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낡은 건물의 재발견, 빈티지 부동산 잘나가네

    입력 : 2015.06.12 15: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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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기업 차장 A씨는 세 들어 사는 서울 이촌동 입주 21년차 아파트 전용 84㎡를 매입하기로 결심했다. 1000만~1500만원 들여 인테리어를 새로 하고 주말에 이케아에서 소품을 사서 집을 꾸밀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마음이 들뜬다. A씨는 “신도시 아파트를 분양 받으면 도심에 출근하기 위해 1시간 이상 허비해야 한다”며 “그래도 새 아파트에 미련이 남으면 공급량이 워낙 많기 때문에 2~3년 후 분양 받아도 늦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 자산가 B씨는 지난 3월 마포구 서교동 일대에 지하 1층~지상 3층 대지면적 243.3㎡ 중소형 빌딩에 투자했다. 준공된 지 20여 년이 지나 꽤 낡았다. 건물 가격은 0(제로)원. 땅값만 35억원을 줬다. 현재 원룸으로만 구성된 탓에 보증금 5억원에 월세가 600여 만원으로 연 수익률은 2.8% 나온다. B씨는 “지금은 낡았지만 앤틱하게 리모델링하면 전혀 다른 건물이 될 것”이라며 “상수역이 가까워 유동인구가 많은 편이어서 아래층에 브런치 카페를 열면 수익률도 오를 것 같다”고 말했다.



    저금리에 불황의 그늘이 짙어지면서 부동산 재테크가 실속·실수요형으로 바뀌자 찬밥 신세였던 오래된 부동산이 주목을 받고 있다.

    아파트, 오피스텔, 상가 등 신규 물량이 쏟아지면서 공급 과잉 염려가 나오고 분양가도 오르고 있는 가운데 ‘신상’ 투자에 편승하기보다 조금 오래됐지만 가격이 저렴하고 시장 검증을 마친 ‘빈티지 부동산’은 알뜰한 투자자와 주택 수요자에겐 꽤 괜찮은 거래인 셈이다. 마침 이케아 효과로 가구·인테리어 시장이 커지면서 리모델링하면 새 것 못지않게 바꿀 수도 있다는 점도 빈티지 부동산의 가치를 높여주고 있다.

    빈티지는 명품 와인이 생산된 햇수와 관련된 말로 일정기간이 지나도 가치가 유지되는 것을 일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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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티지 아파트 뜬다 기존 주택 시장에서는 최근 들어 준공 후 10년이 넘은 빈티지 아파트 가격 상승세가 뚜렷하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지난 5월 12일 기준 준공 후 10년을 초과한 전국 아파트 매매가는 1.57% 올라 2011년 이후 처음으로 준공 후 1~5년(1.47%)과 6~10년(1.19%) 아파트를 제친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수도권에서도 준공 후 10년이 넘은 아파트 매매가 상승률이 가장 높았다.

    사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부동산 경기 침체로 준공된 지 10년이 넘은 낡은 아파트는 새 아파트에 밀려 기를 펴지 못했다. 아파트값이 오를 땐 상승폭이 제일 작았고, 반대로 떨어질 땐 하락폭이 가장 컸다. 하지만 저금리와 전세난 속에 ‘빈티지 부동산’이 약진하고 있다.

    함영진 부동산114센터장은 “전세금이 좀처럼 꺾이지 않자 자의 반 타의 반 매매전환에 나서는 실수요가 늘어나면서 낡더라도 일단 싸고 고쳐 쓸 수 있는 실속 구매가 확산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주택 시장에서 빈티지의 원조격인 재건축 아파트도 서초를 중심으로 옛 명성을 되찾고 있다.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폐지와 초과이익 환수제 유예 등 재건축 규제가 대거 풀리면서 사업이 급물살을 타는 단지들이 늘어나고 가격도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일반적으로 재건축 아파트 값은 고점보다 30%가량 떨어졌다고 보지만 반포·잠원동의 경우 지난 2000년대 중반 호황기 최고가 시세를 넘어서거나 회복을 눈앞에 둔 단지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지난해 말 대비 5000만원 이상 오른 곳이 늘어나면서 매도자 우위 시장으로 바뀐 상황이다.

    해외 사례를 비춰보면 빈티지 주택이 더 낫다는 의견도 있다. 일본은 도쿄 인근 신도시에 집을 장만했던 단카이 세대(일본 베이비 붐 세대)가 기반시설이 잘 갖춰진 도심으로 회귀하면서 신도시 일대가 낙후되고 집값이 떨어지고 있다. 반면 도쿄는 디플레이션인 와중에도 기존 집값이 올랐다. 일본 주택 시장을 보면 미래의 한국 주택 시장을 어느 정도 예상해 볼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 신도시는 청약자가 40대가 많고 고령화 속도가 일본보다 느려서 당장 일본 전철을 밟지 않겠지만 일본을 보면 도심의 집값은 잘 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며 “올해 신도시·택지지구 분양 물량이 많아서 2017~2019년 공급 과잉 염려가 나오는 데다 분양가도 1~2년 전처럼 저렴하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신도시보다 서울의 기존 주택을 장만하는 게 중장기적으로 괜찮은 선택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빈티지 부동산은 수익형 상품에서 진가를 발휘한다. 과거와 달리 매각에 따른 시세 차익을 노리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는 임대수익률을 높이려면 일단 싸게 사야 이득이다.

