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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상품 프로가 콕 찍은 펀드
입력 : 2015.02.06 17:0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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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그런 전문가나 교수들은 도대체 한국에 펀드가 몇 개나 있는지 알고나 있는지 궁금하다. 막상 좋은 펀드 하나 찍어보라면 그들 스스로도 잘 모를 테니 말이다.
여기 그 숫자가 나간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1월 15일 기준 국내에 설정된 펀드 숫자는 공모펀드만 3453개나 된다. 증권사 창구에서 알음알음 투자를 하는 사모펀드는 8552개나 된다. 입이 딱 벌어질 정도다.
“2000개도 채 안 되는 국내 주식 종목조차 너무 많아서 이름을 처음 들어보는 게 수두룩한 데 이 많은 펀드 중에서 내가 투자할 만한 것을 어떻게 찾을까.”
게다가 펀드 이름은 또 왜 그리도 길고 생소할까. 이름이 긴 펀드 두 개만 예를 들어보자. 무작위로 찍은 펀드 중 하나는 ‘신한BNPP 미국배당&시니어론 ETF증권투자 신탁 1(H)[주식혼합-재간접형](종류 A1)’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이스트스프링 퇴직연금 차이나드래곤A Share40 증권자투자신탁[채권혼합] 클래스C’이다.
대학에서 경제학이나 경영학을 전공하고 증권 기사를 10년 이상 쓴 기자라고 해도 이들 펀드의 성격을 정확히 분석하는 데 한참을 허비해야 한다. 그러니 펀드 이름 기억하는 것은 애당초 생각하기조차 싫어질 정도다. 이만큼 이름 구분하는 것조차 쉽지 않으니 펀드 고르기는 더욱 막막할 수밖에 없다.
펀드 이름이 길고 복잡한 것은 펀드를 인가하거나 통계를 담당하는 당국자들의 편의를 위한 측면이 강하다.
지금 자산운용사들은 펀드 하나를 만들더라도 국내에 투자하는지, 해외에 투자하는지 가려야 하고, 주식형인지 채권형인지, 섞어서 하는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파생상품형인지 등을 구분해 신고해야 한다.
여기에 주식형 펀드는 또 가치주나 배당주에 투자하느냐, 성장주에 투자하냐, 섹터를 구분해 투자하느냐, 인덱스처럼 묶어서 투자를 하느냐 등을 꼬치꼬치 구분해서 신고해야 한다. 채권 펀드도 국채나 회사채 고위험 채권 중 어떤 유형의 채권을 담는지 미주알고주알 적어넣어야 하고 그걸 벗어나면 문제가 된다.
여기에다 같은 유형의 펀드를 몇 번 만들었는지에 따라 차수가 붙고 펀드를 어떤 경로로 파느냐, 수수료는 어떻게 떼느냐 등 조건에 따라 다시 복잡한 알파벳 기호를 붙여야 한다.
덕분에 국내에 나와 있는 펀드 이름은 거의 암호 수준이다. 불쌍한 투자자들은 자기 돈 갖고 투자 좀 해보겠다는데 도대체 감이 잡히지 않는다. 머리가 나빠서가 아니라 제도가 복잡해 간접투자조차 쉽지 않은 세상이다.
증권사 펀드 선정법 벤치마킹 대상 그렇다고 귀한 돈을 장롱에 묻어두거나 이자도 거의 받지 못하는 은행 예금에 넣어두는 것도 내키지는 않을 것이다. 복잡한 절차는 접어두고 좋은 수수료를 받으며 펀드를 추천하는 증권사 상품개발 전문가들의 노하우를 따라가 보자.
사실 증권사 창구나 은행 창구에 가서 추천 펀드를 가입하면 쉽다. 그렇지만 문제는 그런 상품이 믿을 만한지, 나에게 맞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창구에서 펀드를 파는 직원들조차 스스로 그 펀드를 잘 알고 추천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회사가 좋다는 펀드를 팔 뿐이다.
그러니 그게 맞는지 확인해 최종 투자를 결정하는 것은 자기 돈 갖고 리스크를 짊어지는 투자자의 몫이다. 투자자가 조금은 공부를 해야 한다는 얘기다.
많은 방법이 있지만 증권사 상품개발 전문가들의 노하우를 빌려서 펀드를 꼽아보자.
각 증권사 상품개발본부에선 1만여 개가 훨씬 넘는 공모 사모펀드를 놓고 투자자들에게 어떤 상품을 팔 것인지 수시로 회의를 한다. 그들의 방법을 따라가면 투자자도 나름 펀드 보는 눈이 생길 것이다.
