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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00만 명 가입한 국민보험 실손보험료 오른다는데… 병원 자주 안 가면 ‘新실손’ 갈아타기 고려해볼 만
입력 : 2020.01.31 13:4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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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직장인 김혁구 씨는 최근 고민에 빠졌다. 5년 전에 가입한 실손의료보험의 보험료가 올해 9% 가까이 오를 것이라는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다. 건강한 체질의 김 씨는 실손보험을 통해 보험금을 청구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월 2만5000원씩 매년 30만원가량의 보험료를 내지만 정작 받은 혜택은 없다는 얘기다. 반면 2017년부터 판매하기 시작한 신실손보험의 경우 반대로 보험료가 9%가량 내린다는 뉴스보도도 나왔다. 심지어 김 씨가 가입한 보험상품은 김 씨가 70세가 되는 시점에 매월 40만원에 가까운 보험료를 내야할 수도 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이 시기는 병원을 찾게 되는 경우가 많아 어느 때보다 실손보험이 중요하지만, 반대로 소득은 줄어 이 정도의 보험료는 큰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다. 과연 김 씨는 기존의 실손보험을 갈아타야 할 것인가, 아니면 현재 보험을 보다 잘 활용할 수 있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실손의료보험은 현재 중복 가입자를 포함해 약 3400만 건이 가입되어 있다. 국민 대부분이 하나씩 갖고 있다는 의미에서 ‘국민보험’으로 불리기도 한다.
실손보험은 2000년대 들어 본격적인 관심을 받게 됐다. 1인당 국민소득이 2006년 2만달러 시대에 진입하면서 환경, 문화, 건강 등 삶의 질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사회적 성숙도가 높아진 것이다. 그동안 잠재되었던 건강 보장 수요가 늘어난 것이 보험 가입으로 이어진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실손보험은 60% 초·중반의 보장률에 머물고 있는 공적보험에 추가적인 보장을 제공하면서 급성장하기 시작했다.
이태열 보험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우리나라 공적보험의 보장률 합계가 주요국보다 낮기 때문에 실손보험은 반드시 필요한 제도”라고 말했다. 그는 “일본과 독일의 경우 건강보험 보장률이 80%를 넘는 데 비해 우리나라는 62.7%에 불과하다”며 “실손보험이 8.9%의 간극을 채워 보장률을 71.6%로 높여놓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실손보상을 해주는 보험상품은 국내에 1963년 처음 등장했다. 이후 두 번의 커다란 변화를 거쳐 현재는 가입 시기와 보장내역, 자기부담금 등에 차이가 있는 구실손, 표준화실손, 신실손으로 나뉜다. 2009년 9월까지 판매된 구실손보험은 자기부담이 전혀 없는 것이 특징이다. 상해와 질병 등으로 입원을 하거나 통원치료를 받은 뒤 보험금을 청구하면 자신이 낸 비용을 전액 돌려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자기부담금이 전혀 없다 보니 가입자들의 의료행위가 늘어나고, 이로 인해 보험금 지급액이 커지는 부작용이 나타나면서 정부는 2009년 10월 표준화실손보험을 내놓게 됐다.
실손의료보험의 마지막 변화는 2017년 4월 이뤄졌다. 신실손의료보험이 정식명칭인데, 보험업계에서는 자신들의 손실을 줄여주고 과다 의료이용을 줄인다고 해서 ‘착한 실손’으로 부른다. 이 상품은 실손보험에서 가장 청구 건수가 많아 손해율을 높인 도수치료와 비급여 주사, 비급여 MRI를 별도의 특약으로 분리한 것이 특징이다. 또 자기부담금도 20%로 높아졌다. 신실손보험부터는 직전 2년간 비급여 의료비 미청구자의 경우 차기 1년간 보험료를 10% 이상 할인해주는 항목도 들어갔다. 특약 분리와 자기부담금 상향으로 신 실손보험의 보험료는 종전보다 최고 35% 이상 저렴해졌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6월 기준 전체 실손보험 가입자 3396만 건 가운데 3145만 건이 앞에서 설명한 구실손과 표준화실손 가입자들이다. 이들이 전체 실손 가입자의 92.6%를 차지한다.
