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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공시가 확정에 세금폭탄 논란 확산, 종부세 대상자 늘고 공시가 시세 역전 현상까지
입력 : 2020.05.28 15:2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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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전구 공동주택 1383가구 공시가격이 확정됐다. 전국 아파트 등 공공주택은 평균 6%가량 상승하고, 시가 9억원 이상 주택은 20% 넘게 공시가가 뛰었다. 종합부동산세를 비롯해 각종 세금의 기준이 되는 공시가가 인상되면서 주택소유자들 사이에서는 “코로나19 경기 충격으로 살림살이가 팍팍해지고 집값은 떨어지고 있는데 세금 부담은 늘었다”며 한숨이 커지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20년 공동주택 전국 평균상승률은 5.98%다. 그러나 서울, 고가주택은 공시가가 10~20%가량 상승했다. 지역별로 보면 서울이 14.73% 올라 13년 만의 최대 인상폭을 기록했다. 반면 강원과 경북 등 9개 시·도는 공시지가가 지난해보다 떨어졌다.서울에서는 강남이 25.53%로 가장 많이 올랐고, 서초 22.56%, 송파 18.41% 양천 18.36% 순으로 상승폭이 컸다.
가격별로 보면 고가주택일수록 인상폭이 컸다. 시세 9억원 미만 주택은 1.96% 오르는 데 그쳤지만, 9억원 이상 주택은 21.12% 인상됐다. 특히 15억원 이상~30억원 이하는 26.15%, 30억원 이상 주택은 27.4%가 올랐다. 고가주택이 집중적으로 공시가가 뛰면서 시세 대비 공시가 비율인 현실화율은 15억원 이상 고가주택의 경우 80%까지 높아졌다.
초고가아파트가 즐비한 강남·서초구는 전체 공동주택 절반 이상이 종부세 대상이다. 사진 강남, 송파구 일대 아파트단지 전경.
공시가 인상에 대한 충격파는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지난 2~3년간 집값이 크게 오른 서울에서는 일명 ‘부자세금’이라 알려진 종부세 대상자가 크게 늘었다. 종합부동산세 과세 대상이 되는 공시가격 9억원 초과 공동주택은 지난해 21만 가구에서 올해 31만 가구로 증가했다.
서울 종부세 대상 대부분은 강남3구(73%)다. 그러나 비강남권도 27%나 된다. 서울 마포·성동·광진 등 비강남권 지역에서도 종부세 아파트가 쏟아지고 있다. 예를 들어 서대문구에서는 공시가격 9억원 이상 주택이 지난해 107가구였지만 올해는 1258가구로 10배 이상 늘었다. 강서구도 13가구에서 494가구로 증가했고, 동작구는 867가구에서 2988가구로 늘었다. 강서구 마곡엠밸리(전용 114㎡)는 지난해 공시가격 8억2400만원에서 9억900만원으로 뛰었다. 영등포구 아크로타워스퀘어(84㎡)도 7억7400만원에서 9억6100만원으로 ‘공시가격 9억원’에 진입했다. 신축 아파트인 서대문구 이편한세상신촌(84㎡)은 지난해 처음으로 등기가 나면서 첫 공시가격이 9억8300만원으로 바로 종부세 대상이 됐다. 동작구 흑석한강센트레빌(84㎡)도 지난해 8억4000만원에서 9억300만원으로 공시가격이 뛰었다. 마포구 마포래미안푸르지오와 성동구 왕십리 센트라스 등 기존 강북권을 대표하는 아파트의 전용 84㎡도 일제히 공시가격 9억원대를 넘어섰다.
대부분 서울에서 흔히 중산층이라고 부르는 샐러리맨 가족이 거주하는 중간 평형대 아파트 단지다. 올해 처음으로 종부세 대상이 된 흑석한강센트레빌에 거주하는 주부 박 모 씨(39)는 “2년간 집값이 올랐다고 하더라도 팔 게 아니기 때문에 실현되는 이익이 아니다. 소득은 그대로인데 세금만 늘고 있다”고 푸념했다.
