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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대상 다양하고 투자비용 저렴…저금리시대 자산배분투자 해외 ETF 인기
입력 : 2016.08.12 13:5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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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직장인 김모 씨는 요즘 해외 상장지수펀드(ETF) 투자 재미에 푹 빠졌다. 그는 영국이 유럽연합에서 탈퇴(브렉시트)를 결정한 지난 6월24일 금융시장 불안이 당분간 나타날 것으로 예상하고 안전자산인 금 ETF에 투자해 보름 만에 약 10%의 수익을 올렸다. 이어 7월에는 손꼽아 기다리던 베트남 ETF가 상장되자마자 투자해 불과 일주일 만에 4% 수익률을 기록했다. 김 씨는 “한국은행 기준금리가 1%대 초반까지 내린 상황에서 시장 변화에 따라 손쉽게 자산배분 투자를 할 수 있는 수단으로서 ETF만한 게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ETF·ETN 326개 중 113개가 해외투자상품
바야흐로 ETF 자산배분 시대가 열리고 있다. 그동안 국내 개별 주식이나 국내 주가지수 레버리지·인버스 ETF에만 주로 투자하던 개인들이 해외 ETF로 눈을 돌리고 있다. 국내 기준금리가 1% 초반까지 내려가고 기업들의 전반적인 성장성도 둔화돼 더 이상 예금이나 국내주식에만 투자해서는 원하는 투자수익을 얻기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7월 초 기준 거래소에 상장된 ETF와 상장지수증권(ETN) 총 326개 가운데 해외투자 상품이 113개로 전체의 34.6%를 차지했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해외투자 상품 비중은 20%에 머물렀지만 올해 상반기 해외투자 ETF 및 ETN이 20개 이상 상장됐기 때문이다.
올해 1월 국내 ETF 거래대금 기준 해외 ETF 비중은 6.7%였지만 4월 이후 7%를 넘었고 6월 기준 7.3%를 차지했다. 연초에 비해 비중이 0.6%포인트 늘어난 것이다. 국내 ETF 거래대금 가운데 기관 투자자 비중이 높은 코스피200 ETF가 30% 이상을 차지한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해외 ETF 거래대금 비중 증가폭이 큰 규모는 아니지만 분명하고 의미 있는 변화라는 게 거래소와 자산운용업계의 평가다.
해외 ETF는 비단 주식과 채권뿐만 아니라 금과 은 등 귀금속, 원유와 구리 등 원자재, 농산물에 이르기까지 투자할 수 있는 자산이 매우 다양하다. 특히 지난 6월 24일 시장의 당초 예측과 어긋난 브렉시트 결정으로 시장이 공포에 빠져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안전자산이나 위험자산에 역방향으로 투자하는 해외 ETF 매수자들이 크게 늘었다. 브렉시트 당일 ‘KINDEX 골드선물 레버리지’가 각 11.3% 올랐고, ‘KODEX 골드선물’도 4.5% 상승했다. 유로스탁스50 지수에 반대 방향으로 투자하는 ‘TRUE 유로스탁스50 인버스’ ETN도 이날 9.6%나 올랐다. 글로벌 경기가 브렉시트에 더욱 위축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유가 하락에 베팅한 ‘TIGER 원유선물 인버스’ ETF도 4.6% 상승했다.
해외 자산배분 수단으로서 ETF가 눈길을 끄는 것은 일반 펀드에 비해 투자비용이 저렴하기 때문이다. 해외 펀드는 보통 연간 총투자비용이 2%를 넘는다. 판매보수가 1%가 넘기 때문이다. 반면 ETF는 주식처럼 홈트레이딩시스템(HTS)을 통해 투자자가 직접 거래하는 구조여서 판매보수가 따로 없다. ETF는 또 일반 주식과는 달리 매도할 때 내는 거래세 0.3%도 면제된다. 결과적으로 해외 ETF는 총 투자비용은 연간 0.7% 안팎으로 일반 해외펀드에 비해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투자자가 원할 때 실시간으로 사고팔 수 있다는 점도 ETF의 강점이다. 이에 비해 일반 펀드는 오후 5시 이전에 매수 신청을 하면 영업일 기준 하루 이후, 오후 5시 이후에 매수 신청을 하면 이틀 후에나 실제 투자가 진행된다. 환매할 때는 더욱 불편하다. 거의 대부분의 해외 펀드는 오후 5시 이전에 환매신청을 해도 7거래일 후에나 환매자금을 받을 수 있다.