최근 동네 안과의원에서 가장 활발하게 진행하는 수술은 백내장이다. 대학병원보다 수술 비중이 5~6배가량 높다. 실손보험이 있는 환자라면 백내장 수술을 하면서 다초점렌즈를 삽입해 시력교정까지 해준다. 다초점렌즈는 실손 보상 대상이 아니다. 이 때문에 의원에서는 검사비를 부풀리는 방법으로 환자들이 보험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해준다. 건당 2만~3만원이면 충분한 백내장 수술 검사비를 500만~600만원씩 받는 곳도 있다. 이로 인한 보험사들의 손해액은 올해만 5000억원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과잉 의료진료 사례가 늘면서 실손의료보험의 지난해 상반기 손해액은 5조12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반면 거둬들인 보험료 수입은 3조9700억원에 불과하다. 이에 따라 지난해 상반기 손해율은 130%에 육박한다. 받은 보험료보다 지급한 보험금과 사업비가 1.3배 더 많다는 의미다.
실손보험은 지난 2017년 9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정책인 이른바 ‘문재인 케어’가 시행될 때만 해도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됐다. 건강보험의 보장항목이 늘어남에 따라 실손보험의 보험금 지급이 줄고, 이에 따른 보험료 인하도 가능할 것이란 관측도 나왔다. 하지만 상황은 반대로 움직이고 있다. 문재인 케어 이후에도 실손보험의 손해율이 꾸준히 오르는 것이다.
이 같은 문제의 가장 큰 원인은 도덕적 해이다. 실손보험이 의료비의 80~90%, 심지어 100%를 보장해주기 때문에 불필요한 의료쇼핑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백내장 수술이 대표적이고, 한때 유행처럼 번졌던 도수치료도 같은 선상의 문제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문재인 케어 이후 건강보험이 보장해주는 급여항목이 커지면서 비급여 항목 중심의 의료쇼핑이 늘고 있다”며 “병·의원은 수입을 늘릴 수 있고 환자는 실손보험을 통해 비용부담이 거의 없게 되면서 ‘보험사기’가 빈번해지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실손보험의 보험료는 손해율 상승이 지속될 경우 꾸준히 늘어날 것으로 우려된다. 보험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매년 10%씩 보험료가 오른다고 가정할 때 현재 실손 가입자가 나이가 들었을 때 부담해야 할 보험료는 적게는 7배, 많게는 17배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진료수가와 진료량이 동일하게 유지된다고 하더라도 가입자의 연령 증가에 따라 매년 3~4% 보험료 인상요인이 발생한다.
예를 들어 매년 10% 이상 보험료가 오른다고 가정할 때 3년마다 갱신되는 구실손보험에 가입한 40세 남성은 3만8237원씩 내던 보험료가 60세에는 25만7239원, 70세에는 66만7213원까지 급격히 오르게 된다. 1년 갱신 표준화 실손보험 보험료도 40세에 2만2244원에서 60세 14만9647원, 70세에는 38만8145원으로 폭증한다. 그나마 1년 갱신 신실손보험이 40세 1만4794원이던 보험료가 60세 9만9527원, 70세 25만8146원으로 덜 오르는 편이다.
보험사 손해율이 오르면서 보험료가 함께 오르는 것은 가입자가 고령기에 실손보험을 계속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준다. 비싼 보험료 부담의 여력이 있는 가입자만 고령기간 동안 실손보험 유지가 가능하게 된다는 얘기다.
문제는 보험료를 산출할 때 가입자별 건강상태와 의료이용을 반영해 개인별 보험료를 세분화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실손보험 가입과 갱신 시에 성, 연령, 상해등급(직업 위험별 3등급) 등 보편적인 인구구조 변수만 반영해 보험료를 계산한다. 이에 따라 가입자는 실제 의료이용과 상관없이 동일한 보험료를 부담하기 때문에 본전 심리에 따른 불필요한 의료이용의 발생 가능성이 높다. 해외 주요국의 경우 매년 새로 보험에 가입하는 구조다. 계약심사 시 가입자 건강상태별 보험료 할증과 차년도 의료이용에 따른 보험료를 차등해서 적용한다. 이에 따라 불필요한 의료이용의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다.
이러한 상품구조는 불필요하거나 고가의 의료서비스를 빈번하게 이용하고 고액의 보험금을 수령하는 일부 가입자에 의해 대부분 선의의 가입자가 매년 인상된 보험료를 부담해야 하는 불합리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결국 실손가입자의 과다 의료이용 방지와 보험료 인상 요인 억제를 위해 자기부담금을 확대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가입자의 자기부담금은 2009년 1월 표준화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도입됐지만 아직까지 그 기능이 약하다는 평가다.