종부세 대상자들의 세 부담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예를 들어 첫 종부세 대상이 된 마포 래미안푸르지오 전용 84㎡ 보유자는 지난해에는 재산세 245만원을 내면 됐지만 올해는 종부세 49만원이 추가돼 보유세를 368만원 내야 한다. 내년에도 종부세가 62만원으로 늘어나 보유세는 400만원을 훌쩍 넘긴다. 래미안푸르지오에 사는 정 모 씨(41)는 “종부세는 비싼 주택에 사는 만큼 세금을 감당할 능력이 있는 사람들에게 세금을 부담하는 법으로 알고 있는데, 내가 종부세 대상이 될지 상상도 못했다”면서 “웬만한 서울 집값이 10억원이 넘는 상황에서 종부세 9억원 기준은 안 맞는 것 같다”며 “고가주택의 기준을 상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공시가 현실화율을 급격히 높이면서 세금이 늘어난 강남 거주자뿐만 아니라 강북·수도권 주택 보유자의 불만도 커지고 있다. 공시가는 올랐는데 공시가와 연관된 주택 관련 제도는 그대로여서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청약을 신청할 때 주택으로 인정받지 않는 ‘소형·저가주택’ 보유자들은 날벼락을 맞았다.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민영주택 청약에서 전용 60㎡ 이하, 수도권 기준 공시가 1억3000만원 이하(비수도권 8000만원 이하) 주택 소유자는 ‘소형·저가주택 소유자’로 분류돼 무주택 가구로 인정받는다. 그러나 공시가가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청약 실수요자들이 무주택 자격을 상실할 위기에 처했다.
정부는 시세 9억원 이하 공시가 상승률을 1.97%라고 밝혔다. 그러나 지난해 수도권·강북 집값이 크게 오르면서 두 자릿수 오른 경우가 속출하고 있다.
서울 강북 전용면적 49㎡ 소형 아파트에 사는 40대 주부 박 모 씨는 민영아파트 청약을 준비 중이었는데 박 씨가 살고 있는 집 공시가가 지난해보다 10%가량 올라(1억3200만원) 무주택 자격으로 청약을 신청할 수 없게 됐다.
박 씨는 “무주택 기간까지 합쳐 겨우 60점대 점수를 만들었는데, 공시가가 갑자기 올라 10년 넘게 준비한 청약 계획이 물거품이 됐다”며 “저가주택도 이미 다 오른 만큼 소형 주택 인정 가격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시가는 세무당국이 과세 기준으로 삼는 가격을 말한다. 그러나 공시가 결정 과정은 ‘깜깜이’이다. 공시가에 대한 구체적 기준이 공개되지 않기 때문에 현장에선 “왜 이렇게 높은 상승률이 나왔느냐”는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예를 들어 시세가 동일하게 오른 두 곳이 공시가 상승률은 30% 이상 차이 나는 경우다. 서울 강남구 도곡동 도곡렉슬 아파트 전용면적 59㎡는 지난해에 비해 공시가가 44.2%(약 4억원)나 상승했다. 공시가는 12억5700만원이다. 지난해 한 해 동안 이 단지 시세는 전용 59㎡가 16억5000만원에서 17억6000만원대로 1억원 남짓 올랐을 뿐이다. 반면 같은 기간 1억원 오르기는 수원시 영통구 이의동 이편한세상광교도 마찬가지다. 이 아파트 전용 101㎡는 지난해 한 해 동안 1억원(11억원 초반→12억원 초반) 가까이 올랐다. 그러나 공시가격은 9.3%(7억원→7억6600만원)밖에 오르지 않았다. 두 곳 모두 똑같이 시세가 1억원 올랐고 시세가 9억원 이상인데도 공시가는 훨씬 덜 오른 것이다. 같은 단지 내에서 일부 가구만 시세가 떨어지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서울 동작구 본동신동아 아파트는 같은 동(1동)에서 1~7호는 공시가가 하락하고 8~12호는 올랐다. 가령 B동 12층 3호(전용 59㎡)는 공시가가 지난해 4억200만원에서 올해 3억9500만원으로 하락한 반면, 같은 층 옆에 붙어 있는 12층 8호(전용 46㎡)는 공시가가 3억400만원에서 3억2300만원으로 올랐다.
