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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져가는 중국몽… 간판기업 실적충격, 업종별 10대 株 올 1분기 영업이익… 애널리스트 예상치에 11% 못 미쳐
입력 : 2019.05.30 10:2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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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몽은 말 그대로 꿈이었던가. 중국 의존도가 높아진 국내 주요 업종의 대표 상장사들이 고전하고 있다.
반도체의 경우 높아진 중국 의존도를 볼모로 가격 인하 압박에 시달리고 있고 디스플레이와 태양광은 중국 내 저가 제품 물량 공세에 제값을 못 받아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정유·화학 사업의 실적 부진을 만회해줘야 할 전기차 배터리 사업은 여전히 중국의 ‘배터리 한한령(한국산 금지령)’에 묶여 적자가 지속되고 있고 자동차 부품 업체들은 최근 현대·기아차 중국 공장 가동률 하락의 여파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국내 간판 기업들의 올해 1분기(1~3월) 실적은 증권가 예상치(컨센서스)에 미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기업들은 컨센서스 대비 10% 이상 밑돈 ‘어닝쇼크(실적충격)’를 기록하며 무너지고 있다.
증권가에선 당초 1분기 실적을 예상할 때 이 같은 중국 악재를 과소평가했다는 반성이 나오고 있다. 1일 금융감독원과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반도체(삼성전자 하이닉스), 차부품(현대모비스 만도 현대위아), 디스플레이(LG디스플레이), 배터리(LG화학, SK이노) 화장품(아모레퍼시픽) 태양광(OCI) 등 6대 업종 10곳의 올 1분기 영업이익은 모두 컨센서스보다 낮았다.
당초 이들 10곳의 영업이익 컨센서스는 9조8549억원이었지만 실제로는 8조7605억원에 그쳐 예상보다 11.1% 낮은 ‘성적표’를 제출한 것이다. 코스피 시가총액의 22%(5월 2일 기준)를 차지하는 반도체 ‘투톱’이 극도로 부진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올 1분기에 각각 6조2333억원, 1조3665억원을 기록했는데 이는 작년 동기대비 각각 60.2%, 68.7%나 감소한 수치다. 컨센서스와 비교해도 각각 12.2%, 2.7% 낮았다. 이들 투톱의 실적 하락은 D램 가격이 지난 1분기에 20% 이상 하락했기 때문이다.
증권가에선 반도체 가격 하락에 대해 글로벌 IT 기업들의 반도체 수요 부진으로 재고가 쌓이면서 가격이 떨어지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선 중국의 ‘반도체 굴기’가 삼성전자의 실적을 예상보다 더 크게 훼손시키고 있다는 의견이다. 중국 정부의 지원으로 YMTC(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스)는 작년 하반기부터 메모리 반도체 생산을 시작해 공급 과잉을 부추기고 있다. 여기에 중국 반독점 당국은 작년부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상대로 반도체 가격 담합 여부를 조사하며 가격 인하 압박까지 병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NRDC)는 2017년 메모리반도체 가격 상승에 불만을 품은 자국 스마트폰업체의 민원을 받아들여 작년부터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을 대상으로 가격 담합의혹에 대한 조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일부 매체는 NRDC가 삼성전자에 D램 가격을 낮추라고 직접적인 압박을 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반도체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는 “삼성전자가 중국 NRDC 의견에 주의를 기울이면 모바일 D램 가격 상승이 완화될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며 이 같은 정황에 힘을 보탰다.
SK하이닉스의 경우 2014년 22.3%였던 중국 비중이 작년에 39%까지 치솟았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매출의 30%를 차지하는 주요 고객인 중국의 가격 인하 압박이 지난 1분기에 예상보다 컸던 것”이라며 “반도체는 중국의 중장기 제조업 육성정책의 핵심이라 국내 업체들에 대한 압박을 쉽게 중단하지 않을 것”이라며 우울한 전망을 내놨다.
LG디스플레이 광저우 패널공장
LG디스플레이는 올 1분기 영업손실로 1320억원을 신고했다. 작년 1분기(-983억원)와 컨센서스(-914억원) 대비 모두 적자폭이 확대됐다.