    리얼티코리아에 따르면 지난 1분기 중소형 빌딩 거래가 가장 많았던 강남 신사동, 서초 서초동, 마포 서교동의 연식별 거래량을 조사한 결과 60.6%가 준공된 지 최소 15~20년이 넘어 감가상각으로 인해 건물 값이 사라지고 땅값만 남은 노후 빌딩이었다.

    이진석 리얼티코리아 본부장은 “오래된 건물은 싸고 신축·증축하면 용적률을 높일 여지가 있어 임대면적이 늘어나 수익률 개선 효과가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중소형 빌딩 연간 수익률은 강북이 5~6%대로 강남(4~5%대)보다 높은 것도 매매가가 저렴하기 때문이다.

    서울 성수동 일대 중소형 빌딩 전경 리모델링을 거쳐 트렌디하게 탈바꿈해 레스토랑 등 우량 임차인을 들이는 건물들이 늘고 있다.
    서울 성수동 일대 중소형 빌딩 전경 리모델링을 거쳐 트렌디하게 탈바꿈해 레스토랑 등 우량 임차인을 들이는 건물들이 늘고 있다.
    낡은 건물 리모델링해 차별화

    이태원 경리단길, 성수동 일대 등 주요 상권마다 뒷골목 매장에 사람이 몰리고 옛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복고풍 아이템이 뜨면서 일부러 낡은 건물을 사들여 내부 인테리어만 약간 현대적으로 리모델링한 레트로 스타일 건물로 차별화를 시도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임채우 KB국민은행 부동산 전문위원은 “건물을 체계적으로 관리함으로써 좋은 임차인을 들이고 자산 가치를 높이려는 건물주도 늘어나는 추세”라고 말했다.

    오피스텔도 오래된 것이 수익률이 높다. 지난해 기준 입주 10년을 초과한 오피스텔 연간 임대수익률은 5.97%로 가장 높았다. 반면 1~5년차(5.05%)와 6~10년차(5.11%)는 전체 평균(5.71%)에도 못 미쳤다. 특히 신규 분양 오피스텔은 분양가가 예전보다 비싸서 수익률은 더 낮아진다.

    오피스텔은 연식이 오래된 것이 가격이 저렴할 뿐 아니라 전용률(계약 면적 대비 전용면적)도 높다. 서울 오피스텔 분양가는 지난 4월 현재 3.3㎡당 1229만원으로 2013년 말(1078만원)보다 14% 올랐다. 반면 전용률은 올해 입주 예정인 서울 오피스텔의 경우 48%로 평균인 54.3%보다 낮았다. 낮은 전용률은 입주자들이 실제 사용하는 면적이 줄어드는 것을 뜻한다. 윤지해 부동산114 선임연구원은 “실제 사용면적이 줄면서 가격이 오르는 것은 물건의 사용가치가 떨어진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서울 용산구 서부이촌동 아파트 전경. 준공된 지 10년이 넘은 아파트들이 즐비하다.
    서울 용산구 서부이촌동 아파트 전경. 준공된 지 10년이 넘은 아파트들이 즐비하다.
    오피스텔 분양 관계자는 “시장 분위기가 달아오르면서 처음부터 연 4~5% 수익률을 먼저 맞춰 놓고 역산해서 분양가를 책정하는 사례가 늘다보니 가격이 오르고 있다”며 “지하철 개통 등 해당 지역에 큰 부동산 호재가 없는 한 수익률이 내려갈 수 있어도 오르기는 쉽지 않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강남의 한 중개업소 관계자는 “오피스텔은 여전히 잠만 자는 곳이라는 기능이 강하다”며 “안목이 높은 투자자는 일부러 가격이 저렴한 기존 오피스텔 중에서도 저층을 공략한다”고 귀띔했다. 특히 강남, 종로, 마포 등에 위치한 기존 오피스텔 저층은 자기계발이나 동호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직장인들을 위한 요리교실, 꽃꽂이, 수제 비누 만들기 등 공방·스튜디오로도 인기가 높다. 실제 사용할 수 있는 면적이 넓어 사무실, 원룸, 스튜디오 등 공간을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고 저층이라 고층에 비해 접근성이 우수한 게 장점으로 작용한 것이다. 상가도 연식이 어느 정도 된 매물에 투자하는 게 리스크를 줄이는 방법이다. 부동산 중에서 불확실성이 높은 게 상가다. 특히 신도시 분양 상가는 그중에서도 리스크가 가장 높다. 교통, 문화·생활·교육 시설 등 대부분의 인프라스트럭처가 ‘개발 예정’이어서 중간에 바뀌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박합수 KB국민은행 명동스타PB센터 팀장은 “신도시 분양 상가는 기반시설이 갖춰지려면 5년 이상을 내다봐야 하기 때문에 유동 인구 규모와 동선 등 예측 불가능한 요소가 많다”고 지적했다. 낡더라도 시장에서 최소 한 번 이상 검증을 거친 기존 상가를 매입하는 것이 안전한 이유다. 박 팀장은 “기존 상가를 리모델링하거나 임차인 관리만 잘해도 수익률을 개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임영신 매일경제 부동산부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57호(2015년 06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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