지난 4년간 이 아파트 가격이 상승하면서 동 전체 공시가가 나란히 오른 것을 감안하면 이례적이다. 인근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1동에서 1~7호와 8~12호 선호가 갈리지 않는다”며 “세금 부과 기준이 되는 공시가가 왜 뒤죽박죽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시세가 떨어졌는데도 공시가가 상승하는 현상도 발생했다. 광주시 남구 봉선동에 위치한 봉선한국아델리움3차 전용 84㎡는 2018년 말 최고가(11억1000만원)를 기록했다. 그 외에는 8억~9억원대에 거래됐는데 지난해 말에는 7억원대 초반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되레 공시가는 4억8000만원으로 전년 대비 2.4%(약 1000만원) 상승했다.
몇 건의 실거래가를 기준으로 공시가를 무작정 올렸다는 비판도 쏟아진다. 목동 신시가지 아파트 주민 박 모 씨는 “목동 신시가지는 최근 3년간 공시가격 인상률이 해마다 20∼30%에 달했고 현실화율도 오히려 강남보다도 높은 수준”이라며 “실거주자가 많은 단지인데 거래 가뭄 속에 몇 건의 계약만으로 공시가격을 과도하게 책정했다”고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입주한 지 6개월도 채 안 된 신축 단지도 “거래 몇 건으로 공시가를 높게 매겼다”며 불만이 잇따르고 있다. 경기도 의왕시 인덕원 푸르지오 엘센트로 주민은 “입주 때 7억~8억원에 거래되다가 연말께 아주 드물게 10억원에 거래됐는데, 공시가가 7억원이나 나왔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정부는 공시가 예정금액을 공지하고 이의신청을 받는다. 올해도 지난 3월 공시가 예정안이 열람된 후 전국에서 이의신청을 받았다. 총 3만7000여 건 이의신청이 제기됐다. 하지만 정부는 이 가운데 915건, 2만8000가구에 대해서만 공시가격 조정을 받아들였다. 의견수용률은 3%에도 못 미쳤다. 국토부는 올해 공시가격을 부동산 공시가격 알리미 사이트를 통해 공개하고 있다. 5월까지 다시 이의신청을 받아 재조사를 실시한 후 6월 26일까지 가격을 최종 확정·통보할 방침이다.
코로나19 경제 충격으로 부동산 거래 침체가 장기화됨에 따라 ‘공시가 역전’이 속출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올해 정부는 유독 10억원 이상 주택 공시가를 집중적으로 끌어올렸다. 부동산 하락세가 지속되면 ‘공시가 역전’은 시간문제라는 얘기다. 이미 30억원대 초고가주택 중심으로 공시가 역전이 발생한 데다 10억원대 서울 아파트들에서도 시세가 공시가에 육박해 ‘공시가 역전’ 조짐이 보이고 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시스템에 따르면 서울 종로구 평창동 아파트 엘리시아는 최근 ‘반값’에 가까운 거래가 이뤄지면서 공시가가 시세를 추월했다. 이 아파트 전용 200㎡(5층)는 최근 7억5110만원에 손바뀜됐다. 2016~2017년만 해도 16억원에 거래됐지만 지난해 12월 9억6500만원에 거래되더니 올해는 7억원대로 내려앉았다. 올해 확정된 공시가는 7억9700만원으로 공시가가 실거래가보다 높다. 인근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시세가 작년만 해도 10억원대였는데 저 거래는 시세보다 훨씬 싸게 성사됐다. 지인 간 거래인지 알 수는 없지만, 최근 시세가 떨어지고 있는 것은 맞다”고 했다.
