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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무역전쟁 속 안정 투자처로 뜨는 금융주… 4대금융지주 순익 11조 예상 올해 사상 최고치 경신할 듯
입력 : 2019.06.28 14:3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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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가 차곡차곡 쌓이는 은행 예금 인기가 시들해졌지만 사업 다각화를 통해 몸값이 오른 은행 주식에 대한 관심은 오히려 커지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 속에서 수출주의 투자 가치는 하락하고 있지만 은행주는 내수주라는 특성 때문에 투자 심리가 살아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지배구조를 투명화하면서 지주사 체제로 전환한 국내 4대 금융지주사들은 올해 11조원의 순이익을 합작할 것이란 예상이지만 주가는 여전히 저평가돼 있어 고액 자산가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한지주가 올해 1분기 9658억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려 신한·KB·우리·하나금융 등 4대 금융지주 중 으뜸을 차지했다.
이 같은 신한지주의 실적은 작년 1분기 순이익(8690억원)보다 11.1% 증가한 수치다. 신한금융지주 관계자는 “그룹 내 보험 등 비금융 계열사의 실적이 좋아졌고, 은행의 순이자수익이 안정적으로 늘어난 덕분”이라고 답했다. 신한지주의 이자이익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5.1% 증가한 1908억원으로 나타났다. 대출규모가 늘어난 데다 해외 이자이익도 작년 같은 기간보다 27% 늘어났기 때문이다.
비이자이익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31.2% 증가한 8220억원이었다. 이 같은 실적 호조에는 비은행권 인수합병(M&A) 효과가 자리 잡고 있다. 작년 9월에 인수한 보험사 오렌지라이프는 올 1월 자회사로 편입돼 지난 1분기 실적에 포함됐다. 신한지주는 오렌지라이프의 지분 59.15%를 보유하고 있다. 오렌지라이프가 편입하면서 보험이익이 증가하고 유가증권 관련 수익이 증가한 덕분이다.
은행 수익성을 뜻하는 자기자본이익률(ROE)은 전 분기보다 1.2%포인트 오른 10.6%, 경영 효율성을 뜻하는 총자산이익률(ROA)은 전분기보다 0.08%포인트 오른 0.8%를 기록했다. 주요 그룹사 중에선 신한은행의 1분기 순이익이 작년 같은 기간보다 2.9% 증가한 6181억원을 기록했다. 1분기 원화대출금이 작년 말보다 2.6% 늘었다. 같은 기간 가계대출은 2.2%, 기업대출은 3% 증가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중소기업 대출을 중심으로 기업대출을 늘렸다”고 했다. 중소기업 대출이 작년 말보다 3.1% 늘어난 것도 실적 호조의 원인 중 하나다. 계열사 중 신한카드의 실적은 다소 부진했다. 1분기 순이익은 1222억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12.2% 줄었다. 작년부터 이어져온 대출상품 최고 금리 제한과 가맹점 수수료 인하의 영향이란 분석이다. 그룹 내 증권사인 신한금융투자의 순이익은 같은 기간 233.8% 증가했고 신한생명 순이익 역시 59.2% 늘었다.
우리금융지주는 신한지주처럼 M&A를 통한 규모의 경제로 실적을 방어하고 있다. 올 들어 동양·ABL자산운용과 국제자산신탁을 인수했고 최근 MBK파트너스와 손잡고 롯데카드를 인수하기로 했다. 우리금융지주는 롯데카드 지분 20%를 인수하기로 했는데 지분법에 따른 롯데카드 실적은 올 3분기부터 지주사 순이익에 잡힐 전망이다.
올 1분기 우리금융지주는 5686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지주사 출범 이후 첫 실적발표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것으로 평가받는다. 부문별로 보면 올해 1분기 이자이익은 1조4546억원, 비이자 이익은 2706억원, 수수료 이익은 2750억원으로 집계됐다. 은행의 대표적 수익성 지표인 순이자마진(NIM)은 1.52%로 지난해 말 대비 0.01%포인트 상승했다.
지난 1분기 기준 계열사별 순이익은 우리은행 5394억원, 우리카드 240억원, 우리종합금융 123억원이다.