보험연구원은 실손보험의 개선방안으로 개인별 의료이용량과 연계한 보험료 차등제 도입을 꼽았다. 실손보험과 의료영역은 공급자와 수요자 간 정보비대칭성과 수요자 간 위험 편차가 큰 특성으로 역선택 유인이 높다. 역선택이 높은 시장을 방치할 경우 위험이 높은 수요자만 보험에 가입하게 되고, 시간이 경과할수록 높은 보험료를 부담하는 시장으로 축소되거나 종국에는 공급이 중단되는 시장실패가 발생하게 된다. 그 결과 시장에는 위험이 매우 높거나 높은 보험료를 기꺼이 부담하려는 수요자만 남게 되어 공보험의 보완형이라는 실손보험의 기능이 축소된다.
환자의 건강권과 의료접근권이 중요한 가치인 것은 분명하나 실손보험의 지속가능성 확보라는 공익적 차원에서 전문가들은 보험료 차등제 도입을 우선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보험료 차등제의 보험료 할인은 보상·보너스 개념이다. 가입자가 평상시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고 꼭 필요한 경우에만 의료를 이용하도록 장려하는 것이다.
해외 주요 국가는 민영의료보험의 보험금 청구 실적에 따라 차년도 보험료에 대해 할인과 할증을 적용하고 있다. 보험료 차등 수준별로 단계를 구분하고 일정 기간 동안 가입자의 청구 실적에 따라 보험료를 조정하는 것이다. 영국 최대 건강보험사인 BUPA의 경우 보험료 조정단계를 14등급으로 구분해 보험금 청구 실적에 따라 최대 70%까지 차등 적용하고 할인·할증 재원 확보를 위해 기본보험료를 보수적으로 책정하고 있다. 남아공 바이탈리티의 경우 가입자의 청구실적에 따른 보험료 차등률에 추가해 다이어트, 금연, 운동 등으로 부여되는 바이탈 포인트에 따라 최대 80%까지 차등해서 적용한다.
현재의 포괄 보장구조를 급여·비급여 상품으로 분리하고 비급여의 보장영역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정성희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비급여 항목에 대한 심사체계만 구축되어도 의료 오·남용은 크게 줄어들 것으로 기대한다”며 “국민의료비 관리가 국가적 과제임을 볼 때 전문성과 공신력을 갖춘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이를 담당하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고 강조했다.
보험료 인상에 따라 기존의 실손보험을 갈아타는 것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전문가들은 ‘신중하라’고 조언한다. 구실손보험의 경우 자기부담금이 전혀 없다. 표준화실손만 해도 자기부담금이 10% 있지만 MRI와 도수치료 등을 별도의 특약이 아닌 상품 내에서 보장해준다. 특히 이미 구실손과 표준화실손은 더 이상 판매하지 않기 때문에 갈아타기를 하면 되돌릴 수 없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주요 보험회사는 금융당국과의 협의가 끝남에 따라 구실손과 표준화실손은 평균 9% 인상, 신실손 보험료는 평균 9% 인하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당장 보험료를 아끼는 게 더 중요하다면 신실손으로 갈아타도 좋지만 나이가 들어 병원에 자주 가는 게 더 걱정이면 구형 상품을 끝까지 유지하는 게 낫다.
반면 은퇴를 앞두고 있거나 보험료 인상이 부담스럽거나, 병원을 자주 가지 않는 경우라면 신실손으로 갈아타는 것도 생각해볼 만하다. 20~40대 병원을 자주 가지 않는 사람들이나 은퇴를 해서 소득이 크게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는 사람은 갈아타는 것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즉 실손보험에 언제 가입했는지, 갈아타기를 할 경우 보험료가 어떻게 되는지, 현재 나의 경제상황과 향후 10년, 20년 뒤의 경제상황이 어떻게 될 것인지 종합적으로 비교 분석해야 된다는 얘기다.
보험업계의 불문율 가운데 하나는 ‘오래된 보험은 깨지 않는다’이다. 오래된 보험일수록 계약자에게 유리하도록 상품구조가 짜여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보험은 약관이 변경될 때마다 좋은 보장조건이 사라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승훈 매일경제 금융부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13호 (2020년 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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