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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이 추락하는 삼성물산 주가, 바닥은 어디? 삼성바이오 사태로 기관 외면, 수주 낭보가 버팀목
입력 : 2019.07.29 14:5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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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6년 말 한 증권사 객장에서 주요 그룹 지배구조를 설명하던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삼성물산이야말로 국내 주식 중 저평가됐고 향후 전망도 안정적인 ‘보험’ 같은 성격의 주식”이라고 단언했다.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최상단에 있고 실적도 상승하는 추세면서 이재용 부회장이 개인 최대주주(17.23%)라 흔들릴 가능성이 낮다는 분석에서다.
이 전망은 2년여가 지난 지금 완전히 빗나간 예상이 됐다. 삼성물산은 연일 신저가를 기록하며 주가 부진의 늪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연일 터져 나오는 제일모직과의 합병에 대한 정당성 논란 탓이다. 건설업종이나 지주사 주식을 분석하는 애널리스트들도 점차 삼성물산에 대한 보고서 쓰기를 주저하고 있다. 정치적 논란으로 주가 저평가 상태가 지속되자 예상 실적에 부합하는 목표주가 제시가 ‘공허한 울림’으로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삼성물산 주가는 지난 7월 17일 기준으로 11.2% 하락했다. 지난 5월 말에는 9만700원까지 떨어져 52주 신저가를 기록하기도 했다. 최근 10년을 통틀어 가장 낮은 주가 수준으로 투자자들의 불만은 하늘을 찌르고 있다.
이 같은 주가 하락은 외국인과 기관들이 동시에 이 주식을 내다 팔고 있기 때문이다. 올 들어 외국인과 기관은 각각 314억원, 271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이 같은 동시 매도세는 삼성물산이 최대 주주로 있는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 처리 문제와 이를 포함한 제일모직 합병 논란, 올해 꺾일 것으로 예상되는 실적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일단 실적이 제일모직과의 합병 이후 처음으로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물산의 올 1분기 영업이익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절반 수준으로 감소했다. 지난 1분기 영업이익은 1052억원으로 전년동기(2092억원) 대비 49.71% 감소한 것이다. 자회사 실적을 제외한 별도 부문의 실적은 더욱 악화됐다. 별도기준으로 삼성물산의 1분기 영업이익은 306억원으로 전년 동기(1133억원) 대비 73% 줄었다.
이 같은 실적 부진은 건설과 상사 부문의 영업이익 감소와 함께 리조트, 바이오 등의 손실 확대 때문이다. 삼성물산의 건설과 상사 부문 영업이익은 각각 1042억원, 322원으로 전년 동기(1582억원, 577억원) 대비 모두 30% 이상 줄어 들었다.
리조트 사업의 경우 영업손실(-245억원)을 이어가고 있고, 바이오 부문은 영업손실이 확대된 상태다. 바이오 부문은 1분기 348억원의 영업손실을 내면서 적자 전환됐다. 특히 삼성물산 실적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설부문의 실적이 감소하고 있고 수주 잔고도 줄면서 투자자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작년 1분기 28조9000억원이던 수주잔고는 같은해 4분기 27조9000억원으로 줄었고, 올 1분기 26조2000억원 수준에 그쳤다.
삼성물산의 영업 전략이 수익성 위주로 바뀌면서 리스크가 높은 주택사업에 소극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14년 이후 삼성물산의 민간투자사업 수주가 줄어드는 틈을 타 포스코건설, 대림산업, 롯데건설, 한화건설 등은 수주잔고를 높이고 있다.
삼성물산은 올해 신규수주 목표치(11조7000억원)를 지난해보다 높게 잡았다.
회사 측의 설명과는 달리 증권가에선 삼성물산의 삼성물산 건설부문 실적 부진이 올 2분기에도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2분기 매출은 3조1220억원으로 전년 동기(3조1430억원) 대비 0.4% 줄어들 것으로 추정된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44.9% 하락한 1340억원으로 전망된다.
백광제 교보증권 연구원은 “삼성물산 건설부문의 경우 홍콩 지하철 등 일부 해외 현장 공기 지연에 따른 손실이 반영되면서 영업이익이 급감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이를 포함한 삼성물산의 올해 영업이익은 9691억원(에프앤가이드·증권사 3곳이상 추정치 평균 기준)으로 ‘1조클럽’에서 탈락할 것으로 추정된다. 작년 영업이익(1조1039억원)보다 12.2% 감소한 수치다.
