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샌드위치 신세 대기업, 2년 새 영업이익률 11→7% 반도체 빼면 6%대로 더 떨어져… 현금배당으로 주가 버텨낼까

    입력 : 2019.10.01 13:42:37

  • 국내 대기업들은 밖으로 글로벌 무역전쟁과 안으로 반기업 정책에 시달리며 ‘샌드위치’ 신세로 전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2년 새 대기업의 영업이익률(영업이익을 매출로 나눈 값) 하락폭이 중소기업보다 월등히 깊게 나타난 것이 숫자로 증명됐다. 물론 현 정부가 키우겠다던 중소기업 수익성도 나란히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기업들은 규모에 상관없이 장사하기가 팍팍해졌다는 뜻이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대기업의 주가가 그나마 덜 떨어졌다는 것이다.

    투자자들은 미중 무역전쟁과 일본의 경제 보복 사이에서도 주요 수출 대기업들이 이를 극복할 것이란 미래 청사진에 투자하고 있는 셈이다. 대기업들은 중소기업에 비해 배당 등 주주환원도 강화하면서 투자자들의 기대에 부응한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전자 반도체 엔지니어가 반도체가 생산되는 클린룸에서 모니터를 보며 생산설비를 점검하고 있다.
    삼성전자 반도체 엔지니어가 반도체가 생산되는 클린룸에서 모니터를 보며 생산설비를 점검하고 있다.
    ▶대기업 수익성 2년 새 급전직하

    주식시장에서 대기업을 뜻하는 대형 상장사의 수익성은 2년 새 급락했다. 에프앤가이드에 의뢰해 코스피 상장사 대·중·소형주의 최근 2년간 실적을 받아본 결과 대형주 100곳의 올 상반기 매출은 789조2204억원이다. 여기서 대형주는 지난 8월 28일 기준 시가총액 1~100위에 속한 상장사다. 중형주는 101위에서 300위, 그 이하는 소형주로 분류된다.

    대형주의 올 상반기 영업이익은 59조5596억원으로 나타났다. 올 상반기 이들 100곳의 영업이익률은 7.5%에 그쳤다. 대기업들이 1000원어치 물건을 팔아 고작 75원을 건졌다는 뜻이다.

    현 정부 출범 직전인 지난 2017년 상반기 대형주의 영업이익률은 10.8%였다. 당시 매출은 763조9959억원, 영업이익은 82조7992억원이었다. 2년 새 매출은 3.3% 늘었는데 영업이익이 28.1% 줄어들면서 수익성이 크게 악화된 것이다.

    매출이 증가했다는 것은 대기업들이 여전히 수출 시장에서 성장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그러나 영업이익이 이처럼 급감한 것은 인건비 등 각종 비용이 크게 증가해 생각만큼 기업 입장에서 손에 쥐는 돈이 없다는 것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투톱’을 빼고 계산해보면 어떨까.

    2017년 상반기 98곳의 영업이익률은 8.3%였고 같은 기준으로 올 상반기는 6.7%를 기록했다. 반도체를 빼고 봐도 대기업 수익성이 하락한 것에는 변함이 없었다. 다만 반도체를 제외하니 대형주의 수익성은 중형주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수준으로 전락했다. 2017년 상반기 6.3%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했던 중형주는 올 상반기 영업이익률 6.1%를 기록해 상대적으로 선방했다. 고무적인 것은 중형주의 경우 2년 새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성장했다는 것이다. 영업이익이 6.2% 늘었는데 매출은 같은 기간 8.8% 증가하며 영업이익률이 소폭 하락한 것이다. 소형주의 영업이익률은 2년 새 3.6%에서 3.5%로 거의 제자리를 지켰다.

    현 정부에서 대기업의 수익성이 급전직하한 것을 두고 증권가에선 주로 글로벌 무역전쟁 여파가 크다는 의견을 내놓는다. 정치적인 발언을 자제하는 증권가다운 분석이다. 다만 주 52시간제와 대규모 정규직 전환 요구 등 반기업 정책들이 쏟아지면서 대기업의 비용 부담이 눈덩이처럼 늘어난 것에 대해선 대부분 동의하고 있다.

    학계에서도 소신 발언이 속속 나온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항공모함이 크면 유턴하기 힘든 것처럼 조직이 클수록 관행을 바꾸고 개선하는 과정에 시간과 비용이 드는데, 급격히 인건비가 늘어나고 비용이 증가하니 대처가 어려운 대기업을 중심으로 이익이 확 줄어드는 결과가 나왔다”며 “기업 부담이 급증하는 정책들은 유예기간을 충분히 주면서 시행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LG디스플레이 파주사업장
    LG디스플레이 파주사업장
    ▶중소기업은 대기업 투자 효과로 버텨

    대형주의 실적 부진은 삼성전자의 영업이익 감소 영향이 크다. 올 상반기 영업이익은 12조8303억원에 그쳐 2년 전 이익(23조9649억원) 대비 반토막이 났다.