윤주영 미래에셋자산운용 ETF본부장은 “저금리·저성장 국면에서 다양한 시장에 대한 분산투자가 불가피해질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이런 흐름에 가장 적합한 상품이 저렴한 비용으로 시장을 추종하고 손쉽게 자산배분에 활용할 수 있는 ETF”라고 강조했다.
하반기 들어 보다 다양한 해외 ETF 상품이 등장하면서 자산배분 투자 수요를 만족시키고 있다. 7월 1일 국내 증시에 처음 상장된 한국투신운용의 ‘KINDEX 베트남VN30 ETF’는 일주일 만에 4%가량 오르면서 투자자들 사이에서 ‘머스트해브(must have)’ 상품으로 부상했다.
상장 첫 주 일평균 거래대금이 40억~50억원에 달했다. 거래소에 따르면 해외 ETF로서는 이례적으로 일평균 거래대금이 전체 상위 10위권에 들어가기까지 했다.
KINDEX베트남 ETF는 베트남 호치민거래소에 상장된 베트남 대표기업 30종목으로 구성된 VN30지수를 추종한다. ‘베트남판 다우지수’로 불리는 VN지수에는 바오베트그룹(보험), 호치민시인프라투자(건설), 사이공증권(증권), 킨도(식품), 흥브옹(수산), 탄타오투자(부동산) 등 시가총액이 크면서 거래가 많이 되는 종목들이 포함돼 있다.
전문가들은 경제성장률과 외국인 자금 유입으로 하반기에도 베트남 증시의 전망이 밝다고 보고 있다. 이소연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베트남의 글로벌 IT업체의 생산기지 역할 확대와 내수시장의 잠재력에 대해 글로벌 투자자들이 주목하고 있다”면서 “올해 하반기나 내년에 외국인 투자한도가 늘어나면 수급 측면에서 좀 더 강세를 나타낼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올해 9~10월에는 인도네시아와 대만에 투자하는 ETF도 국내에 상장될 예정이다. 한국투자신탁운용은 올해 9월을 목표로 인도네시아에 투자하는 ETF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
‘KINDEX 인도네시아 ETF(가칭)’는 인도네시아 대표 지수인 ‘IDX종합지수’를 추종한다. IDX지수는 한국의 코스피와 마찬가지로 인도네시아거래소에 상장된 514개 기업이 모두 포함된 지수다. 심재환 한국투신운용 베타운용본부장(상무)은 “인도네시아는 세계에서 네 번째로 인구가 많아 내수기반이 넓은데다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등 해외 직접투자가 늘면서 성장이 본격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올해 10~11월께 대만 지수를 추종하는 ETF 상장을 준비하고 있다. 미래에셋운용이 대만 가권지수를 추종하는 ETF를 한국거래소에 상장하고, 대만 최대 자산운용사인 유안타자산운용은 한국 코스피200 지수 ETF를 대만거래소에 상장시키는 형태다. 대만은 한국과 함께 아시아에서 고성장 신화를 써온 국가지만 그동안 국내에서 마땅한 투자수단이 없었다.