전문가들이 펀드를 고를 때 제일 먼저 보는 기준은 역시 수익률이다. 장단기 수익률을 놓고 서열에 따라 일단 좋은 우수 펀드만을 가려낸다. 다시 말해 성적이 나쁜 펀드를 대상에서 제거하는 것이다.
개인투자가들도 인터넷이나 증권사 사이트 등을 통해 기간별로 실적이 좋은 펀드들은 추려낼 수 있다. 이때 최근 3개월과 6개월 수익률을 볼 수도 있지만 1, 3, 5년 수익률을 함께 보면서 꾸준히 수익률이 좋았는지를 검증하는 게 중요하다.
이런 식으로 주식형, 채권형, 혼합형 등 유형별로 수익률이 좋은 펀드들을 골라내면 1차 관심 대상이 좁혀진다.
그 다음 할 일은 운용사의 내력이나 펀드매니저의 경력 등 개별 펀드의 구체적 내용을 탐색하는 것이다. 이 작업은 사실 증권사의 상품개발본부에서도 일일이 수작업으로 하고 있다. 여기서도 중요한 것은 스스로 기준을 세워 투자해선 안 될 대상을 제거하는 것이다. 좋은 펀드 고르는 것보다 좋지 않은 펀드를 멀리하는 게 스스로를 지키는 비결이기 때문이다.
많은 증권사들이 이런 방법을 거쳐 유형별로 2~3개에서 많게는 5~10개까지 추천 펀드를 선정한다. 이 과정에서 판매사의 전략에 따라 자기 회사와 친분이 있는 회사 펀드에 우선권이 돌아갈 수도 있고, 세계 경제 동향 등에 따라 우선권을 부여할 수도 있다.
이 방법을 권하는 것은 거래되는 펀드가 워낙 많아 어떤 금융기관도 시중에 나온 펀드의 절반도 소화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지난해 최고의 주식형 펀드 운용사로 꼽힌 메리츠자산운용의 펀드조차 팔지 않는 증권사도 적지 않다. 이 회사 상품을 취급하는 증권사는 전체 증권 업계의 절반도 안 될 정도다. 역시 장단기 실적이 꾸준히 좋은 에셋플러스자산운용의 코리아리치투게더펀드 역시 취급하지 않는 증권사들이 수두룩하다. 좋은 펀드를 고르려면 자기가 거래하는 증권사나 은행에만 의존하지 말고 스스로 찾아나서야 한다는 얘기다.
이런 면에서 여러 증권사의 추천 펀드를 두루 볼 필요가 있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대형 증권사만 보지 말고 중소형 증권사도 기웃거려야 한다는 점이다. 작지만 강한 운용사의 펀드는 작은 증권사에 나와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장기 투자를 하게 될 퇴직연금 펀드는 판매사가 극히 제한돼 있기 때문에 원하는 펀드를 찾은 뒤 판매사를 찾아가는 게 정답이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올해 미국 경기 회복에 따른 금리 인상과 달러화 강세를 예상했고 국내의 배당 강화 정책이나 중국의 후강퉁 효과, 일본 공적연금(GPIF)의 주식 투자 확대 등이 주요 변수가 될 것으로 주목했다,
문성필 한국투자증권 상품전략본부장은 국내의 경우 “기업 이익의 개선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어 코스피 기준 1870~2200포인트 수준을 전망하고 있다”며 “특정 업종보다는 배당주 중심 투자가 여전히 유망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채권펀드 투자와 관련해 “유가 급락 및 달러 강세에 따른 환율 하락으로 신흥 시장의 불안이 2015년에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에 이머징채권이나 하이일드채권 시장도 보수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며 다만 “상대적으로 중국 본토 채권에 대해서는 긍정적 전망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시장을 유망하다고 본 최효종 하나대투증권 IPS본부장은 “미국은 2015년 연간 성장률이 3%로 전망되는 등 민간 소비를 중심으로 견조한 성장이 지속돼 중장기 투자에 긍정적”이라며 “다만 유가 하락으로 기업 이익이 하향 조정되는 에너지 섹터만은 제외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대희 하이투자증권 상품개발팀 선임차장은 “글로벌 금융시장의 중요한 축인 G2의 투자에 대한 관심을 가지면서,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과 유가 하락 같은 변동 요인을 감안하여 투자 지역을 선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하이투자증권은 미국, 중국 외에 디플레이션 탈피를 위한 강력한 정부 의지가 돋보이는 일본, 정부 개혁 조치와 경상수지 개선 원자재 가격 하락에 따른 물가 안정 효과가 동시에 호재로 작용하고 있는 인도 주식도 눈여겨볼 대상으로 추천했다.
