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진 신영자산운용 사장 | 졸병이 월급 받아 넣는 돈 어떻게 깨먹나

    입력 : 2015.02.06 17: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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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진 사장 서울대 법학과를 나왔으며 현대중공업을 거쳐 1987년 신영증권에 입사했다. 1992년 슈로더증권 최고투자책임자로 활약하다가 1996년 신영자산운용 출범 때 복귀해 출범 실무를 맡았고 이후 이사 부사장을 거쳐 2010년 신영자산운용 사장으로 승진했다.

    신영자산운용은 국내 자산운용업계 선두그룹을 지키는 가치투자 전문회사다. 마라톤펀드로 명성을 날린 데 이어 배당주펀드로 완전한 아성을 구축했다. 전체 국내 배당주펀드의 70% 이상을 신영이 운용하고 있으니 자타가 공인하는 배당주 투자의 지존이다. 5년째 이 회사 CEO 자리를 굳게 지키고 있는 이상진 사장을 만나 신영자산운용의 강점과 비전을 들었다.

    이 사장은 먼저 신영자산운용의 존재 이유부터 설명했다.

    “우리 회사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나. ‘고객의 돈’을 벌어주기 위해서다. 우리 자산 13조원이 다 남의 돈이다. 이 중엔 군대 졸병이 매달 월급 받아 넣는 것도 있다. 그런 돈을 어떻게 깨먹나. 우리 고객이 100만명이 넘는데 대부분 서민이다. 그러기에 그 돈을 불려줘야 한다. 상품 파는 것보다 그 돈 불리는 게 먼저다. 그만큼 중요하다.”

    그렇게 고객자산을 불리는 게 회사 성장의 지름길이라고 강조했다.



    3년 내 자산 30조원 잠정 목표 “아직 공표하지는 않았으나 내 마음 속에 3년 내 30조원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워두고 있다. 그만큼 (예탁금을) 받겠다는 게 아니라 지금 있는 자산 13조원을 100% 불려줌으로써 달성하겠다는 것이다.”

    다른 운용사들과 달리 자산의 대부분이 주식형 펀드이기 때문에 어려운 것만도 아니라고 했다.

    “우리는 자산의 90% 이상이 주식형이다. 채권형 펀드나 MMF는 거의 없다.”

    다만 고객이 피 같은 돈을 맡겼기에 누구보다 소중히 관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거의 고객 월급에서 나온 돈이다. 예기치 못한 사태가 발생해 어쩌다 한 해 줄어들더라도 3년 이상 지나면 반드시 은행 이자 이상은 나와야 한다. 중수익을 추구하더라도 리스크를 최대한 줄이며 이익을 내려고 한다.”

    그가 이처럼 고객의 이익을 중시하는 것은 신영에 맡기면 이익을 내줄 것이란 고객의 믿음이 모회사인 신영증권을 키웠고 또 신영자산운용도 키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신영은 누구보다도 믿음을 중시한다. 1996년 8월 정식으로 회사가 출범했는데 6개월 전에 와서 설립 준비를 했다. 이 회사에서만 19년째다. 그때부터 경영진이 외부에서 온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만큼 특이할 정도로 경영의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는데 이것이 우리 회사의 가장 큰 장점이다. 대주주가 오래 지켜보고 믿을 만한 사람을 CEO로 쓴다. 그만큼 믿음을 중시한다.”

    대주주가 금융업의 본질을 잘 알기에 성실과 정직을 중시하고 일관되게 그것을 유지하는 게 신영자산운용의 가장 큰 강점이란 얘기다. 그는 “신영증권과 우리의 경영철학 싱크로율은 100%”라며 “신영자산운용의 운용철학에 오너의 경영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덧붙였다.



    배당, 주식투자의 새 패러다임 “원국희 회장은 1971년 신영증권을 인수한 뒤 단 한 번도 배당을 거른 적이 없다. 자산운용사를 세울 때도 처음부터 배당주펀드를 만들라고 했다. 주식투자의 기본은 배당이라고 했다. 19년 전 이 기본을 갖고 출범해 우리 회사도 첫 해부터 배당을 했다. 배당이나 배당주펀드가 생활화된 회사다.”

    사실 신영자산운용이 출범할 때만 해도 금리가 높아 주식투자에서 배당의 의미는 미미했다. 대부분 투자자가 캐피털 게인(Capital Gain; 시세차익)에 관심을 둘 때였다. 그만큼 신영은 앞서갔다고 할 수 있다.

    “지금은 주식시장의 철학이 바뀌었다. 투기에서 투자로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매출이 잘되고 성장이 잘될 때는 캐피털 개인에 관심이 갔지만 이제는 성장이 떨어져 배당 많이 하는 회사에 관심을 갖게 됐다. 배당은 저금리와 저성장 저물가와 맞물려 간다. 배당이 투자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정착됐다.”

    그러면서 배당주 펀드는 과거 일시적으로 나타났다 사라진 다른 펀드 유형과 달리 유행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혹자는 배당주펀드도 패턴이라며 바람이 지나면 수익률이 떨어질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배당주는 패턴이 아니다. 물론 배당주펀드도 일시 수익률이 떨어질 수는 있다. 그러나 몇 년 지나면 다시 회복한다. 미국 등 서구를 보더라도 배당을 꾸준히 하는 회사의 성적이 계속 좋았다.”