최근 아이폰 제조 협력업체로 잘 알려진 대만 기업 폭스콘이 노키아를 인수하는 등 IT산업을 중심으로 성장 잠재력을 높여가고 있다. 대만 증시의 평균 배당수익률도 3%대 중반 수준이어서 안정적인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 밖에 운용업계에서는 러시아 ETF와 유럽 헬스케어 업종 ETF 등도 상장을 추진하고 있다. 단일순 거래소 ETF시장팀장은 “작년까지 국내에 상장된 해외 ETF가 중국·일본·미국 중심이었는데 올해 말까지 웬만한 신흥국 지역 투자 상품도 라인업을 갖출 것”이라며 “다양한 해외상품 상장을 통해 투자자의 선택폭을 넓히는 한편 해외 직접투자로 인한 자본 유출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해외 ETF 투자에 관심 있는 투자자라면 놓쳐서는 안 될 것이 ‘비과세 해외주식투자 전용계좌’다. 지난 2월 29일 해외상장주식에 60% 이상 투자하는 펀드의 경우 차익을 한도 제한 없이 비과세해주는 제도가 도입됐다. 해외상장주식의 매매·평가손익 및 환차익에 대해 비과세 혜택이 주어지며 가입일로부터 10년간 세제혜택을 받을 수 있다. 내년 말까지 한시적으로 가입이 가능하고, 총 납입 한도는 3000만원이다.
다만 적지 않은 투자자들이 비과세 해외주식형 펀드만 생각하고 비과세 해외주식 ETF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중도 인출 시 세제 혜택이 없는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와 달리 비과세 해외주식은 내년 말까지는 가입 한도 내에서 비과세로 자유롭게 매매가 가능하다. 따라서 거래비용이 낮은 ETF가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비과세 해외 ETF에 투자하려면 증권사 영업점을 방문하거나 온라인 및 모바일로 해외주식투자전용 계좌를 따로 개설해야 한다. 복수계좌도 개설이 가능하지만 계좌개설 시 총 한도 3000만원 이내에서 계좌별 투자한도를 설정해야 한다. 또 신규 가입이 종료되는 내년 말 이후부터는 보유 ETF를 매도하면 신규 매수가 불가능하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다만 7월 초 기준 비과세 해외주식계좌로 거래 가능한 해외 ETF가 15개에 불과하다는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그나마도 절반에 가까운 7개가 중국 ETF로 쏠려 있다. 나머지는 일본과 미국에 투자하는 ETF가 각 3개씩이고, 유럽과 남미에 투자하는 ETF는 각 1개씩에 불과하다. 동남아나 인도 등에 투자할 수 있는 비과세 상품은 아직 전무하다.
비과세 해외 ETF 숫자가 적은 것은 비과세 조건이 까다롭기 때문이다. 해외 증시에 상장된 주식 현물을 60% 이상 투자하는 ETF만 비과세 대상이다. 해외 주식 선물에 투자하는 ETF나 증권사와 스왑거래를 통해 운용되는 합성 ETF 등은 빠진다. 한국투신운용이 상장시킨 베트남 ETF도 합성 방식으로 만들어진 상품이어서 비과세 대상이 안된다.
하반기 첫 거래일인 지난 7월 1일 ‘TIGER 미국다우존스30’과 ‘TIGER 유로스탁스배당30’ 등 비과세 해외 ETF가 2개 상장되면서 비과세 라인업이 점차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박병용 한국거래소 상품제도팀장은 “자산운용사들과 협의해 추가로 올해 안에 10개 정도 비과세 해외 ETF가 상장될 것”이라고 말했다.
TIGER 유로스탁스배당30은 유럽 고배당주 30종목에 투자하는 ETF다. 기존 비과세 ETF가 각국 대표지수를 추종하는 상품이었지만 배당 스타일에 투자하는 첫 번째 비과세 상품이란 점에서 업계는 물론 투자자들의 관심이 상당하다. 미래에셋자산운용 관계자는 “유로존 내에서 고배당 성향을 띠는 기업만 골라 투자해 안정적으로 초과수익을 노릴 수 있다”며 “기존 미국 아이셰어즈 ETF 등 해외에 상장된 고배당 상품에 투자해 온 고객들의 관심이 높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최재원 매일경제 증권부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71호 (2016년 08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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