있고 모든 상해·질병을 보장해준다. 오는 7월 출시되는 4세대 실손보험은 모든 비급여 항목이 특약으로 분리된다. 즉 보험 가입 시 별도의 특약에 가입하지 않을 경우 비급여 항목에서 발생되는 치료비는 지원받지 못한다. 또 비급여 항목에는 보험료 차등제가 적용된다.
보험료 차등제는 가입자가 비급여 진료를 받아 보험금을 많이 받을수록 보험료가 올라가는 구조다. 보험료 갱신 전 1년 동안 비급여 항목에 지급된 보험금을 기준으로 다음해 보험료가 결정된다. 가입자는 총 5개 등급으로 나뉜다. 현재 기준으로 비급여 지급보험금이 100만~150만원의 경우 보험료가 2배, 150만~300만원은 3배, 300만원 이상은 4배가 오르게 된다. 반면 100만원 미만을 수령할 경우 보험료는 동일하다. 받은 보험금이 아예 없다면 보험료는 5% 낮아진다.
보험금 지급 이력은 1년마다 초기화된다. 올해 지급보험금이 많은 경우 내년에 보험료가 오르지만, 내년에 무사고로 지급보험금이 없다면 내후년은 보험료를 할인받을 수 있다. 보험료 차등제는 통계확보 과정이 필요해 2024년부터 시행된다.
또 보험료 차등제는 기존 가입한 상품에는 적용되지 않고 4세대 실손보험 상품에만 적용된다. 기존 상품 가입자도 새로운 상품으로 계약 전환을 할 수 있다. 계약 전환 시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무심사로 진행될 예정이다.
꾸준히 치료를 받아야 하는 가입자는 보험료 차등제에서 제외된다. 암질환·심장질환·희귀난치성질환자 등 국민건강보험법상 산정특례 대상자와 노인장기요양보험법상 장기요양대상자 중 치매·뇌혈관성 질환 등 1~2등급 판정자가 대상이다. 50~75세만 가입할 수 있는 노후실손보험과 유병력자 실손보험도 차등제가 적용되지 않는다.
자기부담금과 통원 공제금액이 높아진 만큼 보험료는 기존 상품보다 낮아진다. 2017년 출시된 3세대 실손보험보다 약 10%, 2009년 이후 2세대 실손보험보다 약 50%, 1세대 실손보험보다 약 70% 각각 인하된다. 예를 들어 40세 남성이 2세대 실손보험료로 매달 2만710원을 내고 있었다면, 4세대 실손보험료는 9781원 줄어든 1만929원만 내면 된다. 연간 보험료 차이는 11만7372원에 이른다.
보험료가 저렴한데도 급여(주계약)와 비급여(특약)에 모두 가입할 경우 보장범위와 한도가 같다. 연간 보장한도는 1억원(급여·비급여 각 5000만원)이다. 다만 통원은 회당 20만원으로 제한된다. 특히 과다한 의료서비스 이용이 문제되는 비급여는 별도로 통원 횟수가 제한된다.
보험료가 저렴한 측면은 있지만 기존 상품과 보장내용, 자기부담금 등이 다르기 때문에 갈아타기를 고려한다면 본인의 건강상태와 의료 이용 성향 등을 고려해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특히 4세대 실손보험은 보험료 차등제가 적용돼 만약에 건강상 문제로 비급여 항목을 많이 이용한다면 갈아타는 게 불리할 수 있다. 노년에 보험료 부담이 고민된다면 고령자실손보험 등으로 전환하는 방법도 있다.
[이승훈 매일경제 금융부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29호 (2021년 6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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