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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권 강타 ‘금소법’… 금융사 책임은 강화, 소비자 보호법이냐 소비자 불편법이냐
입력 : 2021.04.29 14:5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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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이 지난 3월 25일부터 시행되며 금융상품 판매 전반에 거대한 변화가 시작됐다. 수천억원에서 수조원까지 소비자 피해를 낸 ‘라임’과 ‘옵티머스’ 사태는 금소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는 데 강한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금융상품 불완전 판매의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으며 최초 발의된 지 8년 만에 금소법은 빛을 보게 됐다. 시행령과 감독 규정 등 세부 사항을 1년간 마련한 뒤 지난 3월부터 금소법이 전 금융권에 적용되기 시작했다.
금융소비자를 보호한다는 강력한 ‘명분(?)’ 아래 시행됐지만 금융사의 책임이 강화되며 현장에서는 오히려 소비자의 불편을 가중시킨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도대체 금소법은 어떤 법이기에 이렇게 큰 논란을 가져온 것일까.
▶금소법 어떻게 구성돼 있나 금소법은 총 8개 장·69개 조항으로 구성됐다. 1장에서는 금융상품과 금융소비자를 정의하고 상품과 금융회사 업종을 구체적으로 구분한다. 2장에서는 금융소비자의 기본권과 소비자, 국가, 금융상품판매업자의 책임을 규정한다. 3장에서는 등록되지 않은 자의 상품 판매나 자문을 금지하며 등록요건을 제시한다. 핵심은 4~6장이다. 4장은 금융회사가 영업행위를 하며 준수해야 할 의무를 부과하고, 5장에서는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해 권리와 소비자에 대한 금융사의 손해배상 책임 등을 규정하고 있다. 6장은 감독과 처분을 나열하고 있고, 7장과 8장은 보칙과 벌칙이다.
은행 창구에선 판매직원의 상세한 설명과 엄격해진 투자자의 성향 평가 등으로 판매자와 소비자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진은 서울시내의 한 시중은행 영업점 창구.
금소법은 또 모든 금융상품을 ▲예금성 ▲대출성 ▲보장성 ▲투자성으로 구분한다. 예금성 상품은 예·적금처럼 은행법상 예금과 유사한 상품을 의미한다. 대출성 상품은 주택담보대출, 신용카드처럼 은행법상 대출 또는 이와 유사한 상품이다. 투자성 상품은 펀드처럼 자본시장법상 금융투자상품 또는 이와 유사한 것을 뜻한다. 보장성 상품은 생명보험과 손해보험처럼 보험업법상 보험상품 등을 의미한다. 법 적용대상과 금융상품에 따라 법 조항별 적용되는 내용이 달라진다.
▶금융사가 지켜야 할 6대 원칙이란 금소법이 불러온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일부 금융상품에 한정해 적용하던 6대 판매원칙을 모든 금융상품으로 확대했다는 것이다. 6대 판매원칙은 ▲적합성 원칙 ▲적정성 원칙 ▲설명의무 ▲불공정영업행위 금지 ▲부당권유행위 금지 ▲허위·과장광고 금지를 의미한다. 적합성 원칙은 판매자가 소비자의 재산상황, 금융상품 취득·처분 경험 등을 비춰 부적합한 금융상품을 권유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 만약 펀드에 가입하려는 투자자의 위험 성향이 안정형이라면 금융사는 고위험 상품을 권유할 수 없다.
적정성 원칙은 고객이 구매하려는 금융상품이 만약 소비자의 재산 등에 비춰 부적합한 경우 그 사실을 알려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소비자가 소득 수준보다 더 과도하게 대출을 받거나 위험 성향보다 훨씬 높은 위험도의 상품에 가입하려고 한다면 금융사는 이를 소비자에게 알려야 한다.
설명의무는 금융상품 계약 과정에서 소비자에게 상품을 권유하거나 소비자가 요청하는 경우 상품과 관련한 중요한 사항을 판매자가 알기 쉽게 설명해줘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보험의 경우 보장성 상품의 내용과 보험료, 보험금, 위험보장 범위 등을 자세하게 설명해야 한다. 펀드의 경우 투자성 상품의 내용, 투자에 따른 위험 등을 소비자에게 안내해야 한다.
