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로나에 무산된 HDC현산의 아시아나 인수, 채권단 관리 아래 자회사 매각·구조조정 수순

    입력 : 2020.10.05 17:39:20

  • 아시아나항공이 다시 허공에 붕 떴다. 지난해 12월 매각 측인 모회사 금호산업과 인수 측인 HDC현대산업개발·미래에셋대우 컨소시엄이 인수·합병(M&A)을 위한 주식매매계약(SPA)을 맺었지만 그로부터 약 9개월 만에 도달한 결론은 ‘노딜’이었다. 아시아나항공을 품어 재계 10위권으로 도약하려던 HDC현산에게도, 아시아나항공을 판 대금으로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려던 금호산업에도 만만찮은 벽이 솟아오른 셈이다.

    누가 계약 결렬의 책임을 져야 하는지 지난한 법적 공방을 예고하고 있는 가운데, 정부는 우선 제2국적사인 아시아나항공을 살리기 위해 기간산업안정기금 2조4000억원을 긴급 투입했다. 2014년 이후 6년 만에 또다시 국책은행과 재무구조개선약정을 맺은 아시아나항공의 앞에도 ‘뼈를 깎는’ 구조조정 절차가 기다리고 있다.

    사진설명
    ▶모빌리티 진출 재도약 노린 HDC현산, 1조원 더 질러 쓴 뒤 코로나19 맞닥뜨려 HDC현산이 아시아나항공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을 때만 해도 이해관계자들은 장밋빛 미래를 그렸다. HDC현산은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2조5000억원을 걸었다.

    정몽규 HDC현산 회장은 본입찰을 추진하면서 실무진에게 “그룹 재도약을 위해 반드시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해야 한다”고 지시했을 정도로 이 M&A에 적극적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지난해 11월엔 “HDC현산은 이제 항공사뿐 아니라 모빌리티 그룹으로 한걸음 도약하겠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정 회장의 부친인 고 정세영 명예회장이 현대자동차의 ‘포니’ 신화를 일궈냈지만 이후 현대그룹이 분리되면서 경영권이 넘어갔다”며 “아시아나항공 인수는 HDC현산의 사업 다각화뿐 아니라 모빌리티업에 대한 정 회장의 애착, 현대가 내부에서 본인이 갖는 입지를 다지겠다는 의미도 담긴 거래였다”고 평했다.

    그러나 과도한 인수가에 따른 ‘승자의 저주’ 우려는 처음부터 제기됐다. 채권단 등 금융권에서도 “어떻게 감당하려나 싶을 정도”라는 뒷말이 나왔다. HDC현산에 대한 신용등급 평가도 불리해졌다. 아시아나항공 인수 추진 전 ‘A+(안정적)’이던 것이 계약 체결 후 ‘부정적’으로 조정됐다. 신용등급 하향 검토 대상에 올랐다는 의미다.

    결국 우려는 코로나19라는 뜻하지 않은 악재를 만나면서 현실이 됐다. 지난해 12월 M&A 계약이 이뤄진 후 올해 2~3월 본격적으로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항공업황이 큰 타격을 입은 것이다. 여객 운송이 줄어들면서 아시아나항공의 매출은 쪼그라들었고, 안 그래도 부정적이던 재무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됐다. 지난해 말 1387%였던 아시아나항공의 부채비율은 올해 상반기 2291%로 치솟았다.

    이 같은 상황에 대한 어느 채권은행 관계자의 비유는 HDC현산의 난감한 처지를 잘 보여준다. “큰마음 먹고 오래된 저택을 사서 이곳저곳 고쳐서 살 계획이었는데, 계약서 쓴 뒤 물난리가 나 집이 물에 잠긴 꼴”이 됐다는 것이다. 또 다른 관계자도 “코로나19가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데 인수를 강행했다간 대금 2조5000억원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계속해서 돈이 들어갔을 것”이라며 “그룹 재무구조를 위협할 바에 계약 파기가 낫다는 판단을 한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사진설명
    ▶현산의 전면 재검토, 재실사 요구… 산은 ‘단칼에 거절’ 이유는? 매각 과정을 사실상 주도한 산업은행 등 채권단도 HDC현산의 결정을 이해한다는 입장이다. 최대현 산업은행 기업금융 부행장은 9월 11일 계약 결렬을 공식 발표하면서 “HDC현산 측의 결정은 충분히 존중한다”며 “(인수 결정 당시에는) 의지를 갖고 하신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최 부행장은 “인수 절차 진행 과정에서 보여준 모습에서 참 많은 아쉬움이 있었다”고 꼬집었다.