    반도체와 마찬가지로 화학 업종도 글로벌 무역전쟁 여파로 수익성이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LG화학의 영업이익은 2년 새 64.4% 감소한 5429억원에 그쳤다.

    시총 상위 종목 중 가장 급격한 실적 악화를 겪은 곳은 한국전력이다. 이 원전 회사는 현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따라 2조원이 넘는 영업이익이 2년 새 1조원에 가까운 적자로 돌변했다.

    지난 2017년 상반기 2조3097억원의 흑자를 기록했던 한국전력은 올 상반기에 9285억원의 적자를 나타냈다.

    같은 기간 1조8311억원의 영업이익에서 5008억원의 적자 기업으로 전락해버린 LG디스플레이도 충격에 가까운 실적 변화를 겪고 있다. 치열한 수출 시장에서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는 가운데 우호적인 국내 기업 정책도 바랄 수 없게 되면서 사면초가에 빠진 셈이다.

    이창목 NH투자증권 리서치본부장은 “산업 사이클상 반도체나 화학 등 주요 종목 실적 하락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미중 무역전쟁 등으로 글로벌 교역환경까지 악화됐다”며 “국내 상장사에는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진단했다.

    영업이익은 매출에서 매출원가나 판매관리비 등 각종 비용을 빼면 나온다. 여기서 매출원가와 판관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게 인건비다. 대기업의 인건비는 최근 2년 새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 전문가들은 대기업들의 경우 이미 주 52시간제가 정착됐기 때문에 주로 정규직 전환과 고용 부담을 최근 2년 새 비용 증가의 주요 요인으로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는 풍부한 현금성 자산을 근거로 대기업들을 향해 대규모 채용과 배당을 늘리라고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다”며 “대기업들의 현금은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설비 투자나 인수합병(M&A)에도 쓰여야 하기 때문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의 올 상반기 급여 총액은 4조6170억원으로 2017년 같은 기간 지급한 급여 총액 4조2270억원 대비 3900억원(9.2%) 증가했다. 직원 수 역시 9만8541명에서 10만5044명으로 6503명(6.6%) 늘었다.

    LG화학은 대기업 중 2년 새 인건비 증가율이 29.7%로 삼성전자보다 3배가량 높다. LG화학의 올 상반기 급여 총액은 9435억원으로 반기 기준 1조원 돌파를 눈앞에 뒀다. 직원 수 역시 2017년 1만6750명에서 1만9667명으로 17.4% 증가했다.

    이 화학업체는 화학 사업 이외에도 전기차 배터리 사업을 하고 있는데 올 들어 일회성 비용 증가로 고전하고 있다. 배터리 사업에선 올 들어 대규모 적자를 기록 중이다. 그러나 LG그룹이 작년에 삼성 등 다른 주요 그룹과 마찬가지로 대규모 투자 및 고용 확대를 선언하면서 고용을 오히려 늘리고 있다.

    KT는 인건비 지출이 최근 2년 새 11.7% 늘어났다. 5세대(5G) 이동통신을 두고 통신사 간 출혈 경쟁이 펼쳐지면서 비용을 줄여야 하는데 정부 눈치를 보느라 구조조정은 뒷전이다. 2017년 상반기 8643억원이었던 KT의 영업이익은 올 상반기 6903억원으로 20.1% 줄었다.

    사진설명
    대기업들이 비용 증가로 수익성이 하락하는 동안 주요 중견기업들은 최근 2년 새 대기업들의 투자 효과에 따라 급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표적인 곳이 LG전자와 현대모비스 등을 주요 고객으로 두고 있는 삼화콘덴서다. 중형주에 속하는 삼화콘덴서의 올 상반기 영업이익은 294억원으로 2년 전(89억원)보다 230.1% 급증했다.

    최근 LG전자와 현대모비스가 자동차 전장부품 분야의 투자를 늘리면서 이들 대기업에 적층세라믹콘덴서(MLCC)를 공급하는 삼화콘덴서가 그 수혜를 고스란히 받고 있는 것이다.

    한솔케미칼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업체의 투자 확대에 따른 실적 증가가 눈에 띈다. 이 업체는 정밀화학과 전자소재 사업을 주로 하는데 정밀화학은 글로벌 무역전쟁 여파로 실적이 하락했지만 전자소재 분야는 국내 대기업 덕분에 성장하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가 생산하는 QLED TV에 핵심 소재를 공급하고 있다. 또 반도체의 박막 공정 과정에 쓰이는 프리커서(전구체)도 전자소재 부문에서 생산한다.

    한솔케미칼의 영업이익은 2년 새 42% 증가해 올 상반기에 593억원을 기록했다.