    특히 배당하는 회사는 대주주나 경영진의 철학이 건전한 게 또 다른 장점이라고 했다.

    “대주주는 배당하지 않고 이익을 챙길 여러 방법을 갖고 있다. 지분 10%만 갖고도 100%의 경영권을 행사해 이익을 빼돌리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배당하는 회사는 대주주가 건전하며 소수주주를 존중한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은행이자 이상을 돌려주는 회사라면 건강하다고 볼 수 있다. 이런 회사가 비정상 경영을 하거나 분식결산을 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이 사장은 다만 지금은 소수주주의 권리를 인정하는 게 대세라며 “배당은 우리 증시의 기본 명제가 됐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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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당주펀드에 유리한 환경 전개 펀드 규모가 커지며 다소 둔해졌다는 지적이 나오는 데 대해 이 사장은 “어쩔 수 없는 문제”라며 시인했다.

    “자산이 급증하면 운용역도 성장통을 앓는다. 펀드가 커지면 어떤 종목을 편입해야 할지 고민이고 수익률을 계속 유지해야 하는 부담도 있다. 적응기간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우리는 과거 18년 동안 배당주에 투자한 레코드가 쌓여 있어 이 정도로는 흔들리지 않는다.”

    그러면서 투자 환경이 배당주펀드에 유리하게 바뀌고 있다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과거엔 배당주 투자를 하는데 성장주, 가치주를 구분했다. 그런데 최근 대형주도 가치주화 되어가고 있다. 기업들이 무리한 확장을 하기보다는 생산성을 높이고 알뜰하게 살림을 한다. 삼성그룹이 비주력 부문을 매각하거나 통폐합하는 것처럼 각 그룹이 주력기업 위주로 재편하고 있다. ROE 목표 등에 집중하면서 성장주가 가치주로 바뀌고 있다. 매출 위주에서 이익 위주로 가고 있다. 조선이나 건설업의 경우 과거엔 놀면 뭐하냐며 고정비만 나오면 수주를 했다. 덤핑수주로 대규모 손해를 보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이익이 안 나면 왜 하냐고 한다. 그만큼 우리에겐 종목선택의 여지가 커졌다. 투자 환경이 좋아졌다.”

    기업들이 투자를 선별적으로 하면서 고용이 늘지 않고 은행 대출도 늘어나지 않지만 그것이 가치투자나 배당투자에 우호적 환경이 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퇴직연금 수익률 제고는 사명 점점 중요성이 높아지는 퇴직연금과 관련해 이 사장은 이제 개인들이 퇴직금에 의존하기보다 연금으로 대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업들은 연봉에 과거엔 넣지 않던 것들이 들어가 부담이 늘어나자 퇴직금 누진제를 없애고 있다. 게다가 직원들은 노마드처럼 수시로 이동해 퇴직금 적립도 많지 않다. 더군다나 비정규직과 계약직 홍수로 퇴직금 보장 시스템도 사라졌다. 과거 일시금으로 몇 억원씩 나가던 퇴직금 액수가 크게 줄거나 사라지고 있다.”

    그렇다고 정부에 노후를 기댈 생각은 버리라고 했다.

    “정부가 노후를 책임지는 것도 제한적이다. 재원이 달려서 할 수 없다. 나는 운이 좋아 내년부터 국민연금 140만원을 받는다. 과·부장으로 끝나면 140만원 국민연금과 1억~2억원의 퇴직금밖에 남지 않는다. 그래서 자영업을 하는데 90%가 망한다.”

    그만큼 서민이나 중산층 노후에 퇴직연금이 중요하다는 것. 직장인들은 이제 취업 직후부터 자산을 불려가야 한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개개인이 각개 약진해야 한다. 퇴직금을 연금으로 바꿔 직장 이동과 무관하게 수십 년 적립해서 월지급식으로 받아 쓰면 된다.”

    다만 저금리 국면이 장기간 이어져 위험자산 투자를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축의 시대가 가고 ‘투자의 시대’가 됐다는 것이다.

    “젊은이들은 자산이 100이라면 그중 30~40은 위험자산에 투자해 수익률을 높여야 한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연 1~2% 차이가 작은 것 같지만 30~40년 후면 엄청나게 벌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퇴직연금의 수익률을 높이는 게 지상과제라고 했다.

    “이것은 절대적 명령이다. 월급쟁이 돈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사명감을 갖고 운용한다. 다행히 배당형 퇴직연금의 수익률이 좋다. 우리는 10~30년 앞을 내다보고 투자한다. 은행이자 2배 이상을 꾸준히 내는 게 우리의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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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가 단테의 <신곡>을 좋아하는 까닭은 … 이상진 사장은 홈페이지에 ‘Never up never in’이란 컷으로 매주 두세 편의 칼럼을 쓴다. 최근엔 ‘신화’란 제목으로 인간의 무지와 오만을 경계했고, ‘톨레랑스’란 글에선 최근 발생한 파리 샤를리 엡도 사건의 이면을 사색했다. 이 사장은 “돈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좋은 사회를 만들어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이라고 글을 올리는 이유를 말했다.

