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금 나오는 종신보험 인기…가입자 본인에 대한 혜택 크게 늘려

    입력 : 2015.06.12 14:4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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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 종신보험을 드는 이유는 단순했다. 가장이 가족을 위해 남긴 선물 같은 존재였다. 좀 더 쉽게 말해 가족을 위한 ‘희생’의 표현이었다. 매달 수십만원에 달하는 보험료를 쏟아붓지만 정작 가입자 본인을 위한 혜택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대신 유가족은 가입자가 사망한 뒤 억대의 보험금을 한 번에 받을 수 있다. 가장을 상대로 종신보험 가입을 권하는 설계사들의 단골 멘트도 천편일률이었다. 갑자기 사망할 것에 대비해 남은 가족들에게 배려를 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 같은 종신보험에 지각변동이 일고 있다. 가입자 본인을 위한 혜택을 대폭 보강한 것이다. 특히 연금을 미리 받아 생존 시 쓸 수 있는 기능을 대폭 추가한 게 특징이다.

    사망보험금 담보 연금 의료비 지급 신한생명이 내놓은 ‘연금 미리 받을 수 있는 종신보험’은 사망보험금을 담보로 연금을 선지급하는 구조다. 이 상품은 주택금융공사 역모기지 상품인 주택연금을 꼭 닮았다. 주택연금은 주택을 담보로 연금을 주지만 신한생명 보험은 사망보험금을 담보로 연금을 주는 게 다르다.

    예전에도 특약 형태로 종신보험을 연금보험으로 전환하는 기능이 일부 있었지만, 이는 기존 종신보험을 해지한 환급금으로 연금보험에 재가입하는 구조였기 때문에 가입자 입장에서 손해를 보는 게 많았다. 해지 환급금이 그동안 낸 보험금을 밑도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한생명 보험은 사망보험금 전체를 담보로 인정하고 여기서 역산해 연금을 주는 구조기 때문에 가입자가 연금을 많이 받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교보생명은 ‘나를 담은 가족사랑 교보뉴(NEW)종신보험’을 내놓았다. 이 상품 역시 기존 종신보험과는 확연하게 다른 네 가지 특징이 있다. 우선 가입자가 아플 때 의료비를 사망보험금에서 떼어 미리 돌려주는 기능을 담았다.

    예를 들어 사망보험금이 1억원으로 책정된 보험가입자가 은퇴 이후 병원에 입원하면 첫날부터 1인당 5만원, 중증 수술시 1회당 200만원씩 받을 수 있다. 의료비는 사망보험금 80% 한도까지 미리 빼 쓸 수 있는 구조다.

    사망보험금이 1억원이면 병원비로 8000만원까지 가입자가 살아 있을 때 돌려받고 죽은 뒤 나머지 보험금을 유족이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윤영규 교보생명 상품개발팀장은 “고령화시대에 나이가 들수록 의료비 부담이 늘어나는 현실을 반영했다”고 말했다. 은퇴 나이는 만 60·65·70세 중 가입자가 선택할 수 있다.

    아프지 않더라도 사망보험금을 생활비로 미리 활용할 수 있는 길도 열어 놨다. 큰 덩치의 보험을 가상으로 잘게 잘라 사망보험금 80% 한도에서 일부를 해지하면 환급금을 생활비로 돌려받을 수 있다. 예전에는 종신보험 계약을 해지하고 연금으로 전환하면 종신보험 자체가 실효되는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교보생명은 보험 일부를 해지하는 식으로 보험을 설계해 종신보험을 유지하면서도 일부를 연금으로 받을 수 있게 유연하게 보험을 만든 것이다.

    가입자가 죽으면 일시에 돌려주던 사망보험금도 유족 형편에 맞게 수령 시기를 설계할 수 있도록 구조를 바꿨다. 예를 들어 사망보험금이 1억원일 때 유족이 지금 당장 4000만원을 받고 나머지는 목돈이 드는 자녀 대학입학 시점인 6년 후에 받겠다고 선택할 수 있다.

