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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 널뛰기 시대 換테크| 하반기 한국 경제·안보 이중고 위험… 달러 예금·보험·ETF 분할 투자를
입력 : 2019.09.30 11:0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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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상여금으로 여윳돈이 생겼다면 불안정한 글로벌 환경 탓에 더욱 주목받고 있는 달러 투자, 이른바 ‘환테크’로 안정성과 수익성을 잡아보는 건 어떨까. 환테크는 기본적으로 환율이 낮은 시점에 달러를 사뒀다가, 원화가 약세로 돌아서 달러 가치가 올라가면 달러를 팔아 환차익을 거두는 방식이다. 환차익에는 과세도 되지 않으니, 환율 향방만 맞출 수 있다면 이익이 쏠쏠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최근 달러당 원화값이 1200원 선을 훌쩍 넘겨 급락(환율 급등)하자 주요 은행과 증권사 PB(프라이빗뱅킹) 센터에는 “환테크 방법을 추천해달라” “외화예금을 만들고 싶다”는 개인 고객들의 문의가 크게 늘었다고 한다. 앞서 지난 8월 13일 달러당 원화값은 서울 외환시장에서 종가 기준 1222.2원의 연저점(환율 연고점)을 기록했다. 이는 올해뿐 아니라 2016년 3월 이후 약 3년 5개월 만의 최저치이기도 했다. 지난해 연말 당일의 종가가 1115.7원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8개월여 사이에 106원 넘게 변동폭이 벌어진 것이다.
한국은행이 최근 발표한 ‘8월 이후 국제금융·외환시장 동향’ 자료를 보더라도 원화의 변동성은 지난 8월 한 달 동안 특히 확대됐다. 8월 한 달간 원·달러 환율의 평균 변동폭은 4.9원, 변동성(전날 대비 변동률)은 0.41%로, 직전 7월의 3.4원(0.29%), 6월 3.7원(0.32%)보다 늘어난 수치를 보였다. 또 중국(0.27%)·인도네시아(0.3%) 등 다른 나라와 비교해서도 변동성이 높은 축에 속했다. 변동성이 커지면 그만큼 달러가 싸지는 매수 시점, 달러가 비싸지는 매도 시점을 잡기 쉬워지기 때문에 개인 고객들의 환테크 문의가 늘어난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다만 달러 투자는 ‘당장 대박을 터뜨리겠다’는 생각으로 접근하는 것은 금물이다. 그보다는 ‘경기둔화에 대비해 자산을 분산해두고, 향후 달러값이 오를 때까지 느긋하게 장기 투자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환율은 대외 이슈와 시장 심리의 영향을 크게 받는 그야말로 ‘예측불허’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한 시중은행의 자산관리 전문가는 “안전자산인 달러는 그 자체의 수익률보다는 다른 자산 가치가 하락할 때를 대비한 방어 차원에서 유용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최근 환율 변동성이 커진 상황에서 달러 투자를 하려면, 그 누구의 분석보다도 투자자 본인이 감당할 수 있는 달러 가격 범위를 정해놓고 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본인이 생각하는 달러 매수 타이밍에 조금씩 달러를 분할매수해두고, 매도 타이밍이 오면 차익을 실현하면 된다는 의미다. 이런 결정을 스스로 내리기 위해선 환율에 영향을 미치는 국제·정치·경제·사회 이슈를 파악해두는 것도 필수적이다.
환율 변동성 지속
전문가들은 올해 하반기 달러당 원화값이 계속해서 시장 불안감에서 비롯된 극심한 변동성에 휩쓸릴 것으로 본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 갈등에서 비롯된 환율 전쟁 이슈가 가장 큰 리스크로 꼽힌다. 미중 갈등이 강대강으로 치달을 때마다 위험을 감지한 외환 시장은 안전자산 선호 심리를 보이며 급격한 ‘강 달러’ 흐름을 만들어왔기 때문이다. 두 강대국의 갈등은 지난 2017년 촉발된 이후, 미국이 중국을 압박하면 중국이 보복관세 등으로 맞대응했다가 다시 일시적인 소강상태를 보이는 식의 양상을 반복하고 있다. 일각에서 ‘경제대국 사이의 신(新)냉전’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향후 전망에 대해 민경원 우리은행 연구원은 “내년 11월 미국 대선에서 재선에 도전할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선 중국과 강대강 대치를 유지하며 보호무역주의를 공고히 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정치적으로 이득일 것”이라며 “미중 갈등에서 비롯된 불확실성 재료는 향후 달러당 원화값을 1250원 선까지 떨어트릴 수 있다”고 분석했다.
