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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지펀드 춘추전국시대
입력 : 2013.12.20 11: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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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지펀드 ‘백두’를 내세워 지난 연말 시장에 등장한 신예 ‘앙팡테리블’ 브레인자산운용이 올해 초 화끈한 ‘한 방’을 보여주면서 시장이 후끈 달아올랐다. 이에 질세라 트러스톤자산운용도 경쟁 대열에 가세했다. 설립 한 달도 안 돼 트러스톤의 헤지펀드 ‘탑건’엔 2000억원에 가까운 돈이 쏠렸다. 여기에다 원년 멤버 삼성자산운용의 ‘에쿼티헤지’, 미래에셋자산운용의 ‘오퍼튜너티’가 쌓아 놓은 명성과 함께 10월 들어선 서재형 전 창의투자자문 대표의 대신자산운용이 1000억원 규모의 ‘에버그린’을 선보였다.
그동안 거들떠보지도 않던 기관투자가들이 앞다퉈 성과가 좋은 헤지펀드에 돈을 맡기고 있다. 국민연금을 포함해 대형 연기금들도 내년부터는 헤지펀드 투자를 적극 고려중이다.
삼성· 브레인 ·트러스톤 탁월한 수익률 최근 헤지펀드 시장의 특징은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운용 실력이 입증된 헤지펀드에는 돈이 쏠리는 반면 별 볼일 없거나 고객 자산을 까먹은 헤지펀드들은 아예 문을 닫아야 하는 형편이다.
우선 헤지펀드 전통의 명가 삼성자산운용의 헤지펀드를 보자. 지난 2011년 12월 설정된 삼성 헤지펀드 1호 삼성H클럽 에쿼티헤지 펀드의 경우 설정원본 2025억원으로 설정 후 수익률 17.01%, 연초 이후 수익률도 9.14%에 달한다. 매년 10%씩 꼬박꼬박 안정된 수익률을 보여주고 있다.
삼성 헤지펀드에는 삼성증권 슈퍼리치 고객들도 많이 가입했다. 그 동안 랩어카운트의 들쭉날쭉한 수익률로 마음고생 많았던 슈퍼리치들 얼굴에 웃음꽃이 핀 것은 당연한 얘기다.
삼성 2호 헤지펀드인 삼성H클럽 멀티스트레티지 펀드는 750억원 설정 원본에 지난 9월말까지 누적수익률이 15.42%에 달한다. 올해 들어서만 11.18% 수익을 거뒀다. 3호 헤지펀드 삼성H클럽 오퍼튜니티 역시 연초 이후 수익률이 10.01%에 달한다.
이 같은 성과를 바탕으로 개인고객 전용으로 삼성자산운용이 지난 8월 내놓은 삼성H클럽에쿼티헤지전문사모투자신탁제2호 펀드가 한 달여 만에 49인의 투자자를 모두 모집해 완판됐다. 펀드 설정액은 456억원으로 이중 프라임브로커 시드머니를 제외한 350억원 이상이 개인고객 자금으로 채워졌다.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헤지펀드란 시장상황과는 상관없이 고객들에게 수익을 전달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된 사모펀드를 의미한다.
한마디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고객 돈을 보호한 채 버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삼성의 헤지펀드는 이름값 그대로 시장에 상관없는 꾸준한 수익을 내면서 명성을 쌓아가고 있다.
한상수 삼성자산운용 헤지펀드운용본부장은 “10년, 20년, 30년을 갈 수 있는 펀드를 만들고, 고객들이 돈이 많거나 적거나 자기의 여윳돈을 맡기고 두 발을 쭉 뻗고 잘 수 있는 펀드를 만들자는 게 꿈”이라며 “수익률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리스크를 제어하는데 집중하고 있다”고 밝혔다.
화끈한 한 방을 위한 진검승부의 세계 헤지펀드는 투자자 보호를 위한 규제가 까다로운 공모 펀드와는 달리 운용상 제약이 없어 다양한 자산을 대상으로 운용전략을 사용할 수 있다.
사실 펀드매니저 중에서도 프로 중 프로만을 엄선해 놓은 헤지펀드 세계는 진검승부다. 좋은 주식을 ‘사놓고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Buy&Hold)’, 몸을 낮추고 기회를 노리는 아웃복서형 투자를 그들은 거부한다.
시장과 정면으로 맞서서 오를 주식은 사고, 내릴 주식은 공매도를 하는(롱숏 전략) 인파이트형 투자다.
화끈한 한 방을 노리는 투자자들을 위한 헤지펀드가 바로 브레인자산운용의 백두이다.