    보험사에 남아 있는 보험금은 가입 당시 표준이율(현 3.25%)로 적립해서 유족에게 돌려준다. 이 밖에 매년 건강검진을 받으면 보너스 형태로 격려금을 주는 기능도 담았다.

    이 보험은 최근 배타적사용권을 획득할 정도로 독창성을 인정받았다. 배타적사용권은 독창적인 금융상품에 부여하는 일종의 특허권이다. 다른 보험사는 향후 3개월간 비슷한 상품을 내놓을 수 없는 구조다.

    생명보험협회 신상품심의위원회는 “업계 최초로 사망보험금을 유가족 상황에 맞게 자유롭게 설계해 받을 수 있는 점과 가입자 건강관리를 돕는 독특한 보너스 적립제도에 대한 독창성을 인정해 배타적사용권을 부여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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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망보험에만 치중하면 상품성 떨어져 종신보험이 한국에 처음 들어온 건 외환위기 직후였다. 하루아침에 회사가 망해 실업자가 쏟아지자 공포를 느낀 샐러리맨이 대거 종신보험 계약서에 서명을 했다.

    2000년 초중반 종신보험은 암을 비롯한 가입자 중대질병을 보장하는 ‘CI(Critical Illness)’ 기능을 추가해 또 한 번 인기몰이를 한다. 그로부터 10년 뒤 ‘늙어서 죽지 않는’ 고령화 시대가 닥치자 시류에 맞게 옷을 갈아입고 ‘종신보험 3.0’ 시대가 개막한 것이다.

    윤영규 교보생명 상품개발팀장은 “사망보장에만 치중하던 종신보험은 더 이상 매력이 없다”며 “종신보험 하나만 있으면 늙어서 최소한의 삶의 질을 보장받는 시대가 왔다”고 말했다.

    한화생명도 부모가 죽어도 자녀가 경제적 어려움 없이 학업을 마칠 수 있도록 설계한 ‘교육비 받는 변액통합종신보험’을 선보였다. 이 상품은 자녀의 학업기간인 7~22세 사이에 부모가 사망하면 가입금액의 50%를 사망보험금으로 지급한 후 교육비를 매월 별도로 보장하는 것이 특징이다. 매월 지급되는 교육비는 초등학생(7~12세)은 가입금액의 2%, 중·고등학생(13~18세)은 가입금액의 3%, 대학생(19~22세)은 가입금액의 4%다.

    기본형 기준으로 가입금액 1억원짜리 보험에 들어 가입자가 사망하면 5000만원을 사망보험금으로 일시에 지급한 후, 자녀가 22세가 되는 시점까지 매월 초등학생(200만원), 중·고등학생(300만원), 대학생(400만원)을 지급하는 것이다.

    만약 자녀가 22세를 넘어 부모가 사망하면 기존 종신보험과 마찬가지로 가입금액의 100%인 1억원을 지급한다.

    최성균 한화생명 상품개발팀장은 “부모가 갑자기 죽어 목돈을 받더라도 돈을 잘못 운용해 날릴 우려가 있어 학업을 마칠 수 있도록 보험사가 중간에 나서 도와줄 수 있게 설계한 상품”이라고 설명했다.

    새롭게 변신한 종신보험에 쏠리는 관심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신한생명이 내놓은 ‘연금 미리 받을 수 있는 종신보험’은 판매 50여일 만에 누적가입액 1조원을 돌파했다. 기존 보험상품 판매 속도 세 배에 달하는 속도다. 보험시장이 포화상태에 빠져 웬만한 신상품이 나와도 약발을 받지 않던 최근 트렌드를 고려할 때 가파른 판매 랠리를 펼치는 것이다. 종신보험에서 가입금액이란 사망 시 받을 수 있는 보험금 액수를 뜻한다. 사망보험금 1억원짜리 보험이 1만개 팔리면 누적가입액이 1조원을 찍는 구조다.

