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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의 역설… 전방위로 불붙는 서울 집값, 분양가상한제 실시로 불난 곳에 기름 부은 격
입력 : 2019.10.31 14:3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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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집값이 ‘또다시’ 심상치 않다. 통계로도, 현장에서도 이 같은 기운은 감지된다. 오를 때는 가장 보수적으로 통계를 잡는 한국감정원 통계로도 7월 첫 주 이후 9월 5번째 주까지 14주 연속 상승했다. 3달간의 누적 상승률은 0.42%에 달한다. 7월엔 그나마 완만하게(0.09% 상승) 올라가던 것이 8월엔 0.10%로 상승폭이 커지더니 9월엔 0.23%로까지 커졌다. 서울 곳곳에선 신고가가 나오고 있다. 강남권에선 6월과 9월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왜 이렇게 올랐을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지난 몇 년간의 정부정책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시작은 2016년 11월 3일이었다. 과열된 청약시장을 진정시키기 위한 대책이 오랜만에 등장했다.
이 때만 해도 서울 집값 진정은 간단한 문제처럼 보였다. 그러나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정부가 움켜쥐고 컨트롤하고 싶어 했던 서울 집값은 손가락 사이사이로 빠져나가며 약올리는 듯한 양상마저 띠고 있다. 잡히기는커녕 오히려 잠시 숨고르기를 하다가 더 멀리 달아나는 듯한 형국이다. 이런 상황이 3년째 지속되고 있다.
3년 전 11·3 부동산대책 이후 이듬해인 2017년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다. 노무현 정부 때의 부동산 정책 실패를 답습하지 않겠다는 듯 새 정부 출범 초기부터 규제가 쏟아졌다. 담보인정비율 등을 제한하는 6·19 가계부채 대책에 이어 그 유명한 8·2 부동산대책이 나왔다. 집값 상승의 주범으로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를 꼽았고, 이들에 대한 거래 자체를 막겠다는 것이 골자였다. 예상보다 훨씬 더 강한 규제에 불붙었던 부동산 투자 심리, 이로 인해 확 뛴 집값은 잡힐 것이라고 많은 이들은 예상했다. 그러나 잡힌 것은 가뜩이나 어려운 지방 집값뿐이었다.
서울과 수도권의 수많은 아파트들은 수천만원, 수억원씩 가격이 뛰었다. 정부는 계속 규제를 내놨다. 8·2 부동산대책에서 나왔던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중과는 2018년 4월부터 시행됐고, 거래는 뚝 끊겼다. 그러나 간혹 이뤄지는 거래에서 보이는 신고가는 결코 정부가 바라는 것이 아니었다. 불안한 정부는 보유세 인상안을 꺼냈다. 종합부동산세를 올리기 위해 공정시장가액비율은 정부가 시행령만 고치면 되는 방식으로 올렸다. 국회 본회의 통과가 필요한 세율 인상도 얻어냈다. 정부는 멈추지 않았다. 재산세가 자연스럽게 올라갈 수 있는 공시가격 현실화를 들고 나왔다. 공시가격은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확 뛰었고, 이에 맞춰 재산세도 올랐다. 그래도 잡히지 않았다. 그래서 나온 것이 9·13 부동산대책이다. 다주택자에게는 일단 대출 자체가 안 되게 했다. 대출은 조이고, 집을 팔아 남긴 수익에 대한 세금은 올리고, 보유하는 세금까지 올렸으니 집값은 잡혀야 마땅했다. 그러나 ‘거래절벽’이라 불리는 거래 끊김과 소폭의 하락만 있을 뿐 정부가 그토록 염원하던 강남권 집값은 계속 오르기만 했다.
규제는 왜 안 먹혔을까. 문제는 학습효과와 공급부족이다. 문재인 정부와 뿌리가 같은 참여정부 때에 이미 이 같은 융단폭격식 부동산 시장 규제는 나온 바 있다. 결과는 어땠나. 잠시 잡히는 듯했던, 안정화되는 듯했던 집값은 내려간 것보다 더 큰 폭으로 뛰어올랐고, 이것이 결국 정권의 발목을 잡아 가장 큰 정책미스 중 하나로 남았다.
정부의 규제와 엄포에 집을 팔았던 사람들, 부동산 투자를 그만뒀던 사람들은 분노했다. ‘서울은 오늘이 제일 싸다’ ‘중장기적으로 서울 집값은 우상향한다’는 등의 ‘어록’에 가까운 말들이 쏟아져 나온 것도 이때다. 대신 공급이 왕성하면 집값은 어느 정도 내려간다는 것도 사람들은 경험했다. 강남권에 보금자리 주택이 들어가고, 입주가 확 늘었던 시기에 서울 집값은 안정을 찾았다.