KB금융은 올 1분기 순이익이 8457억원을 기록했는데 전년 동기(9682억원) 대비 12.7% 감소하면서 신한지주에게 1등자리를 내줬다. 그러나 실적을 자세히 분석해보면 작년 1분기에는 건물 매각에 따른 이익이 반영된 반면 올 1분기에는 희망퇴직 등 일회성 비용이 잡히면서 일종의 ‘착시현상’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작년 1분기에는 KB국민은행 명동사옥 매각수익(세후 약 830억원), 올 초에는 은행 희망퇴직 등 일회성 비용(세후 약 350억원) 발생 등이 재무제표에 반영됐다.
KB금융의 1분기 순이자이익은 2조2521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5.1%(1083억원) 증가했다. 주력 사업 실적은 꾸준하다는 뜻이다.
ROA와 ROE는 올 1분기 각각 0.71%와 9.59%를 기록하며 전년 같은 기간보다 각 0.16%포인트와 1.86%포인트 떨어졌지만 직전 분기 대비 각 0.55%포인트와 7.43%포인트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KB금융 계열사 KB증권은 올 1분기 순이익 809억원을 기록하며 324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한 작년 4분기 대비 큰 폭(1133억원)으로 개선됐다. KB금융은 지난해 부진했던 실적을 만회하고자 운용인력을 강화하고 ELS(주가연계증권) 수익모델을 안정화하는 등 사업을 재정비하면서 실적을 끌어 올렸다.
KB금융 관계자는 “주식시장에서 유가증권 및 파생상품 관련 운용실적이 크게 개선되고 보험수익과 수수료 이익이 증가하면서 그룹 수익성이 회복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나금융지주 역시 일회성 비용에 따라 지난 1분기 실적이 다소 부진한 편이었지만 향후 실적이 개선될 전망이다. 하나금융지주의 올해 1분기 순이익은 5560억원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16.8% 하락한 수치다. 이번 분기에 임금피크 퇴직비용 1260억원, 원화 약세에 따른 비화폐성 환산손실 382억원 등의 일회성 비용 발생으로 실적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나금융의 1분기 이자이익 1조4266억원, 수수료이익 5449억원을 합한 지주 핵심이익은 1조9715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6%(501억원) 증가했다.
일회성 비용을 제외한 경영 지표는 여전히 개선되고 있다는 뜻이다.
지난 1분기 실적은 엇갈렸지만 하반기로 갈수록 금융지주사들이 힘을 낼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신한·KB·하나·우리금융지주 등 4대 금융지주가 올해 순이익 11조원을 합작해 사상 최고 기록을 경신할 것이란 추정이 나오고 있다.
증권가에선 이 같은 실적 급증에도 주가가 저평가돼 있고 전통적인 내수주로 분류돼 있어 미·중 무역전쟁의 악재에서도 벗어나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올해 4대 금융지주의 연결기준 순이익 추정치 합계는 11조2847억원이다. 작년 순이익(10조5870억원)보다 6.6%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2월 지주사로 새로 출범한 우리금융지주의 경우 작년 우리은행 순이익과 비교했다.
올해 우리은행은 지주사 체제로 전환했지만 작년과 마찬가지로 우리카드와 우리종금을 자회사로 두고 있어 연결로 잡히는 주요 자회사는 작년과 동일하다.
우리은행을 포함한 4곳의 순이익이 지난 2015년 6조2029억원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4년 만에 순이익이 1.8배 급증하는 셈이다.
김인 유진투자증권 연구위원은 “4대 금융지주의 순이익은 올해 사상 최고치가 될 것”이라면서 “이들은 4~5%대의 높은 배당수익률로 최근 고액 자산가들의 투자 대안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추정 순이익 기준으로 보면 신한지주가 3조5291억원으로 4곳 중에서 1위를 기록할 전망이다. 사상 최고치를 찍었던 작년 순이익(3조1983억원)보다도 10.3% 증가할 것이란 예상이다.
신한지주는 올 하반기 신한금융투자에 6600억원을 출자해 이 자회사를 초대형 투자은행(IB)로 키울 계획이다. 이번 출자로 신한금융투자 자기자본(작년 말 3조3726억원)은 4조원이 넘게 되면서 발행어음 등 신사업 진출이 가능해졌다.
우리금융지주 역시 올해 사상 최고의 실적을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순이익은 2조989억원으로 작년(2조516억원) 보다 2.3% 증가할 전망이다.
