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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환경 악화에 손 맞잡은 조용병·김정태 회장, 신한·하나 동남아 등 해외진출 시 출혈경쟁 회피
입력 : 2020.07.01 10:2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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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태 하나금융 회장과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이 맞손을 잡았다. 초저금리 시대에 진입하면서 갈수록 수익성이 하락하고 있는 가운데 해외 사업에서라도 경쟁을 피하고 협력을 통해 공동 전선을 펴겠다는 절박감이 두 금융지주가 전략적 동맹을 맺는 데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국내 대표 금융그룹인 신한금융과 하나금융이 해외 사업을 공동으로 진행하기 위한 양해각서(MOU)를 지난 5월 25일 체결했다. 국내 자산 규모 1·3위 금융그룹이 공동으로 해외 사업에 나서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어서 주목된다. 첫 번째 공동사업은 두 금융그룹이 높은 성장률을 보인 신남방국가(인도+아세안 10개국)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날 MOU 협약식에 참석한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은 “단순한 선의의 경쟁 관계를 극복하고 글로벌 협력 관계를 구축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도 “불확실한 글로벌 시장의 새로운 돌파구를 만들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화답했다.
하나금융그룹과 신한금융그룹이 지난 5월 25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글로벌 사업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왼쪽부터 지성규 하나은행장,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 진옥동 신한은행장.
두 회장은 이날 활짝 웃으며 MOU를 체결했지만 그동안 누구보다 속앓이가 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제로금리와 코로나19, 지속적인 경기 침체와 날카로운 금융 규제라는 ‘4중고’로 인해 수익성 찾기에 골몰해왔기 때문이다.
신한금융과 하나금융이 국내 금융그룹 간 첫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며 ‘글로벌 동맹’을 맺은 것은 그만큼 금융 환경이 악화됐다는 반증이다. 두 회장은 코로나19 위기 탈출을 위한 돌파구를 국외 사업에서 찾겠다는 의지가 서로 통했다.
초저금리로 인해 국내 영업 환경이 악화됨에 따라 국외에서 승부를 보겠다는 두 금융그룹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고 MOU를 통해 향후 글로벌 M&A에서 국내 금융기관 간 출혈경쟁을 피하겠다는 속내도 포함돼 있다. 특히 김 하나금융 회장과 조 신한금융 회장을 비롯한 최고경영자(CEO) 간 뿌리 깊은 인연과 긴밀한 교류는 이번 MOU를 성사시킨 계기로 작용했다.
두 금융그룹은 MOU를 맺고 ▲외국 진출 노하우 공유 ▲이미 투자한 국가 또는 기업에 대한 지분 교환 ▲아직 진출하지 않은 국가에 합작 법인 설립 ▲외국 기업 공동 인수 등 다양한 형태로 협업을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앞서 두 금융그룹은 국외 실적을 크게 늘리겠다는 중·장기 목표를 세운 바 있다. 그러나 혼자로는 힘에 부친다는 사실 때문에 전격적으로 두 그룹이 동맹에 나선 것이다.
신한금융은 올해 그룹 총수익 중 20%를 글로벌에서 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지난해 말 글로벌 순이익은 3979억원으로, 전체 순익(3조4030억원) 중 11.7%에 그쳤다. 올해 1분기 기준으론 9.5% 수준이다. 2017년 이 비중이 7.0%에 불과했던 점을 고려하면 꾸준히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나금융 역시 2025년까지 전체 순이익 중 글로벌 비중을 40%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올해 1분기 기준 그룹 전체 순이익 대비 글로벌 순이익은 17.2%로 목표 중 절반가량을 달성했다.
이 같은 국외 실적은 대형 M&A에서 판가름난다. 하나금융 순이익은 작년 1분기 520억원에서 올 1분기에 1133억원으로 2배가량 뛰었다. 주요 이유 중 하나가 올 1분기부터 베트남 1위 은행인 베트남투자개발은행(BIDV) 지분법 이익이 반영됐기 때문이다. 작년 11월 하나은행은 BIDV 지분 6억3000만 주를 1조원에 인수했다. 그러나 이 지분을 인수할 때에도 국내 금융사끼리 치열한 경쟁이 펼쳐진 것으로 전해졌다. 국내 금융사의 글로벌 진출은 시장 포화와 초저금리로 인해 수익성이 떨어지는 현실에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지만 은행들이 같은 나라에 한꺼번에 진출한 탓에 과당경쟁을 벌인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금융사끼리 과당경쟁만 피해도 M&A 가격을 낮춰 실제 수익이 더 늘어날 수 있다”며 “신한과 하나금융 간 MOU는 신남방 등 국외에서 사업 기회를 찾는 국내 4대 금융지주사 모두에 이득”이라고 말했다.