    그의 지적처럼 HDC현산의 아시아나항공 M&A는 여러 차례 삐걱거렸다. 외부에서 본격적인 파열음이 들리기 시작한 건 지난 4월이었다. 인수 작업은 당초 올해 4월 말 인수대금을 모두 납부하면서 마무리되는 게 정상적인 수순이었지만 HDC현산은 일정을 무기한 연기했다. 계획은 금호산업이 보유한 구주 6868만8063주를 3228억원(주당 4700원)에 인수하고, 신주를 제3자 배정 유상증자 방식으로 발행해 2조1772억원 투입하겠다는 것이었다.

    HDC현산은 급기야 6월 9일엔 서면 자료를 통해 “인수 조건에 대한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발표했다. 이때부터 HDC현산과 금호산업·채권단 간 줄다리기가 시작됐다. 산은 등 채권단은 HDC현산에 “진정성을 갖고 직접 만나서 협의하자”고 수차례 요청했다. 최 부행장은 지난 6월 기자간담회에서 “(HDC현산이) 인수 의사를 확정한다면 나머지 제반 조건에 대해서는 코로나19 상황을 충분히 감안해서 검토할 의사가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시장에서도 HDC현산이 인수를 포기하겠다는 것인지, 인수는 하되 가격을 깎는 등의 인수조건 변경을 요구하기 위한 협상 전략을 펴는 것인지 평가가 엇갈렸다.

    결국 6월 26일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과 정몽규 HDC현산 회장 사이의 대면 협상이 성사됐지만 거래에 별다른 진전은 없었다. 결국 금호 측은 7월 14일께 ‘이달 24일까지 거래를 종결해달라’는 통지를 HDC현산에 보냈다. 그런데 현산은 24일에 거래 종결이 아닌 “인수에 필요한 충분한 공식 자료를 제공받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과 함께 ‘12주간의 재실사’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어 8월 12일 서재환 금호산업 사장과 권순호 HDC현산 사장간 대면협상이 성사됐지만 양측의 입장차만 확인한 채 끝이 났다.

    지난해 11월 정몽규 HDC현대산업개발 회장이 아시아나항공 인수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관련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지난해 11월 정몽규 HDC현대산업개발 회장이 아시아나항공 인수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관련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산은의 인수가 조정 등 파격 제안에도 마지막 담판 빈손으로 끝나 사실상 거래 성사 여부를 결정지을 마지막 담판이 같은 달 26일 이뤄졌다. 산업은행 본점에서 이동걸 산은 회장과 정몽규 HDC현산 회장이 다시 회동했다. 이 자리에서 산은 측은 HDC현산의 인수 부담을 줄여주면서도 아시아나항공의 부채비율을 줄일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여러 가능성을 열어놓고 제안한 것으로 전해진다.

    대표적인 제안은 인수가를 사실상 1조5000억원으로 낮춰주는 내용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대신 채권단이 1조5000억원을 아시아나항공에 추가 투입하는 내용도 포함됐다는 전언이다. 예를 들어 채권단이 보유한 아시아나항공 영구채 8000억원어치를 주식으로 전환하지 않겠다는 방안도 제안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자금을 채권단이 돌려받지 않고 아시아나항공 경영이 정상화될 때까지 유보하겠다는 의미다.

    그러나 최종 담판으로부터 일주일 뒤인 9월 2일, 현산은 다시 ‘여전히 재실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채권단에 통보했다. 9개월에 걸쳐 끌어온 거래가 사실상 결렬된 순간이었다. 채권단 관계자는 “인수 의지가 있었다면 계약금 추가 납입이나 일부 유상증자 추진 등 시장 신뢰를 확보하기 위한 조치를 기대했던 것”이라며 “현산의 최종 입장은 인수 의지가 없다는 의사 표시로 이해했다”고 말했다.

    계약 결렬에 따라 HDC현산이 앞서 지급한 계약금(이행보증금) 2500억원을 둘러싼 법적 공방이 예상된다. HDC현산 측은 계약을 맺은 후 아시아나항공의 부채가 급격히 증가한 점 등을 들어 금호산업과 아시아나항공이 성실히 실사 자료요구에 응하지 않았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재실사 요구를 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은 건 채권단과 금호 측이라는 것이다. 반면 채권단과 금호 측은 부채가 늘어난 건 회계 인식 변경 등의 문제일 뿐이고 거래 성사를 위해 인수조건 변경 등의 노력을 다했다는 점을 부각시킬 것으로 보인다.