▶실적 이상의 악재 정치적 리스크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의혹은 삼성물산의 주가를 끌어 내리는 요소이자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문제까지 걸린 문제다. 이 문제는 2011년 삼성그룹이 향후 미래 먹거리로 바이오 산업을 정하고 의약품 위탁 생산을 하는 삼성바이오로직스를 설립하면서부터 시작된다.
사업 초기 연구개발(R&D) 투자비가 많이 드는 바이오 업체 특성상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설립 이후 지속적으로 적자를 내게 된다.
적자를 기록하던 이 업체는 2015년에 1조9000억원의 순이익을 낸다.
삼성바이오로직스에는 미국의 신약개발업체 바이오젠과 합작해 만든 삼성바이오에피스라는 자회사가 있는데 이 업체의 가치 평가가 바뀌면서 생긴 영업외 이득인 것이다. 2015년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자회사 바이오에피스에 대한 지배력을 잃었다며 기존 종속회사에서 관계회사로 전환한다. 바이오젠과 합작 당시 콜옵션을 맺었고 이를 행사할 가능성이 높아 종속회사로 보기 어렵다는 논리다. 이 콜옵션은 바이오젠이 원할 때 정해진 가격에 삼성바이오에피스 주식의 49%를 살 수 있는 권리다. 통상 기업들은 자회사 지분율이 50%가 넘을 때 종속회사로 판단하긴 하지만 이는 기본적으로 기업의 자율적 판단에 근거한다.
그러나 이 과정 속에서 삼성바이오에피스의 기업 가치가 2900억원에서 4조8000억원으로 16배가량 뛰었다. 관계회사로 바뀔 땐 시장 가치로 판단하는데 바이오 업계에서 삼성바이오에피스의 몸값이 크게 뛰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삼성바이오에피스의 가치 급등에 삼성바이오로직스 몸값이 높아지자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가 이를 문제 삼기 시작했다. 서류상 관계회사 전환을 삼성그룹 승계 문제로 판을 키운 것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삼성바이오에피스 전경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당시 합병비율은 1대 0.35다. 미래 성장성이 높은 삼성바이오로직스를 보유한 제일모직이 높은 평가를 받은 셈이다.
실제 당시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도 바이오 가치를 높게 평가하면서 이 합병에 찬성을 하게 된다. 투자 수익률이 가장 중요한 국민연금 입장에선 반대할 논리가 없었던 셈이다. 문제는 정권이 바뀌면서 당시 정부가 한 결정을 정반대로 뒤집어 합병 무효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논리에 따르면 ‘삼성바이오에피스 기업가치 상승→삼성바이오로직스 몸값 상승→제일모직 가치 상승→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재용 부회장, 삼성물산 지분율 상승’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일련의 과정을 통해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그룹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삼성물산 지분을 손쉽게 확보했다는 의혹이다.
이처럼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논란이 삼성그룹 지배구조를 흔들 정도로 판이 커지자 검찰은 이를 집중 추궁하는 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각종 증거 인멸 의혹이 나올 때마다 삼성물산과 삼성바이오로직스 주가는 하락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증권가 관계자는 “설령 참여연대의 논리가 다 맞더라도 삼성이 관계회사 전환이나 합병비율 등에서 자본시장법을 어긴 것은 없다”며 “결정적 증거가 나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물산 측도 “자회사 판단 변경에 대해 복수의 회계법인에 검증을 받았고 국제회계 기준에 따라 변경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증권가에선 분식회계 및 합병 문제 등의 의혹을 뺀 삼성물산 주가에 대해 ‘저평가 상태’라고 입을 모은다. 올해 실적이 하락하긴 하지만 보유한 계열사 지분 가치를 고려하면 삼성물산의 시가총액이 지나치게 낮다는 것이다.
삼성물산 중심의 그룹 지배구조는 ‘이재용 부회장→삼성물산→삼성전자·삼성바이오로직스’로 이어진다.
여기서 삼성물산은 삼성전자(4.7%), 삼성생명(19.3%), 삼성SDS(17.1%), 삼성바이오로직스(43.4%), 삼성중공업(0.1%)의 주식을 보유한 그룹의 핵심이다.