이른바 ‘신남방’으로 불리는 동남아시아 금융시장은 코로나19 사태가 불어닥치기 직전까지 국내 금융그룹의 격전지였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은행들의 국외 지역 점포는 195곳이다. 이 가운데 69.2%(135곳)는 아시아 지역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베트남에는 국내 은행 점포 19곳이 몰렸다. 중국·인도(16개), 미얀마(14개), 홍콩(11개), 캄보디아(10개) 등 순서로 많았다. 은행 등 금융그룹 기준으로 보면 인도네시아, 베트남, 미얀마, 캄보디아 등에서 우리 금융그룹끼리 경쟁이 치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도네시아에는 신한·하나금융이 각각 43개, 72개 지점(은행, 캐피털 등)을 거느리고 있다. 우리금융은 2014년 현지 소다라은행을 인수했고 현재 157개 영업점을 운영하고 있다.
이들 신남방 지역에서 점포를 내며 현지화 전략을 펴던 국내 금융그룹은 최근 현지 금융사 M&A 혹은 대규모 지분 인수 등 ‘통 큰 전략’으로 진화했다. 비슷한 자금력과 전략을 쓰다 보니 국내 금융사끼리 ‘출혈경쟁’이라는 부작용까지 나타나고 있다.
특히 베트남 지역 상업은행 지분 인수나 캄보디아 대출기관 인수 때 여러 금융그룹이 경합하다보니 몸값이 올라 비싼 가격에 인수했다는 뒷말도 나왔다.
글로벌 영업 전략을 맡고 있는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통상 금융사 M&A 때에는 순자산가치(PBR) 1배 이내에서 진행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동남아 금융사 인수에 PBR를 2배 이상 주고 샀다는 얘기도 나올 정도로 한때 과열 양상이 나타나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미얀마나 태국 등에서는 국내 금융사가 입지를 다지지 못해 베트남, 캄보디아 등 일부 지역에 몰리다 보니 이 같은 부작용이 나타났다는 분석도 있다. 올 초 미얀마 정부는 해외 은행 현지법인 설립을 허가해주는 은행업 개방에 나섰다. 지난 2014년 1차, 2016년 2차에 이어 세 번째다. 미얀마는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300달러에 불과하고 금융 시스템도 낙후됐지만 예대율이 5%에 달해 성장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18년 GDP 증가율이 6.8%를 기록했고 인구도 5200만 명이 넘어 매력적인 시장이라는 분석이다.
국내 금융사들이 ‘제2의 베트남’으로 주목했을 정도다. 2014년 1차 은행업 개방 때에 미얀마 금융당국은 한국을 철저히 외면했다. 대신 일본 싱가포르 중국 말레이시아 태국 호주 등 6개국 9개 은행에 미얀마 현지지점 설립을 허가했다. 국민 신한 기업은행이 도전했지만 신뢰도 면에서 미얀마 정부를 설득하지 못했다. 허가를 얻은 국가는 1990년대 초 미얀마에 진출해 꾸준히 신뢰 관계를 구축한 곳들이다. 반면 국내 금융사는 1997년 외환위기를 전후해 미얀마 사무소를 전부 철수시켰다. 예비인가 결과 발표 후 국내 금융계는 ‘태국이나 말레이시아만도 못하다’는 자조 섞인 얘기마저 나왔다.
2차 개방 때 신한은행이 문턱을 넘었지만 2년 전에 진출한 외국계 은행 9곳은 이미 편리한 송금과 저렴한 이체수수료, 디지털뱅킹 등으로 미얀마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은 뒤였다. 미얀마 금융시장은 현지 은행만 28곳, 여기에 외국계 은행 13곳이 무한 경쟁하는 전쟁터로 바뀐 지 오래다.
태국 또한 국내 금융사들에는 접근조차 쉽지 않다. 외환위기 당시 태국 정부 만류에도 불구하고 현지 지점을 대거 철수한 뒤 미운 털이 단단히 박혔기 때문이다. 수차례 문을 두드린 끝에 2013년에 KDB산업은행이 겨우 사무소를 낼 수 있었다.
