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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들어가던 주상복합 줄줄이 신고가 왜? 가격 매력에 상품성 좋아져 “옛 영광 다시”
입력 : 2020.10.07 16: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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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주상복합의 효시(嚆矢)는 도곡동 타워팰리스로 평가된다. 물론 그 전에도 주상복합의 존재 자체가 없지는 않았다. 상업지를 중심으로 저층에 근린상가시설을 배치하고 주거시설을 그 위에 고층으로 올려 ‘원스톱’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건축물이 서울 곳곳에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2008년 이후 몰아친 금융위기는 주상복합에 유리했던 호재를 상당수 말살시켰다. 현금흐름이 막힌 회사들이 속속 도산하면서 타워팰리스를 비롯한 도곡동 고가 주상복합을 소유했던 사업가들이 넘어지는 사태가 나왔다. 일부 집은 경매로 넘어가기도 했다. 2010년을 전후로 반포에서 잇달아 재건축 사업이 성공한 것은 도곡동 주상복합 등에 칼을 꽂는 것이나 진배없었다. 반포자이, 반포래미안퍼스티지를 축으로 반포의 오래된 아파트들이 잇달아 신축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당시 반포자이 안에 들어가 화제를 끌었던 ‘어린이 카약장’은 주거시설을 선호하는 척도가 수직에서 수평으로 옮겨가는 하나의 신호탄으로 불릴 만했다.
주상복합의 최대 장점은 엘리베이터만 타면 모든 편의시설을 자유자재로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것이 병원이든 레스토랑이든 마트 등 건물 안에서 웬만한 건 한번에 다 수요를 충족할 수 있었다. 하지만 넓은 대지를 기반으로 집 앞을 나서면 공원처럼 아름다운 뷰와 맞닥뜨리는 것만큼은 주상복합이 채워줄 수 없는 욕구였다. 변해버린 사람들의 수요는 이제 내 집 앞이 공원 같은 쾌적함까지 선사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게다가 이 무렵 지어진 아파트는 커뮤니티 시설을 최신식으로 지어 주상복합에나 들어가던 골프연습장을 비롯한 편의시설을 빼곡히 넣어놓고 있었다. 주상복합의 최대 장점이 희석되고 일반 신축 아파트의 장점이 극대화되면서 도곡동 주상복합의 아성은 무너지고 반포 신축의 급부상으로 부촌의 주도권이 넘어가게 된 것이다.
하지만 가파르게 오른 강남 부동산 시세, 여기에 다주택자를 징벌적 세금으로 응징하는 부동산 규제가 겹치면서 최근 들어 주상복합아파트 시세가 모처럼 반등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다주택자 세금이 지나치게 높아 ‘똘똘한 한 채’ 선호현상이 본격화되면서 입지만큼은 알짜인 주상복합이 대안으로 급부상하는 것이다. 강남, 목동 등 고급 주상복합들은 시세가 저 멀리 점프한 주변 아파트 단지와 갭 메우기 현상까지 나오면서 잇달아 신고가 랠리를 펼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주상복합의 대명사 타워팰리스가 주도하고 있다. 지난 7월 타워팰리스 1~3차는 잇달아 신고가 거래가 나왔다. 타워팰리스 1차 전용면적 84.16㎡는 지난 7월 22억원(33층)에 거래됐다. 직전 거래보다 3억5000만원 오른 가격이다. 같은 달 타워팰리스 3차 전용 235㎡도 54억2500만원에 거래됐다. 직전 거래(2006년, 43억2000만원)보다 11억원이 넘게 뛰었다. 물론 11년의 시차는 있지만 눌려있던 가격이 10억원 넘게 점프할 정도로 실수요가 탄탄했다는 뜻이다. 서초구 서초동 ‘아크로비스타’ 전용 174㎡는 지난 6월 22억원에 거래된 뒤 지난 7월 27억5000만원에 실거래가 됐다. 한 달 만에 5억원 이상 실거래가가 뛴 셈이다. 이 아파트는 과거 삼풍백화점이 무너진 자리에 들어선 주상복합이다. 인근에 있는 반포래미안아이파크, 반포리체 등이 시세 고공행진을 펼칠 때 상대적으로 소외됐었지만 최근 들어 급격히 시세 분출을 하는 분위기다.
목동 등에 자리 잡은 주상복합 역시 신고가 랠리를 펼치고 있다. 목동 현대하이페리온 전용면적 154㎡는 7월 24억원에 거래돼 신고가 기록을 썼다. 목동 ‘트라팰리스 이스턴에비뉴’ 전용 177㎡도 같은 달 29억4500만원에 거래됐다. 한 달 전(26억8000만원)보다 2억원 넘게 올랐다. 현대하이페리온 2차 전용 119㎡도 과거보다 높은 가격에 손바뀜되고 있다.
신흥 부촌으로 불리는 성수동 갤러리아포레 전용 167㎡는 지난 7월 32억4000만원에 신고가로 거래됐다. 직전 거래(6월·31억원)보다 1억4000만원 올랐다.