7월 17일 기준 삼성물산이 보유한 계열사 지분가치는 삼성전자(12조9207억원) 등을 포함해 27조826억원에 달한다.
같은 날 삼성물산 시총은 17조7740억원에 불과하다. 자신이 보유한 지분가치 보다도 10조원가량 낮은 셈이다.
김한이 KTB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물산 보유 자산 중 명확한 평가금액인 상장 계열사 지분가치가 삼성물산의 시가총액을 크게 넘어서고 있어 이 종목의 투자매력도는 높아졌다고 볼 수 있다”고 전했다.
저평가의 잣대가 되는 명확한 자산 중에는 현금성 자산도 포함된다. 삼성물산의 단기금융상품·금융자산을 포함한 현금성자산은 3조6000억원으로 올해 4조원을 넘길 것으로 예상된다. 주주행동주의의 강화로 삼성물산이 보유한 계열사들이 배당성향을 크게 높이고 있어 배당금이 쏠쏠한 데다 각종 자산 매각으로 현금이 쌓이고 있기 때문이다.
배당성향은 연간 현금배당을 순이익으로 나눈 수치(비중)다.
삼성물산이 지분을 갖고 있는 삼성전자의 배당성향은 2016년 17.8%에서 작년 21.9%로 높아졌다. 같은 기간 삼성생명과 삼성SDS는 나란히 2배 수준으로 높였다. 이들로부터 받는 연간 배당금은 2017년 3000억원에서 작년 5500억원, 올해 680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대규모 투자를 하느라 아직 배당을 못하고 있는 삼성바이오로직스, 삼성엔지니어링 등이 배당에 참여하면 삼성물산의 곳간은 더욱 풍족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삼성물산 역시 배당금을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증권가에선 삼성물산의 주당 배당금이 2017~2018년 2년 연속 2000원에서 올해 2018원으로 높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배당 재원이 되는 순이익이 감소하고 있는 것이다.
작년 1조7482억원이었던 삼성물산의 순이익은 올해 9918억원으로 쪼그라들 것으로 추정된다. 업계 관계자는 “순이익이 감소하긴 하지만 작년에 배당성향이 20% 미만이라 코스피 평균에도 미치지 못했고 올해 주가 하락 보상 차원에서 주주 배당을 높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각에선 삼성물산이 과감한 배당에 나서지 못하는 것은 향후 지불해야 할 지배구조 비용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최근 수주 잔고가 줄어든 가운데 중동 경영 행보가 목격되면서 기대감이 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실제 이 부회장은 지난 6월 24일 삼성물산을 방문해 중동지역 신시장 개척을 주문했다는 전언이다. 이틀 후에는 삼성그룹 영빈관 승지원에서 사우디아라비아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 겸 부총리와 국내 5대 그룹 총수의 회동을 진행하는 등 활발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삼성물산은 주택사업에서 소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어 중동 등 해외 먹거리 확보가 절실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삼성물산은 올 상반기 국내 주택 정비사업 수주가 전무한 데다 참여가 유력했던 한남3구역 수주전도 사실상 철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올 하반기 들어 해외에서 수주 소식이 전해지는 것은 삼성물산 주가에 호재다.
삼성물산은 지난 6월 25일 베트남 국영 가스회사인 페트로베트남 가스가 발주한 ‘티 바이(Thi Vai) LNG 터미널 공사’를 따냈다. 베트남 최초 액화천연가스(LNG)터미널 공사로 계약규모는 1억7950만달러다. 이 중 삼성물산 지분은 약 61%인 1억950만달러(약 1270억원)다. 이 프로젝트는 베트남 호치민시에서 남동쪽으로 약 70㎞ 떨어진 해안지역에 약 18㎡ 규모의 LNG 탱크 1기와 선박 접안시설 등을 건설하는 공사다.
이달 7일에는 말레이시아 업체 ‘아라 모덴’이 발주한 ‘KLCC 포디움 빌딩(KLCC Lot L and M Podium)’ 프로젝트 낙찰 통지서를 수령하기도 했다.
이 프로젝트는 말레이시아 정부가 추진하는 쿠알라룸푸르 시티 센터 마스터플랜의 일환으로 지상 6층 높이의 쇼핑몰·백화점 등의 복합몰을 건설하는 공사다.
[문일호 매일경제 증권부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07호 (2019년 8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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