    패션업체 한섬은 2년 새 영업이익이 24.3% 증가했다. 현대백화점그룹에 인수된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는 평가다. 이 그룹의 투자 효과를 누리며 불황 중에도 남녀 브랜드 모두 고가 정책을 쓰면서 이익이 증가하고 있다.

    소형주 중에선 STX엔진의 상반기 기준 영업이익이 2년 새 99억원에서 272억원으로 급증했다. 국내 주요 조선사들이 경기 불황에도 꾸준히 수주에 공을 들인 덕분이다. 이익 급증에도 STX엔진의 인건비는 2년 새 5.3%밖에 늘지 않았다.

    KT가 5G 스마트팩토리 추진 전략을 발표하고 5G 기술을 시연했다.
    KT가 5G 스마트팩토리 추진 전략을 발표하고 5G 기술을 시연했다.
    ▶배당 더 많이 하는 대형주가 인기

    현 정부 출범 이후 시가총액 규모로 나눈 대·중·소형주의 수익률은 어떻게 될까.

    지난 2017년 6월 말 대비 올해 8월 말 기준 코스피지수는 18.8% 하락했다. 같은 기간 대형주, 중형주, 소형주 지수는 각각 18.7%, 24.7%, 18.3% 떨어졌다. 이 기간 동안 대형주의 수익성이 크게 하락한 것을 감안하면 대형주의 수익률은 코스피 지수와 비슷하게 움직이며 선방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형주의 실적은 크게 꺾이지 않았지만 주가는 전체 시장보다 더 많이 하락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대형주와 중형주의 배당 의지에서 그 원인을 찾고 있다. 한마디로 대기업들이 중견기업보다 배당을 더 후하게 줬다는 뜻이다. 배당성향은 기업들의 주주환원 의지를 나타내는 지표다. 연간 순이익에서 현금 배당 비율을 뜻한다.

    작년 기준 대형주 100곳의 현금 배당은 26조6282억원에 달했다. 그해 배당성향이 21.9%를 기록했다.

    같은 해 중형주 200곳의 배당성향은 18.7%에 그쳤다. 외국인은 실적보다 주주환원에 민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17년 6월 말 이후 올해 8월 말까지 2년 2개월 동안 외국인은 대형주를 5159억원어치 매도했다. 반면 중형주에 대한 매도 규모는 1조2176억원이다. 외국인이 배당을 적게 하는 중형주를 대형주 대비 2배 이상 많이 판 셈이다. 외국인은 배당성향이 높은 대형주는 선별적으로 순매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게임 ‘대장주’ 엔씨소프트는 2016년 811억원이던 배당총액이 2017년 1547억원, 2018년 1246억원으로 꾸준하다. 배당성향은 같은 기간 각각 29.9%, 34.8%, 29.6%다. 이에 따라 최근 2년 2개월 동안 외국인은 이 주식을 1조4429억원어치 순매수했다. 대형주 중 최대 순매수 규모다.

    이처럼 배당에 나설 수 있는 배경에는 2017년 상반기 680억원이던 영업이익이 올 상반기 2089억원으로 2년 새 3배가량 급증한 덕분이다. 국내외 경기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 똘똘한 게임 콘텐츠 ‘리니지’를 PC나 모바일 버전으로 다양하게 출시하면서 수익을 꾸준하게 올리고 있다. 외국인 순매수 덕분에 이 주식의 주가는 최근 사상 최고가를 찍기도 했다.

    정호윤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리니지의 모바일 버전 리니지M의 매출이 견조한 가운데 올 하반기 리지니2M까지 나오면서 새로운 성장 국면에 접어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사진설명
    같은 기간 외국인은 기아차도 7688억원 규모로 순매수하며 주가 반등을 이끌었다. 2017년 상반기 7868억원이었던 영업이익이 올 상반기 1조1277억원으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텔루라이드, 쏘울 등 신차가 잘 팔린 데다 환율 효과 등 호재가 겹치며 인건비 부담이란 악재를 상쇄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적 개선을 바탕으로 배당금 역시 2017년 3207억원에서 2018년 3608억원으로 늘렸다. 지난해 배당성향은 31.2%를 기록했다.

    제일기획에도 외국인 순매수(3084억원)가 몰린 덕분에 같은 기간 주가가 43.5% 상승했다. 이 광고사는 2008년 영국 광고사 BMB를 시작으로 작년까지 10개가 넘는 업체를 M&A했는데 올 상반기 기준 매출의 75%가 이들 해외 자회사로부터 나왔다. 김소혜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국외 시장에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는 데다 안정적 물량인 삼성 계열사 물량도 올해 5%가량 증가할 것”이라고 전했다.

    2017년부터는 고배당주로 각광받고 있다. 2017년 배당성향 60%를 찍고 지난해에도 59.1%를 기록했다.

    [문일호 매일경제 증권부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09호 (2019년 10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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