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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9조 사모펀드 전성시대
입력 : 2016.08.12 13:5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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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말 기준 사모펀드 순자산 규모는 228조9040억원으로 공모펀드 순자산(227조9291억원)을 넘어섰다. 금융투자협회가 공모펀드와 사모펀드 순자산 규모를 구분해 집계하기 시작한 2004년 이후 처음 벌어진 일이다. 통상 전문투자형 사모펀드는 소수 투자자로부터 모은 자금으로 운용하는 투자상품으로 비공개로 투자자를 모집해 정해진 목표수익률을 추구한다. 최소가입조건이 1억원 이상인 점을 고려하면 불특정 다수 투자자들이, 소액으로 언제든 가입할 수 있는 공모펀드 시장을 추월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며 10년 만에 40조원 이상의 격차를 따라잡은 셈이다.
▶한국형 헤지펀드 인기몰이
사모펀드 급성장의 일등공신은 헤지펀드다. 헤지펀드 시장 확대는 사모펀드 시장 규제완화는 물론 시기적으로도 맞아떨어지는데, 최근 코스피가 4~5년간 박스피(1800~2100)를 횡보하면서 공모 주식형 펀드들이 힘을 못 쓴 것이 주원인이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올 상반기 설정액 1조원 이상 6개 국내주식형(공모) 펀드 중 5개는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벤치마크인 코스피200(0.81%) 상승률에도 미치지 못했으며, 국내주식형 펀드 평균 수익률 자체가 -2.17%에 불과했다. 은행이자에도 못 미치는 성과가 투자자들의 실망감으로 이어지면서 상반기에만 3조원이 넘는 자금이 빠졌다. 여기에 자산가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주가연계증권(ELS)도 중국 유럽의 주가 급등락에 따른 리스크가 부각되면서 올 들어 발행규모가 급격히 줄었다.
두 간판급 재테크 상품에서 이탈하는 자금을 빨아들이고 있는 것이 바로 한국형 헤지펀드다. 헤지펀드가 시장을 크게 웃도는 성과를 기대하기보단 시장 흐름에 관계없이 절대수익률을 추구하는 콘셉트인 만큼 중위 주요 전략으로는 쌀 때 주식을 사고 비쌀 때 파는 롱숏(Long-Short), 전환사채·교환사채 등 파생결합증권에 투자하는 메자닌 전략, 여기에 스팩·공모주 투자까지 모두 섞는 멀티스트래티지 전략 등이 있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헤지펀드들은 대부분 멀티스트래티지, 쉽게 말해 시장 상황에 따라 수익을 낼 수 있는 전략을 모두 구사하는 상품들이다. 브레인·트러스톤과 같은 국내 1세대 헤지펀들은 대부분 대형 가치주 중심의 롱 온리 전략을 사용하고 있지만 변동성이 커진 최근 시장에서는 이런 전략이 먹히지 않게 된 것. 기민한 대응을 하는 젊은 펀드매니저들이 헤지펀드 시장으로 이동하는 추세가 강해진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한국형 헤지펀드의 매력은 역시 수익률이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공모주 투자에 집중하는 ‘파인밸류IPO플러스’의 올해 수익률은 17.41%에 달하며 ‘디에스秀’와 ‘피데스 신짜오’도 모두 10% 이상 수익을 자랑하고 있다. 국내 헤지펀드 돌풍의 주역인 라임자산운용은 우수한 성과를 바탕으로 지난해 말 사모운용사 전환 이후 설정액이 2000억원을 돌파(펀드수 12개)했으며 지난 5월 운용사로 전환한 타임폴리오자산운용은 헤지펀드 출시 한 달 만에 4000억원에 가까운 뭉칫돈이 몰리기도 했다.
유동완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사모펀드의 경우 연기금 및 대형법인 투자자(전문투자자), 거액 개인투자자가 원하는 운용전략을 구현하기가 상대적으로 용이하다”며 “운용 제한요건이 공모펀드에 비해 완화돼 있기 때문에 다양한 전략의 상품이 개발될 수 있고, 특히 사모운용사 요건이 완화되면서 사모펀드의 다양화는 더욱 빠르게 진행될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헤지펀드라고 해서 모두 수익률이 우수한 것은 아니다. 절대수익을 가져다주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제로 상반기에 두 자릿수 손실을 기록한 펀드들도 쉽게 볼 수 있다. 초창기 한국형 헤지펀드 시장을 이끌었던 브레인 자산운용의 한라·백두 등 롱숏 위주 펀드들은 올해에만 -10% 이하로 수익률이 떨어진 상태다.
헤지펀드 투자로 손실을 줄이기 위해선 먼저 단기 수익률이 높은 헤지펀드를 경계해야 한다. 헤지펀드의 취지 자체가 중국펀드와 같이 단기 고수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만큼 수익률 지속성 여부를 따져봐야 한다. 헤지펀드 업계 관계자는 “신생 헤지펀드들의 경우 설정액 규모가 작은 초창기 일부 급등주나 공모주 물량을 확보해 수익률을 끌어올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상품 선택을 하려면 매니저들과 펀드의 운용전략, 트렉레코드 등을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며 “운용 헤지펀드에 자기자본을 투자하는지 여부도 믿을 만한 펀드를 판별하는 척도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형 헤지펀드 가운데 중장기적으로 성과를 나타내는 곳은 삼성자산운용이다. 삼성자산운용의 ‘H클럽멀티스트레티지1호’는 지난 2012년 2월 설정 이후 42%로 연 평균 10% 이상 성과를 기록 중이며 ‘H클럽에쿼티헤지’와 ‘H클럽하이브리드1호’도 최근 3년 내 연 평균 10%대 성과를 내고 있다.
