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혁신으로 주가도 퀀텀점프하는 명품 기업, 중국 명품 소비 반등에 젊은 층 어필 주효
입력 : 2019.10.30 15:10:26
-
명품들은 별다른 노력 없이도 그냥 ‘이름값’으로 비싼 값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글로벌 3대 럭셔리 명품인 에르메스, 루이뷔통, 샤넬은 모두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어 절대 흔들리지 않는 입지를 구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몇 십 년 전에 나온 디자인이 그대로 불티나게 팔리는 것을 보면서 럭셔리 명품 기업들은 별다른 경영전략이 없어도 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에르메스의 영업이익률은 35%, LVMH는 21%인데 그냥 브랜드만 팔아서 나오는 성과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최근 글로벌 명품 업체들의 움직임은 이런 편견을 비웃는다. 이들의 변화와 혁신은 실적과 주가에 모두 반영돼 있다. 지난해 잠시 고꾸라졌던 글로벌 명품 업체들의 주가가 올해 들어 계속 고공행진하는 것은 단지 중국 소비의 반등 때문이라 볼 수는 없다. 명품에 대한 여전한 수요, 젊은 층에까지 어필하는 경영전략 등이 어우러져 럭셔리 명품들의 주가는 계속 새로운 숫자를 찍고 있다.
일단 글로벌 명품 업체들의 성장은 중국의 명품 소비가 탄탄대로를 걷는 상황이라 쉽게 꺾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인들의 명품 소비 규모는 2013년 1000억달러를 돌파한 이후 계속 성장세다. 지난해부터 이어져온 중국 경기 둔화 우려, 미중 무역분쟁 등의 악재는 많지만 중국의 명품 소비 확장세는 여전하다. 작년 중국의 국내외 명품 구입 비용은 약 1450억달러 이상으로 글로벌 명품 소비 시장 규모의 3분의 1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중국 2분기 성장률 둔화와 상관없이 소매 판매 증가율이나 소비심리지수는 역대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 안기태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중국 통계국이 발표하는 소비심리지수의 조사 대상 샘플 수는 ‘12개 지역 3400명’으로 인구 대비 샘플 수가 적어 소비심리지수 호조가 대도시 상류층이 느끼는 체감경기일 가능성이 높다”며 “소비경기 양극화는 럭셔리 기업들의 주가 상승을 설명해준다”고 말했다. 한편 베인앤컴퍼니의 연구에 따르면 올해 글로벌 럭셔리 시장도 3~5% 성장률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럭셔리 명품 기업 실적
럭셔리 명품 성장의 또 다른 축은 밀레니얼 세대다. 밀레니얼(25~37세)은 현재 명품 시장의 32%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베인앤컨설팅에 따르면 향후 18~37세 명품 구매 비중이 2025년 55%까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과거 명품은 자산 축적이 어느 정도 이뤄진 40대 이상이 주요 고객층이었으나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계층들도 명품 소비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는 것이다. 안진아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주택이나 자동차 같은 자산에 대해 소유개념이 사라지면서 명품 소비 여력이 생겼으며 밀레니얼 세대의 경험지향적 성향도 밀레니얼 세대의 명품 구매를 늘리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오프라인 유통의 침체가 계속되는 상황에서도 백화점만은 무풍지대인 이유가 밀레니얼 세대가 명품 소비를 위해 백화점을 여전히 찾고 있기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밀레니얼 세대들은 근로소득으로는 따라 잡을 수 없는 자산가격 상승률을 직시하며 오히려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를 외치고 있다. 유럽에서도 1000유로 세대, 이케아 세대라는 말처럼 근로소득이 많지 않는 밀레니얼 세대를 일컫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이렇게 밀레니얼 세대들은 미래 대비에 대한 투자 대신 현재 자신의 삶에 대한 투자를 추구하면서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최대한의 로비인 럭셔리 소비에 가치를 둔 것이다. 밀레니얼 세대는 ‘소유보다 사용을 원하는’ 소비자이기 때문에 럭셔리 명품에서도 일상의 트렌디한 패션을 공유하는 의류 렌털이나 리세일(중고)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나스닥에도 상장되어 있는 더리얼리얼(TheRealReal)이란 중고 명품 업체는 2분기에 전년대비 51% 늘어난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는 럭셔리 브랜드 가운데에서도 두드러진 사상 최대 실적을 경신하고 있다. 전통에 얽매이지 않고 파격적인 경영 혁신을 통해 젊은 브랜드로 재탄생하고 있다는 게 성장의 비결이다. 애플 출신의 이안 로저스를 최고기술책임자(CTO)로 영입한 것이나 팝스타인 리한나를 영입해 30년 만에 새로 브랜드를 론칭한 것이 그 예이다.