문제는 이 같은 과거의 경험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마지막 카드로 서울 핵심지 공급보다 또다시 ‘규제’를 택했다는 것이다. 정부가 7월 그동안 공공택지에만 적용됐고, 민간택지엔 사실상 적용이 유명무실했던 분양가상한제를 확대 적용하겠다는 의중을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의 입을 통해 시사한 것이다. 분양가가 너무 높으니 해당 지역 다른 아파트들까지 가격이 오른다는 것이 정부의 생각이고 논리였다. 분양가격이라도 낮추면 동조효과로 주변이 모두 같이 오르는 일은 막을 수 있다는 계산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이런 ‘의중’을 흘리자마자 그나마 그 와중에 조금 잠잠했던 서울 전 지역 집값이 동시에 튀어오르기 시작했다. ‘규제의 역설’이다. 규제가 지난 3년간 먹히지 않았는데, 또 정부는 규제 카드를 꺼내들었고, 결국 또 실패하는 ‘백전백패’ 현상을 낳은 것이다.
왜 분양가상한제 도입 예고는 집값을 되레 올렸을까. 앞서 규제가 실패한 것과 똑같은 이유에서다. 분양가상한제는 재건축과 재개발 등 정비사업을 통해 새 집을 지을 때 분양가를 정부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올리지 못하게 하는 것이 핵심이다. 문제는 정비사업이라는 것은 기존에 살던 사람들이 있고, 이 사람들은 일반분양이라는 방법을 통해 공사비뿐 아니라 몇 년간 그 집에 살 수 없는 비용과 그동안 낡은 집에 살았던 기회비용 등을 보상받으려 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분양가를 낮추면 기존에 이 집을 갖고 있던 소위 ‘조합원’들은 상한제 시행 전보다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그러면 이미 철거를 해 어쩔 수 없이 분양을 할 수밖에 없는 몇몇 단지들 빼고는 ‘차라리 재건축·재개발을 미루자’고 생각하게 된다. 결국 이는 공급 부족을 낳는다. 서울에 더 이상 주택공급을 위한 땅을 찾기 어려운 상황에서, 사실상 핵심지 주택을 늘릴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던 정비사업이 막힐 것 같다는 우려에 ‘집을 사자’는 ‘BUY’ 열풍이 일었다. 처음엔 새 아파트가 올랐고, 그 다음은 구축 아파트, 그 다음은 나 홀로 아파트, 그리고 오래되고 낡고 앞으로 언제 새 집이 될지 기약도 없는 재건축까지 올랐다. 정부가 사람들의 심리를 잘못 건드린 것이다.
정부는 3기 신도시 후보지 발표를 통해 수도권 주택 공급 대책을 마련했다고 항변할 것 같다. 하지만 문제는 ‘서울’이 아니라는 점이다. 수도권은 분명 매력 있는 주택 입지지만, 서울 집값을 잡겠다는 목표 하에 수도권 집을 더 짓겠다는 것은 올바른 처방이 아니었던 셈이다. 실제로 많은 전문가들은 치솟은 서울 주택가격을 잡으려면 공급대책이 나와야 하고, 그 공급대책은 서울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정부는 대안으로 수도권, 그것도 이미 공급이 과잉인 고양시나 남양주 등을 선택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집값이 얼마나 올랐는지는 통계로도 나오지만 실거래가를 보면 더 명확하게 보인다. 강남구 대치동 소재 ‘래미안대치팰리스’ 전용 84㎡는 상한제 이야기가 나오기 전인 6월만 해도 24억~25억원 정도에 실제 거래가 이뤄졌다. 그러던 것이 9월 들어선 27억9800만원까지 거래가 성사돼 국토교통부 신고가 완료됐다. 최대치로 잡으면 딱 3개월 만에 4억원이, 최소로 잡아도 3억원이 오른 것이다. 월급을 받아 생활하는 평범한 급여생활자들은 좌절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강남만의 일일까. 그렇지 않다. 마포구 아현동의 신축 대단지 ‘마포래미안푸르지오’는 전용 84㎡ 매물이 8월 16억5000만원에 거래됐다. 이는 강남권 구축 못지않은 가격이다.
새 아파트가 먼저 스타트를 끊었을 뿐 구축과 나 홀로 아파트까지 7월 정부의 분양가상한제 엄포 이후 가격이 치솟고 있다. 1998년 입주해 곧 22살을 맞는 용산구 이촌동 ‘한가람건영’은 재건축이 안 돼 리모델링을 추진하려는 단지다. 이 아파트 전용 59㎡는 6월만 해도 10억원대에도 거래가 됐지만, 7월 이후 12억원대 후반에 안착했다. 최고 거래가격은 12억8000만원이었다.