이진명 미래에셋증권 자산배분센터장은 “올해 자산 배분의 키워드는 여전히 글로벌과 차별화”라며 “펀더멘털 개선 여부를 기준으로 볼 때 미국과 아시아가 가장 양호한 지역이며 두 지역을 중심에 둔 포트폴리오 구성이 적절하다”고 조언했다. 또 유망 펀드 유형으로는 “글로벌 소비 성장에 따른 광의의 컨슈머 섹터, 저금리 기조 지속에 따른 배당주와 일드(yield)형 상품에 관심을 두는 전략”이 유효하다고 덧붙였다.
김성호 대우증권 상품개발운용본부장은 “각국 중앙은행의 정책 차별화에 따른 글로벌 변동성 확대와 신흥국발 시스템 리스크의 우려가 있다”면서 국내에선 배당이나 이자 수익 등 인컴 수익을 기반으로 하는 배당주 펀드나 혼합형 펀드가 유효하다고 했다. 김 본부장은 또 해외에선 “글로벌 불확실성 증가에 따른 대안 상품으로 주식과 채권의 성격을 함께 지닌 글로벌 전환사채 펀드를 주시하라”며 “단기간 가파르게 올랐지만 상승 스토리가 지속되는 중국 증시가 조정을 받을 경우 중장기 관점에서 매수하는 게 유망하다”고 덧붙였다.
소성수 IBK투자증권 상품전략본부장(전무)은 유망 지역으로 미국과 중국을 꼽고 유망 섹터로는 글로벌 불확실성 확대에 따른 채권 단기 투자를 추천했다. 소 본부장은 특히 중국에 대해 “경제 지표는 부진하나 중국 정부의 전방위적 경기 부양책보다는 필요한 곳에 세밀하게 처방전을 내놓은 것이 중국 증시의 상승을 이끌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소 본부장은 국내 주식과 관련해 “주가의 박스권 흐름을 예상할 때 대형주보다 개별 우량주 중심의 중소형 가치나 배당주 펀드를 주목하라”고 조언했다.
오현석 삼성증권 투자전략센터장은 에셋플러스 코리아리치투게더펀드에 대해 “종목 선정 노하우로 최상위 성과를 내고 있다”면서 “출범 이후 매니저 교체 없이 운용의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고 운용이나 경영진의 팀워크도 우수하다”고 평가했다.
미래에셋 아시아그레이트컨슈머펀드에 대해 이대희 하이투자증권 선임차장은 “아시아 소비 성장의 수혜를 받는 기업에 주로 투자하며, 소비재 업종뿐만 아니라 소비 관련 수혜를 직간접적으로 누리는 기업이라면 업종에 구애받지 않고 종목을 발굴해 투자하는 펀드”라고 추천 이유를 밝혔다.
소성수 IBK투자증권 상품전략본부장은 한국밸류 10년주식 펀드에 대해 “시장 변동에 흔들리지 않고 내재 가치 대비 저평가된 종목과 성장 잠재력이 있는 종목에 투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문성필 한국투자증권 상품전략본부장은 삼성 밸류플러스펀드에 대해 “운용역의 종목 선정 능력이 뛰어난 중소형 가치주 펀드로 가치와 성장을 동시에 고려하는 포트폴리오로 우수한 성과가 예상된다”고 조언했다.
피델리티 미국 펀드에 대해 최효종 하나대투증권 IPS본부장은 “미국 내 유망 산업군에 투자하는 해외 펀드로서 특히 헬스케어와 IT를 중심으로 투자 비중이 높아 미국 경기 회복 추세와 기업 이익의 상승이 예상되는 시점에서 중장기 안정적 수익률이 기대된다”고 밝혔다.
중국 펀드 중엔 에셋플러스의 ‘차이나리치투게더’와 이스트스프링의 ‘차이나드래곤펀드’에 대한 관심이 높은데 김성호 KDB대우증권 상품개발운용본부장은 “중국 내수 소비 시장을 선도하고 세계 시장을 주도할 잠재 능력을 가진 중국 일등 기업에 투자하는 점”에 대해, 이대희 하이투자증권 선임차장은 “중국의 장기적 경제 성장에 따라 수혜가 예상되는 종목 가운데 높은 성장성과 우수한 지배 구조를 지닌 중국 본토 주식을 발굴하여 운용하는 점”에 주목해 전자와 후자를 각각 추천했다.
국내 펀드 얼마나 많은가
[정진건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53호(2015년 0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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