문제는 미중 갈등뿐 아니라 우리나라를 둘러싼 안보·경제 이슈가 악화일로에 있다는 점이다.
서정훈 KEB하나은행 연구원은 “여태까지는 미중 갈등이나 유로존의 경기둔화 우려, 영국의 브렉시트 등의 대외 이슈가 환율을 뒤흔들었다면, 하반기에는 우리나라가 직접 연루된 안보 이슈까지 연달아 터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북한이 올해 들어 10번째(9월 10일 기준) 미사일을 발사했고, 지난 7월 일본의 경제보복에 이어 우리나라가 지소미아 종결과 WTO(세계무역기구) 제소 등으로 맞서면서 지정학적 갈등이 심해지고 있어서다. 서 연구원은 “대외 이슈가 상존하는 상황에서 안보 문제까지 보태지면서 원화 약세(환율 상승) 재료가 쌓여 있는 셈”이라고 평가했다.
8월에는 한국에서 멀지 않은 아시아 금융허브 홍콩에서 반중국 시위가 격화하며 전반적인 아시아 통화 약세를 이끌었다.
글로벌 경기 둔화 우려와 저금리 기조도 달러 수요를 높이는 주요 원인 중 하나다. 이미 시장에는 연준이 올해 남은 기간 동안 한 차례 이상 기준금리를 인하할 것이란 기대감이 퍼져있다. 금리인하는 경기를 부양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연준은 지난 7월 ‘경기 하강 기류 속 예방적 차원’이라며 25bp를 인하했지만 부양 효과는 미미했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이에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지난 8월 잭슨홀미팅 연설에서 “성장세 유지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한 발언이 추가 금리 인하 기조로 해석되고 있다. 미국의 금리 인하는 주변국의 금리 인하를 유발한다.
이렇게 되면 시장 유동성이 확대되는데, 경기 둔화와 맞물려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자금이 달러·금 등 안전자산에 쏠리게 된다. 다만 이미 달러당 원화값이 심리적 저지선인 1200원을 뚫고 ‘1220원 선’까지 하락한 탓에 추가 하락 여력(환율 상승 여력)에 대해선 전망이 엇갈린다.
서 연구원은 “단기적으로는 전저점인 1245원, 1259원 선까지 열어놓고 봐야 한다”며 “미중 갈등 등의 변동성이 지속된다면 안전자산 선호 현상(달러 강세)이 더욱 심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이 같은 움직임은 일시적일 뿐, 장기적인 흐름은 달러 약세(환율 하락)일 것이란 전망도 있다.
백석현 신한은행 연구원은 “미국은 재정·무역적자 확대를 우려해 달러 약세를 바라고 있고, 중국도 막대한 기업부채와 이자 부담을 고려하면 달러 강세보단 약세가 유리하다”며 “양쪽 모두 ‘약 달러’가 유리한 상황이라 갈등 고조보다는 완화로 움직일 것으로 본다”고 분석했다. 이어 “하반기 중에 연저점을 한 번 더 돌파할 수는 있지만, 평균적으로는 1200원을 넘지 않을 것(1190원대)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전문가들의 말을 종합하면, 달러는 1190원대 이하일 때 분할매수를 해두고, 1220원대 이상일 때 매도하는 것이 현 시점에서의 적절한 환테크 전략으로 풀이된다.
안정성·투자기간 따라 선택
구체적인 달러 투자 방법은 금리와 투자 기간, 안정성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초심자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은 은행마다 판매하는 외화예금에 가입하는 것이다. 예금 금리와 환차익을 동시에 받을 수 있고, 환율 변동에 따른 가격 변화 외에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비교적 낮아 강 달러가 예상되는 시기에는 가장 안정적인 환테크 방식으로 꼽힌다. 은행별로 진행하는 외화예금 이벤트를 이용하면 부가 혜택도 누릴 수 있다. Sh수협은행은 모바일 전용 외화MMDA 상품인 ‘외화딴주머니 예금’은 9월 현재 달러 금리 연 1.47%를 주고, 신규 가입하는 고객에게 90% 환율 우대, 모바일 커피 쿠폰 등을 제공하는 이벤트를 진행 중이다. 언제든 입출금이 가능한 예금인데도 비교적 금리가 높은 편이다.