일부 증권사 지점 프라이빗 뱅커(PB)를 통해 자산가들에게만 허용됐던 헤지펀드지만 앞으로는 일반 투자자들에게도 길이 열린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5월 29일 금융위원회는 사모펀드 재간접투자 공모펀드 도입을 골자로 하는 ‘펀드상품 혁신 방안’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오는 연말께엔 일반 투자자도 500만원(최소투자금액)만 있으면 헤지펀드에 가입할 수 있게 됐다. 여기에 증권사들도 헤지펀드를 운용할 수 있게 되면서 헤지펀드 시장 성장세는 더욱 가팔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최근 사모펀드 활성화를 위해 규제를 대폭 완화했다.
메자닌(Mezzanine) 펀드 역시 자산가들 사이에선 ‘없어서 못 사는’ 상품이다. 1%대 초저금리 기조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채권과 주식의 장점을 결합한 메자닌펀드로 연일 뭉칫돈이 몰리고 있다.
이영환 대신증권 도곡역지점 프라잇뱅커(PB)는 “자산운용사들이 중개 역할을 강화하면서 과거처럼 엄청난 거액이 아닌 최소 5000만원 정도로 투자가 가능해지면서 인기가 식을 줄 모르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메자닌이란 층과 층 사이의 라운지 공간을 나타내는 이탈리아 건축용어로 보통 ‘중간’을 의미한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주식과 채권의 특성을 모두 가진 하이브리드 형태의 금융상품을 통칭한다. 채권과 주식의 혼합 형태를 갖추고 있어 리스크와 기대수익률도 두 자산의 중간 정도다. 위험도는 채권보다는 높고 주식보다는 낮고, 수익률도 채권보다는 높고 주식보다는 낮다. ‘중위험-중수익’을 노리는 투자자라면 눈여겨볼 만한 투자법이다.
메자닌은 특정 회사 채권에 주식을 연계해 주가 상승 시 ‘채권이자+α(매매차익)’를 추구하는 구조로 주식으로 전환하거나 주식을 살 수 있는 워런트(Warrant)가 붙은 전환사채(CB), 신주인수권부사채(BW), 교환사채(EB) 등이 이에 해당한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주가 하락으로 시세차익을 남기기 어렵더라도 만기까지 채권을 보유해 이자를 받을 수 있다. 채권 이자율의 경우 회사 신용등급에 따라 1~7%까지 다양하다. 이 PB는 “CB는 시장이 불안하거나 회사가 흔들린다면 전환 시기가 오지 않더라도 매도옵션을 활용해 손해 없이 채권을 현금으로 돌려받을 수 있다”며 “또 전환가 조정이 돼 약세장에서도 시장대비 안정성이 좋다”고 설명했다.
메자닌 투자법은 다양하다. 가장 일반적인 방식으로 사모펀드, 공모펀드, 일임형랩 등이 있다. 펀드는 투자된 채권의 회수와 옵션 행사까지 최소 1년 6개월 이상 기간이 필요하며, 일반적으로 계획된 투자진행과 회수를 위해 기본적으로 2~3년까지 환매가 제한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투자자들이 원할 때 언제든지 투자금을 되돌려줘야 하는 공모 형태로 메자닌펀드를 운용하기 힘들다는 의미다. 메자닌 투자가 주로 사모 형태로 이뤄지는 이유다.
실제 국내에 출시된 공모형 메자닌펀드는 그리 많지 않다. 작년 6월에 출시된 ‘LS메자닌 분리과세하이일드 펀드’가 대표 상품이다. 반면 사모펀드 시장에서는 메자닌펀드의 열풍이 이어지고 있다. 6월 말에 씨스퀘어자산운용은 1호 메자닌펀드의 완판에 힘입어 2호 메자닌펀드를 내놨다. 앞서 라이노스자산운용의 ‘라이노스메자닌사모2호’는 출시 보름 만에 완판된 것으로 알려졌다. 총 200억원 규모로 설정된 이 펀드는 연수익 10~15%를 추구한다. 안다자산운용이 5월 초에 설정한 메자닌펀드에도 250억원의 기관 자금이 몰린 것으로 전해진다. 5월 말에 출시된 ‘파인밸류 메자닌플러스’도 한달 만에 103억원의 뭉칫돈이 들어왔다. 메자닌펀드의 원조인 KTB자산운용의 ‘KTB메짜닌’도 꾸준한 플러스 수익률을 보여주고 있다.
다만 사모 메자닌펀드는 일반적으로 7~10개 종목의 편입을 목표로 하는데 펀드 설정 후 초기 수익률이 부진할 수 있다. KTB운용 관계자는 “초기에는 종목편입율이 낮고 저금리로 운용되는 유동자금의 비중이 높고 옵션 행사가 되지 않아 내재 가치도 낮다”며 “시간이 지날수록 목표 종목편입률을 달성하고 채권의 원리금도 정상 회수돼 수익률이 상승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일임형 랩상품을 통한 투자도 고려해볼 수 있다. 대신증권은 최근 ‘밸런스 공모주 메자닌 랩’이 대표적이다.
메자닌 펀드는 절세 상품은 아니라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주식 전환 전의 공모 워런트나 주식 전환 후 주식 차익의 경우에만 비과세를 적용 받는다. 또 메자닌은 자금 사정이 좋지 못한 상장사들이 발행한다. 즉 회사 부도 가능성을 언제든지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KTB운용 관계자는 “투자자는 사전에 우회상장 등으로 대주주의 신뢰도가 낮은 회사, 대표이사 변경이 잦은 회사, 기술성이 기업가치의 대부분인 회사, 분석이 난해한 이유로 고평가된 회사 등을 편입 종목에서 제외하고 있는 상품을 찾아봐야 한다”고 밝혔다.
[채종원·이용건 매일경제 증권부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71호 (2016년 08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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