    사진설명
    ▶채권단 관리하 아시아나항공 종착지는? 구조조정·자회사 매각·대주주 감자 등 채권단은 결국 최종적으로 M&A 무산을 선언하고, 채권단 주도의 아시아나항공 경영 정상화 방안을 발표했다. 가장 먼저 ‘급한 불’을 끄기 위해 기간산업안정기금 2조4000억원이 투입됐다. 아시아나항공 신용등급 하락과 유동성 위기, 이로 인한 고용 불안 등 경제 타격을 막기 위한 조치다. 코로나19 이후 기간산업 지원을 위해 조성된 기금이 첫 투입된 사례가 됐다.

    이 방안은 11일 오후 3시 정부서울청사에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열린 산업경쟁력 강화 관계장관회의(산경장)에서 보고된 직후 기안기금 심의회 의결을 통해 즉각 집행됐다. 기안기금 심의회는 아시아나항공의 실제 유동성 부족 자금 3000억원에 더해 매각 무산으로 인한 신용등급 강등이 현실화할 경우에 대비해 자금 2조1000억원을 더 투입했다. 심의회 측은 “기금 지원을 통해 신용등급이 유지된다면 실제 대출 규모는 크게 감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원 자금 중 20%인 4800억원은 영구전환사채(CB) 방식으로 지원됐다. 아시아나항공이 정상화된 후 정부와 이익 공유를 하기 위한 차원이다. 또 기금 지원 조건에 따라 아시아나항공은 향후 6개월간 고용직원 수를 최소 90%로 유지해야 한다. 지원 기간 동안 고액연봉자에 대한 보수 인상이나 이익 배당, 자회사·모회사에 대한 우회 지원도 금지된다.

    이렇게 유동성 위기의 ‘급한 불’은 끈 만큼 당장 기업 존립을 위협할 만한 문제는 없을 거란 게 채권단의 전망이다. 최 부행장은 “2조4000억원의 투입 자금은 외부 전문기관애서 보수적으로 추산한 금액”이라며 “상당 기간 추가 지원이 필요하지 않겠지만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 유동성을 단계별로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또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 등에 대해서는 “아시아나항공은 이미 올해 초부터 임직원 순환 휴직과 급여 반납·삭감 같은 인건비 절감 등의 자구 노력을 최대한 이행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채권단은 재매각 추진을 염두에 두고 기업 정상화 작업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우선 기업 가치 제고 차원의 경영컨설팅이 진행된다. 최 부행장은 “컨설팅 결과에 따라 노선 조정, 내부 원가 절감, 조직 개편 등의 자구 계획이 나올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영컨설팅에선 또 에어서울·에어부산 등 아시아나항공이 보유한 자회사 분리 매각도 검토된다. 기안기금 투입 조건에 따라 지원 기간 동안 모회사·계열사에 대한 우회 지원이 금지되는 만큼 몸집 줄이기가 필수적이란 관측이 나온다. 본격적으로 채권단이 아시아나항공을 정상화하기 위해선 최대주주 지분을 통해 경영권을 확보해야 한다. 현재 채권단이 보유한 8000억원의 영구채를 주식으로 전환하면 지분율이 36.99%에 달해 금호산업(30.77%), 금호석유화학(11%)을 제치고 최대주주가 될 수 있다.

    기존 대주주에 대한 무상감자 절차도 맞물려 진행될 가능성이 거론된다. 기존 주주에 대한 무상감자는 부채비율 감축 등을 위한 기업 구조조정 방식의 하나다. 대주주의 부실경영 책임과 주주 고통 분담 원칙 등도 명분이다. 다만 이해관계가 복잡한 만큼 금호 측의 반발도 예상된다.

    이 같은 방안이 거론되는 데 대해 최 부행장은 “감자 여부는 올해 연말 회사의 재무 상태와 채권단의 경영권 지분 확보 여부, M&A 재추진 여부 등에 따라 종합적으로 검토할 사안”이라며 “현 단계에서 언급하긴 부적절하다”고 말을 아꼈다.

    [정주원 매일경제 금융부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21호 (2020년 10월)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매일경제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