중국은 10여 년 전부터 디스플레이 산업을 집중 육성해 ‘초저가’ 전략으로 액정표시장치(LCD) 물량을 급격히 늘려왔다. 이 같은 저가 물량 공세에 LG디스플레이는 물론 삼성디스플레이 마저 속수무책인 상황이다. 삼성전자는 디스플레이 패널 사업이 지난 1분기에 560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LG디스플레이의 작년 중국 매출 비중은 62.6%에 달한다. 2014년까지만 해도 60%가 넘지 않았는데 의존도가 심화됐다. 이에 따라 중국 LCD 공급 과잉 문제가 오히려 심화되면서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다. 박유악 키움증권 연구원은 “중국 BOE와 HKC, CSOT의 신규 공장 가동이 본격화되며 LCD 패널 산업의 공급 과잉 정도가 심해지고 있다”며 “LCD TV패널의 경우 원재료의 원가 비중이 매우 높기 때문에 중국 업체의 공격적인 증설이 둔화되지 않는 이상 패널 가격의 반등이 나오긴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박 연구원은 “가격이 워낙 떨어지다 보니 일시적 반등이 나오지만 추세적 변화를 위해선 중국 쪽의 공급 과잉 문제가 해결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각에선 중국의 디스플레이 ‘맹공(맹렬한 공격)’이야말로 국내 반도체 산업의 미래라는 비관론까지 나오고 있다. 중국 저가 물량이 풀리기 전까지 디스플레이는 LG그룹의 든든한 ‘캐시카우(현금 창출원)’였다. 지난 2016년 LG디스플레이의 연간 영업이익은 1조3144억원이었고 2017년에는 2조4616억원에 달하며 2년 연속 ‘1조클럽’에 이름을 올렸다. 돈 되는 사업이라는 소식에 중국 업체들이 중국 당국의 지원을 받아 LCD 물량을 쏟아내면서 제품 가격은 급전직하했다. 이 같은 시장 상황은 작년에 극대화됐으며 LG디스플레이의 영업이익은 같은 해 929억원에 그쳤다. 올해 증권사들은 이 종목이 2000억원을 넘는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은 태양광에서도 비슷하게 벌어지고 있다.
태양광 대표주자인 OCI는 작년 4분기에 이어 올 1분기에도 적자를 내며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원인은 디스플레이와 마찬가지로 중국산 저가 제품으로 인한 수익성 악화다. 작년 1분기 1063억원의 영업이익이 올 1분기 406억원의 적자로 돌아섰으며 컨센서스보다도 적자폭이 깊었다.
이 업체는 태양광 기초 원료인 폴리실리콘을 주로 생산하는데 이 제품값이 하락하며 수익성이 떨어지고 있다.
태양광시장 조사기관 PV인사이트에 따르면 폴리실리콘 가격은 1㎏당 8.42달러로 역대 최저 수준이다. 이는 작년 초 17.83달러에서 반토막 이상 난 수치다. 폴리실리콘 업체들의 손익분기점은 1㎏당 14달러 안팎으로 알려졌으니 만들면 만들수록 손해인 셈이다. 이 와중에 OCI는 생산량 기준 세계 2위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역대 최저 수준인 폴리실리콘 가격에도 중국 업체들은 전기료 지원 등 정부의 지원을 받아 버티고 있는데 국내 업체들은 고사 위기”라고 전했다. 일각에선 국내 정부가 태양광을 살리기 위해 에너지 전환 정책을 펴고 있지만 이마저도 중국산 저가 제품들이 활개칠 수 있는 장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은 올 1분기에 배터리 사업에서 각각 1479억원, 869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여기에 주력 사업인 정유·화학 실적 부진까지 겹치며 두 업체 모두 작년 1분기 대비 영업이익이 반토막 이상 난 것으로 나타났다. LG화학의 경우 컨센서스 대비 14.5% 낮은 ‘어닝쇼크’를 기록했다. 일각에선 이들 업체의 실적 안정성을 위해선 배터리 사업에서 흑자가 나야 한다는 지적이지만 중국 시장 규제를 뚫지 못하면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의견이다. 앞서 중국은 지난 2016년부터 사드 보복 조치로 한국산 배터리를 탑재한 자동차는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해왔다.
지난 1분기에 현대·기아차의 중국 판매가 여전히 부진한 가운데 일부 공장 구조조정 여파로 부품 업체들은 실적 부진에 빠진 것으로 나타났다.
