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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전환사채 발행량 역대 최대… 국내 시장은? 지분 줄어드는 오너들 높은 금리에도 대출 선호
입력 : 2020.07.01 15:2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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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미국 전환사채(CB) 시장에 213억달러(약 25조8500억원)의 발행이 몰리면서 역대 최대 월별 발행규모를 기록했다. 지난 3~4월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봉쇄조치로 타격을 입은 기업들이 긴급히 자금 조달에 나선 탓이다. 이미 지난 1~4월 250억달러의 CB가 발행되면서 12년 만에 최대 수준을 기록했는데 5월 들어 더욱 가속화됐다. 이에 올해 들어 5월 말까지 미국 시장의 CB 발행규모는 총 463억달러에 달해 벌써 지난 한 해 발행량(530억달러)에 근접한 상태다. 영국의 글로벌 금융서비스 업체 ‘바클리즈(Barclays)’의 주식 연계 및 하이브리드 상품 담당자인 스티븐 핼퍼린(Steven Halperin)은 지난 4월 말 이미 2020년 연 CB 발행량이 750억달러를 돌파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는 2008년 금융위기 당시 860억달러의 CB가 발행됐던 이후 최고 수준이다.
전환사채(CB)는 오늘날 뉴욕센트럴철도가 된 철도회사가 1874년 미국의 첫 철도사업을 위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30년 만기 전환사채를 발행한 것을 유래로 한다. 당시 7%의 금리로 1000달러의 자금을 조달했는데 이는 오늘날 물가로 10~20억달러에 해당한다. 이후 주로 성장 잠재력이 높지만 크레디트 수준이 낮은 기업들이 저금리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한 방법으로 CB를 활용해왔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일시적인 재무위기를 맞은 기업들을 위한 자금조달 창구로도 안성맞춤이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향후 주가가 전환가격보다 높을 때 주식 전환을 통한 차익을 노릴 수 있다는 것이 매력이다. 이 때문에 주가 상승에 대한 기대가 높을 때 전환사채에 대한 수요도 커지는 경향이 있다.
특히 코로나19로 타격을 입은 항공·여행·크루즈, 에너지, 승차공유 업계에서 대규모 자금조달이 이어졌다. 사우스웨스트 항공은 올해 들어 23억1300만달러 규모의 CB를 발행했고 카니발(20억달러), 파이오니어 내추럴리소스(13억2300만달러), 노르웨이크루즈라인홀딩스(8억6300만달러), 부킹홀딩스(7억5000만달러), 리프트(7억4800만달러) 등이 뒤를 이었다.
사우스웨스트 항공이 CB를 발행한 것은 지난 4월 말로 시가총액은 160억달러에 불과했다. 당시 주가가 2월 초 전 고점 대비 50% 수준으로 폭락했던 것을 감안하더라도 향후 주식 전환이 이루어질 경우 상당한 지분이 희석되는 셈이다. 전환비율은 75%로 투자자는 향후 17억5000만달러어치를 사우스웨스트 항공의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게 된다.
사우스웨스트 항공은 이 같은 CB 발행을 통해 1.25%의 저렴한 금리로 막대한 자금을 차입할 수 있었다. 사우스웨스트 항공은 지난 3월 팬데믹 선언으로 매출이 급감하면서 신용등급(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기준)이 BBB+에서 BBB로 강등된 바 있다. 당시 BBB 등급의 회사채 금리가 3.72%에 달했던 것을 고려하면 사우스웨스트 항공은 CB 발행을 통해 이자 비용을 3분의 1수준으로 아낀 셈이다.
크루즈선 운영사인 카니발은 지난 4월 CB발행을 통해 5.75%의 금리로 20억달러를 조달했다. 이는 카니발이 이미 보유하고 있는 부채의 이자비용으로 지불하고 있는 11.5%의 절반에 해당한다.
한편 국내에서도 코로나19에 따른 회사채 스프레드 확대와 주가 폭락이 발생했지만 CB 발행은 미국만큼 활발하지 않은 상황이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 1~5월 국내 CB 발행량은 총 1조9903억원으로 전년 동기(1조8212억원) 대비 1700억원가량 늘어난 데 그쳤다.
올 들어 미국에서 463억달러(약 56조5800억원)가 발행된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적은 편이다.
특히 연내 같은 속도로 CB가 발행된다고 가정했을 때 미국의 올해 CB 발행량 연 환산 금액은 작년 발행량의 두 배에 달하는 반면 국내 CB 발행 예상 증가율은 4%에 불과하다. 국내 기업들이 코로나19에 따른 실적 감소에 대응하기 위한 자금 조달 수단으로 CB를 선택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는 뜻이다. 반면 국내에서는 기업대출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코로나19 사태가 본격화된 지난 3~5월 기업대출 잔액이 무려 62조6000억원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대출 잔액은 3월 18조7000억원, 4월 27조9000억원, 5월 16조원이 늘어 지난 2009년 6월 한국은행이 집계를 시작한 이후 역대 최대 월별 증가폭 1~3위를 차지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3~5월) 기업 대출 증가액 13조7000억원과 비교하면 대출 증가폭이 4.6배에 달한다. 회사채 시장이 경색되자 국내 기업들이 은행 대출을 통해 자금을 마련한 것으로 풀이된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국내에는 오너 경영 체제의 기업이 많은데 이런 기업들은 지분율 희석을 꺼리는 경우가 많아 CB를 선호하지 않는다”며 “반면 미국 등 해외 기업은 전문 경영인 체제가 활성화되어 있다 보니 훨씬 낮은 금리에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CB 발행을 안 할 이유가 없다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문가영 매일경제 증권부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18호 (2020년 7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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