과거 최고의 영광을 누렸으나, 재건축이 불가능하고, 여러 가지 단점이 부각돼 인기가 급속도로 떨어졌던 강남구 도곡동 소재 ‘타워팰리스’는 규제의 역설로 과거의 명성을 회복하는 아이러니와 맞닥뜨렸다. 분양가상한제 규제 후 잇따라 신고가가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7월 이후 타워팰리스에선 신고가만 10여 건에 달한다. 타워팰리스1차 전용 137㎡는 8월 24억원에 팔려 기존 최고가인 23억6000만원을 살짝 넘어섰고, 9월엔 타워팰리스2차 전용 163㎡타입이 26억원에 거래돼 24억5000만원이던 기존 최고가를 경신했다.
서울 송파구 신천동의 부동산 모습
용산, 과천 등 신고가 속출
나 홀로 아파트도 예외가 아니다. 용산구 한강로 소재 98가구짜리 ‘한강로쌍용스윗닷홈’은 나 홀로 아파트에 기찻길 옆 입지로 인기가 높은 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8월 말 전용 84㎡ 타입이 11억9000만원에 팔려나가 작년 6월 9억4000만원에 비해 2억5000만원 실거래가격이 뛰었다. 용산구 후암동 소재 19가구짜리 ‘힐튼빌리지’ 역시 지난달 27일 전용 154㎡ 매물이 5년 만에 팔렸는데 실거래가격은 8억5000만원이었다. 마지막 최고거래가격은 7억7500만원이었다.
문제는 매매만 뛴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매매가 이렇게 뛰면 통상적으로 전세가격은 안정세를 보인다. 그러나 분양가상한제 규제의 역설은 이 같은 공식마저 깼다. 전세가격이 같이 뛰었기 때문이다. 분양가상한제로 정비사업 추진이 늦어져 서울과 수도권 핵심지 공급이 위축되리라는 예측과 함께, 현재 무주택 상태인 사람들은 그 와중에도 조금씩 나오는 저렴한 가격의 분양을 노려보려고 하는 것이 당연지사다. 그런데 정부가 청약제도를 여러 번 손보면서 서울과 수도권 투기과열지구의 전용 85㎡ 미만 면적의 경우 반드시 무주택자이고, 1순위 청약통장을 보유해야 청약에 물리적으로 도전이 가능하다.
가점은 물론 높아야 하지만, 그건 다음 문제이고, 일단 ‘무주택 상태’여야 하는 것. 현재 무주택인 사람들은 굳이 현재 집을 사기보다는 전월세로 좀 더 버텨 무주택자격을 유지하며 청약에 당첨되려는 전략을 짤 수밖에 없다. 전세수요가 확 늘어나는 이유이고, 수요가 늘어나니 당연히 가격은 뛴다.
과천과 같은 특수지역은 더하다. 인구 6만이 채 안 되는 과천의 경우 정비사업에 택지지구(지식정보타운) 분양물량 등이 대기 중인데, 이곳에서 1년 이상 연속으로 거주한 무주택자는 1순위 ‘당해’ 지역 청약자격을 부여받는다. 과천은 인구가 많지 않은 소도시라 당해지역 1순위 통장을 보유한 사람 자체가 많이 없어 일단 당해 1순위만 되면 당첨은 따 놓은 당상이라는 계산이 있다. 이렇다보니 과천에 1년 정도 전세를 살며 당해지역 1순위 자격을 얻으려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그 결과 과천은 전세 품귀현상을 빚고 있다. 7월 둘째 주 상승전환한 과천 전세가격은 폭등 수준으로 달려가고 있다. 7월 한 달간 0.94% 오른 과천 아파트 전세가격은 8월 2.06% 올랐고, 9월에는 2.69%나 상승했다.
서울 전체적으로도 전세가격은 상승하고 있다. 7월 상승전환한 서울 아파트 전세가격은 이달 0.08% 상승했고 8월엔 0.17%, 9월엔 0.25%가 올랐다. 정부는 샐 틈 없이 촘촘하게 규제의 그물을 쳐놓았다고 생각했겠지만, 과거의 학습효과와 수요만 억제할 뿐 사람들이 원하는 핵심지 공급이 따라주지 않는다는 점은 그 그물에 커다란 구멍을 냈다.
결국 매매와 전세의 동반상승이라는 의도치 않은 결과를 낳았다.
[박인혜 매일경제 부동산부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10호 (2019년 1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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