시장에선 ‘똘똘한 한 채’ 현상이 심화되는 가운데 학군이나 교통 등에서 빠질 게 없는 주상복합 가치가 재평가받고 있다고 분석한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된 것도 ‘주상복합의 재발견’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는 분석이다. 집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주상복합의 장점인 생활편리성, 역세권, 편의시설 등의 가치가 올라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분위기는 강남, 목동 , 성수 등을 넘어 인접지역으로도 확산되는 분위기다. 서울 성동구 왕십리센트라스 전용 59.99㎡ 역시 지난 7월 11억5000만원에 거래되며 역대 최고 거래가를 기록했다.마포구 펜트라우스 전용 84.95㎡도 지난 7월 12억6000만원에 거래되며 신고가를 기록했다. 작년 5월 같은 평형이 10억3500만원에 거래된 것과 비교해 1년 새 2억원 이상 오른 셈이다. 오랜 기간 미분양으로 어려움을 겪던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 주상복합 일산두산위브더제니스 전용 59㎡도 지난달 4억5600만원에 거래되며 신고가 기록을 썼다. 2018년 5월 입주한 수원 영통구 하동 힐스테이트광교도 마찬가지다. 지난 8월 전용면적 97.12㎡짜리가 역대 최고가 17억3000만원을 찍었다.
여기에 정부가 재건축 규제 기조를 이어가면서 재건축 기대감이 높지 않은 것도 주상복합 인기 부활에 한몫을 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재건축 아파트를 사서 초과이익환수제 등 각종 1회성 비용을 내고 나면 별로 남는 게 없을 수 있다는 불안감이 시장에 확산된 것이다. 어차피 구축아파트를 사도 재건축이 잘 안 되면 살기라도 편한 주상복합에서 살겠다는 수요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시장이 가장 선호하는 신축아파트는 이미 가격이 너무 올라 매수가 부담스러운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서초구 반포자이아파트의 어린이 미니 카약장
예를 들어 지난 8월 서울과 경기 지역의 오피스텔 가격은 0.07% 상승했다. 전용면적별로 보면 서울 오피스텔의 전용 60㎡ 초과 85㎡ 이하와 85㎡ 초과가 0.19% 올랐다. 경기에서도 전용 60㎡ 초과 85㎡ 이하 오피스텔이 0.38%, 85㎡ 초과 평형이 0.19% 상승했다. 아파트값이 상승세를 타면서 대체수요로 주거형 오피스텔이 떠오르고 있는 셈이다.
아파텔 인기가 높은 것은 규제 반사이익이다. 정부 규제가 아파트 등 주택 시장으로 집중됐기 때문이다. 여기에 아파트 시세가 급반등을 펼치면서 미처 아파트를 구매하지 못한 계층에서 ‘꿩 대신 닭’으로 아파텔을 매수하자는 심리가 몰렸다. 게다가 아파텔은 청약 시장에서 주택으로 간주하지 않기 때문에 청약 시 무주택 지위를 유지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또 아파텔은 주상복합과 같이 상업지에 주로 지어지기 때문에 지하철 역사가 가깝고 편의시설이 아파트 주위에 자리 잡고 있다. 실거주 위주로 집을 고르는 젊은 계층 입장에서 아파텔은 구축 아파트를 대체할 수 있는 효과적인 대안이 되고 있다. 고양 덕양구 ‘e편한세상 시티 삼송2차’ 전용 82㎡는 지난 8월 6억4500만원에 손바뀜해 올 1월 실거래가(4억4000만~4억4700만원)보다 2억원 가량 오른 역대 최고가를 쓴 바 있다.
청약 시장에서도 아파텔 인기는 고공행진 중이다. 부산에서도 성공적으로 청약을 마감한 단지가 속속 나오고 있다. 9월 동부건설이 부산 해운대구에 공급하는 ‘센텀 센트레빌 플래비뉴’는 청약 접수 결과 323실 모집에 총 1만4102건이 접수해 평균 경쟁률 43.7대 1로 청약을 마감했다. 최고 경쟁률은 전용면적 57㎡A 타입과 전용면적 57㎡B으로 구성된 1군이었다. 114실 모집에 5951명이 접수해 52.2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재송동에 위치한 이 단지는 지하 4층·지상 20층, 3개동, 전용면적 57~75㎡, 총 323실 규모의 주거형 오피스텔이다. 원룸 형태가 아닌 최소 3인 가구가 살 수 있는 아파텔이라 볼 수 있다. 단지 지하에 개별창고가 마련돼 있고 사물인터넷(IoT) 홈서비스, 음성인식 인공지능(AI) 시스템, 미세먼지 차단형 환기 시스템, 원패스 시스템 등 첨단 스마트시스템도 들어가 있다.
이 단지의 경우 부산 지하철 재송역 2번 출구가 바로 앞에 있다. 센텀역·벡스코역까지 쉽게 접근이 가능하다. 아파트 못지않은 주거서비스와 커뮤니티 시설도 장점으로 꼽힌다. 단지 내에는 라이브러리 라운지와 플래비뉴 키친이 조성된다. 또한 전문 주거 서비스 운영·관리 전문업체와 손을 잡아 가사 및 보육 도우미 파견, 카쉐어링 서비스 등 특화 서비스도 실시될 계획이다. 아예 설계 당시부터 어린 아이를 동반한 젊은 부부 수요를 잡겠다는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아파텔 특화설계는 올해 들어 꾸준히 새롭게 시도되고 있다. 지난 6월 울산 중구에서 분양한 ‘울산 태화강 아이파크’ 오피스텔은 단지 내에 옥상공원을 비롯해 피트니스센터, 런드리카페(코인세탁실+라운지카페) 등의 커뮤니티 시설을 대거 넣었다. 단지는 377가구 모집에 1만1971건이 접수돼 평균 31.75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경기도 의정부시 ‘힐스테이트 의정부역’ 오피스텔 전용면적 84㎡에는 오피스텔에서 보기 드문 4베이(bay) 판상형 구조가 들어갔다. 사실상 아파트와 차이가 전혀 없는 평면이 들어간 것이다.
[홍장원 매일경제 부동산부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21호 (2020년 10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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