불공정영업행위 금지는 소비자의 의사에 반해 계약을 강요하거나 대출 과정에서 부당하게 담보를 요구하는 등 행위를 금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이 조항에서는 대출계약이 성립한 날부터 3년 이내 소비자가 대출을 중도 상환할 경우 수수료를 부과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부당권유행위 금지는 판매자가 불확실한 사항에 대해 단정적 판단을 제공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 객관적 근거 없이 다른 금융상품과 비교해 해당 금융상품이 우수하다고 알리거나 투자자가 펀드 가입 의사가 없다고 밝혔음에도 계약 체결을 계속 권유하는 행위 등이 금지된다.
허위·과장광고 금지는 금융회사가 상품에 대해 오인하도록 광고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원금보장이 되지 않는 상품을 마치 보장이 되는 것처럼 광고하거나 대출이자를 일 단위로 표시해 이자가 저렴한 것처럼 오인하게 하는 행위 등이 모두 금지된다.
대출성 상품은 14일 이내, 보장성 상품은 15일 이내, 투자성 상품은 7일 이내 취소가 가능하다. 소비자가 청약철회권을 행사하면 금융사는 소비자에게 원금을 반환해야 한다. 반면 위법계약해지권은 금융사가 금소법을 위반했다면 소비자가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한다. 위법계약해지권은 계약일로부터 5년, 위법 사실을 소비자가 안 날로부터 1년 이내 행사가 가능하다.
▶금소법에 몸 사리는 금융회사 금융회사들은 금소법이 시행되며 잔뜩 몸을 사리고 있다. 이유는 일부 조항을 어길 경우 계약으로 얻은 수입의 최대 50%까지 징벌적 과징금이 부과되기 때문이다. 만약 금융사가 계약과 관련한 중요한 사항을 소비자에게 설명하지 않거나 부당권유 등을 하면 과징금을 물게 된다. 금융회사가 고의 또는 과실로 소비자에게 손해를 발생시키거나 설명의무를 위반해 손해를 발생시키는 경우 손해배상의 책임도 진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설명의무 위반과 관련해 금융회사가 책임이 없음을 입증해야만 한다.
▶금소법 시행 후 혼선 불가피? 금소법 시행 이후 금융사에서 상품 가입을 위해 소요되는 시간이 법 시행 전과 비교해 2배 이상 늘었다는 토로가 들끓고 있다. 다수의 상품 판매가 이뤄지는 은행 창구가 특히 혼선의 정점에 있다.
금융사는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소비자와의 분쟁을 대비해 모든 상담 내역에 대한 녹음을 실시했다. 여기에 손해배상책임과 징벌적 과징금을 피하기 위해 설명서에 기재된 내용을 상담 직원이 모두 읽느라 금융사 직원과 소비자 모두 진이 빠지는 모습이다. 위험성향평가에 소요되는 시간도 길어졌다. 소비자의 위험 성향을 넘어서는 위험도의 상품을 권유하는 것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에 소비자 투자성향분석 절차가 더 길어지게 된 것이다. 매일경제가 펀드 가입을 위해 투자성향분석을 시도해본 결과 향후 자금의 사용 목적, 위험에 대한 태도, 자산 수준 등의 정보를 빠짐없이 제공한 뒤에야 위험 등급을 산정 받을 수 있었다. 금소법에서는 대출성 상품 계약과 관련해 소비자에게 다른 금융상품 계약체결을 강요하는 것을 ‘불공정영업행위’로 간주한다. 은행이 대출을 해주며 펀드 등에 가입을 강요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금융위는 감독 규정을 통해 이 규정을 구체화해 소비자가 대출을 받는 경우 대출 전후 1개월간 월납입액이 대출금의 1%를 넘는 펀드 상품 가입을 금지시켰다. 만약 은행에서 1억원을 대출 받으면 대출 전후 1개월간 월 납입액이 100만원이 넘는 펀드에는 가입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은행들이 당국의 규제를 더 보수적으로 적용하며 대출 1개월 전후로 펀드 등 투자상품 가입을 원천 차단하는 조치가 시행됐다. 이에 소비자들은 ‘선택권의 제약’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금소법 시행 이후 금융사들은 일부 서비스를 중단하고 나섰다. KB국민은행은 리브앱 전용 소액신용대출 상품인 ‘KB리브 간편대출’ 판매를 일시 중단했다. 금소법 시행 이후 대출 고객에게 약정서를 메일 등으로 전송해야 하나 리브앱에는 해당 기능이 없어 시스템 업그레이드를 하기 위해서였다. 하나은행도 인공지능(AI) 로보어드바이저 하이로보 서비스를 일시 중단했다. 금소법 시행에 따라 전산 변경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3월 26일 서울 종로구 KB국민은행 광화문종합금융센터를 방문해 직원으로부터 금융소비자보호법 관련 현황을 듣고 있다.