과거 은행은 고객들이 입금하는 돈으로 편안하게 장사를 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은행을 중심으로 사업 확장도 상대적으로 손쉬운 편이었다. 그러나 최근 은행을 중심으로 한 금융지주사들은 발로 뛰는 영업을 한다. CEO 부터 소파를 박차고 나서 기업홍보(IR)를 하는가 하면 사재를 털어 자사주를 사들이는 등 적극적인 행보를 펼치고 있어 증권가의 주목을 받고 있다.
손태승 우리금융그룹 회장 겸 우리은행장은 지주 주가 부양을 위해 가장 적극적으로 움직인 CEO로 손꼽힌다.
손 회장은 지난 5월에 3박4일 일정으로 도쿄와 홍콩 지역을 방문하며 해외 IR를 진행했다. IR는 국부펀드, 글로벌 대형 자산운용사 등 10개 이상의 글로벌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일대일 미팅 방식으로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또 손 회장은 올 들어 네 차례에 걸쳐 자사주를 매입하는 등 주가 부양을 위한 의지를 피력했다. 손 회장은 지난 5월 27일 자사주 5000주를 추가로 매입해 총 5만8127주를 보유하게 됐다.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과 윤종규 KB금융 회장도 최근 적극적인 IR 행보를 보였다. 조 회장은 6월 초 호주를 방문해 시드니와 멜버른에서 주요 연기금과 자산운용사 관계자들을 만나 IR를 열였다. 이는 지난 4월 북미, 지난달 일본에 이은 올 들어 3번째 출장이다. 윤종규 회장도 올해 미국 시애틀에서 열린 ‘MS CEO 서밋(Summit)’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국제금융회의(IMC) 등에 참석하면서 국내보다 해외 일정이 많았다.
하나금융지주는 6월에 김정태 회장과 지성규 하나은행장이 함께 중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업계에선 다른 금융지주사들이 M&A를 통한 성장을 계속하면서 하나금융지주도 새로운 투자처 물색에 나선 것 아니냐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은행 중심 사업구조 탈피
주가 저평가 벗나
올 들어 금융지주사 주가는 부진한 편이다. KB금융과 우리금융지주 주가는 올 들어 6월 13일까지 각각 4.7%, 8.5% 하락했다. 우리금융지주는 지난 2월 13일 지주사로 재상장한 시점을 기점으로 계산했다. 올해 하나금융지주가 2.6% 올랐지만 같은 기간 코스피 상승률(4.6%)에도 미치지 못한다. 올해 추정 순이익 기준 1등주인 신한지주는 14.1% 오르며 차별화된 행보를 보이고 있지만 4대금융지주사 중 3곳이 시장 평균 수익률에도 미달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업계에선 대내외 경기 부진과 기준금리 인하 등 영업환경이 악화된 것이 금융지주사 주가를 끌어내렸다고 분석하고 있다. 앞서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기준금리를 연 1.75%로 동결했다. 이는 지난해 11월 1.50%에서 1.75%로 인상된 후 6개월 연속 동결된 것이다.
기준금리가 동결되면 은행의 순이자마진(NIM)이 떨어질 수 있다. 대출규제가 강화된 상황에서 수익성 악화가 예상돼 투자자들이 주식을 팔고 떠날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경기 악화에 따라 하반기로 갈수록 금리 하락 압박이 커지고 있는 것도 주가 악재다. 그러나 금융지주사들이 과거 은행에 집중된 실적 구조를 최근 보험 증권 등으로 다각화하면서 오히려 전체 순이익이 증가 추세여서 현재 주가 수준이 저평가됐다는 의견도 나온다. 올해 실적 기준 주가순자산비율(PBR)은 4대 금융지주사 모두 1배 이하다. 현 주가 수준이 청산가치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뜻이다.
신한지주를 제외한 3곳은 절대 저평가 구간인 PBR 0.5배 이하다.
4대 금융지주사 중 올해 수익성이 가장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곳은 우리금융지주다. 이 지주사의 ROE는 9.19%로 추정된다. 이에 따라 외국인은 4곳 중 이 지주사만 유일하게 사들이고 있다. 올해 순매수 규모는 2030억원에 달한다. 이에 따라 우리금융지주의 외국인 보유 비중은 지난 6월 4일에 사상 처음 30%를 넘었다.
올해 예상 배당수익률에선 하나금융지주가 5.43%로 가장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지주사 배당수익률은 작년에도 유일하게 5%대였다.
[문일호 매일경제 증권부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06호 (2019년 7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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