지난해 9월 2025억 규모로 설정된 브레인의 백두는 설정 1년 만에 24.69%란 기록적인 성과를 올렸다. 연초 대비해선 11.64% 수익을 냈다. 공격적인 주식 투자로 유명한 박건영 브레인자산운용 대표이사의 투자철학이 그대로 배어난 펀드다. 반면 두 번째로 올해 3월 2759억원 규모로 설정된 브레인의 두 번째 헤지펀드 백두는 설정 후 수익률이 2.70%에 불과하다.
그것도 중간에 손실을 크게 냈다가 복구했다. 하지만 10월 들어서 첫 일주일 만에 3.60%라는 경이적인 성적을 냈다. 잃을 때는 잃지만 벌 때는 또 크게 버는, 스윙 폭이 큰 헤지펀드이다.
김태준 브레인자산운용 헤지펀드운용본부장은 “주가는 이익의 함수라는 것이 펀드를 운용하는 기본 철학”이라며 “단기적으로는 각각 개별주식들이 주가 진폭과 방향이 다를 수 있지만 중장기적으로 제자리를 찾는다는 믿음에 따라 롱숏전략을 추구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순간순간 어려움이 있을지 몰라도 그 철학을 지키고 색깔을 내면서 운용할 계획”이라며 “단기성과가 아니라 고객을 위해 최선의 장기성과를 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올해 상반기 롱숏 공모펀드의 주역, 트러스톤 다이내믹 시리즈의 가풍을 물려받아 지난 7월 설정된 트러스톤자산운용의 트러스톤 탑건 코리아롱숏펀드 역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다.
2000억원에 약간 못 미치는 1923억원으로 설정된 탑건 펀드는 9월 한 달 동안에만 3.79%라는 높은 수익률을 올렸다. 설정 후 수익률로는 4.81%. 1개월 수익률만 놓고 비교한다면 헤지펀드 가운데 1등이다.
보잘 것 없는 실적에 청산 펀드도 많아 미래에셋자산운용 출신으로 최근 트러스톤으로 둥지를 옮긴 김성우 트러스톤자산운용 헤지펀드운용본부 본부장은 “기업 방문 등 바텀업 분석(기업가치 기반 분석)을 철저히 하고 이를 통해 투자자들에게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가져다주는 것이 트러스톤의 목표”라며 “그런 철학을 헤지펀드에 담아서 운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 본부장은 “싱가포르 등지에서 헤지펀드를 운용해 온 트러스톤의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시장 변동성은 3분의 1로 줄이면서도 연 수익률은 13~15%를 낼 수 있도록 펀드를 운용한다”며 “포트폴리오를 어떠한 비율로 짜고 리스크를 어떻게 관리했을 때 수익률과 변동성이 나오는지 경험했다”고 밝혔다.
반면 헤지펀드 성과가 보잘 것 없는 것으로 판명된 헤지펀드들은 아예 청산되는 경우도 많다.
한국투자신탁운용은 지난 4월 300억원 규모 한국투자펀더멘털롱숏전문사모투자신탁1호종류C-S 펀드를 청산했다. 운용 성과가 신통치 않자 아예 문을 닫아 버렸다. 헤지펀드 2호를 내놓겠다고 공언은 했지만 소식은 없다.
그 동안 운용해왔던 내부 시드머니 자금을 모두 환매한 상태다.
동양자산운용도 헤지펀드를 청산했다. 스타매니저를 영입해 설립 초기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의 명장 시리즈의 경우 한국주식 롱숏 펀드는 설정 후 수익률이 -6.70%에 불과하다. 헤지펀드 담당 매니저가 결국 교체되는 비운을 겪기도 했다.
국내외 주식에 투자하는 신한BNPP명장 Asia ex-Japan 주식 롱숏펀드의 경우 연초 후 15.48%라는 높은 수익을 올렸지만 지난해 부진을 크게 만회하지는 못했다.
헤지펀드 매니저가 역시 교체된 KDB자산운용의 KDB PIONEER 롱숏 뉴트럴 펀드의 경우, 설정 후 손실이 19.07%이나 된다. 특히 장이 크게 오른 지난 9월 한 달에만 7.87% 손실을 기록하며 업계 최하위 성적을 거뒀다.
KDB자산운용은 미국에서 오랜 기간 헤지펀드를 운용한데다 비관적 장세 전망으로 유명한 데이비드 전 대표를 영입해서 운용을 맡겼지만 아직은 이름값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셈이다.
[이근우 매일경제 증권부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38호(2013년 1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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