    그는 경제를 GDP 위주로 보던 데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명한 부자라면 분배에 나서야 하며, 다수 국민이 잘살아야 재벌도 잘살 수 있다고 했다. 서구 위주의 편견도 버리자고 했다. 금융위기는 서양 사람들의 도덕위기에서 발생했으며 탐욕을 통제해야 한다는 것. 그러면서 “은행 이자의 2배를 목표로 잡은 것도 지속가능한 수익이라고 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으나 성대 유학대학원을 나와 동양철학을 공부하고 있다. 이를 위해 서양철학과 역사까지 공부한다. 그의 사무실엔 인문, 과학, 역사, 철학 책이 가득하다. 그런 다양한 사고를 통해 투자 철학을 정립하는 게 CEO 업무의 가장 큰 몫이라는 것이다.

    이 사장의 첫 직장은 현대중공업이다. 그곳에서 선박영업을 하면서 금융에 눈을 떠 신영증권으로 옮겼다. 이후 베어링 슈로더 등에서 최고투자책임자로 활약하다 신영이 자산운용사를 만들 때 복귀해 신영자산운용 출범의 실무를 맡았고 이후 최고경영자까지 올랐다.

    신영의 오너는 그에게 자산운용사 경영을 전적으로 맡겼다. 원종석 신영증권 사장은 1년에 한 번 새해 첫날 와서 잘 부탁한다는 인사만 하고 가고 원국희 회장은 설립 이후 두세 번 방문했을 뿐이라고 한다. 그만큼 대주주의 신임이 두터운 데는 까닭이 있다.

    “1990년대 초 영하 40도까지 떨어지는 추운 겨울날 원종석 사장과 샌프란시스코, 시카고, 뉴욕 등을 돌면서 잘한다는 운용사 30여 곳을 방문해 그들의 장점을 배웠다. 거기서 얻은 결론이 가치투자다.”

    그 철학을 고수해 제대로 실적을 올리니 믿고 맡기는 게 당연하다.

    그는 즐겨 읽는 책으로 단테의 <신곡>을 들었다. 그 첫머리는 이렇게 시작한다.

    “우리 인생길 반 고비에/ 올바른 길을 잃고서 난/ 어두운 숲에 처했었네./

    아, 이 거친 숲이 얼마나 가혹하며 완강했는지/ 얼마나 말하기 힘든 일인가!/ 생각만 해도 두려움이 새로 솟는다./

    죽음도 그보다 덜 쓸 테지만/ 거기서 찾았던 선(善)을 다루기 위해/ 거기서 보아 둔 다른 것들도 말하려 한다. …”



    이 사장은 탐욕에 빠졌을 때, 잡념이 생겼을 때마다 이 책을 본다고 했다.

    “<신곡>은 인간 영혼의 밑바닥까지 가본 것을 다뤘다. 신으로부터, 중세의 암흑으로부터 벗어나는 문화적 사건의 책이기도 한데 아주 재미있다. 성경의 시편처럼 마음의 위안을 주는 책이다.” 신영자산운용의 운용역은 업계 최상으로 꼽힌다. 그만큼 능력 있는 실무자들이 있는 회사에서 사장의 역할이 궁금했다.

    “나는 운용에 개입하지 않는다. 방향만 잡고 사람 관리하는 게 내 일이다. 다른 일이나 마찬가지로 운용도 적성이 있다. 3~5년 평가해서 아닌 사람은 바꿔줘야 한다. 그게 사장이 할 일이다. 아울러 방향을 잃지 않도록 끊임없이 강조한다. 방향을 잃으면 재앙이다. 산에서 길을 잃었을 때 계곡을 따라 내려가면 살 확률이 높다. 투자에선 배당을 따라 가면 투자의 강과 만나고 생존할 수 있다.”

    그에게 흔들리지 않고 원칙을 고수하는 비결을 물었다.

    “비법은 없다. 실패하지 않을 확률을 높이는 것뿐이다. 성공보다 중요한 게 실패하지 않는 것이다. 투자의 무림엔 여러 권법이 있지만 이 권법이 최고다. 단순하면서도 알려져 있는 가장 안전한 방법이다. 존 폴슨은 금융위기 때 대박을 냈으나 이후 투자에선 계속 손실을 내고 있다. 최근도 석유투자에서 큰 손실을 봤다. 우리가 미래를 예측하지 못하는 인간이란 점을 인식하고 평범하게 접근해야 한다. 4개월 전 유가가 40달러대로 떨어질 것을 누가 알았겠나. 세계 어떤 석유 전문가도 그걸 예측하지 못했다. 주가 예측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시장을 예측하지 않는다. 단순한 것만 본다. 주가를 보지 않고 기업을 보고, 은행금리의 2배만 목표로 한다. 이 간단한 것만 익히면 성공한다.”

    [정진건 기자 사진 정기택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53호(2015년 0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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