그 중 가장 혁신적인 조치는 패션 기업 최초로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구축한 것이다. 블록체인은 제품의 이력을 추적하는 기술로 주로 식품 이력 추적에 사용되어 오는데 최근 중고 시장이 커지며 중고 명품에 대한 진위 구별이 중요해졌다. 블록체인은 거래가 일어나면 네트워크상의 모든 참여자에게 블록이 전송되고 거래정보가 상호 검증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LVMH는 루이비통과 크리스챤 디올 향수를 시작으로 소비자들의 럭셔리 제품의 출처와 진품 여부를 알 수 있게 업계 최초 글로벌 블록체인을 출시한 것이다.
사용하게 될 블록체인 기술은 오로라(Aura) 플랫폼으로 모든 데이터를 기밀로 유지하며 럭셔리 제품들의 출처 증명, 위조 방지, 추적 및 수명 주기 축적을 제공하도록 설계된 플랫폼이다. 안진아 이베스트증권 연구원은 “루이비통은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통해 하나의 제품이 만들어지기까지 제품의 원료 출처와 제조 방식, 유통 과정 등에 대한 스토리를 소비자들에게 전달하고 있다”고 말했다. 디지털 기술을 디자인에 접목시키는 시도도 성공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애플 출신의 이안 로저스 CTO는 디지털 스크린을 포함하는 모노그램 캔버스 핸드백과 자체 발광하는 모노그램 백 등을 출시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여기에 밀레니얼 세대를 타깃으로 기존 럭셔리와의 경계를 허문 스트리트 패션 감성의 제품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2017년 진행된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 수프림(Supreme)과의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해 수프림을 1조원 브랜드로 만들기도 했다. 또한 오프화이트 브랜드의 최고경영자인 버질 아블로를 지난해 남성 디렉터로 영입해 남성복 매출을 한 단계 올리기도 했다. 안진아 이베스트증권 연구원은 “버질 아블로는 루이비통 설립 후 최초 흑인 수석 디자이너였다. 전통적이고 배타적인 유럽 럭셔리 패션 하우스에서 그의 영입은 파격적인 인사였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상반기 LVMH는 작년 상반기 대비 15% 늘어난 250억유로의 매출을 이뤘다. 패션잡화, 화장품, 유통에서 고른 성장을 보였으며 루이비통, 크리스챤 디올이 새로운 라인 출시로 성장을 이끌었다. 화장품도 중국에서 지방시와 베네피트 제품들이 인기를 이어가면서 이익 성장을 이끌어갔다. 유통에선 세포라가 온라인 채널의 급격한 성장을 보였다.
LVMH의 주가는 올해 초 280유로 수준이었다가 7월엔 385유로까지 갔다. 상반기 매출액이 전년대비 15% 늘어난 250억유로, 영업이익은 14% 늘어난 166억유로를 기록하며 컨센서스를 상회한 사상최대의 실적을 기록한 것에 화답한 주가다.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는 팝스타 리한나의 화장품 브랜드 ‘펜티뷰티’를 론칭했다.
케링의 저력은 직영판매 채널과 밀레니얼 타깃의 브랜드 라인이다. 최근 구찌의 부진에도 불구하고 밀레니얼 세대에게 인기 있는 브랜드를 다수 보유하고 있어 향후 성장이 기대되는 이유다. 발렌시아가나 알렉산더맥퀸, 부쉐론 등은 밀레니얼 세대에게 특히 인기 있는 브랜드로 잠재력이 기대된다. 케링은 그룹 전체 매출에서 직영 판매 채널이라고 할 수 있는 DTC(Direct to Consumer)가 차지하는 비중이 80%에 육박한다. 구찌는 상반기 직영 채널에 1억2500만유로를 투자해 물류와 IT시스템 및 옴니 채널을 통한 성장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케링의 또 다른 럭셔리 브랜드인 입생로랑(Yves Saint Lauren) 역시 직영 채널 확장을 위한 IT시스템에 투자하고 있으며 온라인 플랫폼 강화를 통한 매출 강화에 주력하고 있다.
더구나 케링 그룹 매출의 60% 이상을 창출하는 구찌는 밀레니얼 세대가 전체 고객의 60%를 차지하고 있다. 구찌는 2018년 디지털 광고를 전체 광고비의 절반 이상으로 배정해 소비자 노출 빈도를 높여 온라인몰을 중심으로 한 DTC 매출 확대를 도모하고 있다.