전북은행은 올해 말까지 인터넷뱅킹·모바일 앱 등 비대면 채널을 통해 미국 달러 외화정기·보통예금에 가입하는 고객에게 80~90% 환율 우대 혜택을 제공한다. 보통예금은 연 0.03%, 정기예금은 예치 기간에 따라 1.4~1.5% 수준의 금리를 준다.
우리은행은 외화예금과 해외결제를 접목한 ‘우리 외화바로예금’과 ‘외화바로체크카드’ 상품을 올해 출시해 판매 중이다. 수시입출식인 만큼 금리는 연 0.04%로 낮지만, 달러 예금을 넣어두면 해외 가맹점에서 결제하거나 해외 ATM에서 출금할 때 외화현찰수수료와 대체료를 면제해주는 장점이 있다. 해외여행을 하면서 현찰을 들고 다녀야 하는 부담도 줄여주고, 각종 수수료를 면제해 비용 절감 효과도 볼 수 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해외 여행과 해외에서의 외화 직접 결제 수요 관련 데이터를 분석해 상품을 출시했다”고 설명했다.
은행에선 예금보다 더 모험적인 투자에 나서고 싶은 고객에게 글로벌 달러표시 ETF(상장지수펀드)나 달러지수 연계 ETF 등의 상품을 추천한다. 시장 흐름을 잘 파악해 투자하면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지만 이 상품들은 원금 보장이 되지 않는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ETF란 특정 지수를 거래소에 상장시켜 투자자들이 주식처럼 편리하게 거래할 수 있도록 만든 상품이다. 글로벌 달러표시 ETF는 원화가 아닌 달러화로 해외 시장에 상장된 ETF에 직접 투자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소액이라도 달러 여유 자금이 있는 경우 원화로 환전할 필요 없이 바로 투자할 수 있다.
글로벌 ETF의 경우 수익의 250만원까지는 비과세고, 250만원을 넘는 이익은 초과분에 대해서만 양도소득세 22%가 적용되는 세제혜택도 적용된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글로벌 ETF는 S&P 500, MSCI World, MSCI EM(선진국) ASIA 등 글로벌 증시를 대표하는 3개 지수를 추종한다”며 “국내 상장 ETF에 비해 추적 오차가 적고 비용이 저렴하다”고 설명했다. 달러지수 연계 ETF는 말 그대로 원·달러 환율 변동에 따라 수익 여부가 결정되도록 설계된 ETF 상품이다. 환율이 오르면 이익, 떨어지면 손실이 나는 방식이다. 환율 움직임에 배팅해야 해 도박에 가깝지만, 변동성이 확대된 시기에 원화 강세 전망이 우세하다면 단기적인 이익을 볼 수도 있는 상품이다.
10년 이상 장기 투자를 고려하는 이들에겐 달러 보험도 고려 대상이다. 다만 달러 보험은 가입 기간이 긴 만큼 환율 변동에 따른 수익을 100% 보장할 수는 없고, 중도 해지하면 원금 손실 우려도 있기 때문에 신중히 가입해야 한다. 대신 안전자산 비중을 늘리고 자산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고자 하는 이들에겐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달러 보험이란 보험료를 달러화로 내고, 나중에 보험금을 탈 때도 달러로 받는 상품이다. 보험료 납입 시점과 보험금 수령 시점 각각의 환율에 따라 원화로 환산한 실질 금액도 달라질 수 있다. 만약 보험금 수령 시점에 달러가 약세를 띤다면 실제 수령액은 줄어드는 셈이고, 반대로 달러가 강세라면 환차익을 볼 수 있는 구조다. 또 10년 이상 가입 상태를 유지하면 5000만원 이하의 불입액에 대해선 비과세 혜택이 있지만, 중도 해지한다면 해약환급금이 납입 원금보다 적은 상황을 감수해야 할 수도 있다.
관련 상품 중 가장 최근 출시된 상품으로는 푸르덴셜생명의 ‘달러 평생소득 변액연금보험(월납)’이 있다. 가입 연령에 따라 납입한 보험료에는 연 최저 2.7%에서 최고 5.7%의 지급률이 적용되는 노후 대비 상품이다. 간편한 납입 절차를 원한다면 메트라이프생명이 판매하는 ‘무배당 원화내고 달러모아 저축보험’이 있다. 이 상품은 원화환산서비스를 도입해, 번거로운 환전 절차 없이 원화로 보험료를 납입할 수 있게 했다. 보험료는 미국 장기 국채나 회사채에 투자하며, 올해 5월 공시 기준으로 연복리 3.2% 수준이다.
[정주원 매일경제 금융부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09호 (2019년 10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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