베이징 1공장의 경우 현대차가 베이징자동차와 합작해 2002년 말부터 생산을 시작한 ‘중국 1호 공장’이지만 수년간 이어진 판매 부진 등에 따라 폐쇄를 결정했다. 최근 기아차의 중국 장쑤성 옌청1공장은 가동률 부진으로 구조조정을 검토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들 공장에 납품하는 현대위아와 만도의 1분기 영업이익은 컨센서스 대비 20% 이상 낮은 실적을 기록하며 동반 어닝쇼크를 겪은 것이다.
사드 악재에서 벗어나지 못한 아모레퍼시픽의 올 1분기 영업이익은 1866억원으로 전년동기대비 20.9% 감소했고 컨센서스 대비 10.7% 밑돌았다. 이 업체는 지역별 매출로 중국을 따로 구분하지 않고 있지만 아시아 지역 매출과 그 비중은 매년 높아지고 있다. 아시아의 대부분을 중국이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주요 도시에 매장을 늘리며 마케팅 비용을 크게 높이고 있지만 비용 증가 대비 실적이 따라오지 못하면서 중국 성적표는 아직까지 부진한 것으로 나타났다.
향후 실적 전망은 여전히 암울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2분기 기준으로 실적이 살아나는 곳은 차 부품 업종이며 나머지 업종은 여전히 전년 동기대비 부진한 실적을 낼 것으로 예상됐다.
현대모비스와 현대위아의 올 2분기 영업이익은 각각 5691억원, 329억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각각 7.1%, 61.6% 높아질 전망이다. 차 부품업체 현대모비스의 경우 국내 신차 판매 호조로 중국 공장 악재를 상쇄하며 이익이 늘어날 것이란 분석이다. 중국 매출 비중도 2017년 18.7%에서 작년 17.7%로 낮아지며 지역별 다각화에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업체는 특히 친환경차 비중을 높이면서 사업 다각화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2분기에는 미국 등 다른 지역 실적 증가로 중국 부진을 극복할 것이란 예상이다.
유지웅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에서 신차 효과로 미주 지역 매출액 증가세가 시작될 예정이고, 중국에서도 비용 요인이 감소할 것”이라며 “팰리세이드 등 신형 SUV 판매 호조로 핵심 부품 사업의 매출액 개선도 기대된다”고 밝혔다.
최근 중국에서 공격적인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아모레퍼시픽의 실적 개선도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매출은 꾸준히 증가하는데 여전히 비용 요인이 발목을 잡고 있다. 아직까지 핵심 시장인 중국에서 ‘설화수’ 등 고가 브랜드 판매 증가보다 마케팅 비용 증가 속도가 더 빠르다. 올 2분기 매출은 작년 동기대비 5.5% 증가하지만 영업이익은 같은 기간 5.4% 감소하는 것으로 나온다. 전영현 SK증권 연구원은 “중국 등 해외시장에서 매출 대비 비용이 늘어 수익성이 악화됐다”며 “공격적인 마케팅 전략을 통해 중국 현지 성장률을 끌어올릴 수 있을지가 향후 주가의 향방을 결정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올 2분기 영업이익도 작년 동기대비 뒷걸음질 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두 업체의 영업이익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각각 29.1%, 32.3%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유 및 화학사업 부진 여파가 여전한 가운데 배터리 등 기타 사업성과가 이익 감소를 어느 정도 막을 전망이다.
최근 삼성SDI의 배터리가 적용된 중국 진캉자동차 전기차가 중국 정부의 형식승인을 받으면서 이들에 대한 중장기 기대감은 상승하고 있다. 권성률 DB금융투자 연구원은 “중국 당국이 한국산 배터리 탑재 전기차를 승인한 건 보조금 대상에서 줄곧 제외했던 정책에서 변화가 발생한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작년에 사상 최대 실적을 나란히 올렸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올 2분기 전망은 우울한 편이다. 반도체 가격의 갑작스런 반전이 없는 한 실적 개선을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며 중국의 반도체 가격 인하 압박도 유지될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와 태양광, 디스플레이의 경우 중국의 주력 산업 육성정책(중국제조 2025)과 함께 미·중 무역전쟁 여파로 당분간 고전이 예상된다”고 전했다.
[문일호 매일경제 증권부 기자 ]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05호 (2019년 6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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