앞서 지난 2월 초고가아파트 서초 트라움하우스가 종전 최고가보다 8억원 낮은 40억원(전용 273㎡)에 거래되면서 공시가(40억8400만원)가 실거래가보다 높은 ‘역전’ 현상이 발생한 데 이어 10억원대 아파트에서도 공시가 역전이 발생한 것이다. 서울 서초구 방배동 ‘삼성래미안1’ 아파트(전용 84㎡)는 지난 2월 11억원에 손바뀜됐다. 직전 최고가 13억9000만원보다 3억원 가까이 떨어졌다. 이 아파트의 공시가격은 지난해 8억1600만원에서 올해 9억1400만원으로 올랐다. 이번 하락장에서 실거래가가 떨어지면서 공시가격과 갭이 2억원 미만이 됐다. 또 중구 신당동 ‘남산타운’ 아파트(전용 114㎡)도 지난 2월 10억9000만원에 실거래됐다. 직전 최고가 대비 3억5000만원 떨어졌다. 올해 이 아파트 공시가격은 8억5400만원으로 현실화율이 78.3%에 달한다. 30억원 이상의 초고가아파트도 실거래가와 공시가격이 바짝 붙었다.
강남의 초고가아파트 시세가 수억원 뚝 떨어지면서 정부의 현실화율 목표치인 80%를 훌쩍 넘어선 경우가 속출했다.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6차’ 아파트(전용 157㎡)는 최고가 대비 8억8000만원 떨어진 30억5000만원에 손바뀜됐다. 이 아파트의 공시가격은 27억1200만원이므로 현실화율은 88.9%에 달한다.특히 강남권 재건축 단지들 하락폭이 유독 크다.
‘양도세 절세 매물’ ‘총선 실망 매물’과 같은 급매물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서초구 반포동 ‘반포주공1단지(전용 107㎡)’는 최근 33억5000만원에 거래돼 공시가격 29억6900만원과 차이가 불과 3억여원으로 줄어들었다. 정부는 작년 말 시세를 기준으로 공시가격을 산정해 올해 1월 이후의 주택 시장은 공시가격에 반영되지 않았다고 하지만, 공시가격이 올해 1년 동안 각종 조세 부과 기준으로 활용된다는 점에서 시세가 떨어진 아파트 거주민들은 공시가격이 과도하게 책정됐다고 느끼고 있다.
래미안 옥수리버젠(전용 84㎡)은 최근 집값이 15억원대에서 13억원대로 떨어졌다. 그러나 공시가는 9억1200만원에서 10억3100만원으로 상승했다. 올해 재산세는 지난해(266만원)보다 100만원 가까이 증가(365만원)할 것으로 예상된다.
옥수리버젠을 소유한 박 모 씨는 “지난해 집값이 많이 올랐다고 급격하게 공시가를 올려버리니 코로나19 경기침체로 살림살이가 팍팍한 가운데 세금 부담이 더 늘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송인호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주택 가격이 외부 요인으로 변동폭이 클 수 있어 공시가격은 시세 대비 70% 이하 수준이 적절하다”고 말했다.
코로나19·공시가 후폭풍으로 서울 송파구 파인애플상가 부동산중개업소 외벽에 아파트 급매를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매도시점에 대해서는 ‘내년 이후’ 라고 답한 응답자가 49%로 가장 많았고, 이어 ▲2분기(28.7%) ▲3분기(13.3%) ▲4분기(9.1%) 순으로 나타났다. 올해 안에 매도를 한다면 2분기 내 매도하겠다는 응답이 많았는데 재산세 과세 기준일인 6월 1일 이전에 매도를 고려하거나, 6월 30일까지 다주택자의 조정대상지역 내 10년 이상 장기 보유한 주택에 대해서 한시적으로 양도세 중과 적용이 배제되고 장기보유특별공제가 적용되므로 해당 시점에 매도를 고려하는 것으로 분석된다고 직방은 설명했다.매도를 고려하는 공동주택의 매물 가격대는 ‘3억원 미만’이 35%로 가장 많았고, 이어 ▲3억원 이상~6억원 미만(26.2%) ▲6억원 이상~9억원 미만(17.8%) 순으로 상대적으로 가격대가 낮은 매물을 매도하겠다는 움직임이 더 많았다. 매물을 팔더라도 상대적으로 가격 상승세가 크지 않을 것 같은 지역에 가치가 낮은 매물을 처분하겠다는 움직임으로 보인다.
[이선희 매일경제 부동산부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17호 (2020년 6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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