케링은 7월 후반 실적발표 후 구찌의 성장둔화에 대한 우려감이 부각되며 투자심리가 약화되고 있지만 내년 매출이 15% 늘어날 것으로 보여 럭셔리 기업 피어군 중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실적 상승폭이 전망된다. 북미지역에서 2분기 매출이 2% 하락하며 역성장을 기록했지만 하반기엔 마케팅이 집중돼 매출도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김재임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케링은 중국시장에서 가장 효과적인 디지털 판매 채널을 구축하고 있다”며 “중국에서의 고성장과 보테가 신규 제품에 대한 반응을 고려하면 하반기부터 실적이 큰 폭으로 턴어라운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화장품 브랜드 ‘펜티뷰티’
영국의 대표 럭셔리 브랜드인 버버리 역시 리카르도 티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합류로 혁신을 시도하고 있다. 지방시 출신이었던 리카르도 티시는 140년간 지속된 버버리 로고를 부임 5년 만에 바꾸는 결정을 단행했다. 그는 지방시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재직하는 12년간 매출을 6배 확대했다. 여기에 인스타그램 마케팅으로 밀레니얼 세대들에게 다가가고 있다. 안진아 이베스트증권 연구원은 “디자인 측면에서도 리카르도 티시는 버버리 특유의 고전적인 체크 무늬를 살리되 요즘 트렌드에 부합하는 로고 브랜딩을 더해 다양성과 창의성, 격식 있는 세련미 등 영국적인 가치를 믹스매치한 제품으로 버버리의 제2전성기를 열었다”고 평가했다.
그중 드롭(Drop) 마케팅은 패션업계의 오랜 관행이었던 시즌제에 신선한 충격을 가져왔다. 흔히 S/S(Spring/Summer)와 F/W(Fall/Winter)로 나누어진 시즌 준비를 하는 것이 패션업계의 정해진 스케줄이었다. 보통 제품을 한 시즌 앞서 출시하며 이를 위해 1년 전부터 해당 시즌을 준비한다.
그러나 드롭 방식은 과거처럼 시즌 패션쇼를 통해 제품을 한 번에 공개하는 게 아니라 격주, 매주, 매월 정기적으로 제품을 공개하는 방식이다. 이는 트렌드에 빠르게 대응하는 SPA 브랜드에서 선호하는 방식이었다. 버버리도 럭셔리 브랜드 최초로 작년 11월부터 매월 드롭 방식으로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리카르도 티시의 데뷔 컬렉션인 비 시리즈(B series) 제품을 시작으로 드롭 제품을 출시할 때마다 아이템과 제품 규모를 다르게 공개하고 있다.
특히 2분기 실적발표를 통해 아시아 매출의 중요성이 다시 한번 확인됐다. 버버리는 수석 디자이너 교체 효과로 아시아지역 성장이 본격화되면서 실적발표가 있었던 7월 16일(현지시간) 주가가 하루 만에 14% 상승한 것이다. 박석중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아시아 소비자의 명품 시장 내 영향력은 2025년 64%까지 확대될 전망"이라며 “중국 밀레니얼 세대는 4억 명으로 중국 소비의 70%를 견인하는 핵심 소비 주체로 부상하고 있어 이들의 취향을 적극 반영한 글로벌 명품 업체들이 성장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 런던거래소에 상장돼 있는 버버리의 주가는 리카르도 티시의 영입으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중국 매출에 대한 우려로 지난해 말 1700파운드화까지 떨어졌던 주가는 현재 2000파운드화까지 올라섰다. 리카르도 티시를 영업했던 3월 주가는 1800파운드 선이었는데 그의 혁신 경영이 보도되면서 7월 2300파운드까지 가기도 했다. 브렉시트 충격으로 7월 이후 주가가 하향조정되기는 했지만 이에 대해서도 버버리는 모든 시나리오에 대응해 준비하고 있다.
노딜 브렉시트라는 최악의 경우 제품에 부과되는 관세를 해결하기 위해 공급 체인을 해외로 옮기는 방법을 준비하고 있다. 럭셔리 명품 기업 개별에 투자하기가 부담스럽다면 럭셔리 기업 전반에 대한 펀드에 투자하는 것도 방법이다. IBK럭셔리라이프스타일증권 펀드는 LVMH, 페라리, 케링, 에스티로더, 크리스챤 디올 등이 주요 보유 종목이다.
[김제림 매일경제 증권부 기자 사진 류준희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10호 (2019년 11월)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