한 시중은행의 모바일 신용대출 상품은 ‘3분이면 한도 조회가 가능하다’는 문구까지 앞세워 광고를 하고 있다. 여기에 모바일 뱅킹 이용자에게 제공되는 각종 우대금리 등 혜택까지 더해지며 소비자들의 비대면 금융으로 ‘갈아타기’는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금융사 입장에서 리스크가 더 확대된 오프라인 점포를 계속 유지할 이유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은행의 점포 수는 총 6405개로 전년 말(6709개) 대비 304개 감소했다. 이는 2017년 이후 가장 큰 폭의 감소다. 금융당국은 점포폐쇄가 빨라지면 고령층 등 소비자들의 불편이 커지는 만큼 이에 대한 영향평가를 실시한 뒤 점포를 줄일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금소법 등의 영향으로 은행들의 ‘점포 다이어트’는 계속될 전망이다.
▶대책 마련 나선 금융당국 금소법에 대한 잡음이 커지자 금융당국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금융위는 지난 15일 금소법 시행 상황반 제1차 회의를 개최했다. 금소법 조기 안착을 위해 업계의 협조가 필수적인 만큼 소통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금소법 시행상황반은 금융위 사무처장을 반장으로 두고 3개 분과로 구성됐다. 분과는 ‘애로사항 해소분과’ ‘가이드라인분과’ ‘모니터링·교육분과’ 등이다.
‘애로사항 해소분과’는 애로사항 신속처리 시스템을 통해 접수된 법령해석과 건의사항 등을 5일 이내 회신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지난 14일 기준 총 68건의 법령해석과 건의사항이 접수됐고, 19건이 처리 완료됐다.
‘가이드라인 분과’에서는 현장에서 소비자 불편이 발생할 수 있는 5개 핵심 영업규제와 관련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계획이다. 5대 핵심 영업규제는 ‘투자자 성향평가 효율성 제고’ ‘광고심의’ ‘투자성 상품 위험등급 기준’ ‘설명 효율화 위한 상품설명서 및 핵심설명서 작성방법’ ‘표준내부통제기준’ 등이다. 투자자성향 평가와 설명의무 강화 등으로 소비자가 금융서비스를 이용하는 데 시간이 길어진 불편을 줄이겠다는 계획이다. 또 ‘모니터링·교육 분과’에서는 협회를 중심으로 금소법 이행 상황을 점검하고 금융회사와 소비자 등을 대상으로 교육 홍보를 실시할 예정이다.
금융당국은 소비자가 오프라인에서 서비스를 받는 시간 소요를 줄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 금융위가 배포한 ‘금소법상 금융 상품 권유·계약과 관련한 체크리스트’에 따르면 금융사는 과거 거래해오던 소비자가 신규 거래를 할 때 기존에 제공받은 정보와 적합성 판단 기준에 큰 변동이 없다면 평가를 간소화할 수 있다고 밝혔다. 또 설명과 관련해서도 구두 방식 외 동영상 등 다양한 매체의 활용을 허가하겠다는 방침을 내놓았다.
[김유신 매일경제 금융부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28호 (2021년 5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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