    교보생명 ‘나를 담은 가족사랑 교보뉴(NEW)종신보험’ 판매 추이도 가파르다. 출시 한 달 만에 가입자 7300명, 가입금액 6000억원 고지를 찍었다. 교보생명 관계자는 “최근 2~3년간 나온 보험 중에서 판매 속도가 가장 빠르다”고 말했다.

    한화생명이 5월부터 기존에 팔던 종신보험 3종에 ‘사망보험금 연금선지급서비스 특칙’이란 특약을 신설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교보생명·신한생명 상품과 마찬가지로 사망보험금을 일부 헐어 살아 있을 때 생활비로 쓸 수 있게 하는 기능을 추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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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후불안 탓 보험상품 진화 이어질 듯 종신보험의 대대적인 변화는 노년을 준비하는 한국인의 심리가 짙은 불안감으로 얼룩져 있다는 걸 보여준다. 젊어서 부은 보험료를 모아 죽은 뒤 자식한테 고스란히 물려줄 만큼 노인의 삶이 녹록지 않다는 뜻이다.

    보험개발원에 따르면 2013년 말 기준 개인연금보험에 가입한 우리나라 국민은 876만명으로 인구 대비 가입률이 17.1%에 불과하다. 지난해 개인연금보험에 들어온 보험료는 36조7000억원을 기록해 전년 대비(39조9000억원) 오히려 8.0%나 줄었다. 개인연금을 따로 들 만큼 삶이 풍족하지 않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종신보험을 최후의 보루로 삼아 최소한의 생활보장을 할 수 있는 수요가 생겼고 이를 간파한 보험사들이 신상품을 내놓아 인기몰이를 하는 것이다.

    종신보험 신상품이 주목받는 이유는 하나 더 있다. 한국인 특유의 가족애가 꼽힌다. 기존 종신보험에도 사망보험금을 연금으로 돌려 생존 시 쓸 수 있는 특약이 있었다. 하지만 이 특약을 쓰면 남은 가족이 사망보험금을 한 푼도 받지 못한다. 연금과 사망보험금 비중을 배분할 수 있는 신상품과 뚜렷한 차이가 있다. 죽은 뒤 다소 얼마라도 가족에게 물려주고 그중 일부를 헐어쓰길 원하는 가장들이 대거 가입행렬에 동참한 것이다.

    김세중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종신보험의 주 혜택은 사망보장”이라며 “사망보험금을 기본으로 혹시 모를 빈곤한 노년에 대비하려는 수요가 대대적으로 몰린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종신보험을 들 때 몇 가지 주의해야 할 점도 있다. 고액의 종신보험은 설계사가 보험 상품에 대해 충분히 고지하지 않고 보험을 파는 불완전 비율이 높아 조심해야 한다.

    최근 금융감독원 금융소비자보호처는 ‘종신보험 가입 시 주의해야 할 핵심사항’ 네 가지를 공개한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꼼꼼하고 신중하게 보험을 골라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가입자가 민원을 제기하는 사례가 여전히 많다는 것이다.

    소비자들이 가입단계에서 종신보험의 상품구조나 보장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기 어려운 게 첫째 이유다. 설계사는 본인 이득만 취하기 위해 상품의 장점만 부각시켜 설명하는 점이 문제로 이어진다. 장기 상품을 중도에 해지하면 큰 손실이 나는 경우가 많다.

    이를 예방하려면 ▲종신보험은 순수 저축목적이 아니다 ▲장기간 유지에 따른 신중한 선택을 해야 한다 ▲연금전환 시 일반연금보험에 비해 적립액이 적을 수 있다 ▲특약까지 평생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는 4대 핵심 유의사항을 숙지해야 한다.

    종신보험은 기본적으로 사망보험금을 지급하는 보장성보험이다. 10년 이상 보험료를 꼬박 부어도 해지 시 환급금이 원금에 미치지 못할 수 있다. 사업비를 많이 떼는 구조라서 해지하면 원금을 돌려받기 힘들다는 것이다. 평생 보장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정기보험에 비해 보험료가 상대적으로 높다는 점도 유의할 부분이다.

    [홍장원 매일경제 금융부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57호(2015년 06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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