앞서 태국 은행연합회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한 김태영 은행연합회장은 “은행 인·허가권을 갖고 있는 태국 중앙은행이 한국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다”며 “민간과 정부가 공동으로 노력하면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들 지역에서 별다른 성과를 못낸 국내 금융지주들은 캄보디아로 몰렸다. 2014년 우리은행이 캄보디아 현지 소액여신금융사를 인수하며 시장에 진출했을 때 현지서 영업하던 곳은 신한은행과 KB국민은행 단 2곳이었다. 하지만 최근 장사가 된다는 소문에 은행을 포함해 증권사, 카드사 등 국내 금융사가 너도나도 뛰어들면서 현지 진출 금융사가 17곳으로 늘었다.
업계 관계자는 “캄보디아 인·허가는 예상이 불가능할 정도로 지지부진한데 국내 금융사끼리 경쟁하면서 중앙은행의 콧대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며 “인·허가를 단축하려면 웃돈을 줘야 하는 상황이고 그 금액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한 건 주의’ 형태의 국내 금융사 진출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도 높다. 작년 말 동남아시아 여신금융회사 인수를 추진 중이던 A금융사는 이사회에서 사외이사들의 거센 질타를 받았다고 한다. ‘연체율이 두 자릿수에 달하는데 사후관리에 대한 대책이 있느냐’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다.
국내는 연체가 나더라도 이러한 채권을 적절하게 계열 추심회사에 넘겨 손실 규모를 줄여왔다. 반면 신남방 지역은 이러한 추심관리에 대한 대책이 전무하다. 신용정보가 부족해 리스크 관리가 어려운데 ‘남들이 하니까 나도’라는 방식의 인수 경쟁에만 공을 들이고 있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에 진출한 국내 금융사들이 사후관리에 대한 대책이 없어 채권추심 등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문제점을 알면서도 신남방에서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글로벌 동맹으로 발전
KB국민·우리금융을 포함한 4대 금융지주가 모두 국외 시장 강화를 선언했는데 신한·하나금융만 전략적 동맹을 맺은 것에도 관심이 쏠린다.
여기엔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과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 지성규 하나은행장과 진옥동 신한은행장 간 특별한 인연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먼저 김 회장과 조 회장은 과거 한 지점에서 일한 선후배 사이로 유명하다. 1988년 신한은행 영등포지점에서 김 회장은 당좌 담당 수석대리로 일했고, 조 회장은 외환 담당 대리였다. 두 사람은 1년여 동안 함께 근무했고 그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지며 두 금융그룹 간 MOU까지 연결된 것이다.
실무적으로는 은행권에서 대표적 ‘국제통’으로 꼽히는 지성규 하나은행장과 진옥동 신한은행장 간 물밑 교류가 있었다. 지 행장은 중국에서 15년간, 진 행장은 일본에서 18년간 근무한 경력이 있어 ‘글로벌 경험’이라는 공통점을 지닌 데다 지난해 3월 같은 시기에 취임했다.
업계 관계자는 “두 은행장은 공통점이 많아 사석에서도 자유롭게 은행업에 대한 의견을 나눴고 작년 말에 ‘글로벌 영업이 지금과 같은 출혈경쟁 형태로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한 것”이라고 전했다. 이후 6개월여에 걸친 논의가 그룹 간 협약으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이번 MOU를 통해 두 금융그룹은 일단 국외 진출에서 현지 당국과 소통, 해당 국가 규제 준수가 얽힌 컴플라이언스 문제에서 힘을 합칠 것으로 보인다.
신한은행은 28년째 베트남에 진출해 있을 뿐 아니라 2009년 국내 처음으로 베트남 현지법인(신한베트남)을 설립하면서 현재 외국계 은행 1위로 거듭나 있다. 그동안 쌓아놓은 현지 네트워크와 노하우를 하나금융 측과 공유하고, 현지 규제 등에 공동으로 대응할 수 있다. 반대로 인도네시아에서는 하나은행이 KEB외환은행 시절부터 오랫동안 영업해온 반면 신한은행은 2016년 소규모 은행을 인수하며 이제 막 진출한 상황이라 하나은행 측 노하우를 전수받을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다.
[문일호 매일경